81. 올빼미
나강인은 세 시간 동안 다섯 사람에게 공격, 회피, 반격 기술을 반복 경험하게 하면서 굴렸다.
한 명을 세 시간 내내 굴리면 죽을 수도 있다. 다행히 다섯 명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굴린 덕분에 아무도 죽지는 않았다.
훈련을 그렇게 오래 시키려면 에너지를 중간에 보충해야 한다. 나강인은 중간에 햄버거도 먹고 김밥도 먹고 스포츠음료도 마셔가며 그들을 상대했다.
그날 훈련이 끝난 후에, 완전히 탈진한 사람들에게 나강인이 물었다.
“다음 훈련은 언제가 좋겠습니까?”
경호관 최남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나 사범님이 많이 바쁘실 텐데….”
나강인의 호칭은 어느새 사범이 되었다.
“저야 뭐, 어떻게든 시간을 내겠습니다. 나랏일 하는 분들에게 그 정도 편의는 봐 드려야죠.”
“저, 저희가 쉬는 날이나 연차를 맞춰봐야 해서요. 나 사범님도 그날 되시는지 확인해야 하고….”
“뭐, 그럼 날짜 나오면 연락 주시죠.”
신은하와 윤아름은 세 시간 내내 흥미진진하게 훈련을 구경했다. 중간에 간식을 사 오는 건 윤아름이 맡았다.
나강인이 두 사람을 데리고 체육관을 나갔다.
드러누워 있던 경찰 요원이 최남수에게 따졌다.
“남수 형. 사람을 데려와야 할 거 아냐. 우리 다 죽이려는 거야?”
“이거 왜 이래? 너도 총권도를 꼭 배워보고 싶다며?”
“우리 과장이 진짜 궁금해하니까 그러지.”
군 특수부대 요원도 말했다.
“야. 난 총권도 배우려고 연차 쓴다니까 그 이야기가 여단장님한테까지 올라갔다. 여단장님이 나한테 직접 전화해서 총권도가 도대체 어떤 무술인지 확실히 배워오라더라.”
정보기관에서 나온 사람도 맞장구쳤다.
“우리 과장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경호관 최남수가 물었다.
“그럼 다음 훈련일에 연차 쓰는 건 다들 어렵지 않겠네?”
요원들이 말했다.
“연차 안 써도 돼. 다음부터는 교육출장으로 처리해달라고 해도 군소리 없이 승인 날 거 같아.”
“아. 나도 그렇게 신청해야겠다. 우리도 결재 올리면 통과될 거다.”
“연차 아끼는 좋은 팁 땡큐다.”
최남수가 다섯 명 중 유일한 여자 요원이자 유일한 민간인인 민영희에게 물었다.
“넌 왜 조용해? 시간 안 돼?”
그녀가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날 이렇게 막 다룬 남자는 처음이야.”
“응?”
“심장이 두근두근해.”
최남수는 어이가 없었다.
“야.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하도 굴러서 숨이 차서 그런 거야. 그리고 나 사범님이 신은하 씨랑 같이 온 거 못 봤어? 네가 상대가 되겠냐?”
민영희는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신은하는 잘나가는 연예인인데 설마 일반인하고 사귀겠어?”
“나 사범님은 누가 봐도 일반인은 아니지 않나?”
“아…. 그건 그러네.”
“혼자서 우리 다섯을 세 시간이나 굴렸는데도 멀쩡한 체력을 봐라. 돌아가면서 상대한 우리 다섯 명은 이렇게 나자빠져 있는데. 사람 맞나 싶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민영희가 불평했다.
“방금 애 둘 낳아서 대학 보낼 계획까지 다 세웠는데, 남수 오빠 때문에 내 꿈이 깨졌잖아.”
“야. 쟤 너무 굴러서 정신이 좀 나간 거 같다.”
“영희는 원래 평소에도 정신이 좀 나가 있었어.”
“정신 들게 시원한 치맥이나 하러 가자.”
“찬성. 이렇게 고생한 날은 고기를 먹어줘야 근육이 강해지지.”
***
나강인이 물었다.
“뭐 먹을래?”
윤아름이 물었다.
“강인 오빠. 혹시 치킨도 만들 줄 알아요?”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야전 전술 요리법에는 짐승을 사냥해 식량으로 쓰는 기술이 있습니다.
“만들 줄 알지.”
“와! 역시 이 오빠는 다 잘해!”
- 다만, 그런 상황은 보급이 최악일 때 일어나므로, 기름을 많이 소모하는 치킨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또한, 생존이 최우선인 상황에서 쓰는 조리법이라 맛은 없습니다.
“근데 치킨은 꼭 돈 주고 사서 먹어. 그게 더 맛있어.”
“칫. 강인 오빠가 만든 치킨은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했는데.”
신은하도 한마디 했다.
“진짜 맛있겠지.”
나강인이 앞쪽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치킨은 저 집 가서 먹자. 오늘 훈련비 받았으니까 내가 쏜다.”
그들은 매운맛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를 마셨다.
신은하가 먼저 치킨을 먹은 후에 맥주를 마시고 나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캬아아! 역시 치킨 먹을 때는 맥주야!”
그녀가 치킨을 다시 한 조각 집었다.
“이렇게 치킨의 맵고 기름진 맛을 맥주로 씻어내면서 먹어야 치킨이 더 맛있거든.”
윤아름이 감탄했다.
“와아. 언니는 진짜 체질까지 배우인가 봐요. 그렇게 먹고 어떻게 그 몸매가 유지가 돼요?”
“내가 원래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야. 물론 노력도 해야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 신은하가 치킨을 요원님보다 많이 먹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하십시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신은하가 물었다.
“왜 웃는데?”
“아니다.”
“내가 귀여워서?”
“아니라고.”
“그럼 내가 예….”
“그만해라.”
그 치킨집에 손님 다섯 명이 새로 들어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올빼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다섯 명은 치맥을 하러 들어왔다가 나강인을 보고 흠칫했다. 두 명은 도로 나가려고 했다.
윤아름이 그들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앗! 여기예요! 여기!”
요원 중 한 명이 속삭였다.
“못 본 척하고 그냥 나갈까?”
“저렇게 대놓고 아는 체를 하는데 무시하고 나가면, 다음 훈련 때 감당이 되겠냐?”
여자 요원 민영희가 손을 흔들었다.
“어머! 나 사범님도 계셨네요. 합석해도 되죠?”
경호관 최남수가 경찰 요원에게 물었다.
“야. 너 영희가 ‘어머’라고 하는 거 들은 적 있냐?”
“듣기는커녕 상상조차 해본 적 없지. ‘캬아악’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다른 네 명은 정부 소속 요원이지만 민영희는 프리랜서 요원이다. 그녀는 상황에 따라서 정부의 일을 할 때도 있고 민간회사의 일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잘나가는 그녀가 오늘은 참 열심히 굴렀다. 특히 처음 20분은 나강인을 한 대도 때려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게 일이었다.
민영희가 윤아름에게 물었다.
“나 사범님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알바 윤아름이 대답했다.
“강인 오빠는 우리 피시방 요리사님이에요.”
민영희가 그 대답은 대충 넘기고 진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신은하 씨는 나 사범님이 무술감독이라서 아는 거예요? 비즈니스 관계?”
그건 은근히 그러기를 바라고 한 질문이다.
신은하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엄청 가까운 사이예요.”
민영희는 연예인인 신은하가 이렇게 대놓고 관계를 인정할 줄은 몰랐다.
“어, 그, 그러시구나.”
신은하라고 해서 대책 없이 이런 말을 한 건 아니다. 이 이야기가 SNS에 올라가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진다.
“그런데 다들 정부기관 요원이시라고 들었거든요. 그럼 입이 무거우시겠죠? 오호호호.”
경찰 요원이 어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예. 당연히 입이 무겁죠. 그런데 혹시 위에서 지시하면 저희가 보고서를 써야 할 수도 있어서….”
신은하는 당황했다.
“네?”
민영희가 말했다.
“저만 빼고요. 저는 정부 일도 하지만 민간 일도 하는 프리랜서거든요. 공식적으로는 공무원이 아니에요. 그래서 입도 좀 가벼운데.”
신은하가 어색하게 웃었다.
“호호호. 방금 그거 농담이었어요. 강인 오빠는 우리 영화 무술감독님이세요.”
그녀가 그 말을 한 후에 정색하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짚었다.
“보고서에는 꼭 그렇게 적으세요. 이상한 소문이 돌면요. 여러분의 훈련 강도를 두 배로 높이라고 강인 오빠를 조를 거니까.”
군 특수부대 요원이 얼른 말했다.
“저는 그런 것까지 보고서에 적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부대는 총권도만 관심이 있거든요.”
다른 네 사람이 그 요원을 째려보았다.
그 요원이 변명했다.
“아, 왜. 나라도 살아야지. 전투에서 전멸은 피해야 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라고.”
그날 치맥은 신은하가 샀다. 먹고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
5일 뒤에 드라마가 방영됐다.
피시방 삼인방이 피시방에서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보았다.
피시방 사장 조카 차은서가 감탄했다.
“와. 강인 오빠는 자전거도 잘 타는구나.”
알바 윤아름이 물었다.
“저 자전거는 왜 혼자 굴러가다가 돌아와? CG야?”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아는척했다.
“자전거는 원래 바퀴가 굴러가는 동안은 안 넘어져. 그러니까 핸들을 적당한 각도로 꺾어서 정확한 힘으로 밀면, 자전거가 저렇게 큰 원을 그리면서 굴러가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어머. 진짜야?”
“아니. 나도 몰라.”
“잉?”
“그냥 너 재미있으라고 잠깐 아는척한 건데….”
윤아름이 안성환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야!”
“악! 어? 은하 누나 나온다!”
드라마에서 신은하와 이보라가 한강 공원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나왔다.
윤아름이 설명했다.
“은하 언니는 카메오로 출연한 거야.”
“아름아. 너도 나처럼 아는척하는 거야?”
“죽을래? 내가 너니? 직접 들었거든?”
안성환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연기 진짜 실감 나게 한다. 둘이서 진짜 싸우는 거 같아.”
차은서가 말했다.
“진짜 싸우는 거 맞아.”
“네?”
“저 언니들은 방송에서도 저렇게 싸우네. 저거 연기 아니야.”
차은서가 드라마를 보면서 게시판에 올라오는 짧은 글들을 확인했다.
- 자전거 저거 뭐냐? ㅋㅋ
- 자전거가 살아있네?
- 지금 자전거만 보입니까? 액션이 장난 아니잖아요.
- 자전거 묘기 선수를 썼겠죠.
- 그거야 당연하고요. 난 싸울 때의 액션 타격감을 말한 겁니다.
- 나 저런 타격감 전에 본 적 있어요. 햇살 좋은 날 보면 저런 느낌이거든요.
- 청춘드라마에서 저런 타격감을 볼 줄 몰랐는데.
- 그러게요. 피디는 저렇게 찍을 능력이 있으면서 그동안은 왜 액션을 안 보여준 걸까요?
***
나강인은 신은하와 카페에서 만났다.
신은하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게시판을 확인하며 히죽 웃었다.
“봐봐. 나랑 보라랑 투샷으로 잡으니까 내가 더 예쁘대.”
“외모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꽤 있는 것 같다만.”
“오빠는 지금 누구 편이야?”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탁자 위에 커다란 종이가방을 올려놓았다.
“오다가 주웠다. 이거 너 해라.”
“응? 이게 뭔데?”
“옷 속에 입는 거.”
신은하의 얼굴이 당장 새빨개졌다. 그녀가 얼른 종이가방을 잡아 카페 탁자 아래로 내리며 속삭였다.
“미쳤어? 속옷을 왜 여기서 주는데!”
“어…. 속옷이 아니라, 옷 속에 입는 거라니까?”
“그게 속옷이잖….”
신은하는 종이가방이 속옷치고는 너무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좀 묵직하다? 도대체 몇 벌이나 산 거야?”
드래곤 플레이트를 아무리 경량화해도 무게가 진짜 속옷처럼 가벼울 순 없다.
그녀가 종이가방을 살짝 열어보았다.
금속으로 만든 셔츠 비슷한 것이 보였다. 진짜 셔츠와는 달라서 납작하게 접히지는 않았다. 그래서 큰 종이가방이 필요했다.
그녀가 그걸 조금 꺼내보았다.
“아. 이거 옷이 아니라….”
그녀는 이런 느낌의 물건을 낙귀 해적단이 습격했을 때 본 적이 있다.
“그때 강인 오빠가 배 위에서 입고 있던 방탄조끼?”
“어. 그거랑 같은 거다.”
그녀가 얼굴에 손바람을 부쳤다.
“휴우. 난 또. 진짜 옷인 줄 알았네.”
“그거 너 해라.”
그녀가 방긋 웃었다.
“진짜 고마워. 처음 주는 선물이 방탄조끼인 건 좀 에바지만.”
“네가 전투에 자주 휘말리니까 주는 거야.”
그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설마 나한테 또 그런 일이 있으려고.”
그녀가 드래곤 플레이트를 손으로 만져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철인기공에서 파는 거야? 아니면….”
“내가 한 땀 한 땀 직접 만들었지.”
“그 공작실에서?”
“어.”
“와…. 힘들었겠다.”
그녀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물건보다 이렇게 직접 만든 선물을 더 선호한다.
원래 좋던 기분이 더 좋아졌다.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크게 쏜다!”
“페넬로페에 예약했다. 밥은 네가 안 사도 돼.”
“앗! 선물도 주고 날 위해서 예약도 했어?”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생각했다.
‘오늘 나한테 중요한 말이라도 할 거 있나? 이히히.’
나강인이 말했다.
“오 셰프님이 새 메뉴가 나왔으니 시식하고 평가 좀 해달라더라. 그래서 오늘 밥은 어차피 공짜야.”
레스토랑 페넬로페에서 새 메뉴를 개발했다. 사장 오규철은 나강인이 대단한 실력의 요리사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에게 메뉴 평가 요청을 했다.
당연히 식사는 공짜다.
신은하가 혀를 찼다.
“쳇! 공짜라서 가는구나. 난 또.”
나강인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드라마 푸른 하늘의 작가 도주희였다.
“여보세요.”
- 강인 씨! 도와주세요!
나강인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습격입니까?”
- 습격? 맞아요. 새 스토리가 막 제 머리를 습격해요!
“예?”
- 우리 드라마도 액션을 많이 추가하고 싶어요! 우리 드라마는 원래 전반부는 이십 대의 애환을 그렸다가, 후반부에 통쾌하게 가거든요. 그때 명품 액션을 잔뜩 넣고 싶다고요!
“햇살 좋은 날처럼요?”
- 맞아요! 그 영화 다시 봤어요. 나강인 씨가 그날 난지공원에서 보여준 모습과 비교도 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우리 드라마에 액션을 추가해도 일정이 딜레이 되진 않겠구나!
“가능은 하죠.”
- 그러니까 좀 도와주세요. 네? 이건 진짜 강인 씨만 할 수 있어요.
“최 피디님하고는 이야기가 된 겁니까?”
- 당연하죠! 최 피디 지금 제 옆에 있어요. 제가 투덜댄 게 있으니까 제가 부탁해야 한다고 해서…. 저번에는 미안해요. 그 정도로 잘하실 줄은 몰랐어요.
“음…. 생각 좀 해보고요. 저도 하는 일이 이것저것 있어서.”
- 꼭 도와주세요. 네?
“오늘 중으로 답을 드리죠.”
- 고맙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신은하가 정색하고 물었다.
“뭐야? ‘푸른 하늘’에 액션을 추가하재?”
“어.”
“우리 영화처럼?”
“그렇지?”
“그럼 이번에도 조연이 뜨나? 보라가 막 뜨고 그러나?”
“글쎄? 누굴 띄울지는 대본을 봐야 알겠지.”
나강인은 방금 전화로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설명했다.
신은하는 설명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그럼 보라는 확실히 강인 오빠 덕을 보겠네.”
나강인이 물었다.
“왜? 하지 마?”
“왜 안 해? 당연히 해야지. 영화랑 드라마에서 연달아 활약하면 강인 오빠의 위치가 확실해질 거야.”
“나야 뭐 꼭 그 드라마를 해야 하는 건 아닌데.”
“아냐. 해. 꼭 해주세요.”
AI 전지인도 얼른 말했다.
- 예산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얼굴만 안 나오면 됩니다. 신은하가 맞는 말을 할 때가 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