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83화 (83/411)

83. 고전 명작영화

영화 ‘햇살 좋은 날’의 여자 주연배우 오세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미소를 보여주면 젊은 남자는 대부분 친절해진다.

하지만 나강인은 시큰둥했다.

그런다고 그만두면 오세나가 아니다.

그녀는 곧바로 평소의 자신만만한 상태로 돌아왔다.

‘대놓고 반응하면 내가 싫증 낼 것 같으니까, 시크한 척하면서 내 관심을 끌어보겠다?’

예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오세나가 방법을 바꿔 공격하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오세나는 상대가 남들처럼 친절해지자마자 차버렸다.

그녀는 그때와 같은 방법을 쓰려고 했다. 우선 나강인의 왼팔에 팔짱을 슬쩍 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친한척했다.

“강인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아뇨.”

“훗. 튕기….”

갑자기 나강인의 오른쪽에 신은하가 나타났다.

“어머어. 세나 언니. 언니는 강인 오빠랑 동갑일 텐데요? 그럼 오빠라고 하면 안 되죠.”

오세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은하 안녕? 너 우리 영화로 좀 떴더라?”

“그거야 당연히 감독님이랑, 추가 촬영을 해주신 분들이랑, 강인 오빠 덕분이죠.”

오세나는 영화 추가 촬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신은하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오세나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신은하는 한 방에 주연급으로 커버렸다. 여자 주연에게 쏟아질 스포트라이트도 오세나와 신은하가 나눠 받았다.

오세나의 소속사는 그 이유를 분석해 결론을 내렸다.

- 그날 강원도 촬영장에 신은하가 아니라 오세나가 있었으면, 천만 영화의 여배우가 받을 모든 인기를 오세나가 독차지할 수 있었다.

오세나가 실질적으로 손해 본 건 없었다. 영화가 천만을 돌파하면서 그녀의 인기도 더 올라갔다. 스포트라이트를 나눠서 받았는데도, 재촬영 없이 그냥 개봉했을 때보다 덕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쉬웠다.

‘내가 다 먹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방법을 궁리했다. 어차피 이번 영화는 이미 개봉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번 영화는 기회를 놓쳤지만, 다음 영화에서는 내가 다 먹을 수 있잖아?’

그러려면 나강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세나는 오늘 나강인에게 접근해 친근하게 굴었다.

그런데 나강인의 반응이 너무 시큰둥했다. 게다가 그녀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려는 순간에는 신은하가 나타나 견제했다.

오세나가 나강인의 왼쪽에서 신은하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어머.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가 이번에 뜬 건 다 강인 씨 덕분이지.”

오세나는 나름 공격이랍시고 그렇게 말했다. 목적은 신은하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은하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녀도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오히려 신은하는 다른 것을 경계했다.

‘저 언니가 왜 강인 오빠 팔을 잡으려고 들어?’

그녀는 오세나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꼬시려고 마음먹어서 못 꼬신 남자가 없다던데.’

오세나가 신은하를 보면서 나강인의 왼팔에 팔짱을 슬쩍 끼었다. 그러면서 씩 웃었다.

신은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녀도 얼른 팔짱을 끼려고 했다.

나강인이 오른팔을 들었다. 그러는 바람에 신은하는 팔짱을 끼는 데 실패했다.

신은하는 당황했다.

‘어? 왜 난 안 되는데? 벌써 저 여우한테 넘어간 거야? 아무리 오세나라도 이건 너무 빠르잖아!’

나강인이 오른손으로 오세나의 팔짱 낀 팔을 쓱 밀어내며 말했다.

“왜 이러시는지?”

“네?”

“스타급 여배우와 이러다가 스캔들 터지면 제가 피곤해집니다. 지금 누구 고생하라고 이러시는지?”

오세나는 당황했다.

“네? 피곤해지는 게 누구라고요? 누가 고생한다고요?”

신은하가 활짝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철벽 인간이 벌써 넘어갈 리가 없지!’

나강인이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은하야. 가자.”

그렇게 돌아서면 신은하에게는 얼굴을, 오세나에게는 등만 보여주게 된다.

신은하는 신났다.

“응!”

그녀가 오세나를 향해 씩 웃어준 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강인을 따라갔다.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아무리 보여주기라도 팔짱은 끼지 마라. 목격자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그러면 스캔들 터진다.”

그는 오세나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말투는 신은하에게 말할 때가 더 부드러웠다.

그녀는 그래서 더 신났다.

“흐흐. 알았다고.”

여자 주연배우 오세나에게 남자 주연인 김유찬이 다가왔다.

“이야아. 세나가 오늘 제대로 까였네?”

오세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유찬을 째려보았다.

“넌 이게 재미있니?”

김유찬이 실실 웃었다.

“꿀잼이다.”

“저 사람 뭐야? 고자야? 왜 내 살인미소를 보고도 반응이 없어?”

김유찬은 나강인이 낙귀 해적단과 싸울 때 그의 전투 능력을 직접 보았다. 강남 자칼 사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대충 들었다. 다른 소문도 들은 게 많다.

“강인 씨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얕은 수작은 안 통해.”

“보통이든 특별하든 어쨌든 남자잖아. 남자한테는 내 미소가 통해야 한다고.”

“나한테도 안 통하잖아.”

오세나가 김유찬을 째려보았다.

“내가 너 한번 제대로 꼬셔줘?”

김유찬이 얼른 두 손에 들었다.

“거절한다. 나는 결말이 비극인 로맨스는 취향이 아니라서.”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 배우들은 좋다. 인터넷으로 조회하면 나오는 그들의 필모그래피에 천만 영화 포스터를 넣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스태프도 참여한 영화가 잘 되면 좋다. 이력서도 그만큼 화려해진다.

손해를 본 사람은 없고 이익을 본 사람만 있으니 파티 분위기는 좋았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

술이라는 건 어느 선을 넘게 마시면 그때부터는 술이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하는 사람이 하나씩 늘어났다.

아역배우 이민지는 파티 초반에만 잠깐 참석하고 집으로 갔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초등학생이 계속 놀기엔 좋지 않았다.

손태민 감독이 술이 꽤 올라온 상태로 나강인에게 다가왔다.

“강인 씨. 우리 다음 영화도 같이 찍어야지!”

“글쎄요. 좀 바쁘긴 한데.”

“그치. 강인 씨 바쁜 거야 내가 알지. 그래도 강인 씨는 영화를 해야 해. 다음에는 카메라 앞에 딱 섭니다. 내가 그림 진짜 잘 뽑아줄게!”

“연기는 해본 적도 없어서.”

“되게 잘한다는 소문 다 들었는데! 우리 카메라 테스트부터 합시다. 카메라 테스트!”

나강인이 옆에 서 있는 김유찬에게 말했다.

“감독님이 많이 취하셨네요.”

“그러게요. 저쪽에 좀 눕혀야겠다. 감독님. 가시죠.”

김유찬과 조감독이 손태민을 구석 소파로 데려가 눕혔다.

손태민이 소파에 누우면서 말했다.

“우리 영화가 망하면 나도 망할 뻔했어. 내 돈을 다 날리면 난 집에서 쫓겨났을 거야.”

‘햇살 좋은 날’은 THO 엔터가 직접 투자해서 만들었다. 그렇다고 THO 엔터가 100% 투자한 건 아니다.

이태호는 이 영화에 다른 투자사는 끌어들이지 않았지만, 손태민 감독처럼 같은 배를 탄 사람의 돈은 받았다.

투자방식은 손태민의 돈이 THO 엔터에 들어갔다가 다시 영화에 투자되는 식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망하고 회사가 망하면 손태민도 망할 뻔했다.

손태민은 소파에 누워서 계속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조감독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렇게까지 술을 드시는 분이 아닌데, 오늘 기분이 정말 좋나 봅니다. 난 언제 영화 만들어서 이렇게 떠보나.”

김유찬이 옆에서 말했다.

“변형찬 씨도 이야기 들어온 거 있다면서요?”

조감독 변형찬이 어색하게 웃었다.

“흐흐. 이번 영화가 대박 난 덕분에 저한테 이야기하는 곳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좀 수정하자고 해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써놓은 게 있나 봐요?”

“예전부터 쓰던 시나리오가 있는데, 아직은 시나리오만 있죠.”

“그래요? 제목이?”

“운명의 창입니다.”

갑자기 AI 전지인이 그 제목에 반응했다.

- 병사들에게 추천하는 고전 명작영화와 제목이 일치합니다. 감독 변형찬. 이름도 일치합니다. 같은 영화입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넌 영화 파일은 가진 게 없다며?”

- 영상판매를 위한 추천리스트는 있습니다. 변형찬 감독의 운명의 창은, 고전 명작영화 목록에 있습니다.

“그럼 그 영화가 나오면 대박이 난다는 소리냐?”

-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평가가 높은 건 확실합니다.

나강인은 납득했다.

“흥행 여부는 모를 수도 있겠다. 영화가 처음엔 이런저런 사정으로 망했다가 나중에 재조명되는 경우는 가끔 있으니까. 흥행은 평범했는데 작품성을 인정받은 경우도 있고. 그래서 그 영화는 언제 나왔는데?”

- 2032년작입니다.

“원래는 10년은 더 있어야 나올 영화구나.”

왜 그런지는 짐작이 갔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햇살 좋은 날’은 나강인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상영관에 걸어보지도 못하고 망할 뻔했다.

“‘햇살 좋은 날’이 망하면 THO 엔터도 망하고 돈을 투자한 손태민 감독도 망했겠지. 그러면 조감독도 그 사태의 파편을 세게 맞았을 테니까, 자기 영화를 찍을 기회가 뒤로 쭉 밀렸겠네.”

그런데 그 영화는 흥행이 대박이 나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대박이 났으니까 ‘운명의 창’ 제작도 밀리는 게 아니라 앞으로 당겨질 수 있겠다.”

- 고전 명작영화 ‘운명의 창’이 만들어지는데 우리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기쁘구나?”

- 물론입니다.

나강인은 찜찜한 게 하나 있긴 했다.

“그런데 그 영화를 지금 찍으면, 10년 뒤에 찍는 수준의 영화가 나올까?”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알 수 없습니다.

“맞아. 알 수 없지.”

십 년 뒤에는 조감독 변형찬의 실력이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다. 그러면 영화가 더 잘 나올 확률이 올라간다.

그렇다고 지금 찍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지금 찍으면 더 개성 있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

설사 똑같은 영화를 찍는다 해도 결과까지 같은 건 아니다. 영화가 10년을 빨리 나와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지금 시대와 맞지 않아 묻힐 수도 있다.

주연배우 김유찬이 조감독 변형찬에게 물었다.

“운명의 창이면, 마음의 창 같은 건가요?”

“아니요. 창문이 아니라 찌르는 창입니다.”

“아. 액션영화인가보다.”

“액션도 꽤 들어가죠. 유물로 발견된 창을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거든요. 현재 시대에 그 유물과 얽힌 사건과 몇백 년 전 사건이 교차하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김유찬이 어색하게 웃었다.

“옛날이야기까지 찍으려면 제작비가…. 하하. 어느 영화사가 나서든 투자받기 쉽지 않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과거 이야기는 배우의 대사로 처리하고 넘기자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제안도 확정이 아니라 그냥 가벼운 제안인데 이런 고민이나 합니다. 제가 배가 너무 불렀죠?”

“뭐 어때요? 꿈꾸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나강인도 말했다.

“그러다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형찬이 웃었다.

“그냥 시나리오에서 과거 부분은 빼고 현재만 가지고 만들까요? 사실 그래도 되긴 하는데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2032년작 명작영화 ‘운명의 창’의 소개 문구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변형찬에게 말했다.

“과거 이야기는 빼면 안 됩니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구조를 살려야 더 좋은 영화가 될 것 같으니까요.”

변형찬이 밝은 얼굴로 물었다.

“혹시 그러면 저도 대박이 날까요?”

“그건 모르지만, 높은 평가는 받을 겁니다.”

변형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혹시 제가 그 영화를 찍게 되면, 나강인 씨가 액션 파트를 도와주실 수 있는지….”

AI 전지인이 다급히 말했다.

- 명작영화에 출연할 기회입니다. 받아들이십시오!

나강인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액션만 도와주는 정도라면야 뭐.”

“고맙습니다!”

“교차되는 양쪽 시대 중에서 옛날이야기를 예산 문제로 빼버리면, 전 빠질 겁니다. 그게 없으면 명작이 안 나올 거 같아서요.”

변형찬이 난감해했다.

“하지만 그러면 찍어줄 영화사를 찾기가….”

김유찬이 슬쩍 끼어들었다.

“나한테도 시나리오 좀 보내봐요.”

“예?”

“시나리오만 있는 것보다는, 주연배우 자리에 내 이름을 걸어놓고 영화사를 찾는 게 더 쉬울 겁니다. 물론 내 이름을 걸려면 시나리오가 좋아야겠지만.”

변형찬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가 김유찬에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대신에 나도 조건이 있어요. 강인 씨가 방금 말한 대로 그 영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네?”

김유찬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웃었다.

“그래야 내가 또 야수성 꽃미남 소리를 듣죠. 나도 숟가락 얻는 겁니다. 으하하하!”

분위기가 좋은 걸 보고 신은하가 접근했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얼른 손을 들었다.

“그럼 여주인공은 나!”

나강인이 말했다.

“넌 대본도 안 보고 정하냐?”

“맞다. 저도 시나리오 좀 보내주세요.”

변형찬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신은하 씨까지! 오늘 밤에 당장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해졌다.

술과 맛있는 음식, 즐거운 분위기가 모든 참석자를 행복하게 했다.

감독은 처음부터 행복했고 조감독은 이제부터 진짜 행복했다. 나강인에게 까인 오세나도 분위기에 휘말려 이 자리가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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