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드론
오늘 천만 관객 돌파 기념 파티장인 옥상에는 기자가 없다.
기자들은 건물 입구에서 사진을 찍을 순 있었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기사에 필요한 사진은 나중에 영화사에서 따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곳을 찾아온 기자는 대부분 영화사의 연락을 받고 온 사람들이라 그 정도는 협조했다.
그런데 모든 기자가 그런 건 아니다.
파파라치가 손을 비볐다.
“오늘 한 몫 제대로 땡기자.”
그의 친구가 드론을 준비하면서 물었다.
“야. 이거 찍으면 진짜 돈이 되냐?”
“이 새끼가 사진의 힘을 우습게 보네? 저기 봐봐. 기자들 있지?”
그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골목 안쪽에 있지만, 그곳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면 건물 입구의 기자들이 보였다.
“있지.”
“파티는 옥상에서 하지?”
“그렇지.”
“그러니까 드론으로 옥상 파티를 마구마구 찍으면, 사진을 살 사람이 있다니까?”
“그렇게 간단해? 근데 왜 이 좋은 걸 우리만 하냐? 드론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많은데.”
“물론 아무나 하면 안 돼. 적당한 인맥으로 설계를 조금 해야지.”
“어떻게?”
파파라치가 설명했다.
“먼저 파티 사진 한두 장만 인터넷에 공개하는 거야. 그러면 기자들이 다른 사진 있는지 연락이 오겠지? 그때 다른 기자들에게는 B급 사진을 무료로 넘겨. 마치 순수한 팬심으로 찍었던 것처럼. 그래야 뒤탈이 안 생기거든.”
“돈이 된다면서 왜 무료로 넘겨?”
“그러면서 박 기자한테는 A급 사진을 쓱 넘기는 거지.”
“왜 그 기자만 A급인데?”
파파라치가 씩 웃었다.
“이거 의뢰한 게 박 기자니까. 비싸게 사기로 했다.”
“어?”
“그러니까 이런 일도 다 인맥과 경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매수자가 이미 선금 넣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우리는 찍기만 하면 된다고.”
“아하! 그 기자는 다른 기자들이 B급 사진을 공개할 때 혼자 A급으로 기사로 내는 거구나? 남들이 다 하니까 한 것처럼.”
“그렇지. 그래야 영화사가 박 기자에게 항의해도 할 말이 있지.”
파파라치가 설명을 마치고 손짓했다.
“야. 어서 드론이나 띄워. 지금쯤이면 사람들이 술 많이 마셨을 테니까 좋은 사진 많이 나올 거다.”
“오케이. 사진 팔면 반띵이다.”
그의 친구가 무선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야간 촬영이 가능한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이 위로 쓱 떠올랐다.
천만 돌파 축하 파티가 열린 곳은 홍대 인근 건물의 옥상이다.
갑자기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드론 비행 소음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AR 렌즈에 드론이 나타나는 방향이 표시되었다.
나강인이 그 방향을 돌아보았다.
잠시 후에 드론이 건물 옥상보다 높이 날아올랐다.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을 비행하는 데다가 저소음 모델이라 파티 참석자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나강인이 불평했다.
“오늘 파티는 기자 출입 금지라니까 드론을 띄워서라도 찍으려는 놈이 있나 보다.”
AI 전지인이 물었다.
- 격추하시겠습니까?
“드론이 아래로 추락하면 도로에 있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
멀리서 고도를 높인 드론이 옥상 쪽으로 날아왔다.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는 사진이 아니라 영상을 찍었다.
사람들도 이제 드론을 발견했다.
김유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누가 드론까지 띄워?”
여자 주연배우 오세나도 불평했다.
“서울은 드론 날리면 안 되는 곳 아니었어? 저거 공군이 날아와서 격추 안 하나?”
김유찬이 피식 웃었다.
“야. 전투기가 저런 드론이나 잡고 있겠냐?”
술에 꽤 취해 소파에 누워있던 손태민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저거 잡아야지. 오늘은 기자도 안 부르고 우리끼리 즐기는데 저런 거 놔두면 안 돼!”
자리에서 일어난 손태민이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을 잡고 공중으로 힘껏 던졌다.
술 취한 사람이 던진 술잔은 평소보다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운이 좋으면 명중할 수는 있다.
날아간 술잔이 드론을 때렸다.
드론이 공중에서 비틀거렸다.
손태민이 주먹을 위로 높이 들며 외쳤다.
“스뜨라이크으!”
공중에서 비틀거리던 드론이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추락한 위치는 옥상 구석이었다.
드론이 추락한 곳에는 파티용 소품이 담긴 상자가 있었다. 소품 중에는 파티용 분수 불꽃놀이도 여러 개 있었다.
그런데 그 분수 불꽃놀이는 화약을 쓴다.
드론이 그 상자에 추락했다. 소품 몇 개의 외피가 찢어지고 드론도 부서지면서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이 폭죽의 화약에 옮겨붙었다.
불씨가 닿자마자 상자 속에서 요란한 불꽃이 쏟아졌다. 다른 분수 불꽃놀이의 심지에도 불이 붙었다.
상자에는 분수형 폭죽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상자 위로 커다란 불꽃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우와아!”
“이야! 진짜 멋지다!”
“술이 들어간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상자가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 예측해.”
- 상자 내부가 확인되지 않아 예측이 어렵습니다.
“저 상자를 옥상 밖으로 던졌는데 아래쪽에서 폭발하면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어. 불을 끌 방법을 찾….”
갑자기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AR 렌즈에 경고 표시가 잔뜩 떴다.
- 화염 확산 확인! 폭발 확률 급격히 증가! 터집니다!
폭탄이 터질 때는 엎드려야 파편에 맞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나강인이 외쳤다.
“폭발한다! 엎드려!”
불꽃을 만드는데 화약을 쓴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저 상자 속 화약이 폭발하면 엿 된다는 걸 안다.
그런 사람들은 바로 앞으로 엎어졌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세를 낮춘 사람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강인의 경고에 바로 반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신은하도 있었다. 그녀는 저런 불꽃은 장난감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반응이 늦었다.
다시 경고할 시간이 없었다.
나강인이 신은하를 향해 뛰었다.
상자가 폭발했다.
폭발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상자는 옥상 구석에 있어서 폭발 화염이 사람들을 덮치지도 않았다. 소리는 컸지만 그 폭발 화염에 직접 닿아 다치는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그 상자 속에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있다는 데 있었다.
폭발과 함께 상자 속에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중에는 사람들을 향하는 것도 있었다. 부서져 날아가는 파편 중에는 날카롭거나 뾰족한 것이 많았다.
나강인이 신은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AI 전지인은 나강인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는 파편들을 추적했다.
심각하게 위험한 파편은 두 개였다. 하나는 신은하를 향해 날아왔지만 그건 나강인이 몸으로 막으면 된다.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는 총알도 막기 때문에 겨우 이런 파편에 뚫리진 않는다.
문제는 다른 하나다. 상자에 같이 들어있던 작업용 소형 칼이 손잡이가 부러지면서 칼날 부분만 날아갔다.
그런데 그 파편은 신은하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오세나의 얼굴로 날아갔다.
나강인은 이미 신은하의 앞에 서 있었다.
이제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파편 두 개를 동시에 막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나강인이 신은하의 옆에 서서 왼손을 옆으로 쭉 뻗었다.
고속으로 날아온 칼날이 손에 들어왔다. 나강인이 왼손으로 칼날을 콱 잡았다.
거의 동시에 신은하를 향해 날아오던 뾰족한 파편이 나강인의 배에 꽂혔다.
그는 지금 총알도 막는 드래곤 플레이트를 입고 있다. 방탄조끼에 충돌한 파편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오세나는 상자가 폭발할 줄은 몰랐다. 엎드리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한껏 멋을 낸 그녀의 의상은 쉽게 엎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왜 엎드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잠깐 머뭇거릴 때 상자가 폭발했다.
그녀는 상자에서 뭔가가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걸 똑똑히 보았다. 겁이 덜컥 났지만 피할 능력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의 손이 나타나 그 칼날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나강인이 잡고 나서야 그것이 칼날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바로 눈앞에 작은 칼날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 뻔했는지 깨달은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나강인이 칼을 잡은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안 다쳤으면 조용히 합시다.”
“네? 네?”
그녀의 시선은 칼날을 계속 따라갔다. 아래로 내린 나강인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 피가 칼날을 타고 몇 방울 떨어졌다.
오세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 피! 다, 다쳤어요?”
신은하도 폭발에 놀라 잠깐 멍한 상태였다. 그러다 오세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신은하가 얼른 나강인의 손을 확인했다. 피가 묻어 있었다.
신은하가 화를 벌컥 냈다.
“왜 칼날을 맨손으로 잡아!”
“어쩔 수 없었잖아.”
“왜 어쩔….”
신은하가 오세나를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칼날을 잡지 않았으면 오세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이유는 알겠는데 그래도….”
오세나도 나강인이 왜 다쳤는지 깨달았다.
“나, 나 때문에 손을….”
나강인이 테이블 위에 있는 소주를 손에 부었다. 소주를 부어도 소독은 안 되지만, 물 대신에 상처를 씻을 수는 있다.
문제가 생겼다.
“억. 아프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은 바보이십니까? 상처에 술을 뿌리면 당연히 아픕니다.
나강인이 칼로 식탁보를 길게 찢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상처가 얕습니다. 피가 좀 나긴 했는데 이미 지혈됐습니다. 소주를 부어봤자 씻어내는 이상의 효과는 없습니다. 테이블보는 깨끗하지 않습니다. 왜 굳이 그걸 찢으십니까? 설마 상처에 감으실 겁니까?
“지인아. 갑자기 왜 이리 까칠해? 나 지금 다쳤어.”
- 요원님의 신체는 군용 신체 강화 기술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런 얕은 상처쯤은 빠르게 회복됩니다.
“피 났는데?”
- 관통이나 골절은 아니잖습니까?
“넌 기준이 너무 높아.”
나강인이 길게 찢은 식탁보를 상처 입은 손으로 가져갔다.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오세나가 황급히 핸드백을 뒤져 명품 손수건을 꺼냈다.
“이, 이걸 쓰세요!”
식탁보보다는 잘 세탁된 손수건이 낫다. 나강인이 그 손수건을 받아 손에 감았다.
오세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제자리에서 종종걸음을 뛰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손수건을 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신은하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총격전도 경험해봤고 칼날이 날아다니는 전투도 경험했다. 나강인이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도 두 번이나 보았다.
그때마다 필요한 건 손수건이 아니었다.
그녀가 한쪽에 놔둔 그녀의 가방을 찾아 열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구급상자가 있었다.
“강인 오빠! 이거 써! 식탁보는 더럽잖아!”
신은하가 가져온 미니 구급상자에는 소독약과 연고, 반창고, 붕대 약간, 그리고 수술용 실과 바늘이 들어있었다.
나강인은 그 상자를 열어보고 살짝 당황했다.
“은하야. 이 바늘이 왜 여기 있냐?”
“오빠를 위해 준비했어. 이런 거 쓰는 거 전에 봤잖아. 빨리 상처 꿰매.”
“한 손으로 어떻게 꿰매?”
“아….”
“그리고 이건 꿰맬 필요도 없어. 상처가 얕아.”
나강인이 손수건을 푼 후에, 구급상자에 있던 약을 손에 발랐다. 그런 후에 깨끗한 붕대를 감았다.
그러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내 상처가 빨리 아문다는 걸 감추려고 식탁보라도 감으려던 거야.”
- 참 장하십니다.
“너 오늘 좀 삐진 거 같다. 방금은 칼날을 잡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잖아.”
- 알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질문했다.
“중상자는 없지?”
중상자가 있다면 AI 전지인이 경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 경상자가 열두 명 있습니다만 중상자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 지혈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중상자가 될 사람은 한 명 있습니다.
AI 전지인이 AR 렌즈를 이용해 허공에 나강인만 보이는 화살표를 띄웠다.
나강인은 누가 그렇게 다쳤는지 보았다. 손태민 감독이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강인이 손태민에게 다가갔다.
“술을 많이 드셨는데 다치기까지 하셨네.”
손태민은 겁을 먹고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 나 죽어요? 나 죽어?”
“일단 지혈할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굳이 피를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게다가 부상자 옆에 사람이 많이 몰려있으면 좋을 게 없다. 도와주겠다고 옆에 있는 사람이 몇 명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강인은 그나마도 조감독과 신은하 외에는 다 쫓아버렸다.
“옆에 있으면 방해됩니다.”
손태민도 외쳤다.
“구경났어? 다들 비켜!”
나강인이 생수로 상처를 씻고 신은하에게 받은 소독약으로 상처 주변을 소독했다. 그런 후에 수술용 바늘과 실을 사용해 손태민의 상처를 몇 바늘만 꿰매 지혈했다. 그 상처 봉합은 AI 전지인이 보조해 순식간에 끝났다.
나강인은 그런 후에 상처에 붕대를 감았다.
그가 순식간에 상처를 꿰매는 모습은 손태민과 조감독 변형찬, 신은하만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강인이 약을 바르고 붕대만 감는 줄 알았다.
붕대를 감고 나자 손태민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가, 강인 씨. 이러면 치료가 다 된 거야?”
“설마요. 제가 의사도 아닌데 치료는 무슨. 병원에 갈 때까지 피만 잠깐 잡아놓은 겁니다.”
“이야아. 무술 고수는 다친 걸 잘 고친다는 말은 들었는데, 나강인 씨는 고수라서 이런 기술이 있구나.”
“그냥 대충 꿰맨 거라니까요.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제대로 치료받으시고, 항생제도 많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