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90화 (90/411)

90. 이보라를 찾아라 II

나강인이 말했다.

“이 스토커가 유력한 용의자이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AI 전지인이 인터넷을 계속 뒤져서 다른 용의자를 찾아내 화면에 띄웠다. 나강인은 화면에 뜨는 정보를 확인한 후에 아닌 것은 제외했다.

“이건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몇 명이 더 지나간 후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이보라와 오늘 오전 동선이 겹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화면에 새로운 용의자 정보가 떴다. 그 사람은 오늘 이보라가 방문한 양평 두물머리에 있었다. 이보라가 돌아올 때도 같은 도로에서 SNS로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양평에 있었던 시간이 이보라와 일치했다. 장소도 같았다.

“이 사람은 오늘 두물머리에서 보라 씨를 직접 봤겠지.”

신은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그곳에서 보라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런 후에 보라 씨와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경로를 통해 이쪽으로 왔어. 용의자 명단에 올려두자.”

AI 전지인이 다시 인터넷의 SNS와 각종 정보를 뒤져 한 명을 더 찾아냈다. 얼굴이 굉장히 잘생긴 남자였다.

신은하가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아. 이 사람 알아. 전에 보라하고 드라마를 같이했어. 그때 이 사람이랑 열애설 나긴 했는데, 소속사에서 아니라고 발표했어.”

“열애설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AI 전지인이 그 사람의 개인정보를 주르륵 띄웠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이 사람의 평소 말과 행동에서 폭력성과 집착이 많이 보인다는 건 알겠다.”

신은하가 인상을 확 썼다.

“뭐야? 혹시 이놈이 보라를 때린 거야?”

“그건 알 수 없지. 보라 씨가 맞고 다닐 성격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건 맞아.”

“아니면 사귀다가 한 대 맞고 바로 헤어졌던지.”

“그럴 수도 있겠다. 보라 성격에 뺨 한 대만 맞았어도 바로 관계 끝이지. 쪽팔려서 소문은 안 냈겠지만.”

“이 사람은 결별을 선언한 보라 씨를 납치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폭력성이 강해.”

신은하가 화면 속 남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난 이놈이 제일 의심스러워! 딱 봐도 이놈이네!”

그 이후로도 AI 전지인이 용의자를 여럿 찾아냈지만 크게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나강인은 그렇게 모은 용의자 목록 중에서 의심이 가는 세 명을 골라냈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움직이자.”

- 용의자 검색을 종료합니다.

신은하가 물었다.

“어디로 움직여?”

“당연히 경찰서지. 이 세 사람의 위치를 추적하려면 경찰이 나서야 해.”

***

나강인은 그가 사는 동네 관할 경찰서를 찾아갔다.

형사 박기정이 나강인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 나강인 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박기정은 나강인이 화재 사건에서 윤아름을 구출했을 때부터 그를 알았다. 합수부에서 나강인의 신원조회가 들어왔을 때 답변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실종신고를 하러 왔습니다. 20대 여성입니다.”

“예? 아, 그건 여기가 아니라….”

“강력사건입니다. 바로 도와줄 분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어? 그래요? 일단 여기 앉으시죠.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신은하가 선글라스를 슬쩍 올리고 마스크를 내렸다.

박기정은 깜짝 놀랐다.

“헉! 신은….”

“쉿.”

그녀가 얼른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제가 여기 온 게 알려지면 일이 시끄러워질 수 있어서요.”

“어…. 그렇죠. 이쪽으로 오시죠. 회의실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여긴 사람들이 지나다니니까요.”

나강인이 가져온 자료를 박기정에게 넘겨주고, 이보라가 실종됐다고 의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박기정은 A4용지에 출력된 자료를 넘겨보며 놀라워했다.

“이걸 혼자 다 조사하셨다고요?”

“혼자 한 건 아니고….”

AI 전지인이 자료 수집과 기본 분석을 맡아 처리했다.

신은하가 말했다.

“제가 용의자 고르는 거 도와줬어요. 보라가 납치됐다고 의심한 사람도 저예요.”

박기정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집이 이보라 씨의 부모님 집과 가까워서 지나가다 가끔 마주쳤습니다. 참 예쁘고 친절한 분인데. 싸인도 받았는데.”

신은하는 그거 다 내숭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단지 휴대폰이 꺼진 것만 보고 사람이 실종됐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런데 이보라의 팬인 박기정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싶었다.

게다가 용의자 자료를 가져온 사람이 나강인이다.

일반 신고자가 이런 분석 자료를 가져온다면 참고는 해도 믿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강인은 일반인이 아니다. 박기정은 나강인이 강남 자칼 사건을 해결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강인 씨가 가져온 자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팀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

형사팀장은 박기정보다는 나강인에 대해서 아는 게 적다. 그래도 그는 이 경찰서에서 나강인이 뭘 했는지 두 번째로 잘 아는 사람이다.

형사 박기정이 그가 들은 이야기의 결론만 팀장에게 말했다.

“제가 들어보니까, 이보라 씨가 납치됐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보라 씨가 우리 관할에 살지?”

엄밀히 말하면 이전에 이곳에 살았다. 지금은 그녀의 부모만 이곳에 산다.

“거의 그렇죠? 실종 장소도 우리 관할일 수 있고요.”

“그럼 바로 조사 들어가자. 휴대폰 위치추적부터 긴급으로 진행해.”

연예인이 관계된 일이라 팀장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나강인이 가져온 자료는, 인터넷에 사람들이 올린 글을 수집하고 분석해 추측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휴대폰이 꺼진 것 외에는 납치됐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었다.

형사가 느낌만으로 사건을 조사할 수는 있지만, 이 정도 첩보만으로 형사팀을 모두 투입할 수는 없다. 그 팀은 이것 말고도 해결해야 할 사건이 수두룩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형사 두 명을 투입하는 게 한계였다.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는 금방 나왔다.

팀장이 박기정에게 지시했다.

“네가 김 형사랑 같이 이 세 명을 하나씩 만나봐. 난 여기 이 스토커가 제일 의심스러워. 스토킹하다가 눈이 돌아가서 납치했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그놈부터 확인해.”

“예.”

신은하가 의견을 냈다.

“제 생각에는요. 스토커보다 옛날 남자친구가 더 의심스러운데요?”

“물론 그 사람도 확인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력이 모자라서요. 순서대로 확인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박기정이 동료 형사와 먼저 출발했다.

나강인이 형사팀장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도 가보겠습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이보라 씨를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후에 신은하가 툴툴댔다.

“그냥 그 팀장 아저씨가 그놈한테 가주면 안 되나?”

“보라 씨가 연예인이니까 휴대폰이 꺼진 것 외에는 확실한 게 없는데도 형사를 두 명이나 투입해서 조사하는 거야.”

신은하도 이보라가 납치됐다는 확신은 없었다. 확신이 있었다면 난리를 쳤지 이렇게 조용히 물러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지만, 만약 진짜로 납치됐으면 어떻게 해.”

나강인이 제안했다.

“이보라 씨의 옛날 남자친구는 우리가 가서 만나보자.”

신은하가 즉시 찬성했다.

“좋은 생각이야! 우리가 따로 움직이면 되겠구나!”

신은하는 나강인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안다. 싸움이 붙으면 납치범 따위가 나강인의 상대가 될 리 없다고 믿었다.

문제는 그 남자의 현재 위치다.

“그런데 어디 있는 줄 알고?”

“조금 전에 위치추적 결과 나왔을 때, 지금 어디 있는지 슬쩍 봤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진짜? 뭐해? 빨리 가자!”

형사 박기정이 스토커를 찾아냈다. 그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물었다.

“조명기 씨? 잠시 이야기 좀….”

스토커는 경찰 신분증을 보자마자 뒤로 돌아 후다닥 도망쳤다.

박기정이 즉시 뒤쫓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저 새끼 잡아!”

“저 새끼 맞나 보다!”

배낭을 메고 있는 스토커보다는 형사의 달리기가 훨씬 빨랐다.

스토커는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박기정에게 붙잡혀 팔이 꺾였다.

스토커가 소리를 질렀다.

“아! 팔! 팔! 내 팔 부러져!”

박기정이 외쳤다.

“이보라 씨 지금 어디 있어!”

“예?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네가 납치했잖아!”

“아, 아녜요. 전 안 그랬어요!”

“너 이보라 스토커잖아!”

“헉! 그걸 어떻게….”

“역시 이놈이 범인 맞네! 이보라 씨 어디 있어!”

“이젠 아녜요! 이미 갈아탔어요. 요즘은 이보라 안 따라다녀요!”

“그럼 왜 도망쳤어!”

“그게….”

동료 형사가 스토커의 주머니에서 조금 빠져나온 천을 발견했다. 그가 그걸 잡아당겼다.

여자 팬티가 나왔다.

박기정은 그걸 보고 당황했다.

“어? 이 새끼 설마….”

“속옷 변태네.”

형사가 스토커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속옷이 더 나왔다.

“사이즈가 제각각인 걸 보면 한두 명 것을 훔친 게 아니야.”

“이 새끼가 여배우를 스토킹한 이유가…. 설마 속옷이 목적이었냐?”

“그럼 스토킹 대상을 갈아탄 이유가, 혹시 이보라 씨의 속옷을 훔치는 데 성공해서?”

“와. 이 새끼 당장 처넣어야겠다.”

***

나강인과 신은하는 이보라와 스캔들이 났던 사람을 찾아갔다.

그 사람은 집에 있었다.

나강인이 벨을 눌렀다. 인터폰을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관리실에서 왔습니다. 위층 수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요. 누수가 없는지 확인 좀 하겠습니다.”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가세요.”

나강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열어주면 편했을 텐데.”

인터폰 카메라로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서 있던 신은하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

“음….”

AI 전지인이 갑자기 경고했다.

- 여자의 신음을 확인했습니다.

“와. 대낮부터 침대….”

-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입니다!

나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지금 이보라를 찾으러 이곳에 왔다.

“문 따자.”

- 신은하의 머리핀 두 개가 필요합니다.

신은하는 변장을 위해 머리핀으로 머리카락을 고정한 상태였다.

나강인이 신은하의 머리에 두 손을 댔다.

얼굴이 갑자기 가까워지자 신은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기서? 갑자기?’

나강인이 그녀의 머리에서 머리핀 두 개를 쏙 빼냈다.

“이거 좀 쓸게.”

그녀가 혀를 찼다.

“쳇. 아니구나.”

현관 자물쇠는 열쇠로 잠그는 옛날 방식이었다.

나강인이 머리핀 두 개를 열쇠 구멍에 넣었다. AI 전지인이 머리핀으로 잠금장치 내부의 핀을 긁으며 옆으로 돌렸다.

자물쇠가 순식간에 풀렸다.

신은하가 옆에서 말했다.

“하다 하다 문도 잘 따. 설마 전직 도둑은 아니지? 마술 같은 거 연습했던 거지?”

나강인이 문을 열며 말했다.

“도둑 아니다.”

안쪽 상황이 보이자마자 나강인이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주거침입이긴 하지만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거실에는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심하게 얻어맞아 피멍이 들어있었다.

- 부상자를 확인했습니다. 이보라가 아닙니다.

그녀가 나강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힘이 없어서 목소리가 작게 나왔다.

“살려…주세요.”

남자는 주방에서 물을 마시다 깜짝 놀랐다.

“어?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문이 열려 있더라.”

남자가 눈알을 굴리다가 변명했다.

“그런 거 아니야. 걔는 그냥 아파서 쓰러진 거야!”

“그런 건 경찰이 오면 잘 설명해라. 감기에 걸려서 저렇게 다쳤다고 하면 경찰이 참 좋아할 거다.”

남자는 지금 주방에 서 있었다. 그가 갑자기 주방 거치대에서 식칼을 뽑았다.

“씨발! 신고하면 다 죽여버린다!”

신은하는 이미 쓰러진 여자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상대가 칼을 뽑아도 손톱만큼도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없는 이보라를 탓했다.

“와. 걔는 뭐 저런 놈을 만났대?”

나강인이 상대에게 쓱 다가갔다.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

남자가 반사적으로 식칼을 휘둘렀다.

“이 새끼가 죽을….”

느렸다. 나강인이 적의 손을 덥석 잡은 후에 뚝 꺾었다.

손목이 꺾이면서 손에서 식칼이 떨어졌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언제부터 있었냐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여자가 대신 대답했다.

“오늘 새벽부터….”

“그럼 이놈은 아니네.”

신은하가 말했다.

“그래도 나쁜 놈은 맞잖아.”

나강인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끈을 찾아 남자의 팔다리를 묶었다.

신은하가 피해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돈이 떨어져서 이제 용돈을 줄 수가 없다고 하니까 갑자기 때렸어요.”

“와. 진짜 쓰레기네. 왜 이런 쓰레기를 만났어요?”

“이런 놈인 줄 몰랐어요. 돈을 줄 때는 잘해줬거든요.”

신은하가 피해자의 휴대폰을 찾아서 돌려주었다.

“경찰에 신고해요. 우리는 좀 바빠서.”

피해자는 당황했다.

“네? 가시는 거예요?”

“딱 봐도 경찰이 오면 우리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잖아요? 집도 그냥 쳐들어왔고 저놈 손목도 삔 거 같은데.”

“아…. 그, 그렇죠.”

나강인이 나가면서 말했다.

“저놈을 단단히 묶어왔으니까 이제 위험하진 않은데, 그렇다고 다른 마음 먹으면 안 됩니다. 저놈을 칼로 찌르면 그때부터는 저놈이 받을 처벌을 당신이 받아요.”

그녀가 멈칫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켰기 때문이다.

“아, 알았어요. 신고만 할게요.”

두 사람은 그곳을 나왔다.

신은하가 말했다.

“그럼 보라는 휴대폰을 꺼놓기만 한 건가? 멀쩡한데 우리가 이 고생하는 거면 진짜 걔 가만 안 놔둘 거야.”

“아직 용의자가 남았잖아. 동선이 겹친 사람. 그 사람까지 확인한 후에 화를 내든 해라.”

“그래야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

“경찰서에서 휴대폰 위치추적 정보 볼 때 같이 봤다. 마지막 용의자는 집에 있더라.”

“역시 강인 오빠는 기억력도 짱이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가 기억하는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