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91화 (91/411)

91. 이보라를 찾아라 III

나강인과 신은하는 이보라와 동선이 겹친 사람의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단독주택이었다.

나강인은 대문의 벨을 누르지 않고 담장을 가볍게 넘었다. 그는 혼자 내부를 조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은하가 대문을 톡톡 두드렸다.

나강인이 대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주거침입으로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너까지 들어와?”

“그러는 강인 오빠는?”

“넌 연예인이잖아.”

“자긴 아닌 줄 아네? 영화랑 드라마도 하고 조만간 노래까지 발표하는 사람이.”

“나야 뭐 얼굴이나 이름은 공개된 게 없으니까.”

“됐고요. 그 사람 여기 있어?”

나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그럼 집안에 아무도 없는 거야?”

“확인해야지.”

현관은 비밀번호 입력 방식의 디지털 잠금장치로 잠겨 있었다.

“지인아. 너 이런 거 저절로 띠리릭 하면서 열리게 하는 스킬도 있냐?”

- 설마 있겠습니까?

“그치? 그럼 어느 번호를 주로 눌렀는지는 알 수 있어?”

잠금장치의 버튼 네 개에 반투명한 붉은색이 덧씌워져 보였다.

- 3, 4, 5, 9 버튼에 접촉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설마 비밀번호가 3459는 아니겠지.”

나강인이 일단 그 번호를 눌러보았다. 띠리릭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됐다.

“어…. 열렸네?”

신은하가 감탄했다.

“와. 머리핀으로 문을 따는 건 그런가 보다 했는데, 디지털 도어락도 잘 따. 이건 어떻게 한 거야?”

“그냥 눌러보니까 되네?”

“혹시 신내림 같은 거 받았어? 유령이 번호를 가르쳐주고 그래?”

AI 전지인이 항의했다.

- 저는 자연로보틱스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신체삽입형 AI이며, 지구연합군 소속 전투지원 AI입니다. 신은하의 무식함과 천박함을 꾸짖으십시오.

“야야. 흥분하지 말고.”

“내가 언제 흥분했다 그래? 감탄한 거지.”

“신내림이나 유령 같은 거 없으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알았다고요.”

나강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싸운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거실 탁자에 서류가 몇 장 흩어져 있었다.

“음…. 어디 땅이라도 사려고 하나?”

신은하도 그 서류를 보며 말했다.

“서울에 단독주택이 있는 거 보면 돈이 좀 있나? 그래서 지방에, 그러니까 여기가…. 포천에 땅 사려는 거 아냐?”

“이 집 월세다. 경찰 자료에 나와있더라.”

“응? 주택가 단독주택을 왜 월세로 빌려? 여긴 경치가 좋거나 마당이 넓은 집도 아니잖아. 그럴 거면 아파트나 빌라를 빌리지.”

“그러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상황에서는 좀 수상하지?”

신은하가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쨌든 보라는 여기도 없잖아. 진짜 요것이 휴대폰 꺼놓고 잠수 탔나? 우리가 괜히 오버 했나?”

“음…. 그래도 가보긴 하자.”

“응? 어딜?”

나강인이 서류에 있는 주소를 가리켰다. 낡은 시골집 사진도 있었다.

“여기.”

신은하가 슬쩍 웃었다.

“드라이브구나?”

“여기에도 아무 일 없으면 그렇게 되겠지?”

신은하가 신난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럼 거기 둘러보고 나서 점심으로 이동 갈비 먹고 오자.”

***

천문식은 낡은 시골집 마당을 빙빙 돌면서 계속 걸었다.

그곳에 차가 한 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손을 들었다.

“어. 문식아. 일찍 왔네.”

천문식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덕구야. 일이 좀 생겼어.”

박덕구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고객이 의심해? 그럴 리가 없는데? 땅 주인하고 동명이인까지 구해서 완벽하게 서류 꾸몄는데?”

“아니. 오늘 양평에 가서 손님한테 서류 넘겨줬어. 의심 안 해. 곧 돈을 넣을 거 같아.”

“당연히 그래야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 그 사람들한테 약을 1년이나 쳤는데.”

박덕구가 주변을 가리켰다.

“이 땅을 다 팔아먹으면 돈이 얼마냐. 으흐흐흐. 문식아.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외국에 나가 있자. 잠잠해질 때까지 한 일 년쯤 동남아 휴양지를 돌면서 놀다 돌아오자고.”

그들은 이 주변 땅을 양평에 사는 사람에게 팔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다.

이 낡은 시골집은 사람이 살기엔 불편했다. 원래 땅 주인은 이 땅을 팔 생각도, 이곳에 와서 살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이 집은 꽤 오래 비어 있었다.

천문식과 박덕구는 노숙자 중에서 이 땅 주인과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내 명의만 빌렸다. 땅을 살만한 사람도 물색했다.

그 작업이 1년이 걸렸다.

이제 매수자는 거의 넘어왔다. 조금만 더 진행해서 돈을 받으면, 당분간 외국으로 튀어서 상황을 볼 생각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매수자와 만날 때 가짜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박덕구가 말했다.

“경찰이 아무리 수사해도 우리가 누군지 못 알아낼 거야. 그것만 확실히 확인되면 그때 여유 있게 돌아오면 돼. 문식아. 인생 참 쉽다. 흐흐.”

천문식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다른 문제가 생겼어.”

“뭔데 그래?”

“내가 오늘 양평에 갔다가 이보라를 봤거든?”

“너 요즘 본다는 드라마에 나오는 그 이보라?”

“어. 그래서 멀리서 구경했는데, 이 여자가 서울 북쪽으로 가는 거야. 나도 어차피 이쪽으로 와야 하니까 따라갔지. 어디 내려서 쉬면 나도 내려서 또 같이 구경하고 그러려고.”

“흐흐. 이 새끼. 스토커였네.”

“그런데 말이야. 이보라가 시골길로 가길래 가까이 붙었다가, 실수로 접촉사고가 났는데….”

“어?”

“이보라가 기절했어.”

박덕구가 멍하니 서 있다가 화를 벌컥 냈다.

“이 새끼가! 야! 너 그 사고가 양평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났어? 나중에 경찰이 우리가 장사한 거 수사할 때, 네가 그 근처에 있었던 게 알려지면 어쩔 건데!”

“그건 걱정하지 마. 양평에서 멀어. 꽤 멀어.”

박덕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씨발. 그래서? 뺑소니쳤냐? 그럼 저 대포차부터 빨리 처리하자.”

“아니, 그게…. 이보라가 많이 다친 줄 알고….”

“너 이 새끼. 설마 병원에 데려다준 건 아니지?”

“트렁크에 싣고 왔어.”

박덕구가 입을 떡 벌렸다.

“어? 뭐라고?”

“이보라가 지금 내 차 트렁크에 있어.”

“와. 이 새끼가….”

박덕구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럼 이보라 차는 어디 있어?”

“사고 난 곳이 워낙 외진 곳이고 그 옆 숲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안 올 것 같길래, 일단 그 숲 안쪽에 갖다놨어.”

“씨발. 그 근처에 저수지 같은 거 있냐? 있으면 차를 저수지에 밀어버리게.”

“그, 글쎄?”

박덕구가 천문식을 째려보며 물었다.

“그 차에 지문은 안 남겼지?”

“당연하지.”

박덕구가 그의 차로 가서 담요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런 후에 말했다.

“트렁크 열어봐. 살아있는지 보게.”

천문식도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트렁크를 열었다.

이보라는 손발이 테이프로 묶이고 입에도 테이프가 붙은 상태였다. 그녀의 머리에는 피가 흐르다 굳은 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트렁크가 열리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읍읍!”

박덕구가 트렁크를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씨발. 진짜 이보라네.”

“아까는 기절했는데 지금은 깨어났나 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야 이 새끼야. 저걸 왜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천문식도 할 말은 있다.

“연예인하고 거기서 사고가 나서 경찰이 오면, 우리 이번 프로젝트는 나가리 되잖아.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사업이 성공하기 직전인데, 이걸 어떻게 포기해.”

“새끼가 그래도 책임감은 있네.”

“아까는 그 생각만 나서 일단 데려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왜? 풀어주게?”

천문식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나는 체포되겠지?”

“너만 체포되냐? 네가 입 열면 나는 뭐 괜찮냐? 우리가 그동안 프로젝트 한두 개 했냐?”

“그럼 어떻게 하지?”

박덕구의 눈이 뱀처럼 차가워졌다.

“묻어버려야지.”

드디어 천문식이 원했던 말이 나왔다.

천문식은 이보라를 여기까지 데려올 때는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도착하고 나서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당만 맴돌았다.

그러다 박덕구의 차가 오는 걸 보고, 박덕구를 이용할 방법이 생각났다.

천문식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살인을 하자고 한 건 덕구 너다. 난 그냥 사고가 나서 당황하는 바람에 저 여자를 데려온 것뿐이야. 난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거라고.’

그렇다고 그가 박덕구를 신고하려는 건 아니다. 어차피 박덕구가 체포되면 천문식도 수배된다. 그가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덕구의 죄가 더 크면, 서로 약점을 잡아도 내가 잡은 게 더 커.’

천문식이 속마음을 감추고 일부러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살인은 좀….”

천문식은 이곳에 먼저 도착해 고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박덕구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지금 크게 당황한 상태다.

박덕구가 화를 냈다.

“이 새끼가! 그럼 사이좋게 감옥에 갈까? 아니면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 이번 일만 성공하면 우리는 외국에 나가서 잘 먹고 잘산다고! 한국 경찰 엿 먹으라 그래!”

천문식이 일부러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알았어. 너무 화내지 마라. 나는 그냥 네가 말한 대로 할 테니까.”

***

나강인과 신은하가 포천에 있는 오래된 시골집에 도착했다.

신은하가 말했다.

“사진에서 본 그 집이다.”

그 집 앞 공터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그 사람 차야?”

“경찰 자료에 차량 번호는 없어서 모르겠다.”

그 차는 박덕구의 차였다.

낡은 시골집은 대문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신은하가 마당을 슬쩍 보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나 본데? 보라도 없는 거 같아. 역시 이 사람도 아닌가 봐.”

나강인이 주차된 차의 문을 열어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트렁크도 열어봤지만 이상한 건 없었다.

나강인이 이번에는 집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집안에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없었다.

신은하가 투덜댔다.

“결국 보라가 휴대폰을 꺼놔서 우리가 이 헛고생을 했네. 강인 오빠. 가서 점심으로 이동 갈비나 먹자. 내가 쏜다!”

***

천문식과 박덕구는 산속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고른 곳은 주변보다 약간 낮은 지형에 나무와 풀까지 우거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다니는 도로에서는 설사 망원경을 쓴다 해도 이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천문식과 박덕구는 그 집에서 가져온 삽으로 땅을 팠다. 삽이 하나밖에 없어서 둘이 교대로 파야 했다.

박덕구가 삽을 천문식에게 넘기고 땀을 닦으며 불평했다.

“씨발. 너 때문에 나까지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이보라는 팔다리가 묶인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발버둥 쳤다. 살려달라고 소리도 질렀다.

“읍읍!”

하지만 입에 붙여놓은 테이프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박덕구가 그러는 그녀를 보며 불평했다.

“그러게 왜 거기서 저 새끼랑 마주치고, 왜 사고가 나서 이렇게 죽….”

말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 사고를 친 건 천문식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아까는 너무 당황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삽을 넘기고 쉬니까 머리가 좀 돌아갔다.

‘저 여자를 죽이자는 말을 왜 내가 했지? 그런 말은 저 새끼가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그냥 사기고 저 새끼는 상해에 납치인데?’

박덕구와 천문식은 둘 다 사기꾼이다. 사기꾼은 남을 속여서 이익을 얻는다. 그 이익이 꼭 돈일 필요는 없다.

박덕구가 얼굴을 구기면서 물었다.

“야. 문식아. 너 일부러 나한테 저 여자를 던진 거냐?”

천문식이 삽질을 멈췄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저 여자를 죽이라고 말하게 유도했냐고!”

천문식은 들켰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순순히 인정하면 사기꾼이 아니다.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있어?”

“이 새끼! 너 녹음기 있냐? 주머니 좀 보자!”

천문식이 삽을 들고 구덩이 위로 올라오며 화를 냈다.

“아니라니까 이 새끼가!”

“그럼 주머니를 왜 못 보여주는데!”

“의심받으니까 기분 나빠서 그런다. 이 새끼야!”

박덕구가 천문식을 노려보았다.

지금 싸우면 삽을 들고 있는 천문식이 유리하다.

박덕구가 이보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 여자는 네가 죽여! 총대를 메도 같이 메야 할 거 아냐! 어차피 납치도 네가 했잖아!”

겁먹은 이보라가 손발이 묶인 채로 발버둥 쳤다.

“읍읍!”

천문식이 속으로 혀를 찼다.

‘쳇. 시간을 너무 끌었나? 이 새끼가 다 눈치챘어.’

그가 박덕구의 상대적으로 더 큰 약점을 잡는 건 이제 글렀다. 그럼 거꾸로 큰 약점을 잡히는 거라도 피해야 한다.

천문식이 이보라에게 걸어간다.

“알았다고. 씨발. 구덩이에 같이 던지고 같이 묻자. 됐냐?”

이보라가 발버둥을 하도 격렬하게 쳐서 입에 붙여놓은 테이프가 반쯤 떨어졌다.

그녀가 울면서 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천문식이 그녀에게 물었다.

“살려주면 나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럴게요! 신고도 절대로 안 할게요!”

“그래?”

박덕구가 옆에서 피식 웃었다.

“넌 그 말을 믿냐?”

“아니. 못 믿지. 그냥 물어봤어.”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이제 저 여자가 죽어야 우리가 교도소에 안 간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니까 네가 머리 쪽 잡아. 이 새끼야.”

“알았다고!”

이보라는 절망에 빠져 하늘을 보며 사정했다.

“제발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갑자기 나강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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