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92화 (92/411)

92. 이보라를 살려라

천문식과 박덕구가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그들보다 높은 장소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천문식이 삽을 위로 들었다.

“이 새끼 뭐야!”

박덕구도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씨발! 여기 왜 사람이 와!”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사전 조사는 네 일이잖아! 여긴 아무도 안 오는 곳이라며!”

“이 동네 땅 주인 싹 다 조사했어! 여긴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야!”

천문식과 박덕구는 둘 다 사기꾼이지만 각자 맡은 일은 달랐다.

박덕구는 주인이 돌보지 않는 땅을 찾는 일을 주로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박덕구가 잘 안다.

천문식은 그 땅을 살 사람을 찾아 속이는 주연배우가 본업이다. 그럴 때 박덕구는 옆에서 바람을 잡는 일을 한다.

이보라는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보라는 눈물 때문에 처음엔 사람 그림자밖에 보지 못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나서야 누가 나타났는지 보였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나강인이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강인 오빠! 살려주세요!”

천문식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야? 남자친구야? 저 여자를 찾아서 여기까지 온 거야?”

박덕구가 욕을 했다.

“씨발. 대단한 남자친구 나셨네.”

나강인을 노려보는 천문석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덕구야.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다를 거 없어. 저 새끼도 죽이자.”

“확실히 하자. 이번엔 네가 죽이자고 했다.”

이보라가 고개를 돌려 두 놈을 보았다.

천문식은 삽을 들고 있고 박덕구도 잭나이프가 있다.

그런데 나강인은 맨손이다.

이보라는 나강인이 무술 고수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가 실전에서 칼과 삽을 든 사람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우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기쁨과 걱정이 같이 들었다.

‘이길 수 있을까? 꼭 이겨야 하는데.’

초조했다. 나강인이 이겨야 그녀가 살고, 나강인이 지면 그녀도 죽는다.

다급해진 그녀가 진심을 담아 나강인을 응원했다.

“이기면 뽀뽀해줄게요!”

나강인이 그 말을 듣고 휘청였다.

천문식은 그 순간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강인이 휘청이자마자 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사람이 삽날에 제대로 맞으면 칼에 맞은 것처럼 크게 다친다.

AI 전지인이 고속으로 말했다.

- 거짓 휘청거림에 적이 한 명만 걸려들었습니다. 실패입니다. 플랜 B를 제안합니다.

그는 일부러 몸을 휘청여 천문식과 박덕구에게 빈틈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걸려든 건 천문식 한 명뿐이다. 박덕구는 여전히 이보라의 근처에 있었다.

그럼 작전을 바꿔야 한다.

천문식이 멧돼지처럼 돌진했다.

나강인이 땅을 박차며 위로 점프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천문식이 있던 곳보다 높았다. 지형 덕분에 가볍게 점프했는데도 천문식의 머리보다 더 높이 날았다.

천문식이 황급히 삽을 위로 휘둘렀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삽을 발로 찼다. 삽이 앞으로 휙 밀려났다. 천문식도 앞으로 휘청거렸다.

나강인은 천문식을 뛰어넘어 바닥에 착지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박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뒤에 있다!”

천문식이 삽을 휘두르며 뒤로 돌아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반의반도 회전하기 전에 나강인이 강력한 뒤차기를 천문식의 등에 꽂았다.

“케엑!”

천문식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박덕구는 나강인이 천문식을 걷어차자마자 뒤로 돌아섰다.

‘이보라를 인질로 잡아야 해!’

박덕구가 이보라를 향해 칼을 뻗으며 외쳤다.

“움직이면 이 여자….”

나강인이 천문석을 점프로 뛰어넘은 건 박덕구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다.

박덕구가 칼을 다 뻗기도 전에, 어느새 다가온 나강인이 뒷덜미를 잡고 콱 당겼다.

“켁!”

칼을 뻗는 속도보다 뒤로 당겨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칼날이 이보라에게서 멀어졌다.

나강인이 박덕구를 뒤로 당겼다가 그대로 던져버렸다.

이보라의 눈에 박덕구가 경악한 얼굴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녀가 작은 소리를 냈다.

“아….”

날아간 박덕구는 천문식의 근처에 떨어졌다.

나강인이 다시 두 놈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이보라의 눈에는 그의 넓은 등이 보였다.

나강인이 천문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앞으로 엎어진 천문식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나강인 쪽으로 돌아서서 삽을 들었다.

“이 새끼. 죽여….”

나강인이 천문식의 손을 툭 쳤다.

“악!”

삽이 천문석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나강인이 다리도 툭 찼다. 천문식의 몸이 앞으로 확 기울어졌다.

“으악!”

나강인이 천문식의 배를 올려 찼다.

천문식은 위로 붕 떴다가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나강인이 아무 말 없이 천문식의 몸뚱이를 발로 툭툭 밀었다.

기절한 천문식은 자기가 파놓은 구덩이에 굴러떨어졌다.

박덕구는 천문석처럼 뒤차기에 맞지는 않았다. 그래서 충격을 천문석보다는 덜 받았다.

그는 땅에 처박혔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마자 뒤쪽으로 잭나이프를 던졌다. 나강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망치기 위해서 한 짓이다.

잭나이프가 날아가는 속도는 느렸다. 그런데 그 방향에 이보라가 있었다.

이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강인이 왼손을 옆으로 뻗어 칼을 툭 쳤다. 칼이 옆으로 튕겨 나가 나무에 박혔다.

이보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다급히 외쳤다.

“저 새끼 도망쳐요!”

“싸우는 건 자주 봤어도 욕하는 건 처음 듣네.”

나강인이 바닥에서 작은 돌을 주워 도망치는 박덕구를 향해 던졌다. 던지는 자세는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 때와 비슷했다.

고속으로 날아간 돌멩이가 박덕구의 등 한복판에 퍽 꽂혔다.

“케엑!”

박덕구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강인이 박덕구 쪽으로 걸어갔다. 박덕구는 이미 기절했다.

나강인이 기절한 놈을 질질 끌고 와서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이 전장에서 발견한 적을 전멸시켰습니다. 전투지원을 종료합니다.

이보라는 아직도 손발이 묶인 채로 누워 있었다.

나강인이 이보라의 앞에 앉아 그녀의 뺨에 붙은 테이프부터 떼주었다.

“괜찮아요?”

이보라는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아…. 나 이제 살았죠?”

“당연하죠.”

그녀는 마음을 턱 놓았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그녀는 눈물을 참지 않고 펑펑 울었다.

나강인이 그녀의 팔다리를 묶은 테이프도 풀어주며 말했다.

“울보네.”

손발이 자유로워진 그녀가 아예 나강인에게 반쯤 안겨서 울었다.

나강인은 그녀가 한참 울게 놔두었다.

실컷 운 그녀가 진정하자 나강인이 물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네.”

나강인이 먼저 일어났다. 이보라가 일어나려고 다리를 뻗다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야!”

나강인이 그녀의 발목을 손으로 만지며 상태를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부상 정도를 진단했다.

- 뼈에는 손상이 없습니다. 발목을 살짝 삐었습니다. 이 상태로 산길을 걷는 건 무리입니다.

“저놈들이 얼마나 험하게 다뤘으면 발목을 다 삐었나. 몇 대 더 때려줄까 보다.”

이보라가 손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흐윽. 그니까요. 저 머리도 다쳤어요.”

나강인의 그녀의 머리를 보았다. 핏자국이 보였다.

- 심각한 부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만, 만약을 대비해 병원의 정밀 진단을 받는 게 좋습니다.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는 받아봐요.”

병원에 가려면 먼저 이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보라는 발목을 다쳐서 산길을 걸을 수 없다.

나강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산에서 내려가야 하는데, 발목이 그래서 어쩐다….”

이보라가 얼른 두 팔을 나강인 쪽으로 내밀었다.

***

신은하는 산 밑에서 나강인을 기다렸다.

그녀의 차는 천문식의 차 옆에 세워놓았다.

나강인은 이 산에 이보라가 있다고 판단했다. 트렁크에서 핏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강인이 신은하를 데리고 산에 들어가면 빠르게 수색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혼자 올라갔다.

신은하는 산밑에서 기다렸다. 그러다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즉시 차를 타고 도망치기로 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녀는 나강인이 산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나강인은 이보라를 업고 산에서 내려왔다.

이보라는 신은하를 보고 또 울었다.

“은하야. 나 죽는 줄 알았어.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어. 그래. 일단 강인 오빠 등에서 내려와.”

“나 발목이 아파.”

“그래. 여기 내 차 뒷좌석에 앉아. 자리 넓어. 얼른 등에서 내려오라니까?”

나강인이 산 위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런 후에 물었다.

“경찰에 신고는?”

“강인 오빠가 산에 들어가자마자 112에 신고했어.”

그녀는 산 밑에서 단순히 기다리기만 한 게 아니다.

저 산에 들어가면 휴대폰이 잘 안 터진다. 그녀는 이곳에서 연락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박 형사님한테도 연락했는데 이미 이쪽으로 오고 있었대.”

잠시 후에 형사 박기정이 도착했다.

박기정은 이보라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이보라 씨. 경찰입니다. 저 아시죠?”

이보라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우리 동네 형사 아저씨.”

“이제 안심하세요. 경찰이 왔으니까요.”

“강인 오빠가 왔을 때부터 안심했어요.”

“예? 어. 아. 그러셨겠네요.”

박기정은 두 사람이 이보라가 실종됐다면서 찾아왔을 때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는 만약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조사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그는 이곳에 와서 이보라를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진짜 납치됐었구나.’

그는 궁금했다.

“나강인 씨. 도대체 이곳에서 범행이 벌어진다는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포천은 우리 조사 대상 지역도 아니었는데요.”

박기정이 소속된 형사팀의 팀장도 놀고 있던 건 아니다. 그 팀장은 경찰서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따로 조사하다가 천문식이 사기꾼이라는 걸 알아냈다.

팀장은 그가 최근에 포천에 자주 들렀다는 것도 알아냈다.

팀장의 연락을 받은 박기정은, 동료 형사를 이보라와 스캔들이 났던 배우에게 보내놓고 혼자 포천으로 왔다.

‘그 넓은 포천의 어디를 조사해야 하는 거야? 막막하네.’

그런데 그가 포천에 도착한 직후에 신은하가 이곳으로 와달라고 연락했다.

박기정이 물었다.

“도대체 두 분은 여길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나강인이 둘러댔다.

“이동 갈비를 먹으러 왔습니다.”

“네?”

“그러다 이보라 씨를 구했으니 운이 좋았죠.”

박기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운이 아닐 거야.’

나강인이 이전에 활약한 사건들을 생각하면 운이라는 말을 그냥 믿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따질 수도 없고.’

어쨌든 나강인은 납치된 이보라를 구했다.

박기정은 그가 이보라를 찾는 과정에서 법을 조금 어겼다고 해도, 굳이 그걸 캐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너무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산은 또 어떻게 찾아내셨습니까?”

두 사람이 처음 도착한 빈집 주변과 이 장소 사이에는 비포장도로가 있다.

나강인이 비포장도로를 가리켰다.

“새로 생긴 차바퀴 자국을 보고 따라왔습니다.”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그 차바퀴 자국을 추적했다.

박기정이 도로를 보았다. 차가 지나간 흔적이 보이긴 한다.

“이것만 보고요? 잘 보이지도 않는데요?”

“그러니까 더 잘 봐야죠.”

“아니, 그러면 저 산은요. 이보라 씨를 산속에서 찾아내셨다면서요. 산이 저렇게 넓은데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신 겁니까?”

“두 사람이 무거운 걸 들고 풀을 밟은 발자국이 있어서 그걸 따라갔죠.”

AI 전지인이 그 발자국을 추적했다.

이보라가 작은 소리로 항의했다.

“저 안 무거워요.”

박기정이 나강인을 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야생동물 헌터세요? 그런 걸 어떻게 구분합니까?”

“되던데요?”

잠시 후에 그 지역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그들을 보고 당황했다.

“어? 설마 이보라야?”

“시, 신은하도 있습니다!”

“야. 지원 더 보내달라고 해. 구급차도 불러. 빨리!”

박기정은 천문식의 차 내부를 확인했다.

그곳에 휴대폰이 있었다.

“이놈은 휴대폰이 도대체 몇 개야? 저기 예쁘게 장식된 건 이보라 씨 휴대폰 같고, 저건…. 구형인 걸 보면 대포폰이겠네. 이래서 위치추적을 하면 서울에 있는 집이 나왔구나. 본인 명의 휴대폰은 거기 두고 다녔겠어.”

잠시 후에 119구급차가 도착했다.

이보라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로 이동했다.

차에 타기 전에 그녀가 나강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빠. 같이 가주시면 안 돼요?”

신은하가 이보라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말했다.

“나중에 문병 갈게. 손 놓고. 착하지? 얼른 병원부터 가. 저분들 기다리신다. 그리고 넌 오빠라고 부르지 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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