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95화 (95/411)

95. 호신술

윤아름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직접 찍은 영상을 올리는 너튜버이면서 실시간 게임 방송도 하는 스트리머다.

윤아름이 라면을 뇌물로 바치며 게임 방송 이야기를 꺼냈다.

나강인이 물었다.

“네 게임 방송에 듀오로 나와달라고?”

“넹. 히히.”

나강인이 손바닥을 몇 번 비볐다.

“그러지 뭐. 펜타킬의 황제를 보여주마.”

- 요원님은 마지막 펜타킬을 일주일 전에 하셨습니다.

“하긴 했잖아.”

- 그때는 제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했습니다.

“알아. 오늘도 그렇게 하자는 소리야. 너도 라면 먹은 값은 해야지.”

나강인과 AI 전지인은 감각을 공유한다.

나강인이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맛과 포만감은 AI 전지인도 똑같이 느낀다.

- 알겠습니다. 이 라면값으로 오늘 더블 펜타킬을 보여주겠습니다.

윤아름이 손을 흔들었다.

“아뇨. 게임 말고요. 제 게임을 몇 명이나 본다고요.”

“어? 그거 아니야?”

“당연히 아니죠. 그리고 강인 오빠는 실레, 아니, 실버 아녜요? 이벤트가 너무 약해요.”

“시청자 열 명짜리가 할 소리는 아니지?”

“그래서 구독자를 팍팍 늘릴 이벤트를 하려고요.”

“응?”

윤아름이 배시시 웃었다.

“화끈한 호신술 강의 영상을 올리면 구독자가 쫙쫙 붙지 않을까요?”

“어…. 네 게임 방송 채널에?”

“네.”

“나보고 그걸 하라고?”

“네!”

“나 방송 안 나가는 거 알지?”

“알죠. 그래서!”

윤아름이 라면을 가져올 때 쓴 손수레 아래에서 가면을 꺼냈다.

“이걸 준비했어요. 이 가면을 쓰고 호신술 강의를 하시는 거예요. 그럼 아무도 강인 오빠 얼굴을 모르잖아요.”

나강인이 가면을 들어보았다.

“뭐냐. 이게.”

“로봇 가면인데, 인터넷에서 샀어요.”

나강인이 가면을 들어보았다. 안될 건 없다.

“상대역은 있고?”

“아싸! 배우는 은서 언니랑 성환이요!”

“왜 상대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인질극 콘셉트를 잡을까 해서요.”

나강인이 단서를 달았다.

“그런 건 말이야. 라면 하나로는 부족하니까, 볶음밥도 하나 만들어와라. 계란은 반숙으로 얹어서.”

“넹!”

***

이튿날 낮에 나강인이 로봇 가면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섰다.

“됐냐?”

윤아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나강인의 앞에는 차은서와 안성환이 서 있었다. 그들도 로봇 가면을 썼다.

윤아름이 상황을 설명했다.

“성환이가 은서 언니를 납치하려고 하는데, 강인 오빠가 멋지게 구해주는 모습을 찍을 거예요.”

안성환이 물었다.

“아름아. 호신술 강의라며?”

“평범한 호신술은 이미 인터넷에 많아. 이 영상의 제목은 ‘호신술 강의 - 여자친구가 칼을 든 강도에게 붙잡혔을 때 구해주는 법.’이야.”

“그런 특수 상황의 영상을 누가 보겠냐?”

윤아름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한테 보여주겠지?”

“어…. 그런가?”

안성환은 모태솔로라서 커플이 어떤 식으로 노는지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윤아름이 말했다.

“자자. 촬영 시작한다. 내가 먼저 시청자들에게 맨트를 좀 치고 나서 신호하면, 넌 그 칼로 은서 언니를 위협해. 중간에 내가 다시 들어갈 거야.”

그녀가 먼저 로봇 가면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서서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후에 옆으로 움직이며 손가락을 튕겨 신호했다.

안성환이 장난감 칼을 차은서에게 겨누며 외쳤다.

“움직이지 마! 돈 내놔!”

차은서가 인질 역할을 열심히 연기했다.

“어머! 강도다! 구해줘요! 로봇맨!”

나강인은 그동안은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잘나가는 배우들과 일했다. 그러다 초짜 아마추어의 어색한 연기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연기가 어색한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범인은 국어책을 읽고 있고, 인질은 오버를 너무 심하게 하네?”

그래도 라면과 볶음밥을 얻어먹었으니 그 값을 하긴 해야 한다.

그가 안성환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당황한 안성환이 장난감 칼을 나강인 쪽으로 향했다.

“머, 멈춰라! 로봇맨!”

나강인이 그 장난감 칼을 탁 가로챘다.

이쯤에서 윤아름이 끼어들어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윤아름은 끼어들어야 할 순간을 까먹고 침만 꼴깍 삼키고 있었다. 안성환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나강인이 한숨을 푹 쉬고는 안성환의 팔을 잡고 다리를 걸어 옆으로 휙 던졌다.

“으아악!”

나강인은 차은서를 보았다. 인질 차은서가 어색하게 외쳤다.

“고마워요! 로봇맨!”

나강인이 차은서도 잡아서 던져버렸다.

“꺄악! 난 왜!”

그런 후에 그는 이런 촬영을 요구한 윤아름을 향해 걸어갔다.

윤아름이 당황해서 외쳤다.

“난 아니에요! 난 아니라고! 난 꺄아악!”

나강인이 윤아름도 잡아 던졌다.

윤아름은 카메라 프레임 한복판으로 날아가 털썩 떨어졌다.

체육관 바닥에는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었다. 나강인이 기술적으로 던져서 아프진 않았지만, 그녀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버둥거렸다.

나강인이 윤아름에게 말했다.

“넌 이런 거 시키려면 시나리오라도 제대로 써서 와라. 너희 둘은 연기 연습 좀 하고. 진짜 로봇을 상대하는 줄 알았다.”

***

영상은 원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찍혔다.

윤아름은 그 영상을 그녀가 활동하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다.

그녀의 계정은 원래 인기가 없다. 게임 스트리밍의 실시간 시청자가 십여 명밖에 안 되는데, 영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해서 많을 리가 없다.

너튜브에 올려놓은 이 영상도 마찬가지다. 영상을 본 사람이 몇 명밖에 없었다.

윤아름이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좋은 생각인 줄 알았는데 이게 아닌가 봐. 인기가 없어.”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물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까?”

“응! 뭐든 해줘.”

안성환이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돌려 그 영상에 자막 효과를 넉넉히 넣었다. 윤아름의 계정에 올라온 영상은 자막을 추가한 것으로 교체했다.

그런 후에 그 영상의 인터넷 링크를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영상이 워낙 짧아서 다 보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ㅋㅋㅋㅋ

- 뭐냐. 이 쌈마이 호신술 강의는.

- 병맛인데 맛있네.

- 그러게. 근데 안 다쳤나?

- 사람들이 바닥에 떨어진 후의 반응을 보니까 안 다쳤어. 기술적으로 던졌나 봐.

- 근데 쌈마이 치고는 사람 던지는 기술이 너무 좋은 거 아냐?

- 진짜 그러네. 아마추어는 저렇게 못 할걸?

- 여러분. 제가 태권도를 오래 배워서 아는데요. 저거 고난도 기술이 들어간 겁니다.

- 맞다. 나도 유도를 오래 배웠는데, 저거 애들은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 붙여야 한다. 보기엔 쉬워 보여도 함부로 따라 하면 다친다.

안성환이 그 댓글을 보았다. 그는 얼른 영상을 편집해 경고 문구가 뜨게 했다.

[보기엔 쉽지만, 따라 하면 크게 다칩니다. 절대로! 따라 하지 마세요!]

그 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여러 곳으로 퍼졌다.

- 이거 호신술 강의라면서요? 따라 하면 다치니까 하지 말라고 할 거면, 호신술 강의는 왜 하신 건지?

- 와. 콘셉트 확실히 잡았네요. 영상 내용부터 경고문까지 정상이 하나도 없어요.

- 그 와중에 고난도 기술이 들어갔잖아요.

- 그러니까 더 난장판이죠. 내용은 엉망진창인데 던지는 기술은 고급이니까요.

- 난 그래서 더 재미있던데요.

- 저도 그래서 보긴 합니다. ㅋㅋㅋ

일단 한 번 올린 영상은 인기를 얻으면서 여기저기 퍼졌다.

격투기 관련 게시판에서도 그 영상은 화제가 됐다.

- 상대가 안 다치게 던지는 저 기술을 안전장비 다 껴입고 따라 해봤는데, 네 번 시도해서 겨우 한 번 성공했습니다.

- 저도 그렇게 했는데 세 번에 한 번 정도 성공하더군요.

- 저 사람 도대체 누구죠?

- 영화 ‘햇살 좋은 날’을 보면 딱 저 느낌의 격투씬이 나옵니다. 요즘 저런 무술이 뜨나 보네요.

- 아. 맞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그 영화에서 봤네요.

- 저 무술은 어디 가면 배울 수 있습니까?

- 저도 주변에 물어봤는데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 뭔가 배워보려면 영상 나올 때마다 봐야겠네요. 다음 영상은 언제 올라오나요?

- 글쎄요. 이거 출처가 게임 스트리머의 너튜브 채널이라서, 안 올라올지도….

***

이보라는 차은서 덕분에 나강인이 모르는 번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먼저 문자를 보내 그녀의 번호임을 알린 후에 전화를 걸었다.

나강인이 예의상 물었다.

“아직 퇴원 안 했네요?”

- 나강인표 요리를 해주면 오늘 당장 퇴원할 수 있어요!

그날 오후에 나강인이 이보라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신은하가 따라가면서 투덜댔다.

“아니, 강인 오빠가 왜 보라한테 도시락을 갖다 주냐고. 나한테는 도시락 만들어준 적 없는데.”

“환자가 내가 만든 밥맛이 궁금하다잖아. 그리고 밥만 먹으면 바로 퇴원하기로 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보라 이게 어디서 상도덕도 없이.”

“괜히 동네 병원에 이보라 씨가 있으면 기자들이 자꾸 왔다 갔다 해서 귀찮아. 빨리 쫓아버리자.”

“뭐, 그런 뜻으로 주는 거라면야 괜찮지만.”

이보라는 1인실을 쓴다. 이 병원 1인실은 특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넓은 편이다.

그런데 이보라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과 같이 있었다.

나강인은 그 여고생을 알아보았다.

“어?”

이연지도 나강인을 알아봤다.

“앗! 저번에 복도에서 부딪힐 뻔했던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안녕?”

이보라가 소개했다.

“얘가 내 팬이래요. 그래서 같이 놀고 있었어요.”

“이 병실은 초대받지 않은 외부인은 출입금지인 거로 아는데.”

“얘 아빠가 이 병원 외과 과장님이고 중석이 오빠하고도 잘 알아서, 그 오빠가 데려와도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죠.”

이연지가 웃었다.

“히히. 제가 진짜 보라 언니 팬이거든요.”

신은하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좋겠다. 병원에서 팬 만나서.”

이연지는 신은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앗! 은하 언니!”

“나도 알아?”

“그럼요! 저 언니 팬클럽 회원이에요!”

신은하가 이보라를 보며 씩 웃었다.

“봤어? 얘가 내 팬클럽 회원이라네?”

“흥. 내 팬클럽 회원이 먼저 됐을걸?”

이연지가 신나서 말했다.

“와. 저 진짜 언니들 좋아해요. 저도 언니들처럼 배우가 돼서 영화랑 드라마에 나오고 싶어요!”

신은하가 이연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음…. 카메라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와꾸는 합격인데? 길 가다가 스카우터한테 명함 받아본 적 없어?”

“있죠. 근데 아빠가 절대로 안 된대요.”

“부모님 설득은 네 몫이니까 알아서 해. 공부는 잘해?”

그녀가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씩 웃었다.

“전교 1등!”

“어? 어. 그래. 좋겠다. 너희 아빠처럼 의대 가면 되겠네.”

“난 배우가 하고 싶은데….”

“배우 한다고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냐. 이 바닥에 예쁘고 연기 잘하는데 못 뜨는 애들이 수두룩 빽빽해.”

“언니들은 떴잖아요.”

신은하와 이보라가 각자 왼손과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휙 넘기며 말했다.

“난 다른 애들보다 더 예쁘고 연기도 더 잘하잖아.”

“이 미모로 안 뜨면 도대체 누가 뜨겠어?”

이연지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와. 배우 하려면 이 정도 자랑은 할 줄 알아야 하는구나. 나도 연습해야지.”

신은하가 말했다.

“연습할 필요 없어. 딱 보니까 너도 우리 과야.”

“저도 배우 과예요?”

“너 방금 전교 1등 자랑한 게 우리랑 비슷하다고. 자랑하는 모습이 딱 우리 과야.”

“히히. 근데요. 제가 언니들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뭔데?”

“햇살 좋은 날이랑 푸른 하늘 무술감독님은 어떤 분이세요?”

“응?”

이연지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킬러처럼 날카롭게 생겼어요? 아니면 근육이 강철처럼 단단해요? 설마 소림사 스님처럼 대머리는 아니죠?”

신은하가 나강인을 가리켰다.

“저렇게 생겼어.”

“에이. 저 아저씨는 별로 안 세게 생겼…. 네?”

“네가 생각하는 거 맞아. 우리 무술감독님이야.”

신은하가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우며 말했다.

“어디 가서 말하진 마. SNS에도 올리지 마. 특히 사진은 절대로 안 돼.”

이연지가 입을 딱 벌렸다.

“우와아! 오늘 도시락이 특별하다길래 유명한 요리사가 만든 줄 알고 기대했는데! 무술감독님이 만든 밥이면 맛은 없겠다.”

나강인이 말했다.

“넌 먹지 마라.”

“에이. 저만 빼놓고 먹기 있기 없기?”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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