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98화 (98/411)

98. 노벰버 II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VTX-13에 보조 재료 NG-3을 조합한 폭탄은 2023년에 개발됐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아직 폭탄으로 개발되지 않았으니까,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트럭에 싣고 다닌 건가?

- 그럴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스칼렛도 없고 용병이나 해적도 없는데, 왜 내 근처에서 이런 사고가 또 터지냐?”

- 그냥 재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 말이야?”

- 아닙니다.

“내 이야기 맞구나.”

나강인이 화물을 다시 확인했다.

“어쨌든 NG-3이란 게 없으면 VTX-13은 괜찮은 거지?”

- 긴급 상황입니다! 화물칸에서 보조 재료 NG-3을 발견했습니다.

“환장하겠네. 진짜야?”

- 화물칸 안쪽에 있습니다.

“젠장.”

나강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퓨전 횟집은 자체 주차장이 있지만, 쫑파티 참석자들이 가져온 차가 워낙 많아서 모두 주차할 수는 없었다. 그런 차들은 주차장을 벗어난 곳에 세워져 있었다.

쫑파티 전에 왔던 기자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지만, 지나다니는 행인은 많았다.

이 트럭과 접촉사고가 난 승용차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 비상등을 켠 채로 서 있었다. 운전자도 멀쩡했다.

나강인이 부서진 트럭의 아래쪽을 확인하며 물었다.

“오늘 쫑파티 때문에 이 주변이 좀 복잡해서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저 승용차는 왜 멀쩡해?”

- 차량의 하부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이 트럭이 완전히 파괴된 이유는 접촉사고의 충격으로 바퀴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겨우 접촉사고로?”

- 차량 정비상태가 나쁩니다. 오늘 고장 나지 않았어도, 길이 험한 비포장도로에서 바퀴가 빠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다 폭발할 수도 있고?”

- 특정 환경에서 저 두 가지 물질이 섞이면 작은 충격으로도 폭발합니다. 섞이는 양이 많으면 충격이 없어도 폭발합니다.

“현재 상황이 그 환경이고?”

- 교통사고가 폭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네. 이 차는 원래 한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사고가 나서 터질 예정이었어. 네 초기 메모리에 그런 사건 기록이 있냐?”

AI 전지인은 2082년식 전투지원 인공지능이다.

- 없습니다.

“도봉산 만장봉에 공중항모가 추락한 사건은 기록에 있다며?”

- 그건 교통사고나 폭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지형 변화를 일으킨 사건에 관한 기록입니다.

“음…. 아마 2022년에 폭발 사고가 있었고, 그걸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약품의 위험성이 알려졌을 거야. 미래에는 그걸 더 연구해서 폭탄으로 만들었겠지.”

멀리서 소방차와 119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강인이 물었다.

“지인아. 이게 다 터지면 피해가 얼마나 클까?”

- 트럭에 실려 있는 재료가 모두 폭발하면, 이 근처는 폐허가 될 겁니다.

“어?”

- 사망자가 최소 수백 명입니다.

“이 근처 건물에 있는 사람들까지 사망한다고? 폭발력이 그렇게 강해?”

- 현장 사망자만 수백 명입니다. 이 일대의 건물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면 최소 천 명 이상, 최대 삼천 명까지 사망할 수 있습니다.

“삼천 명이나?”

- 부상자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환장하겠네.”

나강인이 폭발성 물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며 물었다.

“지인아. 최초의 다이너마이트는 불안정한 상태의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켜서 만들었잖아. 이걸 폭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규조토 같은 안정화 소재도 있단 뜻이겠지?”

- 그렇습니다.

“그거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 저는 전투지원 AI라서, 모릅니다.

“아니다. 지금은 그런 것까진 필요 없지. 여기 섞으면 안 터지게 하는 중화 물질은 없을까? 그런 게 이미 만들어져서 이 트럭에 있을 수도 있잖아.”

- 가능한 이야기입니다만, 모릅니다.

“만든 사람은 알겠지. 이 회사 전화번호는?”

눈앞에 전화번호 목록이 주르륵 떴다. 회사 대표번호와 연구소 대표번호는 물론이고, 주요 팀별 번호도 몇 개 떴다.

- 우리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연구 개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집한 연구소 전화번호입니다.

“이 물질들을 담당하는 팀은?”

번호 하나가 깜빡였다.

- 담당 개발팀 팀장의 번호입니다.

나강인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나강인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가 설명을 다 하기도 전에 휴대폰에서 짜증 내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 이봐요. VTX-13은 그런 곳에 쓰는 게 아니에요. 그건 우리 화장품 원료라고!

“예? 화장품이요?”

전화기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 팀장님. 누군데 그러세요?

- 우리 화장품이 폭탄이란다. 폭탄.

- 보이스 피싱이네요.

- 아니야. 그냥 미친 거 같아.

- 귓속에 도청 장치는 없냐고 물어보시죠?

나강인의 귀에는 소리를 감지하고 음성을 합성하는 독립모듈이 있다.

개발팀장이 나강인에게 경고했다.

- 어이. 당신. 거기 상자에 써진 약품 이름을 보고 대충 말하나 본데,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나강인은 답답했다.

“이거 섞이면 폭탄이 된다고! 너무 민감해서 금방 폭발한다고! 그러니까 당신들이 대책을 세우고 경찰과 소방서에 경고해줘야 할 거 아냐!”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당신 누구야!

“후우.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이거 화장품으로 만들 때 뭘 섞었습니까? 그걸 섞으면 안 터지니까 화장품으로 만들었을 거 아닙니까?”

- 이 사람이 지금 남의 회사 화장품의 제작 비법을 알려달라는 거야? 진짜 콩밥 먹고 싶어? 당신 경고하는데 그거 하나도 손대지 마! 수량파악 다 되어 있는 거야!

“내가 이 위험한걸 왜 가져가냐고!”

- 교통사고 난 곳이 어디야? 지금 당장 우리 직원이 가서 확인할 거야! 하나라도 없어지면 신고할 거야!

개발팀장이 전화를 뚝 끊었다.

나강인은 짜증이 났다.

“뭐 이런 인간이 있어? 말이 전혀 안 통하네.”

-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원료가 폭탄이라고 신고하면, 믿기 어렵긴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반응이 너무하잖아. 안 되겠다. 이 회사 사장 휴대폰 번호 불러봐. 직접 이야기하게.”

- 그 번호는 인터넷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하긴. 사장이 휴대폰 번호를 인터넷에 깔 리 없지.”

허공에 전화번호가 하나 떴다.

- 백한수려 비서실 번호입니다.

“개발팀장에게 전화했는데도 믿지 않는데, 사장 비서실에 전화한다고 해서 말이 통할 것 같지는 않아. 이 시간에 전화를 받을지도 알 수 없고.”

- 그건 그렇습니다.

“사장의 번호를 알 만한 사람이….”

문득 이태성이 떠올랐다. 철인기공은 군대와 경찰용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이게 폭탄 원료니까, 혹시 알려나?”

나강인이 이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 나강인 씨. 이 시간이 어쩐 일로?

“이 본부장님. 여기 상황이 급해서 용건만 묻겠습니다. 혹시 백한수려 사장님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 수 있습니까?”

- 예? 혹시 화장품회사 백한수려 말입니까?

“예.”

- 화장품 업계는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데….

“아. 그렇겠군요.”

나강인이 이태성에게 전화한 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태성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 비서실에 알아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비서실 정보력이 꽤 좋습니다.

“급한 일이라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 그럼 지금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119구급대가 도착했다. 소방차도 도착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고 소방관들에게 경고했다.

“이 차에 실려 있는 화물은 위험한 화학물질입니다. 접근하지 마세요.”

소방관이 물었다.

“이 회사 관계자십니까?”

외과 의사 김중석이 얼른 말했다.

“저분은 관계자가 아니라, 저 앞 식당에서 회식하던 분입니다.”

“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가 의사입니다. 환자부터 조심해서 꺼내야 해요. 잘못하면 환자 죽습니다!”

소방관이 얼른 운전석으로 달려가 내부를 확인했다.

“부상자를 빼내려면 문을 아예 잘라내야겠습니다. 이 앞쪽도 좀 자르고요.”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균열이 생긴 저장용기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용기의 상태도 불안정합니다.

“진짜 환장하겠네.”

소방관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민간인은 비키시죠. 우리 장비가 들어오려면 여길 좀 치워야 합니다.”

“이거 함부로 치우다가 저걸 잘못 건드리면 폭발합니다.”

“예? 이게 도대체 뭔데….”

“폭탄의 원료입니다.”

“헉. 폭탄!”

소방관이 동료들에게 지시했다.

“사람들 대피시키고, 여기 봉쇄해! 우리도 필수 구조요원만 남기고 후퇴한다! 여기 폭탄 원료가 있다!”

다른 소방관이 찢어진 상자에서 나온 통의 표면에 적힌 글씨를 보고 말했다.

“VTX-13? 이거 화장품 원료인데요?”

“어? 뭐?”

“백한수려에서 만드는 화장품의 원료입니다. 우리 와이프가 이 회사 제품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박스도 다 백한수려 거네요.”

“이거 진짜 터지는 거야?”

“아뇨. 피부재생에 도움이 되는 거라던데요.”

소방관이 나강인을 향해 화를 벌컥 냈다.

“이봐요! 운전석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지금 장난할 때입니까! 당신 누구야! 비켜!”

나강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라니까. 오늘따라 내 말을 믿는 사람이 너무 없다.”

나강인이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신은하가 다가와 말했다.

“강인 오빠가 위험하다고 하면 진짜 위험한 거예요.”

소방관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신은하 씨?”

김유찬도 다가왔다.

“저 아시죠? 김유찬입니다. 그리고 강인 씨는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당연히 폭탄도 잘 압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다가와 나강인의 말을 믿으라고 주장했다.

소방관은 망설였다.

이제 나강인이 그냥 지나가던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았다.

‘유명한 배우들이 이렇게 확실하게 말할 정도면, 진짜 폭탄 전문가인가?’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좀 더 조심하고 싶어졌다. 이런 건 기왕이면 폭발물 전문가를 불러서 처리하고 싶다.

그렇지만 처음 보는 사람의 말만 듣고 이곳을 방치할 수는 없다. 근거가 필요했다.

“차에서 부상자도 구조하고 도로 상태도 회복하려면 이걸 치우긴 해야 합니다. 조심은 하겠지만, 근거도 없이 이런 물건들로 도로를 계속 막아놓을 수는 없습니다.”

경호원 민영희가 다가왔다.

“나 사범님. 제가 순기한테 전화했어요. 받아보시겠어요?”

박순기는 총권도를 배우는 요원 중 하나다.

“아. 박순기 씨가 있었지.”

나강인이 전화를 받아 이곳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 요원 박순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나 사범님. 어떤 상황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약품이 섞이면 터진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화학을 좀 합니다.”

- 아.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사범님 말씀이니까….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좀 돌리겠습니다. 대신에 다음 훈련 때 저는 좀 살살….

“신경 써드리죠.”

-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어진 후에 AI 전지인이 말했다.

- 올빼미가 요령을 피우는 건 빠져서입니다. 더 굴려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신경 써서 더 많이 굴리자.”

***

박순기가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형님. 그거 진짜 위험하다니까요? 당장 거기 통제해야 합니다.”

- 야. 확실한 거야?

“어…. 그럼요. 확실하죠.”

- 난 왜 이런 폭탄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지? 소스가 어디야?

“음…. 형님. 제가 요즘 총권도 배우는 거 아시죠?”

- 어? 설마 이 정보의 소스가 나강인이야? 아니지?

“맞는데요. 지금 현장에 있다는데요?”

- 와. 또 나강인이…. 알았다. 내가 저쪽에 연락할게.

***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너도 후퇴해라.”

“후퇴? 어디로?”

“다음 전철역까지 가라.”

“잠깐. 이게 터지면 그렇게 위험해?”

“어.”

신은하가 화를 냈다.

“장난해? 그런데 어떻게 나만 도망쳐? 같이 튀자!”

“난 현장에서 할 일이 좀 있어. 날 믿고 넌 얼른 도망쳐.”

“알았어.”

“네가 어쩐 일로 말을 이렇게 잘 듣냐?”

“강인 오빠만 믿고 나도 남을게. 평소처럼 알아서 잘 해결해줄 거잖아.”

“야. 넌….”

옆에서 듣고 있던 이보라가 얼른 말했다.

“나도! 나도 남을게요!”

“아니, 그러니까 두 사람 다 남아봤자 도움도 안 된다니까?”

신은하가 말했다.

“사람들 못 오게 통제하는 거 도와줄게.”

“나도요!”

“두 사람이 나서면 사람들이 더 몰리지 않을까?”

나강인의 스마트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이태성이 보낸 백한수려 사장의 휴대폰 번호였다.

나강인이 말했다.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이야기하자. 이 회사 사장이 지시하면 직원들도 협조하겠지.”

그가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백한수려 사장이 코웃음 쳤다.

- 이봐요. 어디서 내 번호를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이따위 장난을 또 하면 내 변호사를 만나게 될 겁니다.

전화가 툭 끊어졌다.

“와. 환장하겠네. 이게 다 된장이 아니라 똥이라고 가르쳐줬는데 왜 아무도 믿지를 않아?”

이제 그 회사의 도움은 받을 수 없다.

“중화제만 좀 알려주지 말이야. 지인아. 여기다 소방차의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될까? 약품이 희석될까? 아니면 반응이 격렬하게 일어날까?”

- 알 수 없습니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방법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제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VTX-13만 안전한 장소로 옮기자. 보조 재료인 NG-3과 섞이지 않으면 되잖아.”

나강인이 소방관에게 설명했다.

“이 두 가지가 섞이면 터집니다. 사람들부터 다 대피시키고, 이건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습니다. 부상자 구출도 굉장히 조심해서 하셔야 하고요.”

소방관이 난감해했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도 근거가 있어야 행동을….”

갑자기 소방관의 무전기로 본부 직원의 연락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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