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00화 (100/411)

100. 화학 천재

소방 참관인이 폭발 현장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겨우 100cc로 저 정도 폭발력이 나올 정도면….”

경찰 참관인이 감탄했다.

“이거 폭발력이 미쳤는데요?”

소방 참관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어제 트럭으로 수송하던 약품이 그때 다 폭발했으면…. 어제 거기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죠?”

경찰 참관인도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집계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서울 한복판인 데다가 빌딩도 많았으니까….”

두 사람은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어젯밤에는 폭발 사고가 없었다. 그래서 좀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게 터졌으면 이 회사는 망했겠는데요?”

“회사만 망했겠습니까? 여기 사장님하고 개발팀장님 포함해서, 회사 경영진과 핵심 개발자 절반은 교도소로 직행했겠죠.”

이번에는 사장 백선철과 개발팀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백선철이 변명했다.

“아니, 우리는 이게 터질 줄은 몰라서….”

경찰 참관인이 물었다.

“어제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도 알던데, 그걸 왜 모르셨습니까?”

“그게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지나가던 사람은 도대체 누굽니까?”

***

강남 자칼 사건과 낙귀 해적단 사건이 마무리되면 합동수사본부는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 드론 추락으로 인한 폭발 사고 같은 것들이 생겼다. 합수부가 그 일도 맡아서 잘 해결했다.

정부는 기왕에 만든 합수부를 좀 더 존속시켜 백한수려의 화장품 원료가 폭발한 사건도 맡겼다.

합수부 사람들은 원래 자기 업무가 따로 있다.

그들은 그동안 원래 업무에 합수부 일까지 하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합수부장이 물었다.

“그러니까 그 화장품 원료가 폭발할 수 있다는 걸 눈치채고 경고한 사람이 나강인이다?”

경찰 간부가 대답했다.

“예. 나강인이 참석한 드라마 쫑파티 장소 바로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바로 대처할 수 있었답니다.”

“뭐, 그거야 우연히 그럴 수 있다고 쳐요. 그런데 나강인은 그 원료들이 섞이면 폭탄이 된다는 건 어떻게 알았답니까?”

“저희 직원이 나강인을 만나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쯤 만나고 있을 겁니다.”

***

형사가 카페에서 나강인을 만나 어색하게 웃었다.

“그만 뵈어야 하는데, 자주 뵙습니다.”

“그러게요. 이번 일은 단순 접촉사고와 차량 정비 불량이 원인이니까, 합수부 형사님이 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거야 폭탄 제조 사건이니까 그렇죠. 그래서 어쩌다 보니 우리가 다시…. 잠깐만요.”

형사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사고 원인이 정비 불량인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고 현장에서 그 차 하부를 봤거든요. 딱 봐도 정비 불량이던데요.”

“그걸 그냥 한 번 보고 어떻게…. 아,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죠.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시죠.”

“VTX-13은 백한수려에서 개발한 화장품 원료입니다. 그걸 생산하는 곳은 백한수려의 공장 딱 한 곳이고, 정확한 제조법은 백한수려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다른 물질과 섞이면 강력한 폭탄이 된다는 걸 외부인인 선생님이 도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2082년식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VTX-13으로 만든 노벰버 B는 폭발력은 강력하지만 보존성이 나빠 평소에는 생산하지 않습니다. 보급이 끊기면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해 폭발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때 노벰버 B가 사용됩니다.

나강인이 둘러댔다.

“제가 화학에 관심이 좀 있어서요.”

“예? 화학이요?”

“VTX-13의 제조법은 모르지만, 중요 성분의 화학식은 논문을 찾아보면 나오더라고요. 그 논문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다른 약품과 잘못 섞이면 터지겠구나. 아주 크게 터지겠구나.”

***

합수부장이 회의에 참석한 경찰 간부에게 물었다.

“화학에 관심이 있어서 논문을 보고 알았다? 아니, 그러면 그 화장품회사의 화학자들은 바보라서 몰랐답니까? 다른 회사 연구소는 다 눈뜬장님이고요?”

“나강인은 운이 좋아서 어쩌다 깨달았다고 했다던데요.”

“아니, 그게 운으로 되는 겁니까?”

정보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말했다.

“이건 폭발력이 너무 강합니다. 테러에 사용되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경찰 간부가 말했다.

“VTX-13은 화학식이 굉장히 복잡한 데다가, 제조법을 모르면 만들 수 없습니다.”

행안부 간부가 제안했다.

“일단 화장품에 쓰는 것부터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화장품으로 만들었을 때는 굉장히 안정적이라서요.”

“재료가 위험한 물질이잖습니까?”

“니트로글리세린도 약 만드는 데 쓰는데, 화장품으로 만들면 안정적인 상태로 변하는 원료를 굳이 못 쓰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꼭 써야 할 이유는요?”

“그 원료가 들어간 화장품이 요즘 무척 잘나간다던데요. 수출도 엄청나게 한다고 합니다.”

“아….”

합수부장이 말했다.

“판매 중단 여부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 교통사고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그 화장품회사가 위험물을 잘 관리했는지만 조사합시다. 그게 우리 일이니까.”

“그럼 나강인은요?”

합수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강인을 조사할 근거나 명분은 있고요?”

“없죠. 회식 장소 앞에서 사고가 나니까 사람들을 구하려고 경고한 게 다인데.”

“그냥 뭐 더 아는 게 있는지만 좀 물어봅시다. 표창장을 줘도 모자랄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아! 표창장을 준비할까요?”

합수부장이 짜증을 버럭 냈다.

“그 화장품 재료가 폭탄 원료라는 걸 소문낼 일 있습니까! 표창장을 어떻게 줍니까! 있는 정보도 숨겨야 할 판에!”

***

화장품 회사 백한수려의 회의실에서 직원이 보고했다.

“외부 전문업체에 폭발력 데이터만 알려주고, 우리 회사의 약품 수송 트럭이 폭발했을 때의 피해를 예측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사장 백선철이 물었다.

“결론부터 말해. 몇 명이야?”

“최소 삼백 명, 주변 건물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하면 최대 삼천 명까지 예상된다고 합니다.”

백선철은 화들짝 놀랐다.

“헉! 사상자가 그렇게 많아?”

“아니요. 사망자만 해도 그렇게 많을 거랍니다. 부상자는 너무 많아서 계산하기 어렵다고….”

백선철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게 터졌으면 우린 다 감옥에 갈 거라더니, 그게 그냥 비유가 아니었구나.”

이사들도 긴장했다.

“진짜 삼천 명이 사망했으면, 지금 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구속됐을 겁니다.”

“삼백 명이 사망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쯤 되면 아무리 좋은 변호사를 써도….”

“아니, 힘 있는 변호사가 변호를 맡아주기나 하겠냐고. 전 국민의 역적이 될 텐데….”

백선철이 손을 흔들었다.

“원래 하려던 보고 제대로 해봐.”

직원이 왜 그런 인명피해가 생기는지 설명했다.

“하필 사고 위치가 서울 한복판이었던 게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설명을 들을수록 이사들은 소름이 돋았다.

회의가 끝난 후에, 회의실에는 사장 백선철과 비서실장만 남았다.

백선철이 가만히 있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사과를… 해야겠지?”

“하셔야죠.”

***

나강인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나강인은 모르는 번호는 어지간하면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번호는 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백한수려 사장의 개인 휴대폰 번호입니다. 트럭 사고 당일에 통화했습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백한수려 사장 백선철입니다.

“압니다. 지난번에 제가 전화를 드렸었죠.”

- 죄송합니다. 저희가 실험을 해봤는데, 선생님께서 하신 말대로더군요. 그 두 물질이 충분히 섞이니까, 폭발했습니다.

“예. 실험하셨단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 역시 경찰과 잘 아시는군요.

그 트럭이 그때 폭발했으면 백한수려는 당연히 망하고 사장인 백선철은 교도소에서 최소한 십 년은 살아야 한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사태를 막아준 사람이 나강인이다.

- 괜찮으시면 저희 최 팀장과 같이 찾아뵙고 싶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니까 약품 관리 잘하세요. VTX-13이 다른 것과 섞이면 큰일 나는 건 이제 아실 테니까.”

-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이만.”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

백한수려 사장 백선철이 끊어진 전화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박 실장.”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예. 사장님.”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봐라.”

비서실장이 태블릿PC에 자료를 하나 띄웠다.

“제가 미리 알아봤습니다.

“그래? 어느 연구소 사람이야? 아니면 대학교수야?”

“민간인입니다.”

“응?”

“당시 사고 현장 근처에서 드라마 쫑파티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들과 일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지 알아내는 게 쉬웠습니다.”

“잠깐. 드라마 쫑파티? 화학자가 거기 왜 갔는데?”

“이름은 나강인. 드라마 ‘푸른 하늘’의 무술감독입니다. 영화 ‘햇살 좋은 날’의 무술감독이기도 합니다.”

“무술감독? 폭발물 전문가가 아니라? 아니지. UDT 같은 군 특수부대 출신이면 폭발물을 잘 알 수도 있지.”

“사장님. VTX-13은 원래 폭발물이 아니라서….”

“아. 그렇지. 계속해.”

“나강인 씨가 CF의 무술감독을 맡았을 때는 그 CF의 CM송도 불렀습니다.”

“그럼 가수야?”

“예. 그 CM송을 만든 작곡가에게 연락했다가, 나강인 씨가 최근에 노래를 한 곡 발표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비서실장이 ‘오늘도 걷는다’를 재생했다. 백선철도 차에서 들어본 노래다.

“아. 이 노래. 음…. 그래서 무술감독이야? 가수야?”

“제가 알아본 바로는, 무술감독 겸 가수입니다.”

조사 기간이 워낙 짧아 거기까지 알아내는 게 비서실장의 한계였다. 다른 건 알아내지 못했다.

백선철이 탁자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물었다.

“그럼 화학이나 폭발물 연구를 어디서 했는지는 모른다는 거지?”

“나강인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논문을 발표한 적은 없습니다.”

“해외파인가?”

“나강인의 과거에 대해서는 저희가 접촉한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백선철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이 노래, 우리 CF에 쓸 수 있을까?”

“홍보팀장을 부르겠습니다.”

홍보팀장과 홍보팀 직원 백미소가 같이 들어왔다.

백미소는 백선철의 딸이다.

백미소가 말했다.

“우리가 최근에 시장에 내놓은 신제품 중에, 스포츠 화장품 ‘스피드 쉴드’의 광고를 준비하던 중이에요. 곧 결재를 올리려고 했어요.”

“알아. 어디까지 진행됐어?”

“제작사는 골랐고, 콘티도 3안까지 준비됐어요. 모델을 누굴 쓸지는 아직 안 정했지만요. 물론 배경 음악도 안 정했고요.”

그 화장품에도 VTX-13이 들어간다.

“그거 저예산 광고였지?”

“네. 공중파는 포기하고 케이블 방송과 인터넷에 뿌리려고요.”

“그럼 음악은 이걸로 결정해서 그 광고 제작 바로 진행해.”

백미소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나요? 고마움을 표현하려면 다른 방법이 많잖아요. 예를 들면 보상금을 준다든지….”

백선철이 손짓했다. 홍보팀장은 꾸벅 인사하고 나갔다. 사장실에는 백미소와 비서실장만 남았다.

백선철이 말했다.

“박 실장. 미소에게 설명해줘.”

“예. 사장님.”

비서실장이 사장실의 대형 모니터에 자료를 띄웠다.

“나강인이 우리 VTX-13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화학식처럼 이미 공개된 것밖에 없었어. 그런데도 그 사람은 NG-3과 섞이면 강력한 폭탄으로 변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렇다고 들었어요.”

“정작 VTX-13을 만든 우리 연구소는 그걸 몰랐지.”

“하지만 NG-3은 우리 회사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다른 회사의 물질이 섞였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우리가 어떻게 다 알아요?”

“대신에 우리는 VTX-13의 제조법도 알고 실험도 많이 했지.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걸 나강인은 단지 화학식만 보고 알아냈다. 이건 대단한 거야.”

백미소가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실장님 말씀은, 그 사람이 화학의 천재라는 거예요?”

“사장님과 난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 우리 CF에 그 사람의 노래를 쓰려는 건….”

그 대답은 백선철이 했다.

“나강인 씨 덕분에 회사도 안 망하고 우리도 감옥에 안 갔는데, 입을 닦으면 되겠냐? 그러니까 그 정도 지원은 보답 차원에서 해야지. 그리고.”

백선철이 씩 웃었다.

“이렇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 친해지다가, 적당한 때 그 화학 천재를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해야지. 그러니까 이 일은 미소 네가 맡아서 진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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