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01화 (101/411)

101. 생계형 아이돌

SAH 엔터 사장 서재현은 깜짝 놀랐다.

“어? 백한수려에서 CF에 우리 노래를 쓴대? 무슨 노래?”

“댕댕이 부른 ‘오늘도 걷는다’입니다.”

서재현이 활짝 웃었다.

“이야아. 역시 좋은 노래는 다들 알아보는구나. 행사도 안 뛰고 방송도 안 나간다고 해서 노래가 아까웠는데, CF로 뜨겠네! 그렇게 자동 홍보가 되면 음원도 팍팍 팔리겠어.”

“그런데 그 조건이….”

서재현이 웃으며 말했다.

“무리한 요구만 아니면 다 받아들여. 이 기회에 안 팔면 어떻게 팔겠어?”

“나강인 씨가 그 CF의 액션을 맡아야 한다고….”

“어? 나강인 씨? 어….”

서재현은 나강인이 좀 무서워서 직접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매니저가 가서 잘 이야기하라고 해.”

“예? 나강인 씨는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라서 담당 매니저가 없는데요?”

“박우섭 실장 있잖아. 담당은 아니지만 수고 좀 하라고 해. 수당 챙겨준다고 하고.”

***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이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인 씨. CF 문제로 협의를 좀 할 게 있습니다.”

- CF요?

“‘오늘도 걷는다’를 배경 음악으로 쓰고, 강인 씨가 액션을 해결해준다는 조건으로 CF가 들어왔습니다.”

- 어디서 한 제안입니까?

“백한수려의 신제품 스포츠용 화장품 CF입니다. 나강인 씨가 꼭 맡아주셔야 한다고….”

- 아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다른 지방에 와 있어서요. 서울로 돌아가면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내일 시간 되십니까?

나강인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박우섭의 표정이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내일 피시방에서 뵙겠습니다.”

박우섭은 일부러 약속장소를 피시방으로 잡았다. 거기서 만나면 나강인이 만든 잡탕 과자를 얻을 수 있다.

박우섭이 전화를 끊고 나서 활짝 웃었다.

“기왕이면 밥도 얻어먹자. 아니다. 삼 인분만 따로 싸달라고 해야지.”

***

나강인이 전화를 끊고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돌아보았다.

“네가 아는 것과 많이 다르지?”

- 이 지역의 중요방어시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직 짓지 않은 거지. 시차가 60년이잖아.”

나강인과 AI 전지인은 인터넷으로 현재 세상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렇다고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는 건 아니다. 그는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정보의 진위를 눈으로 확인하곤 했다.

“여기 있는 연구소 중에 지금 우리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 비슷한 연구를 하는 곳조차 없습니다.

“인공태양 연구소에 기대를 좀 했는데 말이야.”

- 핵융합 연구소는 저곳에 있습니다만, 연구소의 위치와 구조가 제가 가진 기록과 완전히 다릅니다.

성과는 없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기대를 조금밖에 안 했더니 실망할 것도 없다.”

- 거점으로 복귀하는 길에 짬뽕이라도 드시고 가시죠.

“맛있는 집을 찾아놨어?”

AI 전지인이 충청남도의 짬뽕집을 띄웠다.

- 현 위치에서 이곳으로 이동해 짬뽕을 드신 후에,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거점으로 복귀하는 경로를 추천합니다.

“넌 미리 다 알아봤구나? 그래. 가자. 먹는 게 남는 거지.”

***

나강인은 짬뽕집으로 가는 도중에 지역 행사장을 발견했다.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요원님. 본격적인 식사 전에 지역 축제 음식을 조금 맛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지인아. 너 사람 다 된 건 아는데, 이젠 식탐까지 생겼냐?”

- 새로운 맛을 조사하려는 것뿐입니다.

“핑계도 잘 대. 그래. 가자. 가.”

나강인이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행사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쟤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AI 전지인은 나강인이 직접 만난 모든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 SAH 엔터 소속 걸그룹 프프걸스입니다.

프프걸스의 막내 최지혜도 나강인을 알아보았다.

“앗! 안녕하세요!”

“아, 네.”

프프걸스 리더 소지영이 물었다.

“지혜야. 아는 분이야?”

“전에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서 신은하 선배님하고 식사하시던 분이셔.”

다른 세 명이 얼른 인사했다.

“앗! 안녕하세요! 선배님.”

나강인이 손을 흔들었다.

“난 연예인이 아닙니다. 그냥 은하하고 아는 사이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래도 여기서 은하 선배님 아는 분을 만나서 반가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슨 일로?”

막내 최지혜가 자랑했다.

“우리 오늘 행사 왔어요. 히히.”

“아아…. 이 행사에….”

여기서 하는 행사는 규모가 무척 작았다. 이런 곳을 찾아다니며 천막을 쳐놓고 음식을 파는 간이 식당도 몇 개 없었다. 지역 주민도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았다.

나강인은 예전에 신은하가 프프걸스는 행사가 거의 잡히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한 걸 떠올렸다.

‘가끔 뛰는 행사로 생활비만 겨우 번다고 들었는데….’

“그렇군요. 응원할게요. 열심히 해요. 아. 이미 다 했나?”

“아뇨. 조금 있다가 행사 시작 때 공연 한 번 하고, 끝날 때 또 한 번 더 해야 해요.”

“응? 두 번이나? 행사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에이. 괜찮아요.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요.”

“아니, 매니저는 뭐 이런 일을 따왔나….”

“매니저 없어요. 우리끼리 왔어요.”

나강인은 살짝 당황했다.

“어?”

최지혜는 나강인이 신은하와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둘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회사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어차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우리 회사에서 오늘 대형 프로젝트가 있어서 매니저가 부족하대요. 그럴 때 매니저 없이 우리끼리 행사를 갔다 오면 회사도 편하고 비용도 절약되니까 좋잖아요.”

나강인은 어이가 없었다.

“와. SAH 엔터 막 나가네.”

AI 전지인이 말했다.

- CF 협의를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러게. 다시 생각해야겠다.”

최지혜가 손을 흔들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가 먼저 그러겠다고 했어요. 히히.”

“아니, 왜….”

“행사도 잘 없는 데다가, 이런 행사는 단가가 낮아서 비용 빼면 남는 것도 없어요. 이렇게 비용을 줄이면 그건 다 우리가 가져도 되거든요. 쟤들도 자주 그래요.”

나강인이 최지혜가 가리킨 쪽을 보았다.

SAH 엔터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 따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아…. SAH도 아무 생각 없이 얘들만 보낸 건 아니구나. 쟤들을 같이 보냈네.”

- 최소한의 전투력은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게.”

- CF를 다시 생각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나강인이 최지혜에게 물었다.

“혹시 차 한 대로 왔어요?”

“네. 봉고차 한 대로 왔죠. 차를 한 대만 써서 아낀 비용도 회사에서 다 챙겨주거든요.”

“왜 그랬는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좀 당혹스럽긴 합니다.”

나강인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신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이곳 상황을 설명한 후에 물었다.

“이게 정상이야?”

신은하가 설명했다.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애들이 넷이나 가니까 힘쓸 일이 생겨도 해결할 수 있잖아. 그럴 때는 일부러 걔들끼리만 보내고 원래 들어가야 할 비용을 다 돈으로 준대.

“특이한 방식이네?”

- 걔들이 행사 단가가 워낙 낮아서 안 그러면 남는 것도 없거든. 그리고 우리 사장님 사고방식이 특이하긴 해.

“갑자기 팬들이 몰려들거나 하면? 연예인이 나서서 막으면 오히려 상황이 나빠지는 거 아냐?”

- 에이 설마. 걔들은 팬이 거의 없어서 그럴 일이 없어. 성환이가 특이한 케이스야.

피시방 삼인방인 대학생 해커 안성환은 프프걸스의 팬이다.

나강인도 납득했다.

“이런 식으로 부수입을 잡아서 생활비에 보탠다는 거네.”

- 그치. 그리고 얘들이 다 착해서 그렇게 걔들끼리만 보내도 사고 안 쳐. 착한 애들인데 뜨지 못해서 참 아쉬워. 내가 영화랑 드라마 단역에 한 명씩 꽂아준 적이 있는데, 그 정도로는 도움이 안 되나 봐.

나강인이 프프걸스를 보았다. 네 사람은 각자 거울을 보며 화장을 시작했다.

“잠깐. 아무도 안 따라왔으면 메이크업은 누가 하는데?”

- 걔들이 직접 하지. 원래 걔들한테는 메이크업 담당자가 안 붙어.

“그러냐. 내가 그거라도 도와줘야겠다.”

- 응? 뭘?

“그런 게 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고 나서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지인아. 너 그림 잘 그리잖아. 메이크업도 할 줄 아냐?”

- 전투용 위장 로션을 바르는 방법이라면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정찰용 지형지물 묘사 스킬이 있잖아. 너 전에도 그걸 써서 방화 살인범 몽타주를 정확히 그렸잖아.”

- 해당 스킬로 민간인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라는 말씀이십니까?

“바로 그거지.”

- 지형지물 정밀 묘사 스킬과 군용 장비 도색 스킬을 사용하겠습니다. 참고할 원본이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쟤들도 샵에서 풀메이크업을 받은 적이 있겠지. 그 사진을 찾아보자.”

AI 전지인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 대상자들은 데뷔 이래로 공중파에 딱 한 번 출연했습니다.

“그때는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갔겠네.”

- 그 영상을 찾았습니다.

나강인이 영상을 보았다.

“예쁘네. 이 모습 그대로 얘들 얼굴에 그리면 되겠다. 할 수 있지?”

- 물론입니다.

나강인이 프프걸스에게 다가갔다.

“메이크업 좀 도와줄까요?”

“네?”

“내가 좀 잘하는데.”

다른 세 명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얼굴을 맡기는 건 부담스럽다.

그런데 막내 최지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해주세요! 저! 제가 화장을 못 해서 맨날 언니들한테 부탁하거든요.”

“오케이.”

“먼저 한 화장부터 지울게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현재 상태에서 10%만 지우면 나머지는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작업 시간이 단축됩니다.

“아니, 뭐, 지금 그대로 두고 보완합시다. 내가 조금만 지울게요.”

나강인이 최지혜의 앞에 앉았다.

목표는 최지혜의 얼굴을 영상에서 본 풀메이크업 상태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강인이 작업을 시작했다. AI 전지인이 그의 손을 움직였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화장을 대충 휙휙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에 AI 전지인이 말했다.

- 대상자의 얼굴에 영상 속 모습과 95% 일치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강인이 화장 도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 됐습니다.”

최지혜는 거울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앗!”

그녀의 뒤쪽에서 각자 화장을 하던 다른 세 명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왜? 망쳤어?”

“괜찮아. 다 지워. 언니가 다시 해줄…. 어머?”

최지혜가 돌아서며 활짝 웃었다.

“언니들. 내 얼굴 좀 봐. 우리 예전에 청담동 샵에서 했던 거랑 똑같아!”

“와. 진짜 그때랑 똑같아!”

최지혜가 방긋 웃었다.

“그때랑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하신 거 같은데, 결과가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와. 대박 신기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나강인이 말했다.

“이런 얼굴을 좋아하는 거 같아서 그 영상을 보고 비슷하게 했는데, 그래도 5%쯤 차이가 날 겁니다.”

최지혜가 얼른 일어나 배꼽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다른 세 명이 나강인을 보며 머뭇거렸다.

나강인이 그들에게 물었다.

“다음 신청자?”

세 명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저요!”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려요!”

***

나강인은 예전 동영상에 있던 네 사람의 풀메이크업 영상을 참고했다.

AI 전지인은 기존에 어느 정도 된 화장을 활용해서 작업 시간을 줄였다. 시간은 한 명당 5분이면 충분했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 네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와! 우리 진짜 예뻐졌다!”

나강인이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네 사람 다 원래 예뻐요.”

“고맙습니다!”

나강인이 단서를 달았다.

“시간을 단축하려고 편법으로 한 거라서, 정식으로 한 것보다는 화장의 유지 시간이 짧을 겁니다. 그래도 첫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버틸 텐데, 혹시 문제 생기면 바로 고치러 와요.”

“네에!”

남자 아이돌 그룹은 옆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네 사람이 나강인과 뭔가 하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다가왔다. 혹시 이상한 사람이 붙은 건 아닌지 걱정해서였다.

그런데 그들은 프프걸스 네 명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뭐야? 너희들 어떻게 풀메이크업을 했어? 차에서는 이런 상태가 아니었잖아.”

막내 최지혜가 자랑했다.

“히히. 여기 선생님께서 싹 다 해주셨지!”

“어? 메이크업 아티스트셔? 혹시 회사에서 보내주신 거야?”

“아니. 은하 언니랑 아는 분인데, 전에 우리가 구내식당에서 은하 언니한테 인사할 때 계셨거든. 오늘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시고 도와주셨어.”

나강인이 말했다.

“난 그냥 은하가 잘해주라고 해서 한 건데.”

남자 아이돌 네 사람이 얼른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조금 전에도 말했는데 난 연예인이 아닙니다.”

“그럼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생님!”

“그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네! 지나가던 선생님! 저희도 은하 누나 보면 인사 잘합니다!”

“어…. 알아요. 그날도 구내식당에서 인사했으니까. 그런데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는?”

남자 아이돌 네 명이 눈을 반짝였다.

“저희도 풀메이크업을 받고 싶습니다!”

나강인이 가볍게 말했다.

“은하 부탁도 있으니까, 그러지요.”

네 명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쟤들만큼은 바라지도 않아요!”

“막 그리셔도 돼요!”

“저희가 한 것보다는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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