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05화 (105/411)

105. 병아리

나강인이 총권도 수강 요원 다섯 명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훈련생 여덟 명이 이 체육관으로 올 겁니다. 걔들 앞에서는 폭탄 이야기는 하지 마시죠.”

나강인은 프프걸스 네 명과 천사전사단 네 명을 이 체육관으로 불렀다. 그는 오늘 총권도 훈련과 CF 촬영을 위한 연습을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다.

요원 다섯 명이 즉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 일은 대외비라고 들었습니다.”

그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화장품 원료를 운송하던 트럭이 교통사고로 화물을 흘린 것이라고 알려졌다. 기사가 몇 개 뜨긴 했는데 모두 그런 내용으로 나갔다.

그것 자체는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약품이 폭탄의 원료라는 건 대외비로 처리해 공개하지 않았다.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이유는 있었다.

경찰 요원 박순기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도심지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을 뻔했다는 걸 공개해봤자 좋을 건 없습니다.”

이유는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게다가 VTX-13에 다른 화학물질, 예를 들면 NG-3 같은 것을 조합하면 강력한 폭탄이 된다는 정보는 아직 공개할 수 없습니다.”

정보기관 요원이 박순기에게 말했다.

“회사 외부로 나간 VTX-13 물량이 좀 있다더라. 그걸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 다 회수할 때까지는 절대로 공개하면 안 되지. 그게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면 강력한 폭탄이 될 테니까.”

경호관 최남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맞아. 그런 게 돌아다니면 우리도 피곤해져. 아직 그 폭발물의 탐지 방법이 확실히 나온 것도 아닌데.”

- 노벰버 B의 탐지 도구는 간단히 만들 수 있습니다.

AI 전지인은 VTX-13을 주원료로 하는 폭탄을 노벰버 B라고 불렀다.

나강인이 물었다.

“응? 어떻게?”

- 공기 중에 유출된 입자를 감지하는 센서를 쓰면 됩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2082년에 그런 센서가 있으면 뭐하냐. 너는 그걸 만들 줄 모르는데.”

그가 그렇게 말하면 AI 전지인은 보통 ‘저는 전투지원 AI이지 개발이나 생산 AI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대답이 달랐다.

-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감지 센서 중에 필요한 기능을 가진 것이 있습니다.

나강인은 살짝 당황했다.

“어? 노벰버 B는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는데 감지 센서가 왜 있어?”

- 특정 냄새 감지기가 노벰버 B의 입자를 감지합니다.

“아아. 그게 냄새가 나는구나.”

상황을 이해한 나강인이 최남수에게 제안했다.

“그냥 감지기를 사다 쓰시죠.”

최남수가 웃었다.

“하하하. 나 사범님이 알려주셔서 폭발 실험은 했지만, 생산된 적이 없는 폭탄을 감지하는 감지기가 어떻게 미리 존재하겠습니까?”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눈앞에 감지기의 상품명과 특징을 띄웠다.

나강인이 그걸 보며 설명했다.

“노벰버 B는 보존성이 좋은 폭탄이 아닙니다. 가만히 놔둬도 입자가 증발해 공기 중에 날아다닙니다.”

“예? 노벰버 B요?”

“그 폭탄이라고 계속 부르면 헷갈리니까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최남수는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그 입자를 어떻게 감지하라는 겁니까?”

“쉽게 말해서, 노벰버 B는 특이한 냄새가 살짝 납니다. 기존 냄새 감지기 중에 그걸 잡아내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팝니다. 테러리스트가 만든 급조폭발물은 그 감지기에 바로 걸립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했다. 제품명은 AI 전지인이 알려주었다.

“여기 이런 건데, 이건 98,000원에 택배비 별도네요.”

최남수가 화면을 보고 당황했다.

“아니, 그 문제로 여러 기관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간단히….”

“외부로 나간 VTX-13를 다 회수할 때까지는, 폭발물을 검사할 때 이걸 들고 가면 되겠네요.”

박순기가 옆에서 급히 물었다.

“폭탄을 완전히 밀봉하면 냄새가 안 나는 것 아닙니까?”

“공장에서 정밀 공정을 거쳐 밀봉하고 표면을 잘 세척하면 냄새는 안 나겠죠.”

“아…. 그럼 역시 한계가….”

“그런데 그거, 완전히 밀봉하면 폭발합니다.”

“예?”

“그러면 테러리스트가 셀프로 소탕되겠네요.”

“아니, 그런 걸 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강인이 둘러댔다.

“화학식을 보니까 예측이 되더군요.”

경호관 최남수가 즉시 전화를 걸었다.

“일단 이 냄새 감지기를 몇 대 사서, 백한수려와 협조해 테스트하라고 하겠습니다.”

박순기가 물었다.

“남수 형. 왜 몇 대나 사는데?”

“나머진 우리가 미리 사놓게. 나는 나 사범님의 말을 믿거든.”

다른 요원들이 즉시 휴대폰을 꺼냈다.

“나도 우리 부대에 알려줘야지. 값 오를지 모르니까 미리 몇 대 사놓으라고.”

“나도 품절되기 전에 사라고 해야지.”

“나도.”

***

한 시간 후에 아이돌 여덟 명이 체육관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온 후에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프프걸스입니다!”

“천사전사단입니다!”

요원들이 그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야아. 어느 부대에서 훈련생을 보냈나 했더니, 아이돌이네?”

“아이돌이라 그런지 느낌이 다르다.”

“그러게. 외모도 너랑 다르다.”

“우리랑 다르다고 해라.”

민영희가 웃으며 아이돌들에게 다가갔다.

“어머어. 잘 왔어요. 우리가 잘 굴려…. 가르쳐줄게요. 총권도 기초는 우리한테 배워야지.”

남자 아이돌 리더 남정석이 물었다.

“네? 총권도요?”

“응? 그거 배우러 온 게 아니야?”

민영희가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나 사범님. 그럼 얘들은 왜 온 거예요?”

“걔들이 곧 CF를 찍는데, 거기 쓸 동작을 연습시키려고 불렀습니다.”

“그건 녹색 쫄쫄이 입고 하시면 되는 거 아녜요?”

나강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쫄쫄이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을까?”

“이번 드라마 쫑파티 때, 은하 씨가 나 사범님이 CF 찍는 날 엄청나셨다고 자랑을….”

민영희는 그 쫑파티에서 이보라의 경호를 맡았다.

나강인이 불평했다.

“역시 나를 놀리는 맛에 사는 신은하.”

“은하 씨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그래서 쫄쫄이는….”

“내가 그 쫄쫄이를 안 입으려고 오늘 쟤들을 굴리는 겁니다.”

“쳇. 기대했는데.”

***

요원 다섯 명은 그동안 나강인을 상대로 구른 덕분에, 이제 자기들끼리 기초 훈련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훈련할 때는 나강인이 굴릴 때보다 훈련 강도를 낮추고 휴식시간을 늘렸다. 부상 위험 때문에 그래야만 했다.

요원들이 휴식시간에 의자를 찾아 앉으며 스포츠음료의 뚜껑을 땄다.

최남수가 말했다.

“아이러니하지 않냐? 훈련 강도는 나 사범님하고 할 때가 더 높은데, 부상 위험은 우리끼리 할 때가 더 높다.”

박순기가 맞장구쳤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안 믿을걸?”

나강인은 요원 다섯 명은 자체 훈련을 시켜놓고 아이돌들을 굴렸다.

요원 중 한 명이 이온음료를 마시며 아이돌들을 가리켰다.

“쟤들 말이야. 진짜 널널하게 하는데?”

“그러게. 우리도 저렇게 쉬운 걸 가르쳐줬으면 놀면서 했겠다.”

“우리는 붙잡고 던지고 걷어차면서 가르치시더니, 쟤들은 넘어지고 구를 때마다 다치지 않게 잡아주시네. 와. 차별 너무 심한 거 아냐?”

민영희가 말했다.

“내가 그저께 여배우 경호를 갔다가 앞을 막는 기자들을 밀치는데,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또 자빠뜨렸냐?”

“아니. 내가 마음먹은 대로 상대를 밀었다 당겼다 할 수 있더라. 한두 명 정도는 원래도 할 수 있었는데, 그저께는 여러 명을 상대로도 그게 되더라니까?”

“총권도를 배운 덕분에?”

“다른 이유가 있겠냐?”

군 특수부대 요원도 경험담을 말했다.

“나도 부대에서 시험해봤는데, 일곱 명이 줄까지 서가면서 덤볐는데도 내가 싹 다 이겼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냐?”

“어떻게 됐는데?”

“그걸 본 우리 여단장님이 여기서 잘리면 부대에서도 잘릴 줄 알라고 경고하셨다. 난 악착같이 붙어 있어야 해.”

“나도.”

“나도.”

나강인이 아이돌 여덟 명을 굴렸다.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 병아리들의 상태를 잘못 계산했습니다.

“어느 정도인데?”

- 쓰레기입니다. 저기 있는 올빼미들보다 한참 떨어집니다.

“현직 요원하고 비교하면 되겠냐? 그래도 애들이 아이돌이라서 몸은 꽤 쓸 텐데?”

- 병아리들의 운동능력은 괜찮지만, 신체 균형이 너무 틀어져 있습니다.

“음…. 그래서 대책은?”

- 고립된 전장에서 민간인을 병사로 훈련시킬 때 쓰는 기초 체조법이 있습니다.

“어? 체조 좀 하면 지구연합군 병사가 될 수 있다고?”

- 설마 체조 좀 했다고 병아리가 지구연합 정규군 병사가 되겠습니까? 민간인 훈련은 단기간 속성 교육으로 예비군 중에서도 최하급 병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그 훈련에서 체조의 역할은 뭔데?

- 신체 균형을 바로잡아 사격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해서 예비군 최하급 병사가 되면, 도움은 되냐?”

- 고립된 전장에서 민간인의 생존율을 조금 높일 수 있습니다.

“음…. 그 말은, 훈련 기간이 짧아도 효과는 있다는 거네?”

- 이 병아리들에게는 그게 최선입니다.

“그래. 그거로 가자.”

나강인이 아이돌들에게 말했다.

“자. 자. 테스트를 해보니까 너희들은 몸의 균형이 다 틀어져 있어서 그냥 훈련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막내 최지혜가 불평했다.

“우와. 진짜 엄청 열심히 했는데!”

“넌 그냥 열심히만 하더라. 내가 체조를 하나 가르쳐줄 건데, 너희들 이거 매일 해라. 그래야 몸에 균형이 잡혀서 나중에 병원 신세 안 진다.”

나강인이 지구연합군 예비군 육성용 훈련 과정 중 하나인 체조를 아이돌 여덟 명에게 가르쳤다.

최지혜가 손을 들었다.

“쌤! 이거 너무 어려워요!”

“어. 더 어려워질 거야. 이렇게 해서는 답이 안 나오니까, 이제 속성 교육으로 가자.”

요원 다섯 명이 아이돌들의 훈련 모습을 보며 말했다.

“와. 이제 나 사범님이 쟤들도 던진다.”

“그래. 저거지.”

“우리만 나가떨어지면 너무 비참하잖아.”

“그런데 저건 총권도 동작이 아닌 거 같은데?”

그 체조에도 공격과 방어에 응용할 수 있는 동작들은 있지만, 요원들이 배울 때처럼 실전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박순기가 말했다.

“저것도 가르쳐달라고 할까?”

최남수가 말렸다.

“조용히 해라. 총권도 배우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을 거 같다.”

신은하가 피시방 야간 알바 윤아름과 함께 음식을 잔뜩 가져왔다.

“밥 드시고 하세요!”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인 최지혜가 얼른 손을 들었다.

“바, 밥 먹고 해요! 밥 먹을 때는 쉬어도 되겠지!”

윤아름이 사람들을 보며 감탄했다.

“와! 여기 연예인 진짜 많다!”

전투 중에는 뜨거운 요리를 먹기 어렵다. 그래서 야전 전술 요리는 식은 상태로 먹어도 괜찮은 것이 많았다.

나강인은 그런 요리를 넉넉히 만들어놓고 이곳에 왔다. 이 체육관은 같은 동네에 있어서, 배달은 신은하가 하기로 했다. 윤아름은 그 밥을 노리고 같이 찾아왔다.

휴식시간에는 모두 모여서 밥을 먹었다.

막내 최지혜는 숟가락을 입에 넣기 전에 다짐했다.

‘천천히 먹어야 해. 오래 먹어야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어.’

그런데 일단 한 입 먹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숟가락질을 멈추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늘 오전에 계속 구르면서 체력을 소모했더니 요리가 더 맛있었다.

“뭐야? 은하 언니.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신은하가 자랑했다.

“강인 오빠가 너희들 먹으라고 미리 만들어둔 요리야. 아. 요원님들도요.”

최지혜가 감탄했다.

“와. 무술만 잘하는 게 아니었어. 요리도 잘해. 완전 내 스타일.”

신은하가 코웃음 쳤다.

“어. 그래. 여고생 최지혜. 너랑 썸만 타도 강인 오빠는 사회적으로 철컹철컹인 거 알지?”

“에이. 너무 맛있어서 표현만 그렇게 한 거죠. 저는 언니 편이에요.”

“아유. 여기서 지혜가 제일 착하네? 많이 먹어.”

윤아름이 물었다.

“그런데 아이돌 하시는 분들이 왜 강인 오빠한테 무술을 배우시는 거예요?”

막내 최지혜가 밥을 먹으면서 멧돼지 사건을 자랑했다.

“그래서 그때 우리 선생님이 쇠파이프 두 개로 그 멧돼지를 막 두들겨 패는데! 아. 그 멧돼지 누가 먹었지? 우리 선생님이 잡은 건데 동네 사람들이 잡아먹었나?”

“잠깐만요. 왜 자꾸 강인 오빠를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생님이니까요. 지금은 트레이너 선생님이고요.”

“네? 강인 오빠가 설마 메이크업도 잘해요?”

신은하가 옆에서 자랑했다.

“내가 영상 봤는데, 청담동 샵 수준으로 잘해. 게다가 엄청 빨리해. 그래서 나도 내일 강인 오빠가 메이크업해주기로 했다?”

윤아름이 눈을 반짝였다.

“강인 오빠. 저도 예뻐지고 싶어요. 저도 해주세요.”

나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

“너무해! 단칼에 거절했어!”

“그게 아니다. 난 정식으로 기초부터 하는 게 아니라, 얼굴에 기존의 메이크업과 똑같은 걸 그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예전에 정식으로 했던 영상이 있어야 해.”

“아….”

“있어?”

“저 대학교 1학년이거든요? 고등학생 때 샵에 가서 그런 걸 받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넌 해줄 방법이 없다.”

“아니, 그게, 전혀 없는 건 아니라…. 아니에요. 없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