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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110화 (110/411)

110. 청평호수

이연지가 분식집에서 쫄면세트를 주문했다. 세트에는 떡볶이와 돈가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아빠가 이런 거 먹지 말라고 하거든요. 난 맛있는데.”

나강인은 라면과 만두, 김밥을 시켜서 먹었다.

이연지는 자기가 시킨 것을 먹다가 말고 배시시 웃었다.

“아저씨. 만두 맛있어요?”

“먹어라.”

“감사합니다!”

나강인은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어치우는 이연지를 보며 말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너 진짜 잘 먹는다.”

“히히. 고딩이잖아요.”

“그래. 고등학생. 인생에서 제일 많이 먹을 때지.”

식사를 마친 후에 그들은 분식집을 나섰다.

이연지가 큰소리쳤다.

“잘 먹었어요. 다음에 병원에서 보면 제가 구내식당 쏠게요.”

“내가 설마 코 묻은 돈 빼앗아 먹겠냐?”

“그럼 병원 편의점에서 커피 쏠게요.”

“그러든가. 다음에 보자.”

나강인이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이연지는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어? 중석 오빠다.”

외과 의사 김중석이 지나가다가 이연지를 발견했다.

“어? 연지야. 여기서 뭐 해?”

“밥 먹었죠.”

김중석이 분식집을 돌아보았다.

“야. 넌 저런 걸 먹으면….”

이연지가 손을 흔들었다.

“에이. 괜찮아요. 친구들도 다들 저런 거 많이 먹어요.”

“그게…. 어? 너 소매가 왜 그래?”

“히히. 무거운 거 좀 잡다가 찢어졌어요.”

이중석이 당황한 얼굴로 이연지의 손을 확인했다.

“다쳤어?”

“당연히 아니죠.”

이중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쫄면세트 먹은 것도 괜찮죠?”

“어…. 그래.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그래도 다음부터는 먹지 마라.”

“히히.”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는구나?”

“히이. 근데 중석 오빠. 무슨 걱정 있어요? 왜 얼굴이 다 죽어가요?”

김중석이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걸어가는 나강인의 등이 보였지만, 누군지 알아보진 못했다.

“누굴 좀 찾고 있는데, 그동안 도통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가 단서가 좀 나왔어.”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단서가 너무 약해서 쉽지가 않네.”

“요즘 돈 주면 사람 찾아주는 데 있잖아요. 엄청 잘 찾는다던데 그런데 맡겨요.”

“그런 데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

그날 밤에 외과 의사 김중석과 외과 과장 이정호가 술집을 찾았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후에, 김중석이 물었다.

“과장님. 연지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케이타이거 증후군은 알려진 지 2년밖에 안 된 희귀질환이잖아. 임상 데이터가 너무 부족해서 예측이 어려워. 한 달 뒤일지, 두 달 뒤일지, 아니면 오늘 당장일지. 언제 터질지 몰라. 확실한 건.”

이정호가 독한 술을 단숨에 마신 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 일도 안 남았어.”

김중석이 우울한 표정의 이정호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 연지가 분식 먹은 건 말하지 말아야겠다. 알면 더 걱정하시겠네.’

***

나강인이 초대장을 받았다.

“파티?”

신은하가 설명했다.

“우리 영화 천만 돌파 파티는 드론이 폭발하고 감독님도 다쳐서 하다가 말았잖아.”

“그걸 다시 한다고?”

“그건 아닌데, 청평호수에서 THO 엔터가 파티를 열어. 거기서 그때 못 즐긴 걸 즐기란 거지.”

“호수 위에서?”

“그랬으면 더 좋겠지만 아니야. 호수 옆에 파티하기 좋은 곳이 있대.”

“그 파티는 아무나 가는 곳인가?”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위주로 초대하긴 했는데, 출연하지 않은 배우도 원하면 굳이 거절하진 않을걸? 아. 우리끼리 즐기는 파티라서 기자는 초대 안 할 거래.”

“가면 밥은 나오냐?”

나강인이 관심을 보였다. 신은하가 적극적으로 파티의 장점을 어필했다.

“당연하지! 호수를 배경으로 맛있는 음식과 술. 좋지? 응? 좋지?”

“괜찮네.”

AI 전지인도 말했다.

- 이런 파티는 꼬박꼬박 참석해서, 남이 만든 요리를 잔뜩 먹어줘야 합니다.

신은하가 활짝 웃었다.

“아싸아. 그럼 그날 차 한 대로 가자.”

“내 차로 가면 되겠네.”

***

이보라의 매니저가 그녀에게 말했다.

“THO 엔터에서 파티를 한다더라. 무슨 파티를 청평까지 가서 하나.”

“응? 청평? 서울도 아닌데 누가 거기까지 가요? 중요한 파티예요?”

“아니. 그냥 햇살 좋은 날 출연배우 위주로 하는 파티래.”

“어? 잠깐만요.”

이보라가 머리를 굴렸다.

‘그런 파티면 강인 오빠도 오겠네?’

그녀가 주먹을 살짝 들며 말했다.

“그래. 결정했어. 나도 그 파티에 가야겠어.”

“야. 초대를 받아야 가지.”

이보라가 머리를 한 번 더 굴렸다.

“손태민 감독님도 오실 거잖아요.”

“어…. 아마 그렇겠지?”

“나 손 감독님 다음 영화에 들어가고 싶은데.”

“손 감독님 영화는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니까 미리 만나서 인사도 하고 그래야죠.”

“그것도 그러네?”

“나 꼭 가고 싶어요. 초대장 좀 구해줘요. THO 엔터가 막 매정하게 구는 곳은 아니니까 구할 수 있잖아요.”

***

외과 의사 김중석이 이보라를 찾아갔다.

“보라야. 진짜 중요한 일이어서 그래. 손태민 감독님 좀 만나게 해줘.”

“난 그런 급이 안 된다니까? 그분은 내가 오란다고 오는 분이 아니야.”

“당연히 우리가 찾아가서 만나야지.”

“응? 우리라니?”

“우리 과장님이 만나려는 거거든.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다.”

목숨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보라가 손을 흔들었다.

“아. 자세히는 말하지 마! 난 말려들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야. 너 진짜!”

“대신에!”

“응?”

“사람 목숨이 걸려 있다고 하니까 특별히 정보 하나 알려줄게. 나중에 신세 갚아라.”

“일단 무슨 정보인지 들어보고.”

“이번 주 토요일에 청평호수에서 파티가 있어. THO 엔터가 주최하는 파티인데, 그날 햇살 좋은 날 관계자가 모여. 그러니까 거기 높은 확률로 손태민 감독님이 오실 거야.”

김중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보라야! 넌 천사…는 아니고 천재다!”

“오빠는 거기 가지 마.”

“응?”

“혹시라도 나랑 엮인 게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나만 곤란해져.”

“아. 그건 걱정하지 마. 과장님이 직접 가실 거야.”

“오빠네 과장님한테 내 이야기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확실히 말해.”

“물론이지. 그런데 보라야. 도와주는 김에….”

“응?”

김중석이 씩 웃으며 부탁했다.

“그 파티에 우리 과장님이 초대받게 해주면 안 될까?”

“중석 오빠.”

“응.”

이보라가 화를 벌컥 냈다.

“내 초대권도 못 구했는데 어떻게 남의 초대장을 구하냐고!”

“어? 어?”

“나도 회사에 이야기했는데 아직 내 초대권도 못 받았다고! 장소는 가르쳐줬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해!”

***

외과 과장 이정호는 흥분했다.

“네 말대로면 드론 폭발 사고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그 파티에도 참석한다는 소리잖아. 그럼 그 의사도 올까?”

“올 가능성이 있죠.”

“그럼 어떻게 그 파티에 끼어드냐가 문제인데….”

“초대장은 못 구했는데요. 일단 파티 장소는 알아냈으니까 그 근처에서 기회를 보는 게 어떨까요?”

“기회?”

김중석이 지도를 검색해 보여주었다.

“그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펜션이 하나 있더라고요. 과장님이 거길 예약한 후에, 산책 나왔다가 우연히 들렀다는 구실을 대는 거죠.”

“믿을까?”

“안 믿으면 참석자 사진만 찍는 거죠. 그리고 그 사진 속 사람 중에서 의사를 찾는 겁니다.”

이정호가 활짝 웃었다.

“이야아. 중석아. 역시 넌 내 수제자답다.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

“평소에는 잔머리만 잘 굴린다고 뭐라 하시더니.”

“어…. 일단 이 펜션을 예약하자. 제일 좋은 방으로. 가족 여행인 척해야 더 자연스럽겠지?”

“척만 할 게 아니라, 이 기회에 가족 여행도 좀 가시죠? 최근 몇 달은 치료법 찾느라 바쁘셨잖아요.”

***

이정호가 빌린 펜션은 파티 장소에서 500m쯤 떨어져 있었다.

그의 아내 손미연이 칭찬했다.

“여기 경치 너무 좋다. 펜션도 예쁘고.”

이정호가 자랑했다.

“내가 여기 알아보느라 힘들었어.”

“김중석 선생이 알아봤다던데?”

“어? 중석이가 그래? 이 입 싼 놈.”

이연지는 벌써 신났다.

“아빠! 여기 강아지도 있어!”

“가까이 가지 마라. 낯선 사람은 물지도 모른다.”

“펜션에 있는 강아지가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물면, 여긴 벌써 망하지 않았을까?”

“그런가? 그래도 조심해.”

“네에!”

“난 잠깐 산책 좀 다녀올 테니까, 두 사람은 쉬고 있어.”

이연지가 얼른 달라붙었다.

“나도!”

“넌 또 왜?”

“그냥. 히히.”

이정호는 이제부터 영화사에서 개최한 파티를 염탐할 생각이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데려가도 상관은 없겠지.’

두 사람은 500m쯤 걸었다. 어느새 친해진 강아지가 이연지를 따라다녔다.

이정호가 목적지인 파티 장소 바로 앞에 도착했다.

이연지가 말했다.

“앗. 저 파티에 연예인 엄청 많다!”

“그렇지?”

‘이제 저기서 의사를 찾아야 해. 어디 적당한 장소를 잡고 연지를 찍는 척하면서 사람들 사진을 찍….’

파티에 참석한 신은하가 이연지를 알아보았다.

“어머! 연지야!”

이연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앗! 안녕하세요!”

나강인도 신은하와 같이 있었다.

“우리 자주 본다?”

“히히.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쩐 일이야?”

“가족 여행이요. 아빠가 데려왔어요. 우리 아빠가 이렇게 가정적이에요.”

이정호는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데려온 게 아니다.

신은하가 이정호를 보며 반가워했다.

“어머. 그럼 보라가 입원했던 병원의 과장님?”

“맞아요. 우리 아빠예요.”

이정호는 나강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은하의 얼굴은 안다.

“연지야. 너 신은하 씨하고 아는 사이였냐?”

“응. 보라 언니 문병 왔을 때 인사했어.”

이정호는 조금 아쉬웠다.

‘신은하와 잘 알면 그 핑계로 파티 안쪽을 정찰하려고 했더니, 그냥 인사만 한 사이구나.’

이연지는 배우가 꿈이다.

꼭 배우를 해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쪽에 관심이 많다. 다만, 집안의 반대 때문에 적극적으로 준비한 적은 없다.

그녀는 동경하는 그 세계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언니. 저도 파티 좀 구경하면 안 돼요? 연예인들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요.”

이정호가 속으로 응원했다.

‘잘한다. 우리 딸!’

신은하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잠깐만. 이 파티를 주최한 사장님한테 좀 물어볼게.”

잠시 후에 이태호가 밖으로 나왔다.

“강인 씨가 아는 학생이라고? 그럼 나야 당연히 찬성이지. 그런데 우리가 술을 좀 마시고 있는데….”

이연지가 이정호를 가리켰다.

“괜찮아요. 아빠하고 같이 왔어요.”

“아버님이….”

신은하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 동네 종합병원 외과 과장님이세요. 되게 유명한 의사시래요.”

이태호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 그러십니까? 하하. 안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계셨으면 했는데, 대환영입니다. 하하하.”

이정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딸 덕분에 침투에 성공하는구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었다.

“의사가 필요하시다니요? 혹시 누가 다쳤습니까?”

이태호가 손을 흔들었다.

“아뇨. 제가 올해에 험한 일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외과 의사시라는 말을 듣자마자 참 반갑더라고요. 설마 오늘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요. 하하하.”

이정호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이정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배우만 있는 게 아니라 매니저들도 있었다. 참석자들끼리도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이정호와 이연지가 추가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정호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만 살폈다.

‘배우는 빼고, 모르는 사람만 찾자. 그중에서 의사를 찾….’

이정호가 멈칫했다.

‘어? 방금 의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럼 여기는 의사가 없다는 소리잖아.’

그는 크게 실망했다.

‘그 의사는 여기 없겠구나.’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다.

‘그럼 손태민 감독에게 접근해야겠어. 뭔가 아는 것 같았으니까.’

이연지가 파티 음식을 부지런히 먹으며 나강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무술감독이라서 여기 온 거예요?”

“아니. 그냥 호수 보면서 맛있는 거 먹으러 왔다.”

“아저씨가 뭘 좀 아시네. 역시 먹는 게 남는 거죠.”

이연지는 연예인이 많은 파티에 초대된 데다가 맛있는 음식까지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녀를 따라온 펜션 강아지가 갑자기 바깥쪽으로 뛰어갔다.

“어? 야. 어디 가? 같이 가!”

강아지는 빨랐지만 이연지도 원래 잘 뛴다. 둘은 호수 주변을 신나게 달렸다.

잠시 후에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연지는 어디 갔지?”

- 이연지가 사라졌습니다. 강아지도 사라졌습니다. 오세나가 나타났습니다. 신은하의 전투력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보라의 차가 접근 중입니다.

AI 전지인이 결론을 내렸다.

- 개판이 예상됩니다. 대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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