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11화 (111/411)

111. 철벽

영화배우 오세나는 남들보다 늦게 청평에 도착했다. 그녀가 파티 장소인 펜션 정원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어머. 벌써 시작했네요?”

손태민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하. 세나 씨는 오늘도 늦었네?”

“감독님은 오늘도 술 많이 드셨나 보다. 오늘은 하늘을 날아가는 게 뭐든 격추하면 안 돼요?”

“에이. 그 이야기는 하지 마. 그 생각만 하면 다 나은 팔이 또 쑤셔.”

“네에.”

오세나는 손태민 감독에게만 인사하고 곧바로 나강인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 강인 씨도 와 있었네?”

신은하가 바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얼른 견제를 들어갔다.

“세나 언니. 나도 있거든요?”

“넌 없어도 되는데.”

“있을 건데요?”

오세나가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그래도 오늘은 너 하나니까 내가….”

이보라가 뒤쪽에서 쓱 나타났다.

“휴우. 겨우 안 늦게 왔다. 강인 오빠. 안녕하세요.”

신은하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뭐야? 넌 여길 어떻게 왔어?”

“이태호 사장님이 와도 된다고 하셔서 왔는데?”

이보라는 원래는 회사를 통해 이 파티에 초대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우리 회사 되게 무능력해. 이태호 사장님께 직접 전화 드리니까 바로 오라고 하시는데 말이야.”

“와. 사장님 눈치 없으시네. 보라는 우리 영화에 나온 배우가 아닌데도 막 불러.”

이보라가 다른 배우를 가리켰다.

“딱 보니까 그냥 온 사람이 나 말고도 있는데 뭐!”

나강인이 슬그머니 세 사람 사이를 빠져나왔다.

“난 빠져야겠다.”

-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셋이 싸우라고 두십시오.

이연지는 파티에서 빠져나가 강아지를 쫓아갔다. 강아지가 워낙 빨라서 한참을 달려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헉헉. 야. 너 쪼끄만 게 뭐가 이렇게 빨라?”

“헥헥.”

“힘드냐? 나도 힘들다.”

그녀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일어났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으슥한 곳까지 온 거야? 여기에 뭐가 있다고….”

그녀가 아래쪽을 보고 당황했다.

“어?”

지대가 낮아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장소에 이십여 명의 사람과 차 몇 대가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접이식 탁자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탁자 위에는 007 서류가방이 활짝 열린 채로 올려져 있었다.

그 서류가방에는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봉지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연지는 그걸 보자마자 깨달았다.

‘마약 거래 현장?’

밀가루를 비닐봉지에 담아 저렇게 다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가려고 했다.

‘들키기 전에 튀자.’

문제가 생겼다. 강아지가 그 마약을 보고 짖었다.

“멍멍!”

아래쪽에 있던 이십여 명의 고개가 그녀가 있는 쪽으로 휙 돌아갔다.

이연지가 강아지를 구박했다.

“야. 넌 꿈이 경찰견이었니? 너 때문에 우리 엿 됐어.”

이연지와 마약조직원들의 눈이 마주쳤다. 이연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면 안 믿겠죠?”

조대상은 이 마약조직의 행동대장이다. 조직 내 서열은 2위로 현재 이곳에 있는 조직원 중에서 제일 높다.

행동대장 조대상이 이연지를 가리키며 외쳤다.

“뭐야! 저거 잡아!”

조직원 몇 명이 이연지를 향해 뛰었다. 그녀가 있는 곳이 지대가 더 높긴 하지만, 거리가 멀지는 않았다.

이연지는 강아지를 얼른 바닥에 내려놓은 후에, 파티가 한창인 곳을 향해 후다닥 도망치며 외쳤다.

“야! 튀어!”

강아지가 혼자 신나서 이연지를 따라 달렸다.

“멍멍!”

마약 거래 조직원들이 이연지를 쫓아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거기 잠깐 서봐!”

“그냥 뭐 좀 물어보려는, 헉헉.”

조직원들은 아래에서 위로 뛰어야 했기 때문에 달리는 속도가 느렸다.

행동대장 조대상이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저거 놓치면 다 뒈질 줄 알아!”

조직원들은 숨을 헐떡이며 뛰었다.

이연지는 원래 잘 달린다. 지금도 이연지가 마약조직원들보다 빨랐다.

아래쪽에 있던 조대상이 다른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러다 놓치겠다! 차 타고 쫓아가!”

조직원들이 근처에 세워 놓은 차에 올라탔다.

그의 측근인 김동식이 물었다.

“형님. 물건이랑 돈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다 놔두고 갈 순 없잖아! 네가 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따라와!”

“예!”

이연지는 정신없이 달려서 파티가 한창인 펜션에 도착했다.

“하악. 하악. 크, 큰일 났어요.”

외과 과장 이정호는 손태민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다가 딸의 목소리를 듣고 뛰어왔다.

“연지야. 너 이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안 된다니까 왜 또 이래?

“아니, 아빠. 하악. 그게 아니라….”

“일단 앉아서 쉬어라.”

“저기 마약, 하악. 마약을….”

“마악?”

“아니, 하악, 마약….”

“무슨 약 이야기를….”

마약조직원 몇 명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헉헉. 쪼끄만 년이 더럽게 빠르네.”

“여기로 도망친…. 어? 뭐가 저렇게 많아?”

차를 타고 출발한 놈들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차에서 조직원들이 우르르 내렸다.

“뭐야? 어디서 수련회 왔어?”

이연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악. 저쪽기서 마약을 거래하는 걸, 내가 봤어요!”

“어? 뭐?”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란 건 이정호만이 아니다.

배우들도 당황했다.

“어? 마약?”

“그럼 저놈들이 마약상이야?”

“와…. 이러면 위험한 거 아냐….”

마약조직원들이 이연지를 노리고 다가왔다. 양쪽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배우들을 알아보는 놈들이 생겼다.

“어? 저거 오세나 아냐?”

“김유찬도 있어.”

“뭐야? 영화배우들이 왜 저기 있어?”

손태민 감독은 사진이 취미다. 그의 사진 실력은 어지간한 사진작가 수준이다. 그는 평소에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다가 좋은 피사체가 보이면 찍곤 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호수의 풍경을 카메라로 찍다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행동대장 조대상이 얼굴을 확 구겼다.

“저 새끼가 지금 카메라로 우리 찍은 거야?”

그의 측근 김동식이 대답했다.

“그런 것 같은데요?”

“동식아. 영화배우들이 단체로 우리를 신고하면, 경찰이 그냥 넘어갈까?”

“아뇨. 뉴스에도 날 겁니다.”

“우린 아직 약을 판 게 아니잖아.”

그들은 약을 만드는 조직이 아니라 파는 조직이다. 중국에서 밀수입된 약을 조금 전에 손에 넣었지만, 아직 시장에 풀지는 않았다.

“오늘 들어온 약만 안 팔았지 평소에 많이 팔았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배우들이 우리 얼굴이 나온 사진을 경찰에 넘기면, 우린 다 끝장이네?”

김동식이 파티가 열린 펜션의 주변을 확인했다.

“형님. 저 펜션은 출입구가 여기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만 막으면 호수에 뛰어들기 전에는 아무도 못 도망칩니다.”

“그거 잘됐다.”

지금 이곳에 있는 마약조직원의 숫자는 스물이다.

행동대장 조대상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뭐하나! 전부 다 잡아!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우린 다 끝장이다! 반항하면 쑤셔!”

“예!”

김동식이 물었다.

“잡은 후에는 어떻게 할까요?”

조대상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전부 묻어버려야지. 상황이 엿 같아서 다른 방법이 없잖아.”

“배우들이 단체로 실종되면 경찰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씨발. 그런 건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 잡아! 넌 왜 여기 있어? 가서 너도 같이 저것들 잡아! 호수에 뛰어들면 너도 들어가서 잡아 오라고! 하나도 놓치지 마!”

***

이 파티를 주최한 사람은 THO 엔터 사장 이태호다.

그는 펜션의 유일한 출구를 틀어막고 천천히 다가오는 마약조직원들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배우 김유찬이 물었다.

“사장님이 왜 미안하세요?”

“내가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자꾸 이런 사고가 터집니다.”

“예?”

“강원도 촬영장도, 레스토랑 페넬로페도, 선상 파티 때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신은하가 이태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에요. 나 때문인 것 같아요. 방금 말씀하신 그 모든 곳에 저도 있었잖아요.”

“내가 원인이 맞아요. 내가 그래서 오늘 파티에는 민지를 안 데려왔어요. 그러길 잘했지.”

신은하가 큰소리쳤다.

“저도 혹시 몰라서 방어대책은 세우고 왔어요.”

“방어대책?”

신은하가 이태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드레곤 플레이트를 입고 왔거든요.”

“어? 그건 각국 정부의 주문제작만 받고 있어서 개인판매는 아직 안 할 텐데? 은하 씨. 혹시 정부에 연줄 있어요?”

신은하가 자랑했다.

“아뇨. 이거 강인 오빠 수제품이에요.”

“와. 강인 씨가 직접 새로 만드셨구나. 그건 파는 게 아니라서 아무나 못 구하는 건데.”

“전 아무나가 아니잖아요?”

세 사람이 그나마 여유가 있는 건 믿는 게 있어서다.

지금 이곳에는 나강인이 있다.

이태호와 신은하는 나강인이 싸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김유찬도 선상파티 때 나강인이 해적단을 어떻게 때려잡는지 직접 봤다.

김유찬이 생각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차라리 낫지.’

쳐들어온 마약조직원이 스무 명이나 되지만, 이곳에 모인 배우와 매니저도 스무 명이 넘었다.

행동대장 조대상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아! 놀러 왔어? 연장 꺼내!”

마약조직원들이 칼을 꺼냈다. 대부분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잭나이프였다.

숫자는 배우 쪽이 더 많지만, 상대는 칼을 가진 조폭이다.

오세나가 비명을 질렀다.

“칼! 칼을 꺼냈어!”

비슷한 숫자라 해도 한쪽이 칼로 무장하고 다른 쪽이 빈손이면 싸움은 일방적이 된다.

신은하와 이태호, 김유찬은 그래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들이 이전에 경험한 사건들은 총탄이 날아다녔다.

그런데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 세 사람과 같은 경험이 없다.

사람들은 겁을 덜컥 먹었다.

뒤쪽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조대상이 그걸 보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저 새끼 전화 못 걸게 막아! 쳐라!”

“우와아아!”

조폭들이 소리를 지르며 배우들을 행해 달려갔다.

전화를 걸려던 배우는 겁을 먹고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그나마 여유가 있던 세 사람도 칼을 들고 돌진하는 적을 보며 바짝 긴장했다.

외과 과장 이정호는 이연지의 앞을 막으며 후회했다.

‘내가 왜 연지를 이런 위험한 곳에 데려왔….’

생각해보니 이연지가 저놈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다.

‘어?’

마약조직원들이 배우들을 향해 돌진했다. 배우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갑자기 나강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는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점프해, 선두에서 달려오는 조폭의 가슴에 발차기를 콱 질렀다.

“케에엑!”

발차기가 마치 작살처럼 적의 몸에 꽂혔다. 갈비뼈 몇 대가 그대로 부러졌다. 적은 비명을 지르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뒤에서 달려오던 조직원은 갑자기 날아오는 놈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했다.

“으악!”

두 놈이 엉키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강인은 걷어찰 때의 반동을 이용해 옆으로 다시 점프했다. 그쪽으로 돌진하던 조폭은 아직도 앞만 보고 있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돌려차기를 날렸다. 발등이 깔끔한 반원을 그리며 적의 얼굴에 꽂혔다.

“켁!”

앞으로 돌진하던 그놈은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 한 방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서 바닥에서 꿈틀대지조차 못했다.

나강인이 그 자리에 가볍게 착지했다.

제일 앞에서 돌진하던 세 명이 순식간에 당했다.

뒤따라 뛰어오던 조직원들은 당황해서 걸음을 멈췄다.

“어? 어?”

“방금 뭐가….”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전방에 남은 적 17.후방에 아군 26.아군이 비무장 상태입니다.

나강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우들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맨손으로 싸울 거 아니면 뭐라도 들어요.”

그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신은하였다.

그녀는 근처에 세워져 있던 기다란 막대기를 두 손으로 잡고 풍차처럼 휙휙 돌린 후에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건 그녀가 예전에 다른 영화를 찍을 때 연습했던 동작이다.

그녀가 왼손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여긴 나한테 맡겨!”

AI 전지인이 말했다.

- 신은하가 미친 것 같습니다.

“나를 믿고 오버하는 거야.”

신은하가 오버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다.

THO 엔터 사장 이태호는 의자를 번쩍 들었다.

이보라는 신은하의 옆에서 접시를 한 장 들었다. 신은하가 그 모습을 힐끗 보고 물었다.

“그 접시로 뭐하게?”

“표창처럼 던지게!”

“야! 차라리 이 사장님처럼 의자를 들어!”

행동대장 조대상이 나강인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가 경호원인가 본데, 저거 한 놈만 잡으면 나머지는 별거 아냐! 저 새끼부터 쳐라!”

조직원들이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그들은 조금 전처럼 돌진하지는 못했다. 먼저 뛰는 놈이 먼저 당할 것 같아서였다.

대신에 그들은 집단으로 뭉쳐서 나강인을 향해 전진했다.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 주력부대와 아군이 직접 충돌하면 아군의 심각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알아.”

이 펜션은 경치가 좋은 대신에 출입할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다. 그래서 행동대장 조대상은 이 길만 막으면 배우들이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길 한복판에 나강인이 서 있다. 나강인을 뚫지 못하면 마약조직원들은 배우들을 공격할 수 없다.

행동대장 조대상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쌍칼!”

이 마약조직 최고의 칼잡이 쌍칼이 대열에서 튀어나와 나강인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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