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사진
AI 전지인이 바닥에 떨어진 모든 잭나이프에 빛나는 테두리를 둘러 표시했다.
나강인이 뒤로 물러났다.
조대상이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무리 화살을 잡는 놈도 총알은 못 피해!”
나강인이 바닥에 떨어진 잭나이프를 발로 걷어찼다.
잭나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조대상도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발목의 움직임을 보조했지만, 칼날은 적을 맞히지 못하고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빗나갔지만 효과는 있었다. 조대상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는 바람에 발사 순간에 총구가 위로 들렸다. 총알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총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몸을 숙였다.
“총이다!”
“한국에 총이 왜 있어!”
신은하는 방탄조끼를 믿고 당당히 서 있었다.
이보라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급히 손을 흔들었다.
“은하야! 빨리 앉아!”
“난 저런 놈 하나도 겁 안나!”
이태호가 옆에서 충고했다.
“은하 씨. 드래곤 플레이트가 머리나 팔다리는 보호하지 못할 텐데요?”
“아!”
신은하가 얼른 바짝 엎드렸다.
나강인은 적을 견제하자마자 바닥에 떨어진 잭나이프를 하나 주웠다. 그런 후에 적이 다시 총을 쏠 때를 기다렸다.
조대상은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 그냥 칼을 던지면 빗나가기 쉽다. 제대로 잡으려면 궁수를 잡을 때처럼 적이 일어나 총을 겨눌 때를 노려야 한다.
그런데 조대상도 나강인이 그걸 노린다는 걸 눈치챘다. 이미 궁수가 그렇게 당했다. 조금 전에 날아온 칼날도 조금만 옆으로 날아왔으면 정통으로 맞을 뻔했다.
“씨발. 총을 쏘려다가 내가 먼저 죽게 생겼네.”
이제 그의 부하는 넷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이 도망쳐 조대상의 차 뒤에 숨었다. 그중 한 놈은 활을 쏘다가 어깨에 잭나이프를 맞은 궁수였다.
조대상의 측근 김동식이 물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죠? 저 새끼가 총도 안 무서워하는데요?”
“저 새끼가 칼을 너무 잘 던져서 이런 단발 소총으로는 잡기 어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러시아 놈한테 기관단총도 구해달라고 할걸.”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조대상은 전투를 포기했다.
“동식아. 지금은 더 싸워봤자 답이 없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운전해.”
“예? 예!”
김동식이 쭈그리고 앉은 채로 운전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다른 놈들도 뒷문을 열고 자세를 낮추며 뒷좌석에 들어가 엎어졌다.
나강인은 잭나이프 하나만 손에 쥔 채로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뒤쪽에 일행이 없다면 더 접근해 근접전투를 하겠지만, 지금은 보호해야 할 아군이 너무 많았다.
조대상이 뒷좌석에서 자동차 시트를 주먹으로 쳤다.
“밟아!”
김동식이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그들이 탄 차가 현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강인은 적의 차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후에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신은하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강인 오빠. 난 믿고 있었….”
이보라가 갑자기 두 팔을 내밀며 나강인을 향해 달려갔다.
“오빠! 무서웠어요!”
신은하가 자기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저년이!”
나강인이 옆으로 슬쩍 피하며 말했다.
“내 몸에 피가 많이 묻어서.”
“전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서.”
신은하가 씩 웃으며 걸어왔다.
“보라야. 넌 아직도 강인 오빠를 너무 모른다. 난 잘 아는데.”
고등학생 이연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강인을 향해 검지를 세우며 외쳤다.
“아저씨 진짜 대박!”
“미성년자는 이런 험한 거 보면 안 된다. 넌 안쪽으로 들어가.”
“전 괜찮은데요? 저놈들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도 저란 말이에요.”
“어. 그래. 너 말 잘했다. 네가 저놈들을 여기로 끌고 왔지?”
“앗!”
그녀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뒤에 있을께요오.”
***
잠시 후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경찰이 난장판이 된 현장을 보고 당황했다.
“어? 이게 뭐야? 전쟁이라도 터졌어?”
“어? 김 경사님! 저기 신은하하고 이보라가 있습니다!”
“뭐? 어디? 어? 김유찬도 있다. 어? 저 사람은 손태민 감독 아냐?”
“어우. 이거 그럼 다 영화촬영인가 봅니다. 야아. 진짜처럼 실감 나게 찍었네요.”
“이상한 신고를 받고 괜히 출동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하하.”
신은하가 외쳤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잖아요!”
“예?”
“그리고 이거 영화촬영 아니거든요? 실제 상황이거든요?”
출동한 경찰은 당황했다.
“예? 아니, 그럼 저 사람들은 왜…. 아니, 누가…. 어? 설마 이거 집단 난투 사건….”
고등학생 이연지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놈들이 마약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다 봤어요!”
“뭐?”
“저 차를 뒤져보세요.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파티 주최자인 이태호도 나섰다.
“이 학생 말이 맞습니다. 저놈들은 우리를 다 죽여서 목격자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경찰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 영화 촬영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차 한 대가 도망쳤으니까 그놈도 잡아야 합니다.”
경찰이 긴장한 얼굴로 동료에게 지시했다.
“지원 요청해. 지금 손 비는 사람 다 오라고 해.”
“예! 어? 그럼 혹시 오다가 들은 그 총소리 비슷한 게….”
이태호가 설명했다.
“총소리 맞습니다. 그놈들이 소총을 쏘고 도망쳤습니다.”
경찰이 다시 동료에게 지시했다.
“전부 총 챙겨서 오라고 해!”
“예!”
“그리고 구급차도 불러.”
신은하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우리는 구급차가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요.”
“아니. 신은하 씨 말고, 여기 쓰러진, 열댓 명은 되네요. 이 사람들은 장난 아니게 다친 것 같은데요?”
“어? 네. 어. 그렇죠.”
“도대체 누가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겁니까?”
“그게….”
신은하가 눈동자를 잠깐 굴리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전부 다요!”
“네?”
“우리가 전부 다 같이 싸웠거든요?”
이보라도 신은하의 생각을 눈치채고 얼른 외쳤다.
“우리를 다 체포하고 싶으면 하시든가!”
다른 배우들도 앞으로 나왔다.
“우리도 잡아가시죠!”
경찰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뇨. 그냥 물어만 본 겁니다. 상황을 알고는 있어야 해서요.”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무장경찰의 증원이 예상됩니다. 아군의 전투 의지가 높습니다. 적 주력부대는 궤멸 상태입니다.
“이미 도망친 놈들이 돌아오진 않겠지.”
- 추가 전투가 발생할 확률은 낮으며, 그 경우에도 아군의 확실한 승리가 예상됩니다.
“여기는 경찰에게 맡기고 도망친 놈들이나 잡으러 가자.”
- 후퇴한 적 추적에 성공하면, 적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맞아. 찾아서 소탕해야지. 그래야 뒤탈이 없다.”
- 서치 앤 디스트로이 작전을 제안합니다.
눈앞에 다양한 작전계획 목록이 주르륵 떴다.
나강인이 제목만 훑어보고 손을 들어 옆으로 휙 밀어버렸다.
“지금 상황과 안 맞아.”
나강인은 이곳에 그의 차를 운전해서 왔다. 그 차는 원래 중고차 시장에서 전기계통 문제로 폐차될 예정이었다. 그는 그 차를 사서 수리하고 방탄판 추가 등의 개조도 했다.
나강인이 그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자동차 전용도로에 올라가서 멀리 도망쳤을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주변을 좀 뒤져봐야겠어.”
신은하가 얼른 따라붙었다.
“같이 가자.”
“어디 가는지 알고?”
“그놈들 잡으러 가는 거잖아.”
“어떻게 알았냐?”
신은하가 생글생글 웃었다.
“내가 강인 오빠를 한두 번 겪어봐? 뻔하지.”
“알면서 왜 따라와? 위험하니까 넌 여기 있어라.”
신은하가 옷에 구멍 난 부분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난 이게 있잖아.”
구멍 속으로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가 살짝 보였다.
“이거 화살도 막고 총알도 막고 칼도 막고 다 막는 거잖아. 이게 있는데 설마 위험하겠어?”
“그거 충격받을 때마다 방어력이 줄어든다.”
“어?”
신은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어력이… 얼마나 남았는데?
“맞는 부위에 따라 다르고, 피격 순간에 네가 어디에 힘을 주고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
“그냥 평균치로 말해봐. 얼마나 남았어?”
“권총 기준으로 몇 발 더 맞으면 방어력이 끝나.”
신은하는 안심하며 나강인의 차에 탔다.
“에이. 아직 방어력 넉넉하네! 오빠. 달려!”
“마음대로 해라.”
AI 전지인이 말했다.
- 신은하는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몰라서 주변을 수색하려는 거니까 전투가 재개될 확률은 낮아. 싸우게 되면 뒤에서 구경이나 하라고 해야지.”
AI 전지인만 들으라고 작게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을 차에 탄 채로 바람에 옆자리의 신은하도 대충은 들었다.
신은하가 말했다.
“역시 따라가도 싸울 일은 없지?”
“응?”
신은하가 경험담을 말했다.
“내가 그동안 총싸움도 많이 겪어보고 그때마다 경찰 아저씨들도 많이 만나봤잖아. 여기 남아 있으면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바빠. 얼른 튀자.”
“너 귀찮은 일에서 도망치는 거였냐?”
“드라이브라고 해줘.”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
연예인들은 SNS를 많이 한다. 이 파티에는 배우가 많이 참석했다.
김유찬은 놀러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혼자 왔다. 그런데 매니저와 같이 온 배우들도 있다.
그 매니저 중에는 배우들이 싸우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학생 이연지도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김유찬이 이연지가 찍은 사진을 보며 말했다.
“와. 난 정신없이 싸웠는데 넌 이런 사진을 찍을 여유가 다 있었어?”
“강인 아저씨가 한 놈씩 던져주면 배우들이 우르르 달려갔잖아요. 저는 거기 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진이나 찍었죠.”
“그런데 너 미성년자잖아. 이런 사진 찍어도 돼?”
“어…. 안 들키면 되지 않을까요?”
“잘 찍은 건 없구나.”
“평소에 셀카만 찍어서 그러나?”
김유찬이 매니저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찍은 사진도 확인했다.
“제가 나온 사진은 없습니까?”
“여기 이거는 어떠세요?”
“이게 최선이에요? 더 잘 나온 게 필요한데….”
“없죠. 그 상황에서 차분히 사진을 찍을 틈이 어디 있었겠어요?”
“매니저님의 배우 사진은 잘 나왔는데요?”
“그거야 뭐, 하, 하하.”
“내건 좋은 사진이 없구나. 이 중에서 골라야 하나.”
손태민 감독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다. 사진이 본업이 아니라 아마추어라고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실제 사진 실력은 프로급이다.
손태민이 그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건 어때?”
그 사진 속의 김유찬은 쓰러진 마약조직원을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손태민은 그 사진을 찍을 때 김유찬의 기다란 다리가 잘 드러나는 구도를 잡고, 발로 정확히 타격하는 시점도 놓치지 않았다.
김유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와아! 영화 포스터라도 촬영한 것처럼 나왔네요? 역시 손 감독님!”
“내가 좀 찍잖아. 흐흐.”
“이 사진 저 주세요.”
“준다고는 안 했는데?”
“에이. 제가 감독님 존경하는 거 아시죠?”
“내가 새로 준비하는 영화에 나올 거지?”
김유찬이 큰소리쳤다.
“어유. 부르시면 당연히 가야죠. 강인 씨도 참여한다는데.”
손태민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강인 씨가 내 차기작에 나온대? 확실히 들었어?”
김유찬은 살짝 당황했다.
“네?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거 아녜요? 강인 씨가 나온다면서요?”
“나왔으면 좋겠다고 한 거지. 난 아직 설득 중이야.”
“아…. 감독님. 꼭 성공하십쇼!”
김유찬이 주먹을 위로 슬쩍 들면서 그렇게 말한 후에,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일단 이 사진부터 주고 이야기하시죠.”
“복사해줄게. 그런데 어디에 쓰게?”
김유찬이 씩 웃었다.
“저의 이 멋진 모습을 제 팬들에게 보여줘야죠. 흐흐흐.”
김유찬이 그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 사진은 순식간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퍼졌다.
댓글도 줄줄이 붙었다.
- 이거 뭐죠? 김유찬 새 영화 나오나?
- 햇살 좋은 날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새 영화가 나와요?
- 동시에 찍고 있었겠죠.
- 제가 김유찬 팬인데요. 아직 차기작 고르는 중이라던데요?
- 그럼 이건 뭐죠? CF인가?
- 축구 CF 아닐까요? 사람을 공처럼 차잖아요.
- 격투 게임 같은데요?
- 옷 광고인 듯. 김유찬 슈트빨이 장난 아니네요.
- 그런데 무슨 사진이 이렇게 진짜 싸우는 것처럼 실감 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