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자랑
배우 김유찬이 제일 먼저 SNS에 청평호수 전투 사진을 올려 화끈한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올린 사진이 실제 상황을 찍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광고나 홍보용 콘셉트 사진이라고 착각했다.
다른 배우들도 김유찬이 하는 걸 보고 경쟁적으로 사진을 올렸다.
매니저들은 자기가 담당하는 배우가 싸울 때 사진을 열심히 찍어뒀다. 그렇게 찍은 사진 중에는 너무 잔인하지도 않으면서 보기에도 좋은 것이 제법 있었다.
매니저 없이 온 배우들도 사진은 있었다. 다른 매니저가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가, 상관없는 배우의 모습까지 찍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진은 조금 부족한 부분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 배우들은 B급 사진인 걸 아쉬워하면서도 인터넷에 한 장씩 올렸다.
그들이 올린 사진은 대부분 쓰러진 마약조직원을 배우가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이보라는 매니저 없이 이곳에 왔다. 그녀는 혼자 경기도까지 운전하는 건 좀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납치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동네 아는 동생인 신영석에게 운전을 시켰다. 신영석은 누나인 신은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보라만 내려주고 도망쳤다.
이보라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구 저 찍은 분?”
손태민 감독이 쓱 나타났다.
“보라 씨. 나 불렀어?”
“어머! 감독님이 제 사진도 찍으셨어요?”
“그럼. 볼래?”
이보라가 사진을 확인했다. 그녀가 의자로 마약조직원을 내리찍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의자를 내리찍는 모습이 굉장히 멋지게 나왔다.
“와아!”
“흐흐. 내가 좀 찍지?”
“감독님! 저 이 사진 주시면 안 돼요?”
“주려고 가져왔잖아. 복사해줄게.”
“꺄아! 고마워요! 감독님 차기작에는 제가 꼭 출연할게요!”
“어…. 그러려면 오디션부터 봐야겠지?”
“쳇. 안 넘어오시네.”
“은하 씨도 보라 씨처럼 그러거든. 둘이 친구라서 그런가? 수법도 비슷하네?”
“아뇨! 은하는요! 으…. 사진 고맙습니다!”
이보라가 그 사진을 받아 SNS에 올렸다. 태그도 붙였다.
#약팔지말란말이야 #정의의의자를받아라 #철벽
그 사진도 반응이 좋았다.
- 이보라도 이렇게 보니까 힘이 넘치네.
- 와. 진짜로 사람을 의자로 찍는 것 같다.
- 언니 지금 액션영화 찍어요?
배우들은 대부분 마약조직원에게 발길질이라도 한 번은 했다. 그래서 다들 그런 사진이 한 장은 있었다.
그런데 싸우는 사진이 한 장도 없는 배우가 딱 한 명 있었다.
오세나는 전투 초반에는 뒤에 있다가, 신은하가 화살을 맞은 후에는 쓰러지는 바람에 그럴듯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다른 배우들은 다 마약조직원과 싸우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게 문제였다.
오세나가 불평했다.
“나만 안 올리면 이상하잖아!”
그녀는 매니저와 같이 왔는데도 싸우는 사진이 없었다.
“안 되겠어. 나도 사진 찍어줘.”
오세나의 매니저가 물었다.
“싸움은 이미 다 끝났는데?”
“저기 쓰러진 놈들 많잖아!”
“지금 저놈들을 패면 경찰이 가만 안 있을걸?”
이미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조사하고 마약조직원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중이다.
“그럼 그냥 저 배경으로라도 찍어!”
“어. 그래.”
오세나가 현장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매니저가 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태그도 붙였다.
#왔노라 #나도싸웠노라 #이겼노라
그런데 그 사진에는 기절한 조직원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경찰이 찍혔다. 그런 경찰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 어? 저 경찰 내가 아는 사람이데? 진짜 경찰인데?
- 어? 그럼 이거 설마 실제 상황이야?
- 게임이 아니었어?
- 영화 아니야?
- CF인 줄 알았는데!
배우들은 처음에는 잘 나온 사진을 한 장씩 올려 반응을 보았다. 그런데 오세나가 올린 사진 때문에 사람들이 실제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다.
배우들도 그들이 보유한 현장 사진을 본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린 사진에는 수갑을 채우는 것만 나온 게 아니다. 어떤 배우는 경찰이 와서 증거품을 수집하는 걸 멀리서 찍어서 올렸다. 바닥에 떨어진 잭나이프를 찍어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설명했다.
[저놈들은 마약조직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오늘 야유회를 하는데….]
[지난번 천만 돌파 기념 파티가 드론 폭발 사고로 중단되어서, 그 대신 열린 야유회였는데, 그런데 글쎄!]
[어째서 우리 영화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가! 그래도 천만을 돌파했으니까 난 만족!]
배우 김유찬은 고등학생 이연지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가면서 인터넷에 올릴 글을 작성했다.
“지나가던 여고생이 마약 거래 현장을 목격….”
이연지가 요구사항을 말했다.
“여고생 앞에 ‘착하고 예쁘고 명랑하고 밝은’을 넣어주세요.”
“어?”
“마약 거래 목격 상황을 이야기해준 값이에요. 저도 남는 게 있어야죠.”
김유찬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써야 분위기도 밝아지고 좋겠지.”
김유찬이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에 조미료까지 좀 쳐서 글을 작성한 후에,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인터넷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와! 마약조직하고 배우들이 싸웠는데, 배우들이 이겼어!
- 햇살 좋은 날을 영화관에서 봤는데 액션이 장난 아니더라. 근데 실전에서도 잘 싸울 줄은 몰랐는데.
- 잠깐만. 그런데 왜 다른 배우들은 싸우는 사진을 올렸는데, 오세나만 싸운 뒤의 사진을 올렸지?
오세나가 얼른 SNS에 지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쉬는 사진을 글과 함께 올렸다.
- 너무 열심히 싸우다 기절하는 바람에, 저만 사진이 없어요. 속상해.
그 글에 댓글이 붙었다.
- 신은하는 왜 SNS에 사진을 안 올리죠? 다른 사진을 보면 신은하가 싸우는 모습도 있던데?
오세나가 짜증을 냈다.
“궁금하면 걔한테 물어보지 왜 나한테 와서 이래?”
손태민 감독이 신은하의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은하 씨는 어디 간 거야? 일단 내가 은하 씨를 찍은 사진이라도 올려야겠다.”
손태민이 공개한 사진에는 신은하가 방탄조끼에 꽂힌 화살을 뽑아 위로 높이 드는 순간이 찍혀 있었다. 사진이 워낙 절묘하게 찍혀서, 배에서 화살을 뽑았다는 느낌이 확실히 전해졌다.
- 어? 뭐야? 설마 신은하는 화살에 맞았기 때문에 없는 거야?
- 그러기엔 너무 힘이 넘쳐 보이는데?
- 사람이 화살에 맞으면 저렇게 서 있지도 못해요. 화살은 의자에라도 꽂힌 걸 뽑았겠죠.
- 아닌데. 손의 각도를 보면 화살을 배에서 뽑아서 위로 드는 도중에 찍힌 것 같은데.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배우들이 올린 사진을 모아놓은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 사진들을 보며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상황을 보면, 배우들이 야유회를 하는 곳을 마약조직원 스무 명이 쳐들어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배우들이 이겼죠?
- 저 마약조직은 칼도 있고 활도 있고 심지어 총도 한 자루 있었다는데, 배우들은 그런 거 하나도 없잖아요. 진짜 어떻게 이겼지?
배우들과 마약조직이 싸워서, 마약조직이 일망타진됐다. 당연히 언론사도 뒤집어졌다.
인터넷 뉴스에는 속보가 쏟아졌다. 공중파 방송도 속보를 내보냈다.
그쯤에서 손태민이 사진을 한 장 더 올렸다.
“다음 영화 포스터 사전 공개다.”
그 사진에는 나강인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왼손은 축 늘어진 조직원의 멱살을 잡고 있었고, 오른손은 날아오는 화살을 머리 높이에서 잡았다.
그 뒤에는 겁을 먹고 주춤거리는 놈들이 보였다. 기절해서 바닥에 널브러진 놈도 많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손태민이 영화 포스터를 올린 줄 알았다. 포스터로 착각할 만큼 사진이 너무 잘 나왔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가 아니라는 건 곧바로 밝혀졌다. 지금 사건 속보가 쏟아져나오는 데다가, 다른 배우들이 올린 사진과 배경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 와아. 포스 쩐다.
- 이 사람 도대체 누구지?
- 저 멀리 보이는 마약조직원들은 설마 저 사람 한 명에게 겁먹은 건가?
- 사진만 보면 딱 그런 느낌인데요?
- 바닥에 쓰러진 놈도 한둘이 아닌데요?
그 사진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 제가 그동안 올라온 사진과 인터넷 지도를 조합해 현장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배우들은 지금 뒤쪽에 있고요, 저 사람이 제일 앞에 서 있습니다.
- 혼자서 앞에서 싸운 건가요?
- 지도를 보면 저곳이 유일한 출입구입니다. 저기가 그러니까 장판파 같은 위치입니다.
- 아! 다른 배우 SNS에서 진정한 탱커를 봤다는 말이 저 사람 이야기인가?
- 이보라의 SNS에는 철벽이라는 태그가 있던데, 그게 저 사람이네.
-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화살은 뭐지?
- 왼쪽 놈을 먼저 때려잡다가, 바로 옆을 날아가는 화살을 오른손으로 잡은 걸까요?
- 에이. 설마.
- 화살촉이 뒤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손으로 잡은 게 아니면 저 방향을 설명할 수 없잖아요.
- 어? 화살을 맨손으로 잡은 거 사실이랍니다. 김유찬의 SNS에 저 사진 설명이 올라왔어요.
- 와. 실화냐?
- 아니,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어떻게 잡아요?
- 그걸 알면 제가 여기 안 있죠.
현장에 있던 배우들은 신이 나서 그 사진에 관한 글을 올렸다.
나강인의 얼굴 사진을 가진 배우는 없다. 이름이 알려지는 걸 싫어한다는 것도 다들 안다. 그래서 배우들은 굳이 나강인의 이름을 적지는 않았다.
대신에 친분은 열심히 자랑했다. 호칭은 무술감독으로 통일했다.
[역시 우리 영화 무술감독님. 클래스가 다르시죠.]
- 와. 이 사람이 햇살 좋은 날의 무술감독이구나.
- 그럼 푸른 하늘도 무술감독을 맡으신 분이잖아요.
- 어쩐지 포스가 다르다 했습니다.
김유찬이 나강인을 평가했다.
[실전 무술은 우리 무술감독님이 지구 최강입니다. 백퍼 확실합니다.]
- 에이. 진짜 그런 실력이면 무술감독 안 하고 격투기 대회를 나가겠죠.
- 살상용 무술과 경기용 무술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 하긴. 경기용 격투기는 급소를 공격하면 안 되죠.
- 에이. 그래도 지구 최강은 너무 나간 거 아닌가 하는데요.
- 저 현장 사진을 보면, 진짜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이보라는 손태민 감독이 찍어준 사진을 한 장 더 올렸다. 화살이 그녀의 바로 옆에 수직으로 꽂히고, 그녀는 깜짝 놀라 그 화살을 보는 사진이었다.
그녀는 당시 상황도 간단히 적었다.
[나쁜 놈이 활을 위쪽으로 쏘자마자 우리 무술감독님이 저에게 옆으로 피하라고 외치셔서, 제가 딱 두 걸음 피했거든요? 그 직후에 화살이 위에서 아래로 팍 꽂히는 거예요. 또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 와. 진짜 위험했겠다.
- 이상한데요? 위로 쏜 화살이 어디에 떨어질지 어떻게 알아요?
- 각도를 계산했겠죠. 이과인가?
- 잠깐! 또 구해주다니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요?
- 이보라 씨가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구해주신 건가?
- 아. 그 사건!
***
나강인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주변을 수색했다.
“놈들이 이미 고속도로를 탔으면 경찰이 교통 감시 카메라로 추적하겠지. 그런 경우는 경찰한테 맡기면 돼.”
신은하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왜 여길 돌아다니는 거야?”
“저놈들도 머리가 있을 테니까, 마약 거래를 하러 올 때 CCTV로 추적되는 길은 피했을 거야.”
“그럼 시골길로 다녔나?”
“그럴 가능성도 있지. 비포장 시골길을 통해서 일정 거리를 벗어난 후에 도로에 들어설 수도 있고, 차를 바꿔 탈 수도 있어.”
나강인이 잠시 차를 세우고 도로에 생긴 차바퀴 자국을 확인했다.
신은하도 같이 내렸지만 그녀가 본다고 도로의 흔적을 구분할 수는 없다. 그녀는 나강인이 도로를 조사하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SNS와 인터넷 게시판을 검색했다.
“다들 신나게 사진을 올리네. 어? 보라 이게 그 틈에 또 수작을 부려?”
그녀도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현장을 바로 떠나는 바람에 사진이 없었다.
“내 사진 찍은 사람 어디 없나? 앗! 손 감독님이 내 사진을 올렸다!”
그녀가 나강인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봐. 나 엄청 포스 있게 나왔지?”
“잘 나오긴 했다.”
“그런데 내가 화살을 맞은 건 아닌지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네? 나도 뭐 좀 남겨야겠다.”
신은하는 손태민이 올린 사진을 복사해서 그녀의 SNS에 다시 올렸다. 그러면서 몇 줄 적었다.
[화살을 배에 맞았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거든요. (^o^)]
- 어? 진짜 화살에 맞았어요?
- 괜찮아요?
- 아니, 배우가 방탄조끼를 왜 입어요?
- 겉으로는 표가 전혀 안 나는데?
- 일반 방탄조끼는 총알은 막아도 화살에 맞으면 뚫리지 않나요?
신은하가 옷에 화살 구멍이 난 부분의 사진을 찍어서 그 자리에서 올렸다.
[명품 방탄조끼라서 화살은 물론이고 총탄, 칼 전부 다 막는답니다. 두께가 얇아서 옷 속에 입어도 표도 나지 않아요.]
- 제가 방탄조끼를 좀 아는데요. 사실이라면 명품 맞습니다.
- 에이. 그런 방탄조끼가 어디 있어요?
- 있겠죠. 이게 장난으로 사진을 올릴 사건은 아니니까요.
- 사진을 찍느라 겉옷이 조금 위로 올라간 부분을 보세요. 방탄조끼 같은 게 살짝 보입니다.
- 그럼 처음 올린 사진은, 배에 맞은 화살을 뽑아서 높이 들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겠네요?
- 와. 상황설명까지 듣고 사진을 다시 보니까 진짜 포스 있네.
- 언니! 날 가져요!
신은하가 실실 웃었다.
“흐흐. 강인 오빠. 그거 알아? 방금 내가 드래곤 플레이트를 홍보했다?”
“아무리 홍보해도 개인은 어차피 못 산다. 맞춤 고급형은 제작 시간이 오래 걸려서 우리나라와 외국 정부 주문물량 스무 벌도 아직 다 못 만들었다.”
“양산형이 있다며.”
“그건 기존에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와 체형이 비슷한 사람만 살 수 있어. 그리고 국내에서 일반인이 그걸 왜 사겠냐?”
“쳇. 괜히 홍보했네.”
나강인이 차에 타며 말했다.
“가자.”
“뭐 좀 찾았어?”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