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소탕
마약조직 행동대장 조대상이 무너져가는 창고 안에서 차를 발로 걷어찼다.
“씨발! 쪽팔리게. 겨우 딴따라한테 이게 무슨 꼴이야!”
그의 측근 김동식이 말했다.
“앞에서 날뛰던 그놈은 일반인이 아니던데요. 전 무슨 악귀가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그 새끼는 진짜 사람 새끼가 아니야. 어떻게 총을 쏴도 겁을 안 먹어?”
그의 옆에 있는 부하는 나강인에게 활을 쏘다가 날아오는 잭나이프에 어깨를 맞았다.
“화살도 맨손으로 잡고, 칼을 화살처럼 날리는 놈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진째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왜 그런 새끼가….”
조대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우리 거래를 알고 온 건 아니겠지? 중국 애들이 배신한 거 아냐?”
“그놈은 배우들하고 있었는데요? 중국 애들이 보낸 거면 거기 같이 있을 리가요.”
“아. 그렇지. 젠장.”
칼을 맞은 조직원이 어깨에 감은 붕대에 손을 대며 말했다.
“형님. 피가 계속 나는데 병원에 좀….”
“지금 병원에 가면 너나 나나 다 뒈지는 거야. 기다려. 형님이 아는 의사가 있으니까 사무실부터 가자.”
“그럼 출발은 언제….”
“여기서 두 시간은 숨어있어야지. 경찰은 우리가 이미 고속도로를 탄 줄 알고 지금 열심히 도로 CCTV를 뒤지고 있을 테니까.”
조대상이 다른 부하에게 물었다.
“번호판은 다 갈았냐?”
“예! 완전히 다른 번호로 바꿨습니다!”
“차를 아예 바꿔야 확실한데…. 지금 상황에선 번호판이라도 갈아야지.”
***
행동대장 조대상은 두 시간을 채운 후에 낡은 창고에서 나왔다.
그 창고는 사건 현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CCTV에 찍히지 않고 시골길로 이동하려면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조대상이 조수석에서 주변을 확인했다. 경찰차는 보이지 않았다.
“봐. 충분히 기다렸다가 나오니까 경찰이 없잖아. 경찰은 아마 청평 근처만 열심히 뒤지고 있겠지.”
“고속도로는 어쩌지요?”
“경찰이 오늘 온종일 고속도로를 지나간 차를 다 조사하겠냐? 두 시간 전에 지나간 차는 열심히 보겠지만, 지금 지나가면 번호판만 확인할 거다.”
이 차에 갈아 끼운 번호판은 다른 대포차에서 뗀 것이다.
“이 번호가 차 종류와 색까지 딱 맞춘 번호판이야. 그러니까 지금 가면 안 들켜.”
“역시 형님은 꼼꼼하십니다.”
***
나강인이 조대상의 차를 멀리서 조용히 따라갔다.
신은하가 조수석에서 물었다.
“저놈들이 안 도망치고 숨어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반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걸리네.”
그는 비포장도로의 최근 주행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그 흔적이 그 폐가로 이어진다는 걸 발견한 건 한 시간 전이었다.
그는 놈들을 그때 잡지 않고 그곳을 지나간 후에,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놓고 그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의 예상대로 조대상은 사건 발생 두 시간 후에 움직였다.
신은하가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미행해도 돼? 이러다 놓치는 거 아냐?”
“저놈들도 잔뜩 긴장하면서 도망칠 텐데, 이 정도는 떨어져야 눈치를 못 채지.”
비포장도로는 차가 지나가면 흔적이 남는다. AI 전지인이 그 흔적을 분석하면 쫓아갈 수 있다.
“저러다 저놈들이 큰 도로에 올라가면, 그때는 눈에 보이는 거리에서 쫓아가도 돼. 그런 도로에는 다른 차가 많으니까 의심받지 않는데, 여기서 바짝 따라붙으면 저놈들이 눈치챌 거고, 그러면 거점으로 가지 않겠지.”
“거점이라니?”
“놈들의 잔당이 있는 곳.”
***
조대상의 차는 서울로 들어갔다. 그런 후에 허름한 2층 상가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어깨에 칼을 맞은 조직원은 점퍼를 입어 붕대를 가렸다.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에 나강인의 차가 그 건물 앞을 지나갔다.
나강인이 말했다.
“은하야. 저 건물에 마약상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해.”
“내가 해?”
“네가 신고해야 경찰에서 긴장하고 병력을 충분히 보내지.”
“아. 맞다. 오늘 우리가 싸운 거 뉴스에까지 났으니까, 내가 전화하면 바로 출동하겠네.”
“그렇지.”
신은하가 신고 전화를 하려다 물었다.
“잠깐만. 그러면 우리는 안 싸워?”
“응?”
신은하가 두 손을 앞으로 들어 손날을 세웠다.
“강인 오빠가 저놈들을 막 팍팍 하는 거 아녔어? 난 뒤에서 오빠를 또 팍팍 지원하고.”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 신은하가 제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경찰에 맡기면 되는데 왜 우리가 싸우냐? 우리는 뒤에서 구경이나 하자.”
***
이 마약조직은 조직원 숫자가 서른 명이다.
그런데 그중 스무 명을 데리고 나간 조대상이 겨우 다섯 명이 되어서 돌아왔다.
두목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 이 새끼야? 그러니까 내 약을 다 날리고, 애들도 열다섯이나 버리고 왔어?”
조대상이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형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놈들이 너무 강해서….”
두목이 조대상을 향해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유리 재떨이가 조대상의 머리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조대상의 머리가 크게 휘청였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하고 말했다.
“혀, 형님. 죄송합….”
두목이 책상을 옆으로 엎어버렸다. 그런 후에 조대상을 발로 걷어찼다.
“이 새끼야! 딴따라 새끼들한테 얻어터지고 온 새끼가 왜 나불대! 너 이 새끼! 나 망하게 하려고 이러냐?”
“아, 아닙….”
두목이 갑자기 칼을 꺼내 조대상을 푹 찔렀다.
“그냥 죽어. 이 새끼야!”
재떨이는 맞아줄 수 있지만 칼은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두목이 노린 위치가 심상치 않았다. 두목은 허벅지나 팔이 아니라 조대상의 배를 노렸다.
조대상은 즉시 뒤로 빠져 칼을 피했다. 그가 피하지 않았으면 칼날이 배에 박힐 뻔했다.
조대상은 확실히 깨달았다.
‘날 진짜로 죽이려는구나!’
그는 전에도 두목이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조대상의 눈이 돌아갔다. 그가 마약조직에 있는 건 흥청망청 살고 싶어서다. 이렇게 죽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조대상이 뒤로 물러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씨발! 이건 아니지! 두목이 우리를 죽여서 묻어버리려고 한다! 연장 꺼내!”
그가 데려온 네 명은 당황했다. 김동식이 급히 물었다.
“혀, 형님. 뭔가 오해가….”
“우리 얼굴이 온 세상에 다 팔렸잖아! 그래서 우리를 다 묻어버리려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만 죽어!”
죽는다는 말에 부하 네 명이 급히 칼을 꺼냈다.
두목의 부하들도 칼을 뽑았다.
병력은 조대상 패거리가 절반밖에 안 된다. 하지만 조대상 패거리는 필사적이다. 여기서 지면 다 죽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대상이 두목에게 외쳤다.
“우리 숫자가 조금 적지만 우리도 그냥 당하진 않아! 이대로 싸우면 지금 여기 있는 새끼들은 전부 다 죽는 거야!”
***
경찰 상황실 요원이 신고 전화를 받고 다급히 보고했다.
“신은하가 마약조직 본거지를 발견했다고 신고했습니다!
“뭐? 영화배우 신은하? 확실해?”
“예! 목소리가 분명히 신은하입니다!”
“청평에서 사고 친 마약조직 중에 도망친 놈들이 있다던데, 거기 있었구나!”
그 소식이 바로 담당 부서로 전달됐다. 즉시 명령이 떨어졌다.
“당장 병력 투입해! 한 놈도 놓치지 마라!”
***
마약조직의 내부 분쟁은 결국 두목 패거리가 이겼다. 조대상 패거리도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두 배나 되는 숫자 차이를 이기지는 못했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조대상에게 두목이 다가갔다. 부하들이 주로 싸워서 두목은 다친 곳이 없었다.
두목이 단검을 조대상의 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대상아. 청평에서 그냥 잡히지 그랬냐? 그럼 쥐새끼 같은 목숨은 건졌을 텐데.”
“이 새끼….”
“너 때문에 내가 손해가 크다. 그 약이 얼마나 비싼 거고, 애들 키우려면 또 얼마나 힘든데…. 후우.”
“너 이 새끼. 네가 숨겨놓은 돈이랑 금괴면 충분히 해결….”
두목이 칼을 조대상의 배에 쓱 대며 작게 속삭였다.
“너 그게 어디쯤 있는지 대충 눈치챈 거 같더라? 그러니까 넌 죽어줘야 하지 않겠냐? 경찰에 가서 네가 그걸 털어놓으면, 내 돈이 다 날아가는데?”
조대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칼날이 배에 닿으니 겁이 났다. 그가 다급히 말했다.
“형님. 오해이십니다. 방금은 흥분해서 그냥 한 말입니다.”
“그리고 너 말이야. 나한테 말도 없이 총 샀더라?”
“예? 그, 그건….”
“소총 샀더라? 거기에 조준경을 붙이면 저격도 할 수 있다며? 누굴 저격하려고? 나잖아?”
조대상의 눈동자가 더 심하게 흔들렸다.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네 마음 다 아는….”
갑자기 사무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곧바로 형사가 권총을 겨누며 들어왔다.
“경찰이다! 움직이지 마!”
선두에서 진입한 형사는 내부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어? 이 새끼들 뭐야?”
뒤따라 들어온 형사가 말했다.
“이미 다들 피칠갑인데요? 자기들끼리 싸운 건가?”
“이 새끼들이 도망치느라 바쁠 줄 알았더니, 이러면 우리야 고맙지.”
“멀쩡한 놈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멀쩡한 놈이 바로 두목이다. 그는 반쯤 쭈그려 앉은 상태로 조대상의 배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 칼은 조대상의 몸에 가려져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들어온 형사가 뒷사람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옆으로 움직이다가 그걸 발견했다.
“칼이다!”
형사들이 다시 권총을 들었다.
“칼 버려 이 새끼야!”
두목은 당황했다.
“이, 이런 씨발.”
조대상이 눈알을 열심히 굴렸다. 그는 이미 크게 다쳤다. 이제 두목의 칼에 죽을 줄 알았는데 경찰이 나타났다.
‘콩밥을 먹더라도 사는 게 낫지.’
게다가 복수할 기회도 생겼다.
조대상은 칼에서 멀어지려고 뒤쪽으로 벌렁 누워 몸을 굴렸다. 그러면서 외쳤다.
“저 새끼 나쁜 새끼입니다! 사람도 죽인 새끼입니다. 저 새끼가 그동안 마약 판 돈을 어디에 숨겨놨는지도 내가 다 말할 테니까, 나 좀 살려주십쇼!”
조대상은 그 돈이 묻힌 위치를 정확히는 모른다. 그렇지만 짐작 가는 곳은 있다.
형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야. 119에 연락해서 쟤부터 병원에 보내.”
두목이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며 단검을 번쩍 들었다.
“닥쳐 이 새끼야!”
형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움직이지 마! 칼 버려!”
두목은 움찔했지만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첫발은 공포탄이었다.
안심한 두목이 칼로 조대상을 찍으려 했다. 눈치 빠른 형사가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이번에는 실탄이 날아갔다.
형사는 두목을 쏘지는 않았다. 대신에 두목 뒤쪽에 있는 장식용 조각상을 쏘았다. 총알이 조각상을 때리고 옆으로 튕겨 유리창을 박살 냈다.
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칼 버리지 않으면 진짜 쏜다!”
두목도 조대상처럼 눈알을 굴렸다.
그는 조대상을 죽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조대상을 죽여야 숨겨둔 돈을 지킬 수 있고, 그 돈이 있어야 재기를 노릴 수 있다. 외국으로 튀어서 잘 먹고 잘살려고 해도 그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눈앞에 그를 겨누는 권총이 세 자루나 있었다.
‘내가 총에 맞으면 저 새끼들도 골치 아파지니까, 어지간해서는 날 쏘진 않겠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선이 있다.
‘여기서 내가 이 새끼를 찌르면?’
형사 세 명이 다 그걸 구경만 할 리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벌집이 될 수도 있다.
‘이 새끼는 지금은 못 죽인다.’
두목의 눈알이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그의 뒤쪽 창문이 깨진 것이 보였다.
형사가 두목을 달랬다.
“야. 칼 내려놓고 가만히 있….”
두목이 갑자기 뒤로 휙 돌아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어? 어?”
형사들은 당황했지만 권총을 쏠 수는 없었다. 도망치는 놈을 등 뒤에서 쏘면 뒷감당하기 어렵다.
형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잡아!”
***
신은하가 길 한복판에서 물었다.
“우리는 왜 여기 이러고 있어?”
나강인이 건물 2층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찰이 진입한 후에 누가 도망치려면 여기로 나오는 수밖에 없거든.”
AI 전지인은 이미 이 건물의 구조를 파악했다.
- 적을 전멸시켜야 잔존 병력에 의한 후방 타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한 놈도 놓치지 마십시오.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면서 유리창이 박살 났다. 유리 파편이 아래로 우수수 쏟아졌다.
신은하가 어깨를 움츠렸다.
“총소리가 나는데? 우리도 어디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하는 거 아냐?”
“경찰이 쏜 총이야. 이제 나오는 놈이 있겠네.”
갑자기 창문 밖으로 두목이 몸을 날렸다. 두목은 바로 떨어진 게 아니다. 일단 창틀을 붙잡고 매달린 후에 아래로 뛰어내렸다.
두목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주변부터 확인했다. 신은하가 보였다. 두목의 눈알이 번뜩였다.
신은하가 두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야?”
“어. 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