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16화 (116/411)

116. 교차로

경찰을 피해 2층에서 뛰어내린 마약조직 두목은 신은하를 보자마자 결정했다.

‘인질을 잡자!’

그는 그렇게 결정하자마자 신은하를 향해 멧돼지처럼 돌진했다.

나강인이 달려드는 두목을 향해 발을 콱 내질렀다.

두목의 허리가 그대로 접혔다.

“케에엑!”

두목은 뒤로 날아가 건물 벽에 충돌했다가 스르르 미끄러졌다.

신은하가 물었다.

“뭐야? 저건.”

“아까 그놈들 중에는 없었으니까, 저놈이 두목이겠지.”

“얘게. 겨우 저런 게?”

신은하는 국제 용병 두목 자칼과 해적단 두목 낙귀가 어떤 놈들인지 직접 봤다. 그들과 비교하면 지금 만난 놈은 너무 약했다.

1층에서 대기하던 형사들이 급히 뛰어왔다.

“이쪽으로 뛰었…. 어?”

신은하가 두목을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네? 아. 네.”

신은하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신고했는지 아는 형사들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형사 두 명이 기절한 두목에게 수갑을 채웠다.

다른 형사가 신은하에게 다가와 말했다.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다치시면 어쩌려고요.”

신은하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괜찮아요. 나쁜 놈 잡는 거 도와드리려는 거예요.”

“그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안전한 곳으로 모실까요?”

신은하가 나강인의 팔을 살짝 잡았다.

“아뇨. 저는 지금 충분히 안전해요.”

***

배우들이 모여서 놀던 청평호수 펜션 앞이 범죄 현장으로 변했다.

경찰차가 여러 대 그곳에 도착했다. 형사들은 전투가 벌어진 현장을 조사했다. 마약조직원들은 이미 모두 체포돼 실려 갔다.

당연히 파티는 중단됐다.

하지만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배우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어차피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

손태민 감독이 제안했다.

“근처로 장소를 옮겨서 한잔 더 할까요?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가도 되고.”

남을 사람만 남으라고 했는데도, 배우들은 거의 다 남았다.

경찰은 참고인 조사는 차차 하기로 했다. 일단은 지금 체포한 놈들부터 처리해야 한다.

배우들은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를 과장을 잔뜩 섞어서 서로 자랑했다.

아까 싸우지 않은 오세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아. 나 좀 다친 거 같아. 무리했나 봐.”

손태민 감독이 물었다.

“세나 씨는 일찌감치 눈 감고 눕지 않았어?”

“다쳐서 그런 거였어요.”

여고생 이연지가 자랑했다.

“우리 아빠 의사인데. 엄청 유명한데.”

외과 과장 이정호가 다가왔다.

“제가 좀 봐 드릴까요?”

오세나는 당황했다.

다쳤다고 한 건 거짓말이다. 다른 배우들은 다들 멋지게 싸우는 사진을 건졌고 자랑할 것도 많은데, 그녀만 사진 한 장 없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다.

“아니, 그 정도로 다친 건 아닌데….”

그녀의 꾀병을 눈치챈 김유찬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야아. 의사 선생님이 계시니까 이렇게 치료도 받고 좋네요.”

오세나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기왕 치료받을 거라면 다른 사람에게 받고 싶었다.

“그러게요. 전에 손태민 감독님이 다치셨을 때는 나강인 씨가 치료해주셨는데.”

이정호는 멈칫했다.

그가 여기 온 건 재봉틀 봉합법을 쓴 의사를 찾기 위해서다. 얼마 전에 그 봉합법이 손태민의 팔 상처에서 발견됐다.

이정호가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나강인이란 분이, 어느 병원 의사이십니까?”

손태민은 이정호가 왜 그렇게 묻는지 깨닫고 깜짝 놀랐다.

‘헉! 이제 보니까 전에 전화를 걸었던 그 의사 목소리잖아! 설마 나강인 씨를 잡으러 온 건가?’

손태민이 급히 나섰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오세나의 대답이 더 빨랐다.

“우리 무술감독님이요.”

이정호는 당황했다.

“예? 의사가 무술감독을 해요?”

“뭐든 다 잘하는 분이거든요. 아까 보셨잖아요. 막 날아다니던 분. 그분이 나강인 씨예요.”

“아아. 그분. 그런데 그분이 의사시라고요?”

오세나는 이정호가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했다.

“그런 고수가 될 때까지 어디 한두 번 다쳤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응급처치를 잘하더라고요.”

이정호는 설명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뭔가 잘못됐어.’

그가 손태민을 보았다.

‘내가 전화로 물어봤을 때는 밖에서 따로 치료했다고 했는데….’

손태민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표정이 저렇게 안 좋게 변할 리 없잖아. 그럼 역시 옥상에서 치료받은 건가? 나강인이란 사람에게 의사 면허는 있나?’

그는 손태민에게 그걸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딸을 수술하려면 나강인이 의사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간단한 조사만 받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정호의 가족도 펜션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정호는 집 앞에서 아내와 이연지를 내려주었다.

“아빠는?”

“난 병원에 가서 할 일이 좀 있어서.”

이정호가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라디오 뉴스에서 오늘 사건이 나왔다.

- 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마약은 오십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이정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뭔가 잘못됐어. 아주 크게 잘못됐어.”

그는 병원으로 가면서 외과 의사 김중석을 불렀다.

이정호가 그의 집무실에서 김중석에게 오늘 있었던 싸움을 설명했다.

“어우. 그래도 안 다치셨으니 다행입니다. 연지도 괜찮은 거지요?”

“연지도 안 다쳤어. 그런데 말이야. 손태민의 팔을 치료한 사람의 이름을 알아냈다.”

“거기 가신 보람이 있네요. 그런데 붕대 감은 사람이요? 아니면 봉합한 사람이요.”

이정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손태민 감독이 거짓말한 것 같아. 그날 옥상에서 봉합까지 끝낸 것 같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은 한 명이다.”

김중석은 살짝 흥분했다.

“그 의사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나강인.”

김중석이 얼른 한국 의사 중에 그런 이름이 있는지 검색했다.

“어? 그런 사람은 없는데요?”

“나도 찾아봤어. 없더라.”

“음…. 외국에서 면허를 딴 의사일 수 있잖아요. 국내에서는 개업하지 않은 의사요.”

“그치? 일단 만나서 물어보자.”

“그러셔야죠. 그 사람의 연락처는 아시죠?”

“네가 알아내야지.”

“네?”

이정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은 어쩌면 의사 자격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아까 그곳에서 그 사람의 뒷조사를 하면 안 돼. 이미 손태민 감독이 경계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연락처를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그럼 어떻게….”

“직업이 무술감독이라더라.”

김중석은 이보라의 외사촌오빠다.

“어? 얼마 전에 보라를 구해준 사람도 무술감독인데요.”

“거기 이보라 씨도 왔더라.”

“그럼 설마….”

“어. 그 사람 같아. 그러니까 네가 이보라 씨에게 부탁해봐라.”

“그 무술감독의 전화번호를요?”

이정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손태민 감독처럼 전화로 물어보면 이 사람도 잡아뗄 수 있으니까.”

***

이튿날 이보라가 피시방을 찾아갔다.

이보라도 신은하처럼 그 피시방에 고정석을 마련했다.

나강인의 고정석은 제일 구석에 있다. 그래야 그가 뭘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그 바로 옆자리가 신은하의 고정석이다.

이보라는 신은하의 옆자리를 잡았다.

“은하야. 자리 바꿔주면 안 돼?”

“응. 안돼. 너라면 바꿔주겠니?”

“아니.”

나강인이 피시방에 들어왔다.

이보라가 얼른 일어나 나강인에게 달라붙었다.

“강인 오빠. 나 부탁이 있는데요.”

신은하가 이보라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야! 그러지 말라고. 자리 안 바꿔준다고!”

“아! 아! 놔! 이거 안 놔? 자리 이야기를 하려는 거 아니야!”

나강인이 말했다.

“여기서 싸우면 손님들한테 방해된다. 둘이서 옥상으로 올라가든가.”

신은하가 혀를 차며 뒷덜미를 놓았다.

이보라가 옷을 탁탁 턴 후에 나강인에게 말했다.

“중석이 오빠 알죠? 전에 우리 드라마 회식하는 날 그 앞에서 트럭 사고 났잖아요. 그때 같이 있었던 의사요.”

“얼굴은 알지.”

“중석이 오빠 스승님이 강인 오빠를 꼭 좀 봤으면 하는데, 시간 좀 내주면 안 돼요?”

“안돼.”

“와. 단호박.”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이유도 없이 왜 만나?”

“그분도 얼굴은 봤잖아요.”

“언제?”

“우리 그저께 청평에서 싸울 때요. 거기 구경 왔다가 말려든 의사 선생님이 그분이세요.”

나강인은 누구 이야기인지 깨달았다.

“연지 아버님?”

“네. 그분이요.”

“음…. 급한 일이면 지금 이리로 오시라고 해.”

이보라가 활짝 웃었다.

“네!”

***

이보라가 직원 휴게실로 들어가 김중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 잡았어.”

- 정말? 이야아.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괜히 걱정했구나!

“뭐래? 강인 오빠는 원래 모르는 사람은 안 만나주는데, 내가 부탁해서 특별히 시간 낸 거거든?”

- 흐흐. 알았다. 시간과 장소는?

“이 피시방. 지금.”

- 어? 피시방? 지금?

“병원에서 가까워. 주소 보내줄게.”

-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과장님은 지금 수술 들어가셔서 거기 못 가시는데?

“그럼 말든가.”

- 아니야. 내가 갈게! 난 지금 시간 있어!

***

외과 의사 김중석이 피시방으로 나강인을 찾아왔다.

김중석이 먼저 인사했다.

“저희 과장님이랑 연지가 어제는 나강인 씨 덕분에 위험한 일을 무사히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뭘요. 할만해서 한 건데.”

“연지가 하필 마약 거래를 목격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면서요?”

“대신에 그놈들을 싹 다 잡았죠. 연지는 괜찮죠?”

“예.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김중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의사 면허가 있으십니까?”

신은하가 근처에서 듣고 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에이. 강인 오빠가 아무리 다 잘해도, 의사는 무리….”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혹시 진짜 의사 면허까지 있는 거야?”

나강인이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없다.”

“놀랄 뻔했잖아. 역시 그렇지?”

대학생 해커 안성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형이라도 그건 아니지.”

사람들은 편안해졌는데, 정작 질문한 김중석은 사색이 됐다.

“그, 그럼 손태민 감독님의 팔에 난 상처를 꿰맨 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그 사람이 맞군요! 아는 의사에게 들었습니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그때 손 감독님 상태는 내버려두면 과다출혈이 올 수도 있어서, 피만 잠깐 잡은 겁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잘 치료하셨다고 들었는데, 치료한 의사분에게 들었겠군요.”

“예? 예. 그게….”

“어쨌든 그때는 지혈만 잠깐 한 겁니다. 전 의사가 아니라서 본격적인 치료는 할 줄 모르고요.”

김중석은 크게 실망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연지를 수술하려면 그 기술이 꼭 필요한데.’

사거리 사고 때와 손태민의 상처 봉합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사거리 사고 때는 평범한 실을 사용했는데, 손태민 때는 봉합사를 썼다.

‘손태민 감독의 팔 상처는, 어쩌다 우연히 잘 꿰맨 거였구나. 저 사람이 아니었어.’

김중석이 실망한 얼굴로 피시방을 나간 후에, 신은하가 나강인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작게 물었다.

“강인 오빠. 그때 한 번이 아니지 않아? 스칼렛 씨 팔에 난 총상을 꿰매는 거 내가 봤는데?”

“그때도 잠깐 지혈하려고 몇 바늘 꿰맨 거였다.”

“그런가?”

김중석이 피시방을 나와 병원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여기 올 때는 흥분해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갈 때는 힘이 쪽 빠지고 정신도 멍해져서 터덜터덜 걸었다.

“연지 이제 어떻게 하냐. 저 사람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그는 사거리 교차로에 멍하니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이 장소가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 여기는….”

나강인이 처음 이곳에 나타났을 때, 교차로 교통사고의 여파로 쇠막대가 날아가 지나가던 사람의 배에 꽂히는 사고가 바로 이곳에서 터졌다.

그 부상자는 즉시 근처에 있는 병원에 옮겨졌는데, 그때 응급실 의사 이정현이 재봉틀 봉합법을 처음 발견했다.

외과 의사 김중석은 그 부상자의 상처를 봉합한 모양을 보고 이정현을 찾아갔다가, 누군가 그 봉합을 겨우 몇 분 만에 끝냈다는 걸 알게 됐다.

김중석과 외과 과장 이정호는 그동안 그 봉합을 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김중석은 사고 현장인 바로 이 사거리에 와서 주변에 병원이 있는지 확인했었다.

“여긴 그 환자가 사고를 당한 바로 그 사거리잖아!”

김중석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피시방은 다른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럼 저 사람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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