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17화 (117/411)

117. 불법 닥터

수술실에서 나온 이정호에게 김중석이 조용히 말했다.

“과장님. 찾았습니다.”

“뭐? 어디서?”

김중석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빨리 내 방으로 가자.”

외과 과장 이정호의 방에서 김중석이 피시방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런 후에 피시방 근처 교차로가 예전에 부상자를 발견한 바로 그곳이라는 것도 말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나강인 씨가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그 봉합법을 본 바로 그 환자가, 그 근처 교차로에서 다쳤으니까요.”

이정호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우연일 리는 없지. 아니, 우연이 아니어야 해.”

“확실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숨기는 거겠지요.”

숨길 이유가 하나 생각나긴 했다. 이정호는 마음이 무거웠다.

“진짜 의사 면허가 없나?”

“본인은 그렇게 말하는데,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음….”

이정호는 한참 고민했다. 김중석은 초조한 얼굴로 그런 그를 보고만 있었다.

고민하던 이정호가 결정을 내렸다.

“내가 나강인 씨를 만나야겠다.”

“지금 그 피시방에 가면 아직 있을 겁니다.”

“아니야. 정말 의사 면허에 문제가 있으면 거기서 이야기하면 안 돼. 조용한 곳이 필요해. 중석아. 자리 좀 마련해줘. 부탁한다.”

“예. 제가 보라에게 욕을 먹더라도 꼭 해내겠습니다. 연지를 살려야죠.”

***

이연지가 피시방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나강인이 물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이연지가 활짝 웃었다.

“오늘 여기에 오면 맛있는 걸 실컷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누가?”

그녀가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은하 언니랑 보라 언니가 문자로요. 오늘은 예전에 병실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다면서요?”

“오늘 음식은 좀 매울 텐데?”

“매운 거 잘 먹습니다!”

“돈은 내야지?”

“학생 할인이랑 지인 할인은요?”

“응. 그런 거 없어. 오늘은 한 그릇에 칠천 원.”

“두 그릇 주세요!”

신은하가 피시방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 아지트야. 저기서 먹자. 근데 너 게임 좀 하니?”

“할 줄만 알아요.”

“언니가 게임 가르쳐줄게. 밥 먹고 놀다 가.”

나강인이 말했다.

“쟤 전교 1등이라더라.”

“그러니까, 등수 좀 까먹어도 여전히 상위권이니까 괜찮잖아.”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

***

김중석이 이보라에게 전화를 걸어 나강인을 따로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보라가 나강인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나강인이 구석 자리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는 이연지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저녁때는 공방에 있을 거니까 그리로 오시라고 해.”

“네!”

그날 저녁때 외과 과장 이정호가 서울 외곽에 있는 나강인의 제작 거점을 찾아갔다.

차에서 내린 이정호는 ‘지구연합 제작실’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는 낡은 건물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가 맞나?”

그는 주소를 다시 확인한 후에 벨을 눌렀다. 잠시 후에 나강인이 현관을 열었다.

이정호가 얼른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나강인 선생님.”

“안으로 들어오시죠.”

이정호는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건물 내부에 있는 장비들이 심상치 않았다. 대형 모니터 4대부터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버와 각종 최신 제작 장비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정호가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여기는… 혹시 무슨 연구실입니까?”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곳입니다.”

이정호는 나강인이 무술감독이라는 말만 듣고 왔다. 청평호수 전투에서는 엄청난 무술 실력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그는 나강인이 그들이 찾던 사람이라는 의심은 하면서도 확신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을 보고 나서 그는 그동안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람은 무술감독만 하는 게 아니야. 외부에 알려진 건 빙산의 일각이구나.’

희망이 조금 더 생겼다.

나강인이 물었다.

“앉으시죠. 커피 드십니까?”

“네.”

이정호가 작은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나강인이 커피가 담긴 머그컵 두 개를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맞은 편에 앉았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이정호가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제가 딸이 있습니다.”

“연지는 저도 압니다.”

나강인이 이정호를 오늘 만나는 건, 아까 이보라가 했던 말 때문이다.

- 중석 오빠의 스승님이 연지 아빠인데, 연지 문제로 강인 오빠를 꼭 좀 만나고 싶대요.

이정호가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혹시 케이타이거 증후군이라는 병을 아십니까?”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AI 전지인을 불렀다.

“지인아. 아는 병이냐?”

- 저에게 부상 진단 스킬은 있지만, 통상적인 병의 진단 스킬은 없습니다. 모릅니다.

나강인이 대답하지 않는 걸 보고 이정호가 먼저 말했다.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이 병은 아는 의사가 드뭅니다. 2년 전에 처음 발견된, 기존에는 없던 신종 희귀병입니다.”

“혹시 치료가 어려운 병입니까?”

“생기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도 없습니다. 증상이 약하면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데, 증상이 심한 케이스는….”

“수술이 어렵습니까?”

이정호의 얼굴에 고통이 드러났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수술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증인 경우는 기존 수술법을 쓸 수 없습니다.”

나강인은 이정호가 왜 그를 찾아왔는지 눈치챘다.

“혹시 연지가?”

“예. 케이타이거 증후군입니다.”

이정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연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더군요. 저는 원래는 생각이 달랐는데, 지금은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죠. 공부를 워낙 잘하니까, 아, 연지가 전교 1등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랑하더군요.”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공부까지 잘하니까, 연기와 학업을 병행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그런데….”

이정호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가 되면 무리한 스케줄이 생겨도 해야 할 텐데,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나강인이 병에 대해 물었다.

“그 병은 언제 걸렸습니까?”

“모릅니다만, 발견한 건 석 달 전입니다.”

“신종 희귀병이라고 하셨는데, 그 병의 전문가에게 데려가서 확인받으신 겁니까?”

“케이타이거 증후군은 미국 의사 두 명과 한국 의사 한 명이 공동으로 연구해 찾아낸 병입니다. 그런데 그 한국 의사가 바로 접니다.”

“아….”

이정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참 한심하지요? 제 딸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그 병의 권위자인 척하고 다녔으니….”

이연지는 잘 뛰어다니고, 잘 먹고, 성격도 밝았다. 마약조직이 쫓아올 때도 겁먹지 않을 만큼 멘탈도 강했다.

“연지가 아픈 줄은 몰랐는데요.”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 게 그 병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 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입니다. 터지기 전까지는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데, 일단 터지면 사망률은 백 퍼센트입니다.”

나강인도 이제 이연지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았다. 중요한 건 해결법이 있느냐다.

“연지는 수술할 수 있는 상태입니까?”

이정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기존 수술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음…. 그런데도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겠군요.”

이정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강인 선생님은 의사가 맞지요?”

“아닙니다.”

이미 김중석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왔다. 하지만 이정호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전문의냐고 묻는 게 아닙니다. 의사 고시는 통과하셨지요?”

“아니요.”

“그럼 외국 의대를 졸업하신 겁니까?”

“의대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만?”

이정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져서, 이제 거의 절망한 것처럼 변했다.

“그 피시방 근처 사거리에서 사고가 났었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환자 상처를 봉합해 생명을 구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분이 나강인 선생님 맞으시죠?”

이정호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당시 그 부상자는 지혈하지 않았으면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할 확률이 87%였습니다. 야전 응급 수술을 하면 1시간 생존율을 99%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병원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그대로 놔두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사람은 살리고 봐야죠.”

이정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역시 그 사람이시군요!”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그런데도 의사가 아니라니요?”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부상자 응급조치만 조금 할 줄 압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게 어떻게 응급조치이고, 어떻게 조금입니까?”

“사실입니다. 병에 관한 건 감기 진단도 못 합니다.”

이정호가 다급히 물었다.

“그럼 그 봉합은요?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빠르고 일정한 그 봉합은요?”

이정호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손이 빨라서 바느질만 잘합니다.”

그때는 2082년식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손을 빌려 부상자의 상처를 봉합했다.

이정호는 나강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손기술만으로 그 상처를 봉합했다고요?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대량의 출혈이 발생한 상황에서 혈관을 정확히 찾아 봉합하셨잖습니까?”

이정호는 그걸 할 수 있는 건 의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가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그 상식이 깨지고 있다.

“그건 숙련된 외과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습….”

다른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혈관은 사람의 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면 혹시 수의사….”

나강인이 둘러댔다.

“인터넷 영상을 보고 익혔습니다.”

“예?”

“너튜브에 많더라고요. 관련 영상이.”

이정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머리에 나강인의 말을 뒷받침할만한 사례가 떠올랐다.

“너튜브요? 의료 환경이 열악한 나라의 의사들은 인터넷 너튜브 영상을 보고 수술법을 배우기도 합니다만….”

상대가 알아서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나강인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아. 그겁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아니, 그 사람들은 최소한 의대를 나온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의대를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영상만 보고 그게 가능합니까?”

“되던데요.”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이정호는 지금 나강인의 제작 거점에 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강인은 그동안 번 돈으로 이곳의 장비를 많이 보강했다. 매끈하고 번쩍거리는 장비가 많았다.

이정호가 이런 장비를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는 병원에서 첨단 장비를 여럿 다루어보았다. 새로 개발된 의료장비의 정보도 계속 받아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장비를 보는 눈이 조금은 있다.

그는 이곳이 평범한 개인 공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비밀이 많은 사람이야. 아마 그 봉합법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도 비밀이겠지. 그래서 말을 아끼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그의 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정호는 질문을 그만두고 머리 숙여 부탁했다.

“도와주십시오. 연지를 수술하고 싶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라니까요.”

“그 말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건 상관하지도 않겠습니다. 연지를 수술할 때, 봉합만 맡아주십시오.”

나강인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하셨잖습니까?”

“기존 수술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정호는 조금 전에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 재봉틀 봉합법으로 도와주시면, 방법이 있습니다.”

“음….”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다른 의사와 협업해서 수술하는 게 가능하겠냐?”

- 수술 자체를 부상 상황으로 가정하면, 봉합만 맡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가능하다는 건 알았다.

나강인이 이정호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그게….”

이정호가 망설였다.

‘외국 의대라도 나왔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국내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건 줄 알았는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걸 숨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수술 전에 나강인이 그 문제를 알아내면 뒷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정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의료법에 걸립니다.”

“누가 말입니까?”

“선생님과 같이 수술실에서 수술한 사람은 전부 다 걸립니다.”

나강인은 당황했다.

“어….”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요원님이 체포되면 임무 수행이 어려워집니다.

나강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 면허 없이 수술하면, 체포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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