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18화 (118/411)

118. 불법 닥터 II

이정호는 이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나강인이 배우들 사이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날 청평 파티에서 알았다. 마약조직원들을 혼자서 박살 낼 정도로 대단한 능력자인 것도 두 눈으로 직접 봤다.

‘돈을 주면서 불법수술을 하자고 할 상대가 아니야. 이 사람은 사이즈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딸을 포기할 순 없다. 그래서 미안한 일인 줄 알면서도 사정했다.

“제발 우리 연지 좀 살려주십시오. 제가 진짜 면목이 없지만,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이연지는 오늘 피시방으로 찾아와서 밥을 먹고 갔다. 신은하와 이보라와 같이 웃고 떠들며 놀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애가 희귀질환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체포되어 구치소나 교도소에 갇히면 임무에 차질이 생긴다.

“정보가 더 필요합니다만.”

이정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직 도와준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하지도 않았다.

“경증은 수술하면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그런 환자를 수술로 살렸습니다.”

“연지 같은 중증은 수술할 수 없다면서요.”

“수술시간 제한 때문입니다. 케이타이거 증후군은 수술시간이 길어지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집니다.”

“경증은 수술을 금방 끝낼 수 있는데, 중증은 그게 안 된다?”

“예. 수술을 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합니다. 외국에서는 초반에는 그걸 몰라서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여러 번 있습니다.”

시간제한이 왜 걸리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연지는 한 시간에 끝내기 어려운 복잡한 수술을 해야 하고요.”

“예. 몸속 장기를 절개하고 혈관을 성형하는 수준의 수술입니다. 아무리 손이 빠른 의사가 해도 제한시간 안에 그걸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시간을 한계까지 줄여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필요하시고.”

이정호가 눈을 빛냈다.

“그 교차로 사고 환자의 상처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걸 현장에서, 시야 확보도 안 된 상태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두 봉합하셨더군요. 그것도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요.”

“손이 빨라서요.”

이정호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과 그래프를 몇 개 보여주었다.

“그 속도로 봉합할 수 있을 때의 수술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제가 수술할 때 아주 정밀한 봉합이 바로바로 된다면.”

그래프에는 50%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수술 성공 확률이 50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나강인이 인상을 살짝 썼다. 확률이 너무 낮았다.

“100퍼센트는 아니군요.”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실패 확률이 100퍼센트입니다.”

“다른 치료법은 없습니까?”

이정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건 발견된 지 2년밖에 안 된 신종 희귀질환입니다. 이 병을 찾아낸 세 명 중 한 명이 바로 저입니다. 제가 모르는 치료법은 없습니다.”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지인아. 미래에는 이 병의 치료법이 나왔을 수 있잖아.”

-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전투지원 AI라서, 야전 응급 수술은 할 수 있어도 병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전쟁터 병사들도 병에 걸릴 때가 있을 텐데?”

- 질병 진단과 치료는 군의관의 임무입니다. 야전병원에 군의관이 사용하는 진단 및 치료장비가 있습니다.

나강인이 이정호에게 물었다.

“연지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이정호가 즉시 대답했다.

“그 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입니다. 오늘 당장 터질 수도 있고 한 달 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100일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나강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착한 녀석인데.”

“그러니까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방법을 찾아보죠. 수술은 어디서 하실 생각입니까? 근무하고 계시는 병원 수술실입니까?”

이정호가 멈칫했다.

“어….”

그 생각까지는 아직 하지 못했다. 일단 나강인의 허락이 급해서 다른 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 병원에서 하면, 선생님이 수술에 참여하셨다는 게 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데….”

“저는 면허가 없으니까, 소문이 나면 우리는 다 같이 사이좋게 수갑을 차겠군요.”

“그, 그러면 안 되죠.”

“방법은요?”

“절대로 말하지 않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서,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수술실에서 해야죠. 당연히 그래야죠.”

나강인이 질문했다.

“그런 사람과 장소가 있습니까?”

***

간호사 손미연이 병원 복도에서 이연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 친구랑 놀아.

“친구 누구?”

- 지혜.

“걔는 안 바쁘대?”

- 얘는 나보다 더 시간이 많아.

- 앗! 아줌마! 안녕하세요!

“지혜는 항상 힘이 넘치는구나?”

- 지혜의 최대 장점이잖아. 근데 왜?

“아니,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 요즘 엄마 이상해. 시간 내서 건강검진이라도 받아봐. 어디 아픈 건지도 모르잖아.

***

이정호가 말했다.

“연지 엄마가 우리 병원 간호사입니다. 수술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죠. 요즘도 종종 수술실에 들어옵니다. 실력은 최고입니다.”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간호사가 한 명이라….”

“일당백입니다. 제가 그 실력에 반했으니까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정호의 얼굴에서 이연지가 나오긴 어렵습니다. 이연지는 엄마를 닮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실력이 아니라 얼굴에 반했을 겁니다. 정보의 신뢰도가 낮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진실만 말씀해 주셔야 제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실력에 반한 거 맞습니까?”

“사, 사실은 예뻐서….”

“그럼 실력이 일당백이라는 건요?”

이정호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백 명은 과장이지만, 혼자서 수술 전문 간호사 두 명 몫은 충분히 해냅니다.”

“음…. 그럼 간호사는 두 명 같은 한 명에, 의사는 한 명인가요?”

“아닙니다. 연지 외삼촌이, 그러니까 제 처남이 의사입니다. 자기 병원도 있습니다. 처남이 도와줄 겁니다. 아! 처남 병원에 수술실도 있습니다!”

“그분도 외과 의사입니까?”

“외과는 외과인데…. 성형외과….”

나강인은 당황했다.

“어…. 일단 수술이 가능한 곳인지부터 확인하시죠. 우리 이야기는 그 후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예. 당연히 그래야죠.”

이정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습니다.”

“아직 거절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고맙습니다.”

***

이정호는 아내 손미연과 함께 이연지의 외삼촌 손성현이 운영하는 성형외과를 찾아갔다.

병원 근무시간은 이미 끝났지만, 손성현은 퇴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손성현이 물었다.

“밖에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될 걸 왜 우리 병원부터 온다는 거야?”

손미연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이야. 꼭 여기서 할 말이 있다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말을 안 해준다.”

“혹시 매형이 병원 그만두고 개업하려고 그러나?”

손미연이 코웃음 쳤다.

“병원에 있으니까 대접받지 나가면 지금처럼 잘나갈 거 같아? 안돼. 더 다녀. 연지 위해서라도 무조건 더 다녀야 해.”

이정호가 말했다.

“여기 수술실부터 본 후에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줄게.”

손성현이 활짝 웃었다.

“그 유명한 이정호 박사님이 우리 병원의 자랑인 수술실을 구경하러 오셨구나? 이쪽으로 와.”

손성현은 성형외과를 운영하지만, 수술실 하나는 대형병원 못지않은 시설을 자랑했다.

이정호가 수술실의 장비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더 좋아졌구나.”

손성현이 자랑했다.

“흐흐. 돈 좀 썼지. 내 수술실에서는 아마 심장 수술도 할 수 있을걸?”

“그래 보인다. 다행이다.”

“응? 다행? 멋지다가 아니라 다행이라니?”

이정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 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우리 연지, 수술할 방법을 찾았다.”

손미연이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무 놀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드, 드디어….”

손성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매형! 드디어 해냈구나! 전에 미국으로 출국해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를 알아본다더니, 거기서 찾아냈구나?”

이정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때는 성과가 없었다.”

“응? 방법을 찾았다며?”

“수술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능력자를 찾았다.”

“어? 혹시 국내에서?”

“어.”

“이야아. 그런 대단한 사람이 국내에 있었구나. 그럼 매형 병원에서 수술하면 되겠네?”

“그건 불가능해.”

“아. 맞다. 매형이 직접 칼을 잡는 건 어렵겠지.”

의사도 사람이라서 가족의 몸에 직접 칼을 대는 건 어렵다. 심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병원에서 해야겠다. 그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하는 거지? 전공이 뭐야?”

이정호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가 아니야.”

“어? 그럼 설마 PA야?”

“아니. 아예 의료 관련 면허가 없어.”

손성현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한 후에는 크게 당황했다.

“설마 무자격자에게 수술을….”

“어.”

“와. 매형? 미쳤어? 그런 사람을 뭘 믿고?”

“수술은 같이 진행할 거야. 서로 맡은 부분도 달라. 그리고 연지의 병은 그 사람이 도와줘야만 수술할 수 있다.”

손성현이 화를 냈다.

“아니, 매형. 그러다 걸리면 면허만 날아가는 게 아니야. 징역 살아! 날아간 면허는 나중에 손을 쓰면 살릴 수 있겠지만, 교도소는 어쩔 거냐고! 그동안 쌓은 명성은 또 다 어쩌고. 매형 진짜 미친 거 아냐?”

손미연은 너무 놀라서 옆에서 입을 막고 서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손성현!”

“으, 응?”

“내 딸을 살리겠다는데 미쳤냐니! 지금 교도소가 문제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다 해야 할 거 아냐!”

“그, 그렇지?”

이정호가 부탁했다.

“성현아. 네가 도와줘야겠다.”

“어? 아니, 걸리면 내 면허도 취소될 텐데?”

손미연이 주먹을 들었다.

“야. 말로 할 때 도와줘라.”

“누나. 그게 말이야….”

이정호가 또 부탁했다.

“이 수술실도 좀 빌리자.”

손성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손성현의 성형외과 수술실이다. 이 병원에서는 큰 규모의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수술실 설비는 높은 수준으로 갖추어놓았다.

“어…. 매형. 설마 그래서 여기부터 보자고 한 거야?”

“수술이 가능한 수준인지 확실히 확인해야 하니까.”

“여긴 성형외과인데?”

“필요한 장비는 다 있잖아.”

손성현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아! 에크모 필요하지 않아? 우리 병원에는 그거 없는데?”

“에크모는 못 쓴다. 케이타이거 증후군은 그거 쓰면 바로 테이블 데스야.”

손성현이 두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했다.

“자자. 진정들 하고. 응? 이거 걸리면 면허만 날아가는 게 아니잖아? 9시 뉴스에도 뜰 거고, 매형 명성에 우리 면허에 내 병원까지 다 날아간다고.”

손미연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나와! 이 배신자 새끼! 가족도 모르는 새끼!”

손미연은 그냥 누나가 아니다. 손미연이 어릴 때 더 어린 손성현을 업어 키운 엄마 같은 누나다.

“아니. 내가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리고 이연지는 수시로 찾아와서 놀다 가는, 노총각인 손성현에게는 반쯤 딸 같은 조카다.

손성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술하면 나을 수 있어?”

이정호가 조금 밝아진 얼굴로 설명했다.

“수술하면 완치 확률은 50퍼센트다.”

“겨우 50?”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100퍼센트다. 그것도 높은 확률로 100일 안에.”

손성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이러면 안 도와줄 수가 없잖아. 안 들킬 자신은 있지?”

“우리만 입 다물면 누가 알겠냐?”

“그러니까 의사 두 명. 간호사 한 명. 의료 면허가 아예 없는 사람 한 명으로, 그 수술을 해내야 한다고?”

“그것도 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하지.”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어떻게 그런 수술이 가능한 거야?”

이정호가 말했다.

“나도 어떻게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몰라. 이해도 가지 않고.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의료법을 어기더라도, 난 내 딸만 살릴 수만 있으면 돼.”

손성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하자고. 수술날짜 정해지면 예약 다 미루고 우리 직원들은 며칠 휴가 보내야겠다.”

“고맙다! 성현아!”

손미연이 성형외과 의사 손성현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난 네가 사람 구실을 하는 날이 영원히 안 올 줄 알았는데, 왔어! 그게 오늘이었어!”

***

이튿날 이연지가 피시방으로 찾아왔다.

나강인이 물었다.

“또 밥 먹으러 왔냐?”

“넹! 오늘도 아저씨가 밥을 파는 날이라고 해서요.”

그녀는 아예 피시방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와 투덜댔다.

“오늘은 아주 많이 먹을 거예요. 며칠 뒤부터는 못 먹거든요.”

“왜?”

“저 곧 수술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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