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19화 (119/411)

119. 불법 닥터 III

차은서는 이연지가 수술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 왜? 어디 아파? 설마 큰 병은 아니지?”

이연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아니에요. 전 괜찮은데, 아빠 말로는 지금 수술해야 한대요. 그래야 나중에 고생 안 한대요.”

차은서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큰 병은 아니라니까 다행이다.”

나강인이 이연지를 물끄러미 보았다.

‘수술받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는 건 알려주지 않았구나.’

왜 그랬는지는 짐작이 갔다.

‘어차피 약이 없는 병이니까, 남은 인생을 병실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겠지. 걱정은 부모의 몫으로 남기면 되니까.’

나강인은 오늘 볶음밥을 팔 생각이었다. 야전 전술 요리 스킬을 쓰면 간단히 대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뀌었다.

“오늘은 분식으로 가자.”

이정호는 아직 그 병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그래서 일반적인 예방 조치를 다양하게 했는데, 그중 하나가 분식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예방 조치가 명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라서, 먹는 걸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와아! 나 분식 진짜 좋아하는데! 떡볶이도 돼요?”

- 됩니다.

나강인이 선언했다.

“너는 오늘 전설의 떡볶이를 먹게 될 거다.”

***

이정호가 외과 의사 김중석에게 말했다.

“수술하기로 했다.”

김중석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곧바로 얼굴 전체가 환하게 변했다.

“드디어! 진짜 잘됐습니다. 과장님.”

“그래. 잘됐지.”

“그럼 우리 병원에서 수술하는 거죠?”

“어…. 아니. 수술은 다른 곳에서 하고 그 후에는 우리 병원에 입원시킬 건데, 그땐 네가 신경 좀 많이 써줘.”

“당연하죠! 그럼 수술은 어느 병원에서 하나요?”

“어….”

“표정이 왜 그러세요?”

“그게 말이야. 아니야. 너는 모르는 게 나아.”

이정호는 말을 아꼈다. 그런데 김중석은 나강인을 이미 만나봤다.

“나강인 씨가 혹시 자격 취소…. 맞군요. 수술실에 들어가면 안 되는 사람이죠? 그래서 그렇게 찾을 수가 없고, 연락도 안 되던 거였죠? 그래서 제가 피시방에서 물어봤을 때 면허가 없다고 말했던 거죠?”

“그게 아니라….”

“아니긴요. 저한테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잖아요. 저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말이야. 의사가 아니더라고.”

“예. 면허가 취소….”

“의대는 다녀본 적도 없대.”

“네?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데요? 그럼 그 사거리 교차로 사고 때는 어떻게 상처를 봉합한 거랍니까?

“인터넷에서 보고 배웠다더라.”

“네?”

이정호가 나강인이 둘러댄 이야기를 그대로 김중석에게 전했다.

김중석은 당황한 얼굴로 그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손을 보았다.

“와. 내가 의대 6년에 수련 과정 다 거쳐서 겨우 지금 수준이 됐는데, 누구는 인터넷으로 독학해서 그런 실력을….”

“되는 사람이 있더라고.”

“과장님. 자괴감이 듭니다.”

“그래도 환자의 병은 네가 훨씬 더 잘 알아. 그 사람은 감기 진단도 할 줄 모른다고 했으니까.”

김중석은 쉽게 납득했다.

“봉합 기술만 집중해서 팠나 보군요.”

“아마 그렇겠지.”

“그래서 수술은….”

“이건 널 믿으니까 하는 말이다. 우리 처남 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예? 거기는 성형외과 아닌가요?”

“맞지.”

“거기서 어떻게요?”

이정호가 계획을 설명했다.

김중석이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물었다.

“마취과 의사는 구하셨고요?”

“아니. 비밀을 확실히 지켜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처남 시키려고. 걔가 마취전문의 자격은 없지만 그쪽으로 경험이 좀 있어.”

“그럼 마취는 과장님 처남한테 맡기고, 수술 보조는 제가 하면 되니까….”

“어? 너도?”

“왜요? 연지 일인데 설마 저를 빼놓고 하려고 하셨어요? 저만큼 그 수술 보조를 잘하는 사람이 국내에 또 어디 있다고요.”

이정호가 말렸다.

“야. 이거 들키면 의사 면허 취소는 기본이고 너까지 징역 살 수 있어.”

“안 들키면 되죠. 우리끼리만 입을 다물면 됩니다. 다들 입은 무겁죠?”

“이 수술에 참여한 사람은, 누가 입을 열든 모조리 체포될 거야. 특히 나는 들키면 교도소 직행이지. 주범이니까. 그러니까 입을 열 사람은 없다.”

“우리끼리는 그런데, 나강인 씨도 비밀을 확실히 지켜줄까요?”

“우리보다 유명한 사람이니까 더 조심하겠지.”

“아. 하긴.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밤에 우리 수술 연습용 더미로 손 맞춰보기로 했다.”

“잘하셨습니다. 연지 수술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할 수는 없죠. 저도 가겠습니다.”

***

그들은 그날 밤에 성형외과 수술실에 모였다.

김중석이 나강인에게 인사했다.

“그때 병실에서 봤을 때는 설마 이런 능력이 있는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질병 치료는 못 합니다. 그저 부상 응급처치만 좀 하는 거죠.”

“조금이 아니시던데요.”

“혹시 보라에게 이 이야기를 하실 겁니까?”

김중석이 손을 흔들었다.

“이 일은 오늘 여기 있는 사람만 알아야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연지한테도요.”

이정호가 수술대에 모형 장기와 혈관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혈관 모양이 특이했다. 마치 복잡하게 꼬인 넝쿨 같았다.

이정호가 설명했다.

“이건 연지의 케이타이거 증후군에 맞춰 특별히 주문한 더미입니다.”

김중석도 말했다.

“주문제작이라 돈이 많이 드는데, 그래서 일부러 여러 개 주문했죠. 그럼 단가가 좀 싸져서요. 저랑 과장님이 이걸로 연습도 많이 하고 테스트도 많이 했는데, 거의 다 써서 세 개밖에 안 남았네요.”

“어차피 이번 수술 후에는 이 더미는 필요 없어. 오늘 다 쓰자.”

이정호가 나강인에게 설명했다.

“심장을 일부러 정지시키고 수술하는 방법은 쓸 수 없습니다.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일단 멈춘 심장은 무슨 수를 써도 다시 뛰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십니까?”

“모릅니다. 이 병이 처음 발견된 건 겨우 2년 전입니다. 희귀질환이라 임상 데이터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뭔가 더 있군요.”

“최근에 미국에서 본 케이스는, 아이 아버지가 저와 같이 이 병을 발견한 의사입니다.”

나강인은 멈칫했다.

“어….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공교롭군요. 세 분이 같이 연구하셨다면서요? 다른 한 분은요?”

“그 친구는 자식이 없습니다.”

“아.”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 병을 발견한 것 때문에 저주라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마치 피라미드의 저주처럼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만.”

이정호가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흩어버리고 말했다.

“자. 시작하시죠. 이 수술은 속도가 생명입니다.”

더미를 이용한 연습은 원활하게 진행됐다.

이정호가 장기와 혈관을 절개하고 성형하면 나강인이 바로 봉합했다. AI 전지인이 혈관의 예상 위치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덕분에 나강인은 붉은색으로 물들인 액체나 더미 장기 내부에 숨어있는 혈관도 볼 수 있었다.

나강인의 실력을 테스트한 후부터 분위기가 굉장히 밝아졌다.

이정호는 희망에 가득 차서 수술 계획을 브리핑했다.

나강인이 그걸 보며 작게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냐?”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모르겠습니다.

“봉합은 네가 다 할 거잖아.”

- 저는 요원님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해력도 요원님과 비슷합니다.

AI 전지인이 전투를 지원하거나 응급 수술을 할 때는 외부 독립모듈을 사용해 필요한 움직임을 계산한다. 그 방식은 마치 사람이 컴퓨터나 전문 장비를 쓰는 것과 비슷했다.

“야. 내가 이런 것만 잘 모르지, 평소에는 번뜩이는 지혜로 본질을 파악하거든?”

- 저도 그렇습니다.

성형외과 의사 손성현이 수술 계획을 들으며 나강인에게 말했다.

“우리 병원에 오시는 게 어때요? 실력 보니까 정교한 수술을 정말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가 손을 잡으면 돈을 쓸어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걸리면 손잡고 유치장에 들어가고요?”

“아…. 의사가 아니셨지. 실력이 워낙 대단해서 저도 모르게 착각했습니다. 하, 하하. 진짜 의사 아니세요?”

***

수술은 이틀 뒤로 잡혔다.

이연지의 부모와 김중석은 휴가를 내고 수술을 준비했다. 성형외과 원장인 손성현은 직원들에게 휴가를 며칠 주고 병원 문을 닫았다.

손성현이 불평했다.

“필요한 약품이 모자라. 혈액은 또 어디서 구하냐고.”

이정호가 말했다.

“어차피 걸리면 우린 다 감옥에 가. 약품과 혈액은 나랑 네 누나가 서류를 조작해서라도 구해야지.”

“우리 진짜 막 나가는구나. 걸리면 진짜 처벌이 장난 아니겠어.”

“넌 불평할 시간에 수술실 세팅이나 더 신경 써라.”

***

배우들이 마약 조직에게 습격당했다가, 거꾸로 마약조직만 전멸한 일은 외국 언론에도 나왔다.

오메가테크의 사장 스칼렛 켈리가 그 기사에 나온 사진 한 장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 한국어를 잘한다.

그녀가 한국 사이트에서 신은하의 다른 사진을 검색했다. 그러다 신은하의 옷에 구멍이 난 다른 사진을 찾아냈다. 그 사진은 화질이 꽤 높았다.

게다가 그 사진에는 겉옷이 살짝 들려 속에 입은 것이 살짝 노출되어 있었다.

그녀가 그 부분을 확대했다.

“이거 그거지? 철인기공의 드래곤 플레이트.”

그녀의 친구이면서 비서인 제시카가 보고할 게 있어서 들어왔다가 그 사진을 보았다.

“응. 맞아. 그거야.”

“이걸 왜 이 여자가 입고 있어? 이건 철인기공이 정부 대상으로만 팔고 민간 판매는 아직 안 하는 거 아녔어?”

“알아볼게.”

스칼렛이 다른 사진을 띄웠다.

사진 속의 나강인은 오른손으로 화살을 잡고 왼손에는 기절한 조직원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이 뒷모습만 나온 이 사람, 나강인 맞지?”

“음…. 난 뒷모습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화살을 맨손으로 잡은 걸 보면 아마 맞겠지?”

“만나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싶다. 한국에 갈까?”

제시카가 태블릿PC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고서를 띄웠다.

“안돼. 보안 위험 첩보가 들어왔어. 한국에 지금 갔다가 또 습격당하면 이번엔 정부에서 화 많이 낼 거야.”

스칼렛이 투덜댔다.

“쳇. 꼬시러 가야 하는데 친구가 방해를 하네.”

“보안 위험은 나 때문에 생긴 게 아니잖아.”

스칼렛이 다시 화면을 보았다.

“어쨌든 신은하가 드래곤 플레이트를 가지고 있단 말이지. 탐나는데?”

***

이연지의 수술 전날에 신은하가 나강인을 찾아왔다.

“내일 바빠?”

“응. 바빠.”

신은하는 당황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왜?”

“내일 야외 행사가 하나 있거든. 거기 같이 가자고 하려고 했지.”

“네가 뛰는 행사냐?”

“아니. 좋은 뜻으로 열리는 야외 그림 전시 행사야. 난 그냥 손님으로 초대받은 거라서 구경만 하다 오면 돼.”

그녀가 손가락으로 눈 근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인 오빠가 해주는 메이크업도 그림 그리는 기법으로 한 거라며. 그림에 관심이 많아 보여서 같이 가려고 했지.”

“내일은 안돼. 선약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칫.”

***

그 야외 그림 전시 행사의 공동주최자는 배우 김유찬이다. 그는 동료 연예인과 배우들에게 시간이 되면 들러서 구경이라도 하라는 전화를 돌렸다.

이보라가 물었다.

“네? 내일 그 행사에 은하도 온대요?”

- 어. 와서 우리 그림들을 구경하고 간대. 좋은 뜻으로 하는 행사니까 너도 시간 되면 와. 수익금은 다 기부할 거니까 그림을 사주면 더 좋고.

“흐음.”

이보라가 머리를 굴렸다.

‘은하가 거기를 혼자 갈까? 아니지. 어떻게든 강인 오빠도 데려가려고 하겠지?’

그녀가 결정했다.

“갈게요.”

‘가서 사이에 끼어들어야겠다.’

***

이튿날 이연지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물었다.

“왜 아빠가 일하는 병원이 아니라 외삼촌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데?”

이정호가 거짓말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서 그래.”

“흐응. 이상한데. 여기 성형외과인데. 설마 내 얼굴 고치려고 그러나? 나 외삼촌 실력 못 믿는데. 지금 내 얼굴이 마음에 드는데.”

이정호가 얼른 말을 돌렸다.

“수술 끝나면 네가 뭘 먹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해라. 배우가 되겠다고 해도 밀어줄게.”

“어? 진짜?”

김중석이 옆에서 말했다.

“내 사촌 동생이 이보라인 건 알지? 내가 보라한테 좋은 연기학원 추천해달라고 할게.”

“에이. 보라 언니하고 은하 언니는 나도 알거든요? 난 나강인 아저씨도 알아요. 전에 파티에서 보니까 그 아저씨는 손태민 감독님이랑 김유찬 오빠랑도 잘 알던데. 와. 내 인맥이 더 쩌는 거 아녜요?”

“어? 어. 그래. 네가 이겼다.”

손미연이 이연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 퇴원하거든 하고 싶은 거 다 해. 엄마가 밀어줄게.”

“엄마는 왜 울려고 하는데? 나 쪼끔 불안해지는데? 나 혹시 심각한 병에 걸린 거야?”

“아니야. 그냥 네 몸에 칼을 대니까 눈물이 나서 그래.”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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