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21화 (121/411)

121. 교환

합동수사본부는 강남 자칼 사건 때 만들어져서 아직도 활동 중이다.

정기 회의에서 합수부장이 말했다.

“청평호수 사건 말입니다. 그것도 우리한테 오지 않겠죠?”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은 소속 부서의 일을 평소처럼 하면서 합수부의 일도 추가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지 않고 합수부 활동이 이대로 끝나길 바란다.

경찰 간부가 손을 흔들었다.

“에이. 설마요. 그건 마약과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습니다. 어디 마약과만 그런가요? 살인사건도 얽혀 있고 군침 삼키는 곳이 많아서 굳이 우리가 맡을 필요는 없습니다.”

합수부장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네요. 나강인이 거기 있었다고 해서 걱정했습니다.”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도 처음 강남 자칼 사건 때는 합수부에 와서 실적 좀 챙기나 했는데.”

간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범인들이 다 체포된 사건들이라서 남는 건 별로 없는데, 그놈들이 국제적으로 얽혀 있어서 처리해야 할 일만 많았죠. 후우.”

“그러게요. 집에도 못 가고. 하아.”

합수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 사건이 아니라니까, 어디 마음 편하게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안 그래도 나강인이 개입한 사건이라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합수부도 조회 권한이 있으니까요.”

경찰 간부가 청평호수 마약조직 일망타진 사건을 간단히 브리핑했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까지 들은 후에 합수부 간부들이 편한 분위기로 말했다.

“나강인 말입니다. 소수의 적을 분할 공격해서 처리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요.”

“예전 전투 기록만 보고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혼자서 다수의 적과 싸우는 것도 잘하는군요.”

“혼자는 아니죠. 뒤에 배우들이 있었다면서요.”

“그 배우들은 전투부대가 아니라 지원부대였죠.”

아는 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 적 부대를 잘게 나눠서 각개격파하는 거야 전술의 기본이지만, 전쟁터에서는 불리해도 전면전을 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을 안 만들어야 우수한 지휘관 아닙니까?”

“아군이나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적이 더 강해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겁니다. 이번처럼요.”

“적이 더 강했다고요? 그렇게 보기에는 결과가….”

합수부장이 말했다.

“가볍게 듣자고 한 이야기로 왜 흥분을 하고 그러십니까? 나강인이 군대 지휘관도 아닌데요.”

“아. 그렇죠.”

다른 간부가 물었다.

“아. 그런데 신은하가 입고 있었다는 그 방탄조끼 말입니다. 그거 드래곤 플레이트 아닙니까?”

“저도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사진을 봤는데요. 맞는 것 같던데요?”

“철인기공의 명품을 민간인이 도대체 어떻게 손에 넣은 겁니까? 나도 하나 구해보려다가 방법이 없어서 포기한 건데 말이죠.”

“나강인이 철인기공의 드래곤 플레이트 개발팀장이라면서요. 나강인과 신은하가 아는 사이니까, 선물이라도 한 걸까요?”

“선물이요? 개발팀장이라고 해서 그걸 빼돌릴 순 없을 텐데요?”

다른 간부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출처가 나강인이 아닐 겁니다.”

“그럼요?”

“THO 엔터 사장이 철인기공 사장의 둘째 아들이잖습니까? THO가 제작한 영화에 신은하가 나왔고요. 그러니까 이태호 사장이 선물했겠죠.”

“둘째 아들이요? 저는 합수부 회의에서 못 들어본 이야기인데요?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우리 아들이 신은하의 팬이라서 좀 파다 보니까….”

“아드님이 초등학생 아닙니까?”

“어….”

“본인이 팬이신 거 아니고요?”

“하, 하하.”

그 간부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나강인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설마 또 사건과 엮인 건 아닐 테니까,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어디서 뭐 하는지 하나도 모르고 싶습니다.”

합수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자자. 우리 합수부는 며칠 안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해산할 겁니다. 그동안 각자 하시는 일에 합수부 일까지 추가로 하느라 고생들 많이 하셨는데, 오늘 저녁에 같이 한잔 어떠십니까?”

“좋지요. 오늘 술이 참 맛있겠습니다. 하하하.”

***

이연지의 수술은 끝났다. 나강인이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다. 그는 수술실의 돌발상황까지 해결했다.

나강인이 병원에서 나왔다. 그가 수술에 참여했다는 걸 이연지에게 비밀로 했기 때문에, 인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나왔다.

그는 병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음?”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 모두 신은하의 전화였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사람이 이렇게 느긋함이 없다. 나 없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려고 말이야.”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편에서 받는소리가 났다.

“겨우 몇 시간 안 받았다고 이렇게….”

- 보라가 벌써 몇 시간째 사라졌어!

“어? 내가 아니라?”

-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신은하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나강인은 신은하가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상황을 설명해.”

- 내가 어제 강인 오빠한테 오늘 야외 그림 전시회에 같이 가자고 했잖아.

나강인은 수술에 참여해야 해서 갈 수 없었다.

- 근데 내가 예정보다 좀 늦게 왔거든? 보라가 먼저 왔다는데, 안 보여!

“보라와 거기서 만날 약속을 했는데 사라진 거야?”

- 아니. 난 보라가 오는 줄도 몰랐어.

“그럼 그냥 전시회를 보다가 다른 곳에 갔을 수도 있잖아.”

- 보라 차가 공원 주차장에 그대로 있단 말이야! 그리고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다고! 지난번에도 갑자기 사라져서 확인하니까 납치됐었잖아! 또 그러면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는 했어?”

- 못했어.

“의심되면 신고부터 해.”

- 보라가 지난번 사건이 기사화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신고하면 뉴스에 뜰지도 몰라. 내가 단순히 착각한 건데 그런 뉴스가 또 나가면 안 된단 말이야.

전례가 없는 일이라면 의심하지 않겠지만, 이보라는 이미 납치당한 이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신은하가 걱정하는 걸 이해했다.

“내가 지금 거기로 갈 테니까, 주소 보내라.”

***

나강인이 야외 그림 전시가 한창인 공원에 도착했다. 통화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서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신은하는 김유찬과 함께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강인이 그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보라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어디야? 거기부터 찾아보자.”

“아! 왔구나!”

신은하가 앞장섰다.

“이쪽이야. 빨리 가자!”

김유찬은 신은하만큼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신은하를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은하야. 연예인이 전화 꺼놓고 잠수 타는 건 흔한 일이야. 나도 가끔 그런다? 그리고 연예인이 아니라도 원래 통화 안 되는 경우는 많아.”

“은하가 저번에 나쁜 놈들에게 납치됐었으니까 그러죠.”

“그놈들은 다 잡혔잖아. 그리고 납치가 무슨 경력이냐? 한 번 잡혔다고 또 잡히게.”

“그렇죠? 괜찮겠죠?”

김유찬은 지금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당연하지. 보라를 납치한다고 해서 돈이 왕창 생기는 것도 아닌데 누가 그러겠어.”

***

이보라는 머리에 검은색 봉투를 뒤집어쓰고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녀가 덜덜 떨었다.

“누, 누구세요? 저한테 왜 이래요?”

두목이 짜증을 냈다.

“이런 걸 데려오면 어떻게 해!”

이보라를 납치한 놈은 셋이다. 조장이 변명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그 방탄조끼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셔서….”

“반드시 방탄조끼를 벗겨 오란 말이었다!”

“저희도 그러려고 했는데, 방탄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트렁크에 집어넣은 겁니다.”

“젠장. 항상 입고 다니는 게 아니었나?”

“아닌가 봅니다.”

다른 부하가 옆에서 말했다.

“형님. 여배우가 실종되면 경찰이 움직일 겁니다.”

“알아. 저 멍청한 새끼가 다음 기회를 노릴 생각은 안 하고…. 차 이사는 뭐 저런 걸 나한테 맡긴 거야?”

씩씩거리던 두목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후우. 일단 챙길 것부터 챙기자. 그 방탄조끼는 지금 어디 있대?”

조장이 대답했다.

“저 여자를 방금 트렁크에서 꺼내서 의자에 묶느라 아직….”

“이 새끼들이 진짜 아마추어처럼 일할래?”

“죄송합니다.”

“됐다. 이 새끼들아. 내가 직접 물어본다.”

두목이 이보라에게 다가갔다.

“어이. 신은하. 우리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드래곤 플레이트. 그것만 넘겨주면 넌 어디 안전한 곳에 떨궈줄게. 우리도 경찰을 상대하긴 싫거든. 그게 서로 윈윈이잖아?”

이보라가 다급히 외쳤다.

“전 은하가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저 이보라예요! 이보라!”

두목은 당황했다. 그는 얼른 옷으로 얼굴을 가린 후에 이보라의 머리에 씌운 봉투를 위로 들어 올렸다.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봉투에 걸려서 벗겨졌다.

이보라의 얼굴은 드라마에 자주 나온다. 그래서 두목도 그녀의 얼굴을 안다.

“신은하가 아니잖아!”

두목이 봉투를 도로 이보라의 얼굴에 씌운 후에 당황한 얼굴로 부하들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보라를 납치한 조장도 당황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합니다. 몸매도 비슷하고, 특히 구두가 똑같았는데….”

“저거 데려올 때 얼굴 확인 안 했어? 왜!”

“그게, 갑자기 다른 관람객이 나타나는 바람에, 일단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려고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머리에 봉투를 씌워서 데려오느라….”

두목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두목이 숨을 몰아쉬며 욕을 했다.

“씨발. 선금은 이미 받았는데 엉뚱한 년이나 납치해? 우리가 받은 게 어디 보통 선금이야? 다 뒈지고 싶어?”

조장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형님.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너는 이제 생각을 하지 마!”

“이보라의 몸값으로 드래곤 플레이트를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어? 누구한테?”

“당연히 신은하죠.”

두목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자세히 말해봐.”

“구두까지 맞춰 신는 걸 보면 둘이 굉장히 친할 겁니다. 그러니까 신은하에게 연락해서, 이보라의 몸값으로 드래곤 플레이트를 요구하는 겁니다.”

두목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거 그럴듯한데?

그가 이보라에게 물었다.

“어이. 연예인 아가씨. 신은하하고 얼마나 친해?”

이보라는 사이가 나쁘다고 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대답했다.

“친해요! 엄청 친해요! 절친이에요! 영혼의 단짝이에요!”

“확실해?”

“걔랑 저랑 어린이집부터 친구였어요!”

그건 사실이다. 싸우게 된 건 서로 다른 중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다.

“친구 잘 둬서 사는 줄 알아.”

살려준다는 말에 이보라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고맙습니다!”

두목이 부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 여자 스마트폰 가져와라.”

***

나강인이 공원 외진 곳의 잔디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여자 구두를 신은 사람이 누군가의 공격에 저항한 흔적이 있어.”

AI 전지인이 말했다.

- 청평호수 전투에서 신은하가 신었던 구두와 발자국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거 은하가 며칠 전에 신었던 구두와 밑창 모양이 같은데?”

김유찬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깜짝 놀랐다.

“아! 오늘 보라가 신고 온 구두! 은하와 같은 수제 구둣가게에서 산 거라고 했는데! 모양이 진짜 똑같았다고요!”

“역시 이건 보라의 발자국입니다. 그런데 보라를 공격한 놈은…. 셋입니다. 형태로 보면 남자 셋이겠군요.”

신은하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강인 오빠. 그럼 보라는….”

“여기서 납치됐다고 봐야지.”

“어떡해!”

“은하야. 이제 이제 기사가 나가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야. 신고하자. 박기정 형사에게 연락하면 기사화되는 건 늦출 수 있을 거다.”

박기정은 지난번에 이보라가 납치됐을 때 같이 찾아 나선 형사다. 박기정은 그때도 기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괜찮을까?”

“납치가 확실해. ”

“알았어. 내가 전화….”

신은하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이름은 이보라였다.

신은하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흥분했다.

“보라다! 보라야! 봐! 멀쩡하잖아! 그냥 전화 잠깐 꺼놨었나 봐!”

그녀가 전화를 받으며 화를 벌컥 냈다.

“야! 너 어디야! 네 이년! 내가 네년을 잡아다 매우 칠 것이다!”

휴대폰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 이보라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신은하는 당황했다.

“어? 어? 너 누구세요?”

- 경찰에 신고하면 이보라는 죽는다.

신은하가 다급히 말했다.

“어? 아냐! 안 했어! 신고 안 했다고!”

- 어디냐고 한 걸 보면, 이보라를 찾고 있던 것 같은데.

나강인이 신은하의 옆에서 휴대폰 가까이에 귀를 댔다. 그러면서 계속 말하라고 신호했다.

“언론에 안 좋은 기사가 뜨면 보라 이미지가 망가지니까, 그냥 몇 시간 전화가 꺼진 정도로는 이제 신고 안 해! 그래서 안 했어!”

- 현명하군. 우리의 요구사항을 말하겠다.

신은하는 납치범이 당연히 돈을 요구할 줄 알았다.

- 드래곤 플레이트를 가져와라. 그러면 이보라를 풀어주겠다.

신은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 어? 드래곤 플레이트를 왜….”

- 이보라를 살리고 싶지 않나?

“알았어. 줄게! 주면 되잖아!”

- 물건은 지금 어디 있지?

신은하는 지난번 청평호수 때 드래곤 플레이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래서 오늘 야외 공원에 올 때도 보험 삼아 입고 왔다.

“내가 지금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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