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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123화 (123/411)

123. 미행

철인기공 본부장 이태성이 설계팀 차지희에게 말했다.

“우리 설계 모델은 실패했다는 거군.”

나강인과 AI 전지인이 설계하는 드래곤 플레이트는 개인 맞춤형이다. 그건 사용자가 체중이 불어나 배만 나와도 방어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매번 설계를 새로 해야 해서 생산속도가 너무 느리다.

철인기공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양산형을 제안했다. 기존 사용자와 체형이 유사한 사람에게는, 기존 설계를 그대로 적용해 제작 후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을 쓰면 기존 설계도면으로 몇 개씩 더 만들어뒀다가, 신규 구매자의 신체 조건이 기존과 유사하면 즉시 판매할 수 있다.

나강인도 손해 볼 게 없어서 그러라고 동의했다.

그런데 나강인은 설계가 본업이 아니다. 설계에 시간을 많이 쓰지도 않는다. 나강인이 개인특화 도면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드래곤 플레이트는 생산할 수 없다.

기본형의 생산량이 부족하면 양산형으로 쓸 설계도면이 충분히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철인기공은 자체적으로 드래곤 플레이트를 설계해 제작할 계획을 세웠다. 전담 설계팀이 그동안 연구한 걸 토대로 도면을 만들었다. 그런 후에 그 도면으로 드래곤 플레이트를 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시제품은 권총탄 한 발도 막지 못했다. 설계팀은 그걸 나강인에게 가져가 분석을 의뢰했다.

철인기공이 자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으면, 나강인이 하나하나 설계하느라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철인기공이 자체적으로 설계할 때도 로열티를 받으면 수입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강인은 AI 전지인에게 분석을 맡겼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설계팀 차지희가 말했다.

“나 팀장님이, 참 그럴듯한 고철을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이태호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부끄럽네. 드플 설계팀이 그동안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총력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쓰레기라니….”

“죄송합니다.”

“음…. 그럼 우리가 지금 방식으로 계속 연구하면 희망이 있을까?”

“헛고생만 하고 성과는 전혀 없는, 수렁에 스스로 빠지는 바보짓이라고… 나 팀장님이 말했습니다.”

***

나강인은 인질 교환장소에 오는 도중에 제작 거점에 들렀다. 그런데 거기서 자전거만 챙긴 게 아니다. 납치범에게 던져줄 쓰레기도 가져왔다.

이보라가 신은하에게 물었다.

“강인 오빠 공방에 들렀는데 왜 같이 안 왔어?”

“왔어.”

이보라가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디?”

“저 산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어. 우리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바로 나타날 거야.”

이보라가 두 손을 맞잡았다.

“역시 강인 오빠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 응? 그럼 저놈들이 다 도망간 지금은 왜 안 오는데?”

***

납치조 조장은 부하 한 명만 데리고 인질을 교환했다. 나머지 한 명은 근처 산에 올라가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오지 않는지 감시했다.

그는 인질과 물건의 교환이 끝나는 걸 보고 대포폰을 꺼내 조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저도 그만 갈까요?”

- 너 아직도 안 내려왔냐?

“말씀이 없으셔서….”

- 빨리 튀어와. 얼른 여길 뜨자.

“예!”

조직원이 아래쪽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나강인은 산에서 내려가는 조직원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악자전거는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누가 드래곤 플레이트를 손에 넣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 적 정찰병을 추적해 적의 본대를 찾아내십시오.

“그러려고 했다.”

***

납치범 둘은 산 아래쪽에 차를 대놓고 다른 놈을 기다렸다. 산 위에서 경찰이 오는지 감시하던 조직원이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조장이 짜증을 냈다.

“빨리빨리 다녀!”

“헉헉. 형님. 저 산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가자.”

“아, 예.”

세 사람이 탄 차가 그 장소를 떠났다.

나강인은 그때까지 산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시하던 놈을 바로 뒤따라 내려가면 산 아래에서 기다리는 놈들이 그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납치조의 차가 출발한 후에 개조 산악자전거에 올라탔다.

“간다.”

- 산뽕에 주의하십시오.

그는 산악용 자전거를 사서 지구연합군 전술 자전거를 목표로 개조했다. 그런데 현재 구할 수 있는 부품은 그가 원하는 만큼 튼튼하지 않았다. 오토바이용 체인을 사서 개조하고 일부 부품은 직접 제작했는데도 부족했다.

나강인이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되는 다리 힘으로 페달을 콱 밟았다. 체인이 팽팽하게 펴지며 기어의 톱니바퀴를 당겼다.

산악자전거가 산 아래로 튀어나갔다. 구동계 부품이 모조리 비명을 질렀다. 체인과 기어가 갈려 나가며 톱니바퀴에서 불꽃이 튀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자전거는 속도가 쉽게 빨라진다. 거기다 나강인이 강화된 다리로 페달을 힘껏 밟았다.

개조 산악자전거는 산기슭을 나는 것처럼 달렸다. 너무 빨리 달려서 나무나 돌에 충돌할 위험이 급격히 커졌다.

AI 전지인은 AR 렌즈를 통해 실시간으로 진행 경로를 표시했다.

이 속도로 가면 안전한 길은 없다. AI 전지인이 보여주는 경로는 위험하긴 하지만 통과가 가능한 길이다.

나강인이 그 경로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눈앞에 기다란 나뭇가지가 나타났다. 나뭇가지 주변에 위험표시 홀로그램이 번쩍였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대로 충돌하면 채찍에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재빨리 자전거를 옆으로 눕히고 상체도 비틀어 나뭇가지를 피했다. 그런 후에 다시 균형을 잡으며 물었다.

“더 안전한 길은 없냐?”

- 이게 최선입니다.

“그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

이번엔 바위가 나타났다. AI 전지인이 굵은 가지에 반투명한 화살표를 달았다.

나강인이 달리면서 그 나뭇가지를 잡아채 강하게 당겼다.

“으차!”

자전거의 방향이 급격히 꺾였다. 그의 체중과 자전거의 무게를 팔이 온전히 감당했다.

나무는 그러지 못했다. 갑자기 굵은 가지가 뚝 부러졌다.

바위를 비껴가는 방향으로 자전거의 진행방향을 틀긴 했지만,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충분히 회전하지 못했다. 이대로면 바위 끝부분에 자전거의 옆면이 충돌한다.

나강인이 바위를 발로 밀어 찼다. 진행방향이 조금 더 틀어지며 자전거가 바위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야! 저 가지 잡으면 피할 수 있다며! 부러졌잖아!”

- 나무가 예상보다 약합니다.

“그런 거 딱 보면 모르냐?”

- 요원님의 눈을 통해 봐서 그렇습니다.

“그래. 이번엔 내 눈….”

나강인이 갑자기 산악자전거를 탄 채로 점프했다. 자전거가 도랑을 뛰어넘었다.

“지인아! 진짜 너 믿고 이 속도로 내려가도 되냐!”

-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급격한 경사가 어느새 끝났다.

나강인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조금 더 달려 산을 빠져나왔다.

그는 조금 전에 차가 서 있던 곳에 도착한 후에 자전거를 세웠다.

“후우. 이거 위험하긴 했는데.”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짜릿한 맛이 있다?”

- 산뽕이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나강인이 차가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납치범들의 차는 조금 전에 산모퉁이를 돌아가서 보이지 않았다.

“저놈들이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추적하는 게 어렵지 않겠지. 저놈들도 어느 정도까지는 CCTV를 피해서 저런 길로 갈 테고.”

문제는 저 차가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에 올라간 후다. 그때부터는 차가 필요했다.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저 출발할 테니까 보라는 안전한 곳에 내려주고 따라와라.”

- 지금 어딘데?

“가면서 계속 위치 알려줄게.”

***

신은하가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보라야. 강인 오빠가 어디 있냐고 물었지? 지금 막 널 납치한 놈들을 잡으려고 출발했어.”

이보라가 걱정했다.

“그놈들은 위험하잖아!”

“그놈들이 위험하지.”

이보라는 오늘 납치된 후부터 풀려날 때까지 계속 트렁크에 갇혀 있었다. 의자에 잠시 묶여 있었을 때도 얼굴에 검은색 봉투를 쓴 상태로 협박당했다.

그녀는 나강인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청평호수에서 봤다. 그런데도 몇 시간 동안 하도 겁에 질려서 아직도 그놈들이 무서웠다.

“그래도,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아?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우리가 알아서 할게. 강인 오빠가 넌 안전한 곳에 내려주고 따라오랬어. 파출소나 경찰서 보이면 내려줄게.”

이보라가 망설였다.

“나만?”

“음.... 유찬 오빠도 같이 내려줄게. 믿음직스럽진 않겠지만.”

김유찬이 불평했다.

“야. 내 별명이 야수성 꽃미남인 건 아냐?”

이보라가 말했다.

“나도 따라갈래.”

“어? 보라야. 넌 내가 그렇게 믿음이 안 가냐?”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찬 오빠 때문이 아니에요. 강인 오빠가 제 복수를 하겠다고 저렇게 애쓰는데, 저만 도망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이보라는 무서웠지만 참기로 했다. 혼자 떨어지는 게 더 무서웠다. 김유찬은 의지가 되지 않았다.

신은하가 웃었다.

“야. 잘 생각했어! 강인 오빠가 그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걸 보면 너도 속이 다 시원할 거야.”

“그럴까?”

“너도 몇 대 때릴래? 청평에서 우리 같이 싸울 때 통쾌했잖아.”

이보라가 그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빗자루로 마약조직원을 때린 정도라서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승리의 쾌감은 짜릿했다.

이보라가 외쳤다.

“그래! 복수다! 나는 복수를 원한다!”

신은하가 차의 속도를 높였다.

“이래야 이보라지!”

김유찬이 바로 앞을 가리켰다.

“어? 저기 파출소 있다! 난 저기 내려.... 지나갔네?”

***

현장을 한참 벗어난 후에 납치조 조장이 지시했다.

“이제 아스팔트 깔린 길로 가자. 시골길은 승차감이 너무 나빠.”

운전하는 부하가 말했다.

“동수 형님이 알려준 도로는 더 가야 나오는데요?”

“넌 그렇게 동수 말을 잘 들을 거면 동수 동생이나 하지 왜 나랑 다니냐? 어?”

“아닙니다. 바로 포장도로를 타겠습니다.”

***

신은하는 중간에 위치를 수시로 전달받으며 운전했다. 그렇게 한참 달린 후에 나강인이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마자 신은하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나강인이 그 문을 당겨주며 말했다.

“뒷좌석으로 가!”

“응!”

신은하가 얼른 뒷좌석으로 옮겨탔다.

나강인은 운전석에 앉자마자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가 튀어나갔다.

뒷좌석에서 신은하가 다급히 외쳤다.

“자전거 아직 안 실었어!”

“챙길 시간 없어. 나중에 가지러 오면 돼.”

그들이 탄 차는 곧바로 포장도로로 올라갔다.

나강인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놈들이 탄 차가 조금 전에 이 도로를 탔다. 다시 비포장도로로 빠져나갈 거라면 굳이 여길 올라오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보이는 거리에서 추적해야 하는데.”

문제는 갈림길이다.

“다음 갈림길을 만나기 전까지 따라잡아야 해.”

“거기까지 얼마나 남았는데?”

“5km.”

나강인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신은하의 차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사람들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조수석에 앉은 김유찬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안전운전! 과속반대!”

뒤에서 신은하가 물었다.

“지금 속도 얼만데요?”

김유찬이 대답했다.

“200km가 넘었어!”

“와! 내 차 신기록이다!”

“거기서 더 올라가고 있어!”

나강인은 다른 차들을 순식간에 추월했다. 김유찬은 마치 정지 상태에 있는 차들 사이를 고속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문제가 생겼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전방에 교차로!

“그놈들 차는?”

-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이미 지나갔어.”

- 추격 방향을 선택해 주십시오.

“오른쪽으로 꺾자. 그놈들이 직진했으면 꽁무니라도 보였겠지.”

직선 도로에서 차량의 끝부분이라도 보이면 AI 전지인이 못 알아볼 리 없다.

나강인이 운전대를 급격히 틀었다. 뒷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졌다.

김유찬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커브라도 제발 천천히!”

뒤에 앉은 두 사람도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꺄악! 오빠! 달려!”

차가 교차로를 지나갈 때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교차로를 지나가자마자 나강인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차의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김유찬이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 어! 저기 과속카메라! 과속카메라!”

나강인은 카메라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이보라가 뒤에서 말했다.

“괜찮아요. 이거 은하 차잖아요. 찍혀도 은하 차가 찍혀요.”

신은하가 말했다.

“응. 청구서는 너한테 줄 거야. 우리 여기 올 때 찍힌 것도 많은데 다 너한테 줄 거야.”

“어? 왜?”

“너 구하다가 찍힌 거잖아. 지금 찍히는 것도 너 복수해주려고 가면서 찍히는 거고.”

“그, 그렇지?”

그게 다는 아니다.

복수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지금 쫓아가는 세 놈을 잡아 경찰에 넘겨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나강인은 거기에 더해서 저놈들이 왜 드래곤 플레이트를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놈들의 본거지까지 따라가는 중이다.

신은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랑했다.

“너한테 안 좋은 기사가 안 나가게 하려고 신고도 안 했어!”

“고마워. 은하야. 강인 오빠. 고마워요.”

김유찬이 물었다.

“나는?”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요?”

“야! 이 속도에서 사고가 나면 우리 모두 사이좋게 한 방에 훅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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