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25화 (125/411)

125. 검귀

배우 김유찬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래도 뛰는 동안 비명을 크게 지르지는 않았다.

“으으으아.”

그는 언덕을 다 내려가 평지를 밟자마자 균형을 잃고 앞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신은하가 언덕 위에서 그 꼴을 보며 푸념했다.

“저 오빠는 진짜 얼굴 생긴 거만 보면 액션 쩌는 첩보원 해도 되는데 왜 저런데?”

이보라가 말했다.

“첩보영화 찍었잖아. 관객 오백만 넘었어.”

“아. 그렇지.”

“액션은 이번에 햇살 좋은 날에서 화끈하게 보여줘서 야수성 꽃미남이란 별명이 생겼고.”

“그래. 대중적인 이미지는 그런데, 실제로는 사람이 저렇게 허당이야. 햇살 좋은 날에서도 액션은 강인 오빠가 다 대신했잖아.”

이보라가 슬쩍 공격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대중적 이미지랑 실제 너는 많이 다르잖아?”

신은하가 바로 받아쳤다.

“우리라고 하지? 너도 한 내숭 하는데.”

“네가 더하지. 너 그 음료 CF도 강인 오빠 덕분에 그 액션이 나온 거라며. 녹색 쫄쫄이….”

나강인이 말했다.

“젠장.”

이보라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니, 강인 오빠. 난 은하처럼 놀리려던 게 아니고요.”

그래서 젠장이라고 말한 게 아니다. 나강인이 창고 쪽을 보았다.

“들켰다.”

“네?”

창고에서 조직원 두 놈이 밖으로 나왔다.

김유찬 때문에 나온 건 아니다. 그들은 차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바닥에 엎어진 김유찬을 발견했다.

엎어진 김유찬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으아. 죽는 줄 알았…. 어?”

김유찬과 조직원들의 눈이 딱 마주쳤다.

한 놈이 인상을 구겼다.

“저 새끼는 뭐야?”

같이 있던 놈은 이보라를 납치한 셋 중 하나다. 그가 김유찬을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 새끼다! 김유찬! 아까도 이보라를 데려가려고 접선장소에 왔었어!”

“그 새끼가 왜 여기 있는데! 미행하는 놈 없었다며!”

“어? 진짜 어떻게 따라왔지?”

김유찬이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어. 하던 일 하시고요. 저는 이만….”

그는 뒷걸음질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발목에서 강렬한 통증이 올라왔다.

“큭!”

발목을 삔 상태로는 도망칠 수 없다.

창고에 있던 다른 놈들이 밖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 저 새끼는 뭐야?”

김유찬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강인이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신은하도 나강인을 따라가면서 불평했다.

“유찬 오빠는 관절이 무슨 수수깡이야? 강원도에서 영화 찍을 때는 손목을 삐더니 이번엔 발목이야?”

나강인이 순식간에 김유찬이 있는 곳까지 와서 그의 옆에 섰다.

“조심 좀 하시지.”

김유찬이 미안해했다.

“그러게요. 이러려던 게 아닌데….”

신은하와 이보라도 언덕을 내려와 그들의 뒤에 섰다.

조직원들도 창고에서 모두 나왔다. 그들은 손에 쇠파이프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신은하가 적이 몇 명인지 셌다.

“하나, 둘, 셋…. 열. 와. 열 명쯤 될 거라더니 진짜 열 명이야.”

두목이 인상을 구기며 납치조 조장에게 물었다.

“야. 뒤탈 없게 잘 해결했다며?”

조장은 당황했다.

“물건만 받고 여자는 보내주고 잘 헤어졌습니다. 미행하는 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차 번호판 따인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중간에 번호판도 갈아 끼웠습니다.”

두목이 짜증을 냈다.

“그럼 저 중에 무당이라도 있냐?”

“혹시 김유찬 옆에 저놈이 짭새….”

“그랬으면 겨우 넷만 오진 않았겠지. 그것도 배우들만. 잠깐. 김유찬 옆에 저건 진짜 정체가 뭐야? 배우야?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아무도 나강인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조장이 말했다.

“처음에 매니저를 데려온다고 했었으니까, 매니저 아닐까요?”

“맞네. 그거네.”

두목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연예인들. 그렇게 그냥 보내줬는데, 이렇게 따라오면 쓰나. 좋게좋게 헤어졌어야지.”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사람을 납치하고 죽인다고 협박해서 남의 물건까지 빼앗아놓고, 챙길 거 다 챙겼으니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우리가 왜 그래야 하냐?”

“어이. 매니저. 너 뭐 잘못 먹었냐? 너희는 넷이고, 우리는 열이야. 거기다 하나는 발목을 다치고, 둘은 여리여리한 여배우들이네? 싸울 줄이나 알겠어? 너 하나만 멀쩡해 보이는데?”

나강인이 신은하와 이보라를 가리켰다.

“얘들은 평소에도 잘 싸운다.”

두목이 화를 냈다.

“이 새끼는 태도가 왜 이렇게 건방져? 뒈지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마. 얘들아!”

조장이 다급히 말렸다.

“형님. 유명한 연예인입니다. 처리하면 난리가 납니다.”

“너는 깡패라는 새끼가 머리나 굴리고.... 아니지. 처음부터 네가 이보라를 안 잡아왔으면 일이 이렇게 복잡하지 않잖아!”

“예?”

“너 이 새끼! 나 망하게 하려고 내 밑에 들어왔냐? 차 이사가 그러라든?”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저런 것들은 협상이 아니라 협박을 해야 말을 들어 처먹어.”

두목이 부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들 왜 쳐 놀고 있어? 일단 저 새끼들 잡아! 특히 저 건방진 매니저 새끼는 박살을 내서 끌고 와!”

처음 창고에서 나온 두 명과 두목, 조장은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나머지 여섯 명은 쇠파이프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들이 쇠파이프를 흔들면서 네 사람을 향해 건들건들 걸어갔다.

제일 앞에서 걷는 놈이 김유찬을 보며 웃었다.

“어이. 가만히 있으면 얼굴은 안 때릴게. 크크. 그래도 연예인이잖….”

나강인이 다리를 굽히며 자세를 낮췄다. 그놈은 그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

“뭐야? 벌써 다리에 힘이 풀렸….”

나강인이 땅을 박차며 점프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높은 곳까지 뛰었다.

당황한 상대가 쇠파이프를 위로 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나강인의 발이 위에서 아래로 적의 몸통에 꽂혔다.

“케엑!”

걷어차인 놈은 뒤로 날아가 땅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들고 있던 쇠파이프는 걷어차이는 순간에 놓쳐 공중에 떠올랐다.

나강인이 바닥에 가볍게 착지한 후에 떨어지는 쇠파이프를 오른손으로 잡았다.

그가 왼손을 까닥였다.

“잔챙이들부터 잡고 이야기하자. 들어와라.”

나강인의 공격이 너무 깔끔해서 조직원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했다.

“뭐, 뭐야?”

“방금 뭐가….”

뒤에서 두목이 소리를 질렀다.

“겨우 한 놈이다! 쳐라!”

조직원들이 그 명령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우와아아!”

그들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나강인에게 달려들었다.

나강인이 방금 빼앗은 쇠파이프로 제일 먼저 날아온 적의 파이프를 쳐냈다. 거기 담긴 힘이 엄청났다. 쇳소리와 함께 적의 팔이 바깥쪽으로 쭉 밀려났다. 그만큼 가슴이 활짝 열렸다.

나강인이 적의 옆구리를 파이프로 후려쳤다.

“켁!”

적은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옆으로 날아갔다.

그가 앞에 있는 놈을 날려버리는 동안 나강인의 뒤로 돌아간 놈이 있었다. 그놈이 등 뒤에서 파이프를 높이 들었다가 내리쳤다.

AI 전지인이 적의 공격 경로를 표시했다.

나강인이 파이프를 위로 들어 적의 공격을 보지도 않고 막았다.

“억?”

나강인이 뒤로 휙 돌아서며 어퍼컷을 날렸다. 주먹이 적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적의 몸이 위로 떴다가 털썩 떨어졌다. 이번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다른 놈들은 당황했다.

“어? 어?”

열 명 중에 공격에 나선 건 두목과 조장, 빈손인 두 명을 제외하고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여섯 명이다. 그런데 순식간에 셋이 박살 났다.

다른 셋은 겁을 집어먹고 머뭇거렸다.

“이, 이게 뭐야….”

신은하가 주먹을 흔들며 환성을 질렀다.

“아싸아! 이거지!”

이보라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 조져버려요!”

김유찬도 여유를 찾았다.

“휴우. 난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

두목이 빈손으로 있던 두 명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이 왜 아직 여기 있어? 가서 죽여! 안 그럼 내가 죽여버린다!”

그들은 나강인을 경계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주우러 움직였다.

나강인도 전진했다. 그는 바로 앞에서 주춤거리던 놈을 노렸다.

“으, 으아!”

겁먹은 적이 쇠파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나강인이 그 파이프를 강하게 쳐냈다. 적의 팔이 확 젖혀지며 가슴이 열렸다.

나강인이 발을 콱 내질렀다. 발이 적의 허리에 꽂혔다. 그놈은 몸이 반쯤 접히며 뒤로 날아갔다.

“케에엑!”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후방에 적 침입!

이번에는 나강인을 노린 게 아니다.

- 김유찬이 공격당합니다!

그놈은 나강인을 공격하는 건 포기했다. 대신에 발목을 다친 김유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유찬은 앞쪽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두 명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나강인이 몸을 뒤로 비틀며 김유찬의 앞쪽으로 점프했다. 김유찬을 노리고 달려들던 적은 깜짝 놀라 급히 멈추다가 바닥에 미끄러졌다.

나강인이 그놈을 내려다보았다. 그놈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잠깐 겁먹었던 김유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고맙….”

갑자기 다른 문제가 생겼다.

AI 전지인 다급히 경고했다.

- 적 지휘관! 권총을 꺼냈습니다!

나강인이 두목을 향해 휙 돌아섰다.

두목이 어느새 권총을 뽑아 나강인을 겨누었다.

AI 전지인이 예상 사격 경로를 보여주며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 적 사격 코스를 계산했습니다.

권총은 명중률이 낮은 무기다. 보통 사람은 조금만 거리가 멀어도 권총으로 사람을 맞히기 어렵다.

그런데 두목은 좀 달랐다. 조준이 꽤 정확했다.

- 적은 사격 초보자가 아닙니다! 조준이 안정적입니다! 적! 쏩니다!

두목이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사격 경로를 선으로 표시해주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까지 알려주었다.

정확히 언제 어느 경로로 총탄이 지나가는지만 알면, 그 순간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권총탄 정도는 피할 수 있다. 나강인의 순발력이면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피할 수가 없다. 그의 뒤에는 김유찬이 있다. 나강인이 총탄을 피하면 김유찬이 맞는다.

나강인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AI 전지인이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예상 탄착지점에 쇠파이프를 갖다 댔다.

두목이 사격하는 순간 손이 살짝 흔들리며 예상 지점도 조금 바뀌었다. 나강인이 파이프를 옆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총탄이 발사됐다. AI 전지인이 예측한 경로를 정확히 따라 날아온 총탄이 쇠파이프와 충돌했다.

그 권총탄의 관통력은 그 쇠파이프를 뚫을 만큼은 되지 않았다.

총탄은 쇠파이프에 맞아 튕겨 나갔다. 쇠파이프는 계속 움직여 허공을 크게 갈랐다.

나강인은 총탄을 쳐낸 후에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손에 쥔 쇠파이프가 마치 검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옷깃이 바람에 흔들렸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조직원들은 공포에 질렸다.

“초, 총알을 쳐낸 거야?”

“내가 봤어! 베었어! 총알을 베었다고!”

두목도 놀랐다.

“어? 어? 어?”

이보라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야. 세상에….”

신은하는 나강인이 신기한 일을 하는 걸 하도 많이 봐서, 이제 뭘 보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녀도 경악했다. 안 놀랄 수가 없었다.

“혹시 정체가 천하제일검이셔?”

두목은 지금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우연이겠지? 어쩌다 파이프에 총알이 맞은 거겠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보고 쳐내? 말이 안 되잖아. 우연일 거야. 우연이어야 해.’

그걸 확인하려면 다시 나강인을 향해 쏴보면 된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총알이 부족해.’

선금으로 받은 권총은 실탄이 테스트할 만큼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 권총에는 원래 세 발이 들어있었는데, 한 발은 이미 테스트용으로 썼다. 방금 한 발을 더 쐈으니 이제 한 발밖에 남지 않았다.

실탄이 없는 총은 그냥 쇳덩어리일 뿐이다.

드래곤 플레이트를 구해오라고 한 의뢰인은 실탄은 잔금을 치를 때 넉넉히 준다고 했다.

‘한 발 남은 걸 또 쐈는데 또 막으면? 아니, 피하면?’

나강인이 그의 부하들을 때려잡을 때의 움직임을 보면, 총탄을 피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막기까지 했는데 설마 피하지를 못할까.’

그렇다고 항복할 수는 없다. 이미 일이 너무 커졌다.

신은하와 이보라는 서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이젠 되돌리긴 늦었어! 저것들부터!’

두목이 조장의 뒤쪽으로 이동해 나강인의 시선을 피하며 왼손을 허리 뒤로 돌렸다. 그의 손에 두 번째 권총이 잡혔다.

그가 그 권총을 뽑았다.

의뢰인에게서 선금으로 받은 권총은 두 자루였다. 두목은 부하를 믿지 않아서, 둘 다 그가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권총으로 나강인을 노리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적이 아군을 조준합니다!

허공에 예상 경로가 떴다. 그 경로는 실시간으로 움직였다. 목표가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권총 한 자루는 신은하를, 다른 하나는 이보라를 정확히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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