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전투
두목이 권총 두 자루로 신은하와 이보라를 동시에 겨눴다.
나강인이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즉시 두목을 향해 던졌다. 쇠파이프가 마치 창처럼 날아갔다.
두목이 황급히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파이프가 두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빗나갔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빗나갔습니다! 경고! 적을 죽이기엔 목격자가 너무 많습니다! 적, 균형을 회복했습니다!
두목은 어느새 자세를 잡고 두 사람을 조준했다. 두목의 계획은 간단했다.
‘남자도 지키려던 놈이니까 여자는 더 열심히 지키겠지! 지켜야 할 사람이 둘이면 당황할 거다!’
두목의 계획은 어느 정도는 통했다. 나강인은 누구를 지킬지 결정해야 한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적! 쏩니다!
사격 순간을 표시하는 홀로그램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나강인이 옆으로 뛰었다. 그는 이보라를 확 껴안고 더 옆으로 달렸다.
두목이 권총을 발사했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총탄이 지나갔다.
신은하는 피하지 못했다. 총탄이 정확히 그녀의 가슴을 때렸다.
두목의 눈이 번뜩였다.
‘여자가 총에 맞았다! 저놈이 잠깐이라도 당황하면 그 틈에 쏴 죽여야….’
총에 맞은 신은하가 소리를 질렀다.
“아야!”
그녀가 옷 속에 입은 드래곤 플레이트는 권총탄 한 발쯤은 충분히 막을 방어력이 있었다.
그런데 드래곤 플레이트는 방어력이 줄어들수록 총에 맞을 때의 충격이 커진다. 청평호수에서 화살에 맞았을 때 이미 방어력이 약간 감소했다.
그래서 지금 총탄에 맞을 때는 가슴이 조금 아팠다. ‘아야’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두목의 권총 중 하나는 총탄이 떨어지면서 슬라이드가 젖혀진 채로 고정됐다.
두목은 그 권총을 버리고 다른 권총을 두 손으로 잡았다. 나강인을 당황하게 하려고 두 여자에게 총을 쐈는데, 정작 당황한 건 두목이다.
‘총에 맞았는데 왜 아야야! 으악이잖아!’
나강인은 이보라를 껴안고 옆으로 뛰면서 그녀의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녀는 아까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나강인이 그 돌을 꺼내며 뒤로 휙 돌아섰다.
두목도 권총으로 나강인을 조준했다.
‘이번엔 못 피할 거다. 쇠파이프도 없고, 피하면 네가 껴안고 있는 그 여자가 죽으니까! 내가 이 마지막 한 발로 너를 죽인다!’
두목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나강인이 더 빨랐다. 그는 이보라의 주머니에서 꺼낸 돌을 두목을 향해 힘껏 던졌다.
왼팔로 이보라를 안고 있어서 허리의 힘은 쓸 수 없었다. 대신에 오른팔의 힘을 아끼지 않고 사용해 돌을 던졌다.
돌을 던지는 순간 경고표시가 주르륵 떴다. 이 공격으로 적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알지만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적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다.
두목이 방아쇠를 막 당기려던 순간에, 나강인이 작정하고 날린 돌이 적의 몸통에 꽂혔다.
마치 해머로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이 두목의 배를 때렸다.
“꾸에엑!”
두목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조직원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강인이 총알을 쳐낸 걸 보고 경악했는데, 이제는 총을 쏘던 두목까지 뒤로 날아갔다. 총에 맞고도 멀쩡한 신은하도 무서웠다.
“저건 총으로도 못 잡는 사람이야.”
“사, 사람이 아니야?”
신은하가 소리를 질렀다.
“뒈지기 싫으면 무기 버려!”
이미 조직원 쪽은 병력의 절반이 날아갔다.
게다가 나강인이 쇠파이프로 총알을 쳐낸 것이 그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
한 놈이 먼저 쇠파이프를 바닥에 버리고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는 두 팔을 번쩍 들며 말했다.
“항복! 살려주십쇼! 다들 연예인이시니까 항복하면 살려주시겠지요? 예?”
다른 조직원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차피 나강인을 상대로 도망칠 자신은 없다. 덤볐다가 쓰러진 놈들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괜히 저항하면 맞아 죽을 것 같았다.
그들이 쇠파이프를 슬그머니 내렸다.
갑자기 뒤로 날아간 두목이 몸을 일으키며 권총을 들었다.
“이 새끼들아! 나 아직 안 죽었어!”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며? 죽을 수도 있다며?”
- 방탄조끼나 방검복을 입은 것 같습니다. 겉옷이 두꺼워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두목은 권총을 감추기 위해 두툼한 겉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 두꺼워서 속에 뭘 입었는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두목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들었다.
“죽여버린….”
나강인이 두목을 향해 돌진했다.
두목은 권총에 남은 총탄이 한 발밖에 없다는 걸 안다.
‘이 총알로 저 괴물만 잡으면 난 살아.’
그가 나강인을 조준했다.
나강인이 점프했다. 그의 몸이 하늘로 쑥 떠올랐다.
두목이 그런 나강인을 쫓아 권총을 위로 번쩍 들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널!”
두목이 방아쇠를 당겼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다. 총탄이 그의 몸 근처를 지나 허공으로 멀리 날아갔다.
“어?”
두목은 사람이 어떻게 공중에서 총탄을 피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강인이 두목이 있는 곳까지 점프로 날아가 돌려차기를 날렸다. 발등에 얼굴이 걸렸다. 두목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켁!”
두목은 옆으로 두 바퀴나 구르다가 땅바닥에 엎어졌다.
나강인이 가볍게 착지한 후에, 남아있는 조직원들을 쓱 돌아보았다.
“파이프 아직 들고 있네?”
남은 조직원들의 손에서 쇠파이프가 툭툭 떨어졌다. 그들은 얼른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그중 한 놈이 갑자기 머리를 박고 뒷짐을 졌다.
“사, 살려주십쇼!”
다른 놈들이 그걸 보고 즉시 머리를 박았다.
전투가 끝났다.
신은하가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우이씨. 아프잖아.”
이보라는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강인 오빠가 날 지켜줬어. 은하는 총에 맞게 놔두고 날 지켜줬다고.”
신은하가 코웃음을 쳤다.
“야. 나한테는 방탄조끼를 선물했잖아. 넌 이런 선물이 없으니까 귀찮더라도 챙겨야 하는 거고.”
“어? 아, 아닌데?”
“맞아.”
이보라가 반박했다.
“총알이 네 가슴이 아니라 다른 데 맞을 수도 있었잖아.”
“강인 오빠는 총알이 어디로 날아올지 다 알더라. 그걸 아니까 피할 수 있는 거고, 내가 안전할 것도 안 거지.”
“그, 그런가?”
“그래.”
신은하는 그래도 조금 서운하긴 했다.
“에이씨. 그래도 나도 좀 챙겨주지. 아주 선물만 주고 땡이야.”
이보라는 그런 신은하가 부러웠다.
“나도 그 방탄조끼 갖고 싶다. 어디서 살 수 있어?”
“개인은 못 사. 이건 강인 오빠가 직접 만들어준 거라고 했잖아.”
“나도 강인 오빠한테 부탁하면….”
“아무나 만들어주겠니?”
이보라가 발끈했다.
“나도 이제 아무나는 아니거든?”
“아무나 맞거든?”
김유찬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나도 그 방탄조끼 하나만 부탁해야겠다. 은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요즘 위험한 일을 너무 많이 겪은 것 같아. 바다에서도, 이 산에서도.”
신은하가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글쎄 안 된다니까요.”
“난 방탄모자도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평소에 철모를 쓰고 다닐 순 없잖아.”
“어? 방탄모자….”
신은하도 그건 갖고 싶었다.
나강인이 두목의 겉옷을 벗겼다. 안쪽에서 얇은 두께의 방어용 조끼가 나왔다.
“뭔가 입고 있긴 했네.”
- 슬림 타입 방탄조끼입니다. 방어력 레벨 1짜리입니다. 한국 경찰의 38구경 리볼버 총탄을 겨우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쓸모가 있겠어.”
- 한국 경찰을 상대로는 그렇습니다.
“가만. 이놈 혹시 총에 맞을 수도 있는 범죄를 준비했나? 어디 은행이라도 털려고 한 거 아니야?”
-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방탄조끼는 어디서 살 수 있지?”
-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얇습니다. 수입품입니다.
“그럼 권총을 밀수한 곳에서 이것도 구했겠지.”
나강인은 두목의 휴대폰도 확인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폴더폰이었다. 그는 두목의 손을 써서 휴대폰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남아있었다.
신은하가 나강인에게 다가와 물었다.
“강인 오빠. 혹시 방탄모자도 만들 수 있어?”
나강인이 휴대폰을 닫으며 말했다.
“그건….”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드래곤 플레이트는 크기가 작으면 방어력도 떨어집니다. 여성용 모자로 사용하려면 지금보다 더 가볍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게를 줄이려면 지금보다 더 얇아져야 합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봤자 9mm 권총탄 한 발도 막기 어렵습니다. 그냥 철모를 쓰라고 하십시오.
나강인이 그 설명을 한 줄로 요약했다.
“만들어봤자 약해.”
신은하의 얼굴이 밝아졌다.
“만들 수는 있구나?”
“무게가 좀 있어서, 그런 거 쓰고 다니면 머리 다 눌려서 납작해진다.”
“그래? 그럼 머리 장식 같은 건?”
“응?”
신은하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액세서리 말이야. 내가 뭐 왕관을 만들어달라는 건 아니고, 집게핀이나 예쁜 머리띠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로는 총알을 못 막는 데다가, 막을 수 있다 해도 디자인은 네가 할 거야?”
“응? 난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 강인 오빠는 그림도 잘 그리고 메이크업도 잘하니까 그런 것도 좀 하지 않나?”
“네가 쓰려면 액세서리가 예뻐야 하지?”
신은하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나 배우야. 배우. 예쁘고 기품 있어야지.”
“그럼 포기해라.”
“와. 강인 오빠도 못하는 게 있구나. 액세서리 디자인은 무리였어.”
AI 전지인이 말했다.
- 지구연합군 지원장비 중에 집게핀이나 머리띠 형태인 것이 있습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부품을 쓰면 비상용 간이 무전기는 만들 수 있습니다.
“할 수는 있지. 근데 그 쌍안경 디자인 보면 알잖아? 군대 스타일 액세서리를 머리에 달고 싶으면 하나 만들어주고.”
신은하가 나강인이 만든 쌍안경을 보았다. 성능이 우수하고 디자인도 멋있었다. 그런데 그 디자인이 시대를 좀 앞서나가는 느낌이었다.
“으, 응? 아니야. 괜찮아. 이런 디자인을 머리에 달면 SF 영화를 찍는 줄 알 거야. 그건 좀 오버지.”
***
박기정 형사의 연락을 받은 그 지역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형사들은 당황했다.
“어?”
“반쯤은 쓰러져 있고, 나머지는 머리를 박고 있네?”
조직원들과 나강인 일행을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형사도 있었다.
“어느 쪽이 납치범이야?”
형사팀장이 말했다.
“연예인들이 납치하고 신고까지 했겠냐? 당연히 이놈들이겠지.”
“아니. 그건 그런데요. 눈에 보이는 모습은 정반대라서….”
“그래. 확인은 해보자.”
신은하나 이보라보다 김유찬이 더 유명한 배우다.
형사팀장이 김유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김유찬 씨.”
김유찬이 두 팔을 벌리며 반갑게 웃었다.
“하하하! 형사님들! 진짜 기다렸습니다!”
“그러셨겠죠. 그런데 여기 상황이 왜 이렇습니까? 마치 여러분이 저놈들을….”
김유천이 조직원들을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저놈들이 저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진짜입니다!”
“아유. 그럼요. 알죠.”
팀장이 김유찬의 옷을 보았다. 그는 언덕을 뛰어 내려오다가 앞으로 엎어졌다. 그것 때문에 그의 옷 상태는 마치 격렬하게 치고받고 싸운 것처럼 엉망이었다.
“진짜 열심히 싸우셨네. 그러니까 저놈들은 김유찬 씨가 잡은 겁니까?”
“예? 아니, 그게 아니라….”
팀장이 엄지를 세웠다.
“역시 야수성 꽃미남! 우리 와이프랑 딸이 김유찬 씨 팬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나강인은 형사들의 관심을 김유찬에게 떠넘기려고 그의 팔을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
“유찬 씨가 제일 먼저 돌격했죠.”
김유찬은 언덕에서 미끄러지다가 혼자서 창고 앞까지 뛰어 내려왔다.
“그러니까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형사팀장이 신은하와 이보라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희가 듣기로 이놈들이 배우를 납치했다가 돌려보냈다던데, 혹시….”
갑자기 다른 형사가 외쳤다.
“어? 팀장님! 여기 권총이 있습니다!”
“뭐?”
“두 자루나 됩니다! 탄피도 몇 개 찾았습니다!”
팀장이 그쪽으로 뛰어갔다.
“야! 현장 보존해! 머리 박고 있는 놈들은 수갑 채워서 일으켜라!”
“자빠진 놈들이 많이 다친 것 같은데요?”
“그럼 구급차라도 좀 불러! 죽으면 우리만 피곤해져!”
네 사람은 현장에서 물러나 상황이 돌아가는 걸 구경했다. 구급차가 도착해 기절한 놈들을 하나씩 데려갔다.
지원팀도 속속 도착했다. 형사들은 창고 내부에서 장검이 잔뜩 들어있는 캐비닛을 찾아냈다.
형사팀장이 그걸 보며 말했다.
“이 새끼들이 우리 관할에서 전쟁이라도 준비했나? 권총이 두 자루에 칼은 또 왜 이렇게 많아?”
박기정 형사도 나타났다.
신은하와 이보라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
“박 형사님. 우리 여기 있어요!”
박기정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김유찬이 옆에서 말했다.
“저도 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아시는구나. 저를 못 보신 줄 알고.”
이보라가 부탁했다.
“박 형사님. 저는 언론 노출을 피하고 싶어요. 조용히 처리해주실 수 있어요?”
“조사는 제가 아니라 여기 관할서에서 할 겁니다. 그래도 제가 먼저 저분들에게 연락했으니까, 가서 보라 씨의 입장을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박기정이 활짝 웃었다.
“두 분 일인데 당연한 말씀을!”
박기정이 좋아서 웃다가 뒤늦게 나강인을 발견했다. 그는 얼른 나강인에게 다가갔다.
“나강인 씨가 계셔서 큰 걱정은 안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제일 잘 아실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