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27화 (127/411)

127. 합수부

참고인 조사는 나중에 별도의 장소에서 하기로 했다. 나강인 일행은 신은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강인은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를 놔둔 곳에 들렀다. 아까는 빨리 쫓아가야 해서 자전거를 분해해 트렁크에 집어넣을 시간이 없었다.

“어….”

놔둔 곳에 자전거가 없었다.

신은하가 말했다.

“누가 벌써 훔쳐갔네.”

그 산악자전거는 나강인이 직접 개조해서 놈들을 추적하는데 쓴 것이다. 오늘 그 산악자전거로 산을 거칠게 탔고 비포장도로도 고속으로 달렸다.

“잡으러 가자.”

“응? 자전거 도둑이 잡을 수 있는 거였어?”

“도로 위에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남아있잖아. 여기까지는 걸어서 왔을 테니까 멀리서 온 건 아닐 거다.”

자전거를 가져간 건 옆 동네에 사는 중학생이었다.

그 중학생은 갑자기 연예인들이 나타나서 자전거 주인이라고 주장하자 기가 죽어 사과했다.

“죄송해요. 길가에 자전거만 던져놨길래 누가 버린 건 줄 알았어요.”

나강인이 말했다.

“알아. 그렇게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해. 험하게 타서 흙도 많이 묻었고, 길가에 자전거만 쓰러져 있었으니까.”

그는 자전거 도둑을 잡으러 온 게 아니다.

“그런데 너 그거 그냥 타면 사고 날 수 있어.”

“네?”

“그거 겉만 멀쩡해. 워낙 험하게 타서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아. 내리막길에서 타다가 자전거가 부서지면 네가 크게 다친다.”

“에이. 되게 튼튼하게 생겼던데 설마 부서지겠어요?”

“부서져. 자전거 회수가 목적이 아니라, 너 죽을까 봐 찾으러 온 거야.”

나강인이 자전거의 프레임과 부품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여기, 여기에 미세 균열이 생겼고, 체인도 거의 한계야. 기어는 톱니바퀴 몇 개가 부러지기 직전이다. 이런 거로 속도 내다가 내리막에서 자전거가 분해되면 죽어.”

중학생이 겁을 먹고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

경찰은 언론에 사건의 개요를 공개했다. 경찰이 신고를 받자마자 출동했다는 것도 알리고, 범인을 모두 체포했다는 것도 자랑했다.

하지만 누가 납치됐었는지와 범인들을 추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 지역 경찰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로 넘어갔다.

강남 자칼 사건 때 만들어진 합동수사본부의 간부들은 활짝 핀 얼굴로 짐을 쌌다.

“이야아. 합수부가 해산하는 날이 오긴 오네요.”

“우리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죠?”

“우리 부서의 일도 많은데 합수부 일까지 하느라 진짜 고생했습니다.”

“다음 주에 같이 모여서 한잔할까요?”

“좋죠. 하하하.”

합수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경찰 간부가 말했다.

“본부장님도 어서 짐 싸시죠. 제가 이것만 끝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합수부장이 고개를 가로저은 후에 말했다.

“짐 다시 풀어요.”

경찰 간부가 멈칫했다가 활짝 웃었다.

“하하. 농담도 참 무섭게 하십니다.”

“농담 아닙니다.”

합수부 간부들은 모두 당황했다.

경찰 간부가 물었다.

“아니, 왜요?”

합수부장이 그들이 새로 맡은 사건의 개요를 설명했다.

“드래곤 플레이트를 노리고 누군가 국내 조직을 움직였습니다. 그걸 가진 연예인에게서 빼앗아오라고 했다더군요. 그 사건이 우리에게 떨어졌습니다.”

“예? 관할서도 있고 광수대도 있는데 그걸 왜 우리에게….”

“의뢰한 놈이 선금으로 돈이 아니라 권총을 줬답니다. 잔금도 권총으로 받기로 했고요.”

“그러니까 그걸 왜 꼭 우리가….”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그동안 국제 범죄자들을 잘 처리했잖습니까? 비록 배후는 못 찾았지만요. 위에서는 우리가 일을 잘하는 줄 압니다.”

다른 간부가 탄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 열심히 하지 말걸.”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찍히죠.”

“하긴….”

“억울합니다. 이전 사건들은 나강인이 범인을 다 잡아놓은 거라서, 우리는 고생만 하고 실적은 별로 못 챙겼는데….”

합수부장이 말했다.

“이 사건은 우리가 그동안 처리한 사건과 유사한 면이 좀 있습니다. 국제 범죄자로 보이는 놈이 있다든지, 총기가 사용됐다든지 하는 것 말이죠.”

“아니, 그건 경찰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잖습니까? 겨우 그 두 가지 때문에 우리한테 사건이 넘어오다뇨. 우리는 지금 해산하는 중인데.”

“그리고 사건을 해결한 사람 중에 나강인이 있습니다.”

간부들은 당황했다.

“어? 설마….”

“예. 그 설마입니다.”

“또 나강인이….”

“범인들을 잡았더군요.”

“아니, 왜요?”

합수부장이 설명했다.

“피해자가 배우 이보라인데, 나강인과 잘 아는 사이랍니다. 그래서 실종된 걸 알자마자 찾으러 갔다더군요.”

“아. 이보라는 저번에도 납치됐던 그 배우잖습니까?”

“예. 납치 전문 배우죠. 아니, 이건 아니군요. 하여간 그래서 이 사건이 우리에게 넘어온 겁니다.”

위에서 사건을 합수부에 맡긴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 합수부에 맡긴 일은 정보가 언론으로 새지 않았다. 특히 간부들의 입이 무거웠다.

경찰 간부가 상자에 넣던 짐을 책상 위에 툭 던지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니,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면, 인간적으로 나강인도 우리 일을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 부서에 나강인이 꼭 필요한 일이 있는데 말이죠.”

다른 간부들도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요. 우리 부서에 와서 몇 개만 해결해주지.”

***

합수부는 짐을 도로 풀어놓고 그 사건을 조사했다. 그러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

합수부장이 물었다.

“잠깐만요. 나강인이 철인기공의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장인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거였습니까?”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나강인은 개인 공방에서 직접 만들 수 있다더군요.”

“아니, 그게 개인이 그렇게 막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텐데요? 철인기공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제품 아닙니까? 외국 업체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어려운 기술이 적용됐다면서요?”

“그렇죠.”

“그런데 그걸 혼자서 개인 공방에서 만들어요? 어떻게요?”

“나강인은 된다던데요.”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정보기관에서 온 간부는 이 회의에 가끔 참석한다. 그는 오늘은 짐을 빼러 왔다가 붙잡혔다.

그 과장이 말했다.

“사실입니다.”

다른 간부들이 과장을 돌아보았다.

정보기관 과장이 설명했다.

“저도 우연한 기회에 나강인이 드래곤 플레이트의 실제 개발자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직접 제작도 가능하다더군요.”

과장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던 정보고 추가했다.

“게다가 철인기공의 정식 제품보다 나강인이 혼자 만든 것이 방어력이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게 기성품보다 나은 건가요?”

“철인기공의 제품도 맞춤이긴 한데, 예. 간단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혹시 나강인을 통해 직접 입수한 드래곤 플레이트가 있습니까?”

“그게….”

과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예전에 수습요원 두 명을 나강인에게 보내 드래곤 플레이트 구매를 타진했다. 성능 테스트를 하려면 실제로 입고 훈련장을 굴러야 한다. 그래서 굴리기 편한 수습들을 보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나강인과 싸우고 돌아오는 바람에, 드래곤 플레이트 구매는 실패했다. 나중에 다른 요원을 다시 보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나강인은 그걸 팔지 않습니다. 구매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번에는 경찰 간부가 스크린에 사진을 띄웠다. 신은하가 옷에 화살을 맞은 구멍이 보이게 찍은 사진이었다.

신은하가 그 사진을 찍을 때 옷이 살짝 들렸다. 그러면서 드래곤 플레이트가 조금 노출됐다.

“이 사진 말입니다. 범인들이 이 사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건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인데, 의뢰한 쪽에서 이걸 참고하라고 했다더군요.”

두목은 아직 입을 다물고 있지만, 부하 중에는 술술 털어놓는 놈들도 있었다.

“신은하가 입고 있는 이 드래곤 플레이트는 나강인이 만든 것이죠. 그런데 나강인이 만든 게 철인기공의 제품보다 방어력이 더 높을 수도 있다면서요?”

합수부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 그럼 놈들이 철인기공의 제품이 아니라 신은하의 것을 굳이 노린 건….”

“누군가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보고 이게 뭔지 눈치챈 겁니다. 놈들이 원하는 건 나강인이 직접 만든 제품이겠지요.”

“이유는요?”

“당연히 기술을 분석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개인이 직접 하나하나 만든 거니까, 단서가 쉽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죠.”

다른 간부가 반대 의견을 냈다.

“그건 아닐 겁니다. 그게 목적이면 그냥 나강인을 노렸겠죠.”

“예? 누굴 노려요?”

“아. 그건 아니구나. 그래도 나강인이 없을 때 개인 공방에 침입할 순 있잖습니까? 그러면 챙길 게 더 많을 텐데요.”

“음…. 의뢰인이 그러지 않았다는 건, 이 사진을 보고 드래곤 플레이트라는 건 알아봤지만 출처까지는 몰랐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 생산하는 건 정부에 납품되니까, 양아치 몇 놈 보내서 손에 넣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런데 이건 가능해 보였을 겁니다.”

“뭐가 진실인지 알려면 의뢰한 놈을 잡아야 하는데….”

합수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번 일도 고생 좀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을 만났다.

형사도 합수부장처럼 한숨을 쉬었다.

“합수부가 곧 해산할 예정이어서, 이제 선생님을 공식적으로 만날 일은 없겠구나 싶었는데요.”

“합수부가 해산합니까? 그럼 형사님도 일이 좀 줄어드시겠네요.”

“아뇨. 해산 계획이 취소됐습니다. 그 사건을 맡았거든요.”

“아….”

형사가 나강인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보라 씨를 납치하라고 의뢰한 놈은 따로 있습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목은 의뢰인의 정체를 부하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더군요.”

“두목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걸 봤습니다. 번호 추적은요?”

“했지요. 그런데 의뢰한 놈의 폰이 대포폰입니다.”

“선불폰이 아니라요?”

“국내에서 사용됐더군요. 마지막으로 전원이 켜졌던 곳에 찾아가 봤는데 이미 튀었는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형사가 단서를 달았다.

“아. 그놈 전화번호는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하하하.”

“아, 예.”

이미 알고 있다.

나강인은 두목을 잡은 후에 휴대폰을 켜봤다. 아까 그 상황에서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는 확인해뒀다.

형사가 계속 설명했다.

“그놈들은 총이 손에 들어오면 크게 한탕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두목이 권총을 잘 쏘던데,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필리핀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더군요. 거긴 저렴한 실탄사격장도 있고, 뒷거래로 무기를 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죠. 아니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요.”

“저희도 확인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놈들이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무슨….”

“선생님이 날아오는 총탄을 쳐냈다던데….”

“아. 그거요?”

형사가 웃었다.

“하하하. 뭔가 착각한 거겠죠?”

“쳐낸 거 맞습니다만?”

“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총탄이 날아오는 걸 보고 쳐낸 건 아닙니다. 그놈이 권총을 발사할 때 쇠파이프를 방패 대신에 휘둘렀는데, 그게 맞던데요.”

“어…. 그러다 총에 맞으면 어떡하시려고요?”

“그때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서 한 발 정도는 맞아도 괜찮았습니다. 다만, 맞을 때마다 방탄조끼의 내구도가 떨어지니까 기왕이면 쳐내는 게 좋아서 그런 거죠.”

“아아….”

합수부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된 거군요. 저는 광선검을 쓰는 우주의 기사라도 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 하하.”

형사가 웃다 말고 정색했다.

“어쨌든 총탄을 쳐낸 건 사실이잖습니까?”

***

합수부 회의에 형사의 보고가 올라왔다.

합수부장이 웃었다.

“하하. 그러면 그렇지. 사람이 총탄을 어떻게 눈으로 보고 쳐냅니까?”

“그러게요. 운이 좋아서 된 거군요.”

“당연히 운이죠. 무슨 전설의 칼잡이도 아니고요.”

형사가 나강인에게 모든 상황을 알려준 건 아니다. 알려주지 않은 이야기도 회의에 올라왔다.

“차 이사라는 놈은 누구입니까?”

“두목이 입을 조금 열었는데, 차 이사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답니다.”

“본적도 없는 놈을 위해서 일해요?”

“시키는 일을 하면 돈은 확실히 줬으니까요.”

“이보라를 납치한 조장 말입니다. 차 이사가 그 조직에 꽂은 놈이라면서요. 그놈은 차 이사를 알 거 아닙니까?”

“아니요. 그놈도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답니다.”

“그럼 차 이사는 그놈을 왜 그 조직에 보낸 겁니까?”

“두목이 차 이사를 노리고 수작을 부리면 연락하라고 했다더군요. 그 외에는 두목이 시키는 대로 하고요.”

“그럼 이번 사건도 차 이사가 개입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의뢰한 쪽에서 그 조직의 소문을 들었다면서 먼저 연락했다고 합니다.”

합수부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는 아직 차 이사는 물론이고 의뢰한 놈에 대해서도 알아낸 게 없네요?”

“그렇죠.”

“후우. 합수부를 해산하고 싶었는데….”

“본부장님. 팔자려니 하시죠. 당분간은 글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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