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29화 (129/411)

129. 율명바이오

율명바이오 직원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방금 지나간 쟤, 이정호 과장님 딸인 것 같은데요?”

“연지요? 맞아요.”

“환자복을 입고 가던데 어디가 많이 아픈가요? 배라도 쨌나?”

“어머. 배 짼 걸 어떻게 알았어요?”

“네? 아. 수술했군요? 어디가 아파서….”

간호사가 피식 웃었다.

“그걸 가르쳐줄 리 없잖아요?”

율명바이오 직원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간호사가 한마디 보탰다.

“사실 저도 몰라요. 과장님이 다른 병원에 데려가서 수술한 후에 회복만 우리 병원에서 하는 거예요.”

“예? 왜 굳이….”

“다른 병원이 더 수술을 잘하는 케이스였겠죠. 회복이야 우리가 더 잘 봐줄 수 있고요.”

“아아….”

간호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연지한테 왜 관심이 많아요? 쟤 미성년자인데?”

직원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래서 물어본 거 아닙니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럼요?”

직원이 씩 웃었다.

“이정호 과장님에게 관심이 많은 거죠. 다음에 이 과장님 뵐 때 건강식품 좀 챙겨드려야겠네요. 청소년에게 좋은 거로요.”

***

율명바이오의 직원은 이튿날 낮에 회사 휴게실에서 그 병원에 갔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정호 과장님 딸이 말이야. 어제 봤더니 수술을 했더라고.”

“그래? 어디가 아파서?”

“몰라. 그런데 이게 상황이 재미있어. 딸을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게 한 후에 그 병원으로 데려와서 입원시켰더라니까?”

“어? 이정호 과장 수술 실력은 국제적으로 알아주지 않아? 혹시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다른 병원으로 보냈나?”

“아니. 수술한 부위가 배라고 하던데?”

“배는 이정호 과장이 탑클래스잖아.”

“나도 그래서 신기라더라고. 그런 분이 환자를 다른 병원에 보내면 자존심 상할 텐데.”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겠지. 아무리 수술 실력이 탑이라도 자기 딸을 직접 수술할 수는 없으니까.”

“아. 그래서 그런 건가?”

“그렇겠….”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하나? 근무시간에.”

누가 말하나 싶어 고개를 돌리던 직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헉! 사장님!”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였냐니까?”

“아닙니다! 가서 일하겠습니다!”

권동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거 무슨 이야기였냐니까! 내가 궁금해서 그래!”

호통에 움찔한 직원이 얼른 설명했다.

“이정호 과장이라고, 굉장히 유능한 외과 의사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병원에 갔다가 들었는데, 이 과장의 딸이 복부에 큰 수술을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권동진은 당황했다.

“지나가다 듣고 설마 했는데, 진짜 이정호 박사 딸 이야기였어?”

“예.”

“아니, 죽을 줄 알면서 왜 수술을….”

“네? 죽다니요?”

“배를 수술했다며! 당연히 죽었을 거 아냐!”

직원이 눈을 껌뻑였다.

“수액 꽂고 병원 돌아다니던데요? 제가 볼 땐 팔팔했는데….”

권동진의 표정이 굳었다.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얼굴은 창백해지기까지 했다.

“지, 지금 그 말 사실이야? 이정호 박사 딸이 정말 수술을 했는데도 살았어? 진짜 안 죽었어? 아니, 왜 안 죽었어? 어떻게?”

직원이 속으로 생각했다.

‘사장님하고 이 과장님이 사이가 많이 나쁜가? 딸이 안 죽었다고 너무 뭐라 하시네.’

월급쟁이가 사장 앞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하긴 어렵다.

“그건 저도 잘…. 저도 간호사한테 들은 이야기라서요.”

권동진이 자리에 앉았다.

“거기 앉아서 뭘 보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차분히 설명해봐.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다.”

“아, 예. 그러니까 그게요.”

사장 권동진은 직원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질문도 몇 번 한 후에 휴게실을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난 후에야 직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사장님이 갑자기 오실 줄은 몰랐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그렇게 정색하고 들으시지?”

“그러게 말이야. 표정도 나쁘시고.”

“이정호 과장하고 무슨 원한이라도 있으신가?”

***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은 곧바로 그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충격받은 얼굴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정호 박사 딸이 수술을 받아? 그것도 배를?”

그것 자체는 이해는 갔다.

“수술할 수는 있지. 이대로 딸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눈이 돌아가면 뭐든 할 수는 있지.”

그런데 다른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지?”

권동진은 케이타이거 증후군을 안다. 그 증상과 그동안의 연구 실적을 아주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이연지가 복부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도대체 어떻게?”

그가 책상 위를 보았다. 가족사진이 작은 액자에 들어있었다.

“수술할 방법이 있다면 나에게도 알려줬을 텐데, 왜 며칠이나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지?”

그가 스마트폰을 켜서 이정호의 휴대폰 번호를 찾았다. 바로 전화해야 할지, 아니면 좀 더 알아보고 해야 할지 망설였다.

이정호의 눈에 사진이 다시 보였다. 그가 결정을 내리고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에서 이정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이 박사님. 권동진입니다.”

- 예. 권 사장님. 잘 지내셨지요?

“내가 마음이 급해서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따님이 수술을 받았습니까?”

이정호는 당황했다.

- 예? 아니, 그게….

권동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머뭇거리는 걸 보니까 사실이구나!’

그의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수술에 성공했군요!”

- 그게….

이정호가 머뭇거릴수록 권동진은 확신했다. 그가 다급히 물었다.

“혹시 우리 딸도 수술할 수 있습니까? 네? 가능하겠지요?”

- 수연이는 연지와는 증상이 다르니까….

권동진은 이정호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벌써 나한테 연락을 했겠지.’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일단 만납시다.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 그게…. 후우. 사정이 있어서 그럽니다.

“당연히 사정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만나야겠습니다. 난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잖습니까?”

- 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시고 조용히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아쉬운 건 권동진이다.

“그러시죠. 오늘 밤 괜찮으십니까? 장소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

외과 과장 이정호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미치겠네. 권 사장을 안 만날 수도 없고.”

이정호는 일단 병원에 있는 손미연과 김중석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권 사장을 안 만나주면 업계에 소문을 낼지도 몰라. 제약회사 사장이 소문을 내면 경찰은 물론이고 보건복지부도 알게 돼.”

외과 의사 김중석이 긴장했다.

“과장님. 그런 사태는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저희 싹 다 체포됩니다.”

“그래. 내가 어떻게든 만나서 수습해 볼게. 최악의 경우에도 네 이름은 내가 절대로 말 안 할게. 중석아.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것만 이해해 줘라. 미안하다.”

***

나강인은 SAH 엔터 구내식당에 들렀다.

AI 전지인이 여기 밥을 좋아했다.

“공짜라고 해서 자꾸 먹는 건 조금 미안한데….”

- 요원님은 SAH 엔터에서 디지털 싱글 음반을 냈습니다. 그 음반이 잘나가고 있습니다. 이 회사 병아리들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자주 먹어도 됩니다.

“그래도 내가 여기 소속은 아니잖아.”

- 요원님이 언제부터 그런 걸 따지셨습니까?

“안 따졌지. 그냥 나중에 여기 주방에서 밥 한번 하자. 여긴 고화력 가스레인지가 많으니까 아주 대량으로. 밥을 먹은 만큼 밥을 해주면 되겠지.”

- 좋은 아이디어이십니다.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은 나강인의 일도 종종 도와준다.

그는 밥 먹으러 왔다가 나강인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나강인이 한 말을 들었다.

박우섭이 그의 앞자리에 앉으며 활짝 웃었다.

“강인 씨. 여기서 요리하는 날 꼭 연락 주십시오.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구내식당에 와서 밥 먹게요.”

“아니, 뭐 그러실 것까지야.”

박우섭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어? 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나강인표 요리 맛을 알게 될 텐데…. 어? 그러다 피시방에 사람이 몰리면 곤란한데….”

“설마요. 잘 알지도 못하는 분들인데.”

박우섭이 다시 활짝 웃었다.

“그치요?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죠. 나처럼 강인 씨를 잘 아는 사람만 가야죠. 하하하.”

걸그룹 프프걸스 네 명이 구내식당에 밥 먹으러 왔다가 박우섭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나강인을 발견했다.

“앗! 나강인 선생님이다!”

네 사람이 그 식탁으로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강인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어. 그래. 밥 맛있게 먹어.”

리더 소지영이 얼른 말했다.

“저희 그거 할 수 있어요!”

“그거라니?”

“자연 체조 2단계요!”

“응? 그거는 지혜를 놀리려고 한 말인데?”

기운이 넘치던 네 사람의 어깨가 축 처졌다.

소지영은 아예 울상을 지었다.

“그럼… 2단계 체조는 없어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있습니다만 배우기 어렵고 부상 위험이 조금 있습니다.

“있긴 있는데….”

어깨가 처졌던 소지영이 즉시 파릇파릇하게 살아나서 말했다.

“열심히 할게요!”

“그런데 그건 부상 위험이 좀 있어서 곤란해. 그리고 그걸 열심히 해서 뭘 하려고?”

“너튜브에 올려도 된다면서요?”

매니저 박우섭이 얼른 찬성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강인 씨. 우리 애들이 진짜 착하고 고생도 많이 했는데, 그동안 빛을 못 봤거든요?”

“어…. 은하한테 그렇다고 듣긴 했는데요.”

“그런데 요즘 강인 씨 덕분에 시골 행사 동영상도 뜨고, 멧돼지 동영상도 뜨고, 또 자연 체조도 떴습니다. 이제 얘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꽤 생겼어요.”

“잘… 됐네요?”

“얘들 노래도 차트 100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순위 끄트머리긴 하지만 다시 들어갔다는 게 어디입니까?”

“그렇죠?”

“도와주십쇼. 얘들 진짜 열심히 할 겁니다.”

나강인이 프프걸스 네 명을 보았다. 네 명 다 간절한 눈빛으로 나강인만 보고 있었다.

“음… 2단계는 배우기 어려워서 반응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정 배워야겠다면….”

네 명이 동시에 외쳤다.

“열심히 할게요!”

식당에서 밥을 먹던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무슨 이야기야?”

“쟤들 요즘 자연 체조로 인지도가 좀 생겼잖아. 그 체조가 지금까지 공개된 게 다가 아닌가 본데?”

“어머. 나도 그 체조 매일 하는데. 나도 가르쳐달라고 할까?”

“너 나강인 씨하고 아는 사이야?”

“아니지만, 회사에 말하면 어떻게 연결해주지 않을까?”

***

박우섭이 SAH 엔터 사장 서재현에게 보고했다.

“그래서 얘들이 나강인 씨에게 2단계 자연 체조를 배운 후에, 교육 동영상을 만들어서 너튜브에 올릴까 합니다.”

서재현이 물었다.

“잠깐만. 시청자가 그 체조를 함부로 따라 하면 다칠 위험이 있다며?”

“그래서 나강인 씨가 얘들을 가르치면서 부상 위험이 줄어들게 고쳐보겠답니다. 체조의 건강증진 효과도 같이 줄어들겠지만요.”

“어…. 그럼 그걸 다 배우려면 오래 걸리겠네?”

“일주일에 하루씩만 배우러 가는 거니까, 얘들 스케줄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프프걸스 네 명도 사장실에 모여 있었다. 리더 소지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린 스케줄 없는데요?”

막내 최지혜가 맞장구쳤다.

“맞아. 인지도만 올라갔지 아직 스케줄은 없잖아.”

박우섭이 말했다.

“너희 스케줄 들어왔다. 이번에는 대학교 행사야.”

네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좋아서 깡충 뛰었다.

“네? 꺄악!”

“우리도 드디어 대학 행사를 뛰는구나!”

박우섭이 얼른 설명을 추가했다.

“대학 축제가 아니야. 학교 자체에서 하는 행사야. 섭외비도 싸.”

“괜찮아요! 그래도 대학 행사잖아요!”

“그래. 뭐. 좋다니까 다행이다.”

서재현이 말했다.

“그래. 2단계인지 뭔지 그 체조 해라. 해. 배우는 데 오래 걸린다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네에!”

박우섭이 서재현에게 말했다.

“사장님.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요.”

“뭔데?”

“너튜브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면, 호신술 강의는 어떠냐던데요?”

“응? 설마 나강인 씨가 무술을 가르치는 거야? 얘들은 네 명이나 되는데?”

“그렇죠?”

서재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왜? 어디 전쟁터라도 접수하러 간대?”

“네? 아뇨. 그냥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호신술이죠.”

“아! 그렇지. 우리 애들을 살인 병기로 만들 필요는 없지.”

“당연하죠. 2단계 자연 체조를 다 배우기 전에 너튜브에 올릴 콘텐츠가 있으면 좋잖습니까? 그 이야기입니다.”

“휴우. 난 또.”

프프걸스 네 명은 그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박우섭이 뒤늦게 그 시선을 깨닫고 어색하게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우리 사장님이 농담을 참 잘하신다. 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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