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35화 (135/411)

135. 공터

아이돌 최지혜가 나강인에게 배운 호신술을 써서 상대를 던져버렸다. 최지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던 놈은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이년이!”

남자가 욕을 하며 일어나려 했다.

총권도 수강생인 박순기가 달려와 남자의 팔을 비틀며 바닥에 다시 처박았다. 남자가 도로에 깔린 채로 욕을 했다.

“켁. 이, 이 새끼! 넌 또 뭐야!”

“응. 경찰.”

박순기가 남자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

아이돌 최지혜는 여전히 몸의 중심을 낮추고 두 팔을 쭉 뻗은 상태였다. 그녀가 자세를 풀며 팔을 붕붕 휘둘렀다.

“내가 호신술을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잘하지? 이게 재능의 힘인가? 난 아이돌이 아니라 격투기 선수로 갔어야 했나?”

다른 좋은 생각이 났다.

“아니다. 격투기 하는 아이돌을 할까? 흐흐흐.”

나강인이 최지혜의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하지 마라. 다친다.”

“넹.”

나강인이 남자에게 걸어가 얼굴 앞에 부서진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수연이가 널 보고 왜 도망쳤을까?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네가 칼이라도 꺼냈냐? 왜 그랬지? 노트북 훔친 걸 수연이가 눈치채서?”

“헉!”

“수연이가 떨어뜨린 휴대폰을 도로 주울 시간이 없었던 건, 네가 계속 뒤쫓아갔기 때문이겠지.”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흘린 걸 나중에 돌려주려고 주운 것뿐입니다.”

“휴대폰이 부서졌잖아.”

“그건, 떨어질 때 깨졌습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신발로 밟은 자국 다섯 개를 찾았습니다. 적이 중요 정보 제공자 권수연의 휴대폰을 다섯 번 밟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넌 이 휴대폰을 다섯 번이나 밟았어. 완전히 부수려고.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았겠지.”

나강인이 밟은 횟수까지 정확히 말했다. 남자는 나강인이 어디선가 모두 보고 있었다고 착각했다.

“그, 그게….”

“그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게 아니지.”

나강인이 발을 들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그대로 걷어찰 기세였다.

“수연이 어디 있어?”

박순기가 당황해서 외쳤다.

“사범님! 이놈은 튼튼한 국제 용병이 아닙니다. 사범님이 화가 나서 걷어차면 죽습니다!”

박순기는 진심으로 나강인을 말렸다. 남자도 박순기가 당황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강인의 무서운 힘은 조금 전에 직접 경험했다.

진짜 죽을까 봐 겁이 난 남자가 처음으로 사실대로 말했다.

“쪼, 쫓아가긴 했습니다. 근데 그 여자가 저쯤에서 갑자기 사라져서 더 못 쫓아가고, 그냥 이 학교를 빠져나가려던 겁니다. 진짜입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표정과 음성을 분석했습니다. 진실을 말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나강인이 경찰 요원 박순기에게 말했다.

“이놈이 행사장에 있던 노트북을 훔쳐서 학교를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증거는 차 안에 있으니까, 그거면 일단 체포할 수 있을 겁니다.”

“방금 지혜를 공격한 것만으로도 체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놈은 맡겨두고, 난 수연이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나강인는 권수연이 사라졌다고 들은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건물 두 채가 서 있었다. 두 건물 사이의 틈은 그렇게 좁지 않았다. 원래는 사람이 충분히 지나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그런데 그 입구에 낯선 것이 있었다.

“어쩐지 전에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인데.”

그 통로 입구에 안내판 여러 개가 붙은 기둥과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입구는 그것들 때문에 사람이 통과하기에는 너무 좁은 곳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일부러 학생들이 여기로 지나가지 못하게 막은 건가?”

기둥과 건물 사이의 폭이 너무 좁아서 보통 사람은 지나가기 어려웠다.

“저 도둑놈에게는 무리야. 그런데 권수연은 심하게 말랐잖아. 지인아?”

AI 전지인이 권수연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운 후에 통로를 지나가게 했다. 홀로그램이 벽과 기둥 사이를 몸이 낀 채로 통과했다.

- 지나갈 수는 있습니다만 공간에 여유는 없습니다.

“네가 보여준 것처럼 여기를 지나갔다면, 옷이 걸릴 수도 있겠는데?”

나강인이 스마트폰의 조명을 켜고 기둥 중간에 살짝 돌출된 나사들을 비추었다.

AI 전지인이 그중 한 곳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 섬유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이곳을 급히 통과하다가 옷이 걸렸겠지. 수연이가 입고 있던 옷과 같은 종류냐?”

권수연의 홀로그램이 다시 떴다.

- 색이 같습니다.

“그럼 수연이가 여길 지나간 게 맞겠지.”

나강인이 표지판이 잔뜩 붙은 기둥을 손으로 잡고 위로 올라갔다. 그는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올라간 후에, 맞은편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는 그 골목을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대로 계속 걸어가면 건물 반대편이 나온다. 그쪽은 기둥으로 막혀 있지 않았다.

“이리로 지나다니지만 못하게 하려고 한쪽만 막아놨네.”

왼쪽 건물은 오른쪽보다 작았다. 그 골목 중간쯤에서 왼쪽 건물의 벽이 끝났다. 그 뒤에는 축대가 있었다.

왼쪽 건물과 축대 사이에도 좁은 틈이 있었다.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그런데 그 좁은 틈에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지인아. 이쪽에 흔적은?”

- 흙먼지를 밟은 발자국을 확인했습니다. 중요 정보 제공자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나강인이 그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쪽으로 계속 걸어가자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며 작은 공터가 나왔다.

그 공터 한복판에 권수연이 쓰러져 있었다.

- 중요 정보 제공자 권수연을 발견했습니다!

나강인이 얼른 달려가 그녀의 몸에 손을 댔다.

몸이 차가웠다. 맥박이 거의 잡히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권수연!”

권수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강인을 보았다. 그녀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강인이구나. 네가 여기로 올 줄 알았….”

그녀는 그 말도 다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옆으로 툭 떨어졌다.

“어? 수연아? 수연아!”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기절했습니다.

“어우. 놀라라. 죽은 줄 알았잖아.”

- 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컨디션이 너무 나쁩니다. 즉시 병원으로 보내야 합니다.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찾았습니다.”

- 역시 나 사범님!

“그런데 피해자 상태가 별로 안 좋습니다. 외상은 없지만 구급차가 필요합니다.”

그는 휴대폰을 앞주머니에 거꾸로 넣고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현재 위치를 설명했다. 권수연은 두 팔로 안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좁은 틈을 통과할 때는 그녀의 몸이 벽에 닿지 않게 조심했다.

통로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구급차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게 보였다.

“구급차가 빨리 왔네?”

권동진 사장도 뛰어왔다.

“헉헉. 여기 우리…. 허억! 수, 수연아!”

권동진은 112에 신고한 후에 구급차부터 불렀다. 그래서 구급차는 권수연을 구출하자마자 도착할 수 있었다.

나강인이 권수연을 구급대원들에게 넘겼다.

권동진이 옆에서 안달했다.

“조심해요! 우리 딸이 많이 아프단 말입니다! 몸에 충격을 받으면 위험해요!”

“예. 조심하고 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권수연을 구급차에 태웠다. 그런 후에 물었다.

“보호자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한 분만 가실 수 있는데요.”

“당연히 가야지요!”

권동진이 구급차에 올라탔다.

나강인이 권동진에게 물었다.

“이 근처 병원으로 가십니까?”

“아. 수연이 친구. 고마워.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이 근처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아니야. 여기가 아니라 수연이 주치의가 있는 병원인데, 오려면 거기로 와!”

구급차 문이 닫혔다. 권동진은 병원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구급차를 타고 떠났다.

나강인이 숨을 내쉬었다.

“후우.”

- 구출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그래. 다행히 늦지 않았다.”

- 전투지원을 종료합니다.

나강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권수연이 발견된 저 장소는 뭔지 모르게 익숙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났다.

‘강인이구나. 네가 여기로 올 줄 알았….’

“내가 저기로 올 줄 알고 있었단 말이야. 어떻게? 왜?”

그 공터로 들어가는 길도 낯설지가 않았다.

- 정보 제공자 권수연을 조사하십시오.

“그래. 직접 물어봐야지. 그런데 저 장소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물어보려면, 먼저 수연이가 회복해야겠지.”

- 정신을 차리면 문병을 핑계로 접촉하십시오.

“그러려고. 근데 병원 이름도 못 들었다.”

경찰 요원 박순기가 다가왔다.

“역시 나 사범님. 피해자를 금방 찾아내실 줄 알았습니다.”

“운이 좋았죠.”

“하하. 그동안 나 사범님이 하신 일을 저도 몇 개는 아는데, 그게 어떻게 운으로 되는 일입니까?”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그놈은 정체가 뭐였습니까? 왜 노트북을 훔쳐간 겁니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일단 행사장에 가시겠습니까? 거기도 진행용 노트북이 없어져서 난리가 났을 텐데.”

***

차지희는 물론이고 다음 순서를 준비하던 사람도 행사 진행용 노트북이 사라져 당황했다.

이제 중간 행사가 모두 끝났다. 다시 발표할 사람이 단상에 올라가야 한다. 첫 번째 발표자는 철인기공 설계팀 차지희다.

차지희가 말했다.

“이대로 멈추면 이 행사는 망하니까, 제가 올라가서 말로 때워볼게요.”

진행요원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려고….”

“열심히 잘하려고요.”

차지희는 단상에 올라가고 나서야 문제를 하나 더 깨달았다.

‘아. 여기 본부장님도 와 계시지. 망했다.’

그녀가 조금 더 긴장하며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지난 일 년간 한국대학교와 철인기공의 산학협력으로 이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이제 가시적인 성과가….”

차지희는 노트북 없이 발표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려면 화면 대신에 뭔가 시선을 자극할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녀는 단상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설명했다. 그래프는 두 팔을 크게 움직여 표현했고, 그 기술이 적용될 장비를 설명할 때는 맨손으로 소총을 조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퍼포먼스와 함께 발표를 진행했다. 발표가 끝나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차지희가 땀에 젖은 머리를 슬쩍 넘기며 이태성이 있는 곳을 보았다. 무대 조명이 밝아서 청중석은 앞자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반응을 알 수가 없네.’

그녀가 단상을 내려왔다.

다음 발표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행용 노트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앞사람인 차지희가 너무 잘했다. 지금 올라가면 대놓고 비교된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은근히 본부장의 칭찬을 기다렸다.

이태성이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화면도 없이 혼자 쇼를 해?”

차지희가 조금 실망하며 대답했다.

“진행용 노트북 누가 훔쳐갔대요.”

“거기에 우리 회사와 관계된 중요한 자료라도 들었나?”

“아니요. 오늘 발표는 우리 회사가 이 학교 연구실에 의뢰해 연구하던 건데, 이런 식으로 훔쳐갈 정도로 중요한 연구는 아니에요. 연구가 끝난 것도 아니고, 그 노트북에 핵심 자료는 들어있지도 않았어요.”

이 학교 졸업생인 차지희가 그 산학협력연구의 담당자다. 그래서 그녀가 오늘 발표를 맡았다.

차지희의 다음 발표자는 단상 위에서 버벅댔다. 화면이 있는 걸 전제로 대본을 준비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말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라 버벅댔다.

이태성이 말했다.

“저 친구는 망했네.”

차지희가 물었다.

“저랑 차이가 많이 나죠?”

“어. 잘하더라.”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진행요원이 무대 위에 올라와 노트북을 연결했다. 그 요원은 임시 조치로 업무용 노트북에 파일만 복사해서 가져왔다. 덕분에 뒤쪽 스크린에 발표 자료가 정상적으로 나타났다.

이태성이 차지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혼자 쇼했네?”

차지희가 툴툴댔다.

“그러게요. 저 노트북이 왜 이제 나와.”

***

범인을 잡은 건 박순기지만 데려간 건 이 지역 관할 경찰서 형사였다.

프프걸스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구경을 하고 싶어 했다. 어차피 그냥 돌아가 봤자 할 일도 없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라서 박순기와 민영희, 나강인이 같이 움직였다.

박순기가 최지혜에게 말했다.

“용감한 시민 표창장이라도 받게 내가 이야기 잘해줄게.”

“앗! 고맙습니다! 경찰 아저씨를 아니까 좋네요. 히히.”

민영희가 초를 쳤다.

“순기가 말 안 해줘도 표창장은 나올걸? 납치범을 잡았잖아.”

“야. 안 나오는 경우도 많아.”

“연예인이 납치범을 잡았는데 표창장이 안 나온다고? 이거 이거 경찰관이 약을 파네?”

“야. 너 누구 편이야? 꺼져.”

이태성과 차지희가 행사장을 나왔다가 학교를 돌아다니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설계팀 차지희가 얼른 달려와 인사했다.

“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는 애들이 공연하러 와서 응원하러요.”

민영희가 끼어들었다.

“잠깐. 팀장님이라니요? 나 사범님 혹시 회사 다니세요?”

박순기가 대신 대답했다.

“철인기공 설계팀 팀장님이시잖아. 넌 몰랐구나?”

“나는 총권도만 알았지.”

이태성이 다가왔다.

“그걸 아는 분은 거의 없는데, 누구신지….”

“어…. 나 사범님 제자입니다. 하, 하하.”

***

권수연은 이정호 과장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했다.

권동진은 옥상에서 이정호를 따로 만났다.

“이 박사님. 우리 수연이 말입니다.”

이정호가 말했다.

“체력이 떨어져 기절한 것뿐입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아직은 괜찮은 거겠죠.”

권동진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닥터 노네임과 만나게 해주십시오. 설득은 내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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