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41화 (141/411)

141. 해커 II

율명바이오 정보보안팀장이 IT 보안 커뮤니티 사이트 ‘해모수’에 글을 올렸다.

[오늘 새벽토끼님을 실제로 봤습니다.]

곧바로 댓글이 붙었다.

- 어? 어떻게요?

- 방장님도 섭외에 실패했는데?

- 새벽토끼님이 우리 회사에 점검하러 왔습니다.

- 와. 실물 어떤가요? 몇 살인가요? 이름은요?

- 개인 정보를 공개할 리가요. 괜히 공격당할지도 모르는데.

- 실력은요? 이론만 강한 건 아니겠지요?

- 실력 진짜 쩝니다. 저게 왜 뚫리지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순식간에 상대 서버를 뚫더군요.

- 와. 나도 보고 싶다.

-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로그 좀 분석해보려고요. 개인 프로그램을 따로 사용하셔서 자세한 건 알 수 없겠지만, 어떤 방식을 썼는지는 알 수 있겠죠.

- 그래서 돌산무사님네 회사를 점검한 결과는요?

- 우리 회사의 완벽한 방어 능력을 확인하고 가셨죠. 제가 이렇게 일을 잘합니다. 하하하.

- 그거 자랑하려고 목격담을 올리셨구나.

***

나강인이 차에 탔다. 해커가 접속한 실제 주소는 확인했다. 그런데 그 주소에서 접속한 건 이틀 전이 마지막이었다.

“거기 없을 수도 있겠네?

- 해커가 권수연의 노트북 해킹을 실패한 이후에, 추적을 피하려고 장소를 옮겼을 수 있습니다.

“일단 가보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상가 건물이었다.

“여기 2층이라고? 해커 놈들은 왜 다들 이런 곳을 쓰는 거야?”

- 이 건물에서 CCTV를 찾지 못했습니다.

“도망치기 쉬우려고 쓰나 보다.”

나강인이 건물에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경비실도 없고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무실 문을 슬쩍 열어보았다. 잠겨있지 않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커녕 종잇조각 하나 굴러다니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누군가 여기서 지내다가 도망친 지 얼마 안 된 것 같지?”

- 먼지의 양으로 추정하면, 하루이틀사이에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 모든 흔적이 제거되어,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없습니다.

나강인이 툴툴대며 건물을 나갔다.

“아주 전문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놈일 거야.”

밥도 먹지 않고 돌아다녔더니 조금 출출했다.

“커피라도 마시면서 생각하자.”

- 콜라를 적극 추천합니다.

“그래. 콜라.”

나강인이 길 건너 편의점에 들어가 콜라를 하나 골랐다.

“음?”

그가 편의점 천장을 보았다. 구석에 CCTV가 있었다.

“지인아. 저 CCTV가 저 각도로 설치되어 있으면, 길 건너까지 찍혔겠지?”

- 1층만 찍힐 뿐 사무실 창문은 찍을 수 없는 각도입니다. 누가 해커인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자.”

나강인이 편의점 점장에게 물었다.

“여기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점장이 난감해했다.

“예? 그건 보여드리기가 좀…. 왜 보시려고요?”

“제가 도둑놈을 하나 찾고 있는데, 그놈이 이 동네에 사는 것 같아서요.”

“어…. 그러다 귀찮은 일이 생기면….”

“이 가게에서 도둑질을 한 건 아니니까 귀찮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저께부터 오늘까지 파일만 복사해주면 십만 원 정도 사례….”

“어디에 복사해드릴까요?”

나강인은 USB 메모리에 파일을 복사해서 차로 돌아왔다.

그는 그 USB 메모리를 노트북에 꽂고 영상을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말했다.

“저 건물은 출구가 하나잖아. 그놈이 어제나 그저께 저기서 짐을 뺐으면, 그걸 가지고 저 출구로 나와야겠지? 이사 가는 놈을 찾자.”

- 요원님이 이렇게 유능하신 분인 줄 몰랐습니다.

“어. 너만 몰라. 남들은 다 감탄해.”

나강인은 영상을 64배속으로 재생했다. 그렇게 고속으로 돌려도 AI 전지인은 필요한 정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대량의 짐을 옮기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나강인이 영상을 정지시키고 조금 앞으로 돌렸다. 승합차를 가져다 놓고 짐을 싣는 사람이 있었다.

“컴퓨터를 옮기는 거 맞지?”

AI 전지인이 흐릿한 영상을 재조합해 조금 더 선명한 사진으로 만들어 AR 렌즈에 띄웠다.

- 맞습니다.

“저놈 얼굴도 확인 가능하냐?”

- 편의점 유리를 통해 찍힌 것이고, 화면의 가장자리에 찍혔으며, CCTV의 화질이 매우 나쁩니다. 지금 이게 최선입니다. 얼굴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저 옷을 입은 놈이 이 편의점을 이용했을까? 바로 길 건너니까 뭐라도 사 먹으러 왔겠지?”

- 같은 복장의 인물을 이전 영상에서 찾았습니다.

나강인은 AI 전지인이 말한 위치로 영상을 돌렸다.

이삿짐을 나르던 남자와 같은 복장의 인물이 이사 가기 몇 시간 전에 편의점을 들렀다.

“이놈이네. 이놈이 해커이거나, 최소한 해커의 일당 정도는 되겠지. 얼굴 사진 정확하게 떠놔라.”

- 노트북에도 저장했습니다.

“이제 이놈을 찾아야 하는데…. 사진만 갖고 찾는 건 어렵겠지?”

- 차량번호판은 이 각도에서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이건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나강인이 경찰 요원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나 사범님. 또 사건이 터졌습니까!

“아뇨.”

- 어휴. 놀랐습니다.

“한국대학교에서 잡은 놈 말입니다.”

- 예. 담당 형사에게 정보를 공유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도둑놈이 해커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쓸만한 게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뭘 좀 찾았는데 말이죠.”

- 이번엔 뭘….

“그 해커요.”

박순기는 당황했다.

- 예? 그거 담당 형사들 말로는 그 도둑놈도 모른다던데 어떻게….

“지도 이미지에 위치 표시해서 보내드릴 테니까, 어제 오후 다섯 시에 그 위치에서 짐을 실은 차의 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까요?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아내면 더 좋고요. 흰색 승합차입니다.”

- 그 차가 움직인 정확한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도로 방범용 CCTV를 조회해서라도 찾아내겠습니다.

나강인이 지도 이미지를 박순기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그런 후에 편의점에서 산 콜라를 마셨다.

“그놈을 빨리 잡으려면 순기 씨의 도움이 필요하긴 해.”

- 치안 관계자와 알아두면 이렇게 좋습니다.

“이런 걸 기대하고 총권도를 가르치는 건 아닌데 말이야.”

10분 뒤에 박순기가 전화했다.

- 찾았습니다. 차 번호도 확인했습니다.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알아보는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 나 사범님. 고마우면 다음에 우리 일 좀 도와주시죠. 우리 애들이 지금 자기 일도 제쳐놓고 그 차를 찾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거든요.

“제가 나서서 도움이 되는 일이면요.”

- 아유. 도움이 되고말고요. 그런데 지금 계신 곳이 혹시 지도를 보내주신 그 장소입니까? 여기서 멀지 않은데 제가 가서 도와드릴까요?

“그러면 좋죠. 저는 민간인이라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 아니,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으신 분이 어떻게 벌써 그 해커를 찾습니까?

“그냥 잘?”

-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박순기는 20분 뒤에 도착했다. 나강인이 박순기의 차로 옮겨탔다.

박순기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 차는 대포차입니다. 하여간 우리나라에는 대포차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 애들이 제가 여기로 오는 동안 이 차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CCTV를 분석해 추적했습니다. 그랬더니.”

박순기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여주었다.

“멀리 가지는 않았더라고요.”

박순기가 지도의 한 지점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사라졌습니다. 그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거기로 가시죠.”

***

차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나강인이 박순기의 스마트폰으로 편의점에 들른 남자의 얼굴 사진을 전송했다.

“이놈이 해커이거나, 아니면 해커와 한패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놈이죠.”

“이건 또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이놈이 그 앞 편의점 단골이더라고요. 거기 CCTV에 찍힌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진 속 사람이 그놈인지를 어떻게….”

“그냥 잘?”

“아, 예.”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낡은 상가 건물과 사무실, 빌라 등이 섞여 있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해커의 차를 찾았습니다.

나강인이 앞을 가리켰다.

“그 차가 저기 서 있네요.”

“해커도 저 건물에 있을까요?”

- 해당 건물에서 CCTV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경비실도 없습니다. 해커의 이전 거점과 같은 조건입니다.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그 안으로 쓱 들어갔다.

박순기가 따라 들어가며 목소리를 낮췄다.

“문이 많은데 어디일까요?”

나강인은 전기 계량기를 확인했다.

“전기를 열심히 쓰고 있는 곳이겠죠.”

그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사무실이 몇 개 있었다. 나강인이 그중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에 그 해커가 있을 겁니다. 순기 씨가 저놈을 건물 밖으로 불러내고 시간을 조금만 끄세요.”

“뭘 하시려고….”

“공무원이시니까, 모르시는 게 낫습니다.”

“설마 그 해커를 제거하려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닙니다. 제 이미지가 도대체 어떻길래 그런 상상을 합니까?”

“그러게요. 하, 하하.”

나강인이 뒤로 빠졌다.

박순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집주인입니다.”

잠시 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월세 선불로 줬으니까 방해하지 않기로 했잖…. 어? 누구?”

박순기가 문을 연 사람과 스마트폰의 사진을 비교했다.

“맞네.”

“누, 누구야!”

박순기가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응. 경찰.”

“겨, 경찰이 어떻게 알, 아니, 왜….”

“해커 맞으시죠?”

“헉!”

“다 알고 왔습니다. 지금 조사를 받으면 자수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영장 받아와서 정식으로 체포하면 처벌을 크게 받을 거고요.”

해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게…. 그럼 지금 말고 나중에….”

“납치에 살인미수가 형량이 얼마더라….”

해커가 펄쩍 뛰었다.

“자, 잠깐만요! 난 누굴 납치한 적 없어요! 살인미수도 안 했고요!”

“이미 피해자가 있습니다만? 뉴스에 난 그 사건 보셨을 텐데요? 뉴스 보고 편의점 앞 건물에서 여기로 도망친 거 아닙니까?”

“그, 그러니까 난 그냥….”

박순기가 상대를 유인하기 위해 슬쩍 제안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면 누가 들을 텐데, 안으로 들어가서 들을까요?”

“아, 아뇨!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실까요?”

“그, 그러죠.”

해커가 사무실 문을 열쇠로 잠그고 박순기를 따라갔다.

그들이 계단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나강인이 반대쪽에서 나타났다.

“열쇠로 여는 방식이네?”

- 락픽을 사용하십시오.

나강인은 문의 자물쇠에 자물쇠 따기 도구인 철사 두 개를 집어넣었다. AI 전지인이 그 도구를 사용해 잠금장치를 간단히 해제했다.

나강인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해커가 박순기의 유인에 걸려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컴퓨터가 아직 켜져 있었다.

나강인이 컴퓨터에 USB 메모리를 꽂으며 말했다.

“필요한 자료를 복사하자. 해킹이 아니라 직접 복사하는 거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그 USB 메모리에는 AI 전지인이 만든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 전송 프로그램을 설치했습니다. 제작거점으로 선택한 파일을 전송합니다. 전송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흔적을 지우게 처리했습니다.

“지인아. 넌 평소에는 못한다고 땡깡을 부리다가도, 막상 할 때는 되게 잘한단 말이야.”

- 최근 해킹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이놈이 율명바이오를 해킹하려던 놈 맞아?”

- 맞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다른 건?”

- 연예기획사를 해킹했습니다.

“그런 짓 하는 해커는 전에 잡았는데, 그런 놈이 또 있었네?”

- 2개 기획사의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뭘 꺼내 갔는데?”

- 연예인의 개인 정보입니다.

“지난번하고 똑같네? 그때 잡은 해커와 같은 놈한테 일을 받았나? 아니지. 그 해커가 잡히니까 이번엔 이 해커한테 일을 시킨 놈이 따로 있겠지.”

- 타당한 예상입니다.

“이 해커가 율명바이오에서는 뭘 찾으려고 했어?”

- XVE 가스의 해독제 제조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와. 설마 했는데 진짜 화학무기 쪽이었냐?”

박순기가 해커를 오래 유인할 수는 없다. 나강인이 USB 메모리를 뽑고 일어났다.

“나가자. 문은 도로 잠가놓고.”

***

나강인이 밖으로 나갔다. 박순기가 아직도 해커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다가가며 말했다.

“박 형사님. 그냥 납치와 살인미수로 처넣죠?”

박순기가 얼른 나강인과 말을 맞추었다.

“어. 김 형사. 그럴까?”

해커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저는 진짜 몰랐다니까요!”

나강인이 말했다.

“학교에서 납치될 뻔한 피해자의 노트북에 심으려던 프로그램 말이야. 네가 만들었잖아.”

“예? 아, 아니요. 즈, 증거 있습니까?”

“우린 이미 다 알고 왔어. 너한테는 확인만 하는 거야.”

“그런 거짓말에는 안 속….”

“너 연예기획사도 해킹했지? 두 군데쯤 성공한 것 같던데.”

“헉!”

“연예인 개인 정보는 빼내서 어디에 쓰려고 했냐?”

“그, 그게 아니라….”

“율명바이오도 해킹했지?”

해커의 얼굴이 이제 창백해졌다.

“어, 어디까지 알고 오신 겁니까?”

“우리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왔다니까. 다 알면서 묻는 거니까 넌 순순히 자백해. 그래야 정상참작이라도 받아.”

“그, 그게….”

나강인이 방금 빼낸 정보를 이용해 계속 압박했다.

“화학무기는 왜 노렸어?”

해커가 펄쩍 뛰며 두 손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예? 화학무기라니요!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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