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43화 (143/411)

143. 쿠거

합동수사본부의 간부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어떤 상황입니까?”

경찰 소속 합수부 간부가 설명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건, 누군가 화학무기의 해독치료제 제조법을 빼내려고 해킹을 시도했다는 것뿐입니다.”

합동수사본부장이 등을 폈다.

“어? 그게 다입니까?”

“예.”

“아니, 그것만으로 무슨 테러를 예상합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강인의 제보니까,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합수부장의 표정이 풀어졌다.

“난 또 뭐라고. 말 그대로 혹시나 하는 첩보네요. 설사 그게 진짜 사건이 된다 해도, 대테러 부서에서 맡겠죠. 하하하.”

합수부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통화가 끝난 후에 합수부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허허허. 이 사건. 우리가 맡기로 했습니다.”

다른 간부가 다급히 물었다.

“아니, 왜요? 테러 증거도 딱히 없고, 드러난 건 해독치료제 자료를 해킹하려던 것뿐이라면서요? 이건 애매한 사건인데요?”

“애매하니까 우리보고 맡으랍니다.”

“예?

“테러라고 의심할 만한 근거는 나강인의 추측밖에 없어서 대테러 부서가 전담하긴 좀 그렇답니다. 우리 합수부가 그동안 나강인과 같이 일을 많이 했으니까, 우리가 주도해서 알아보랍니다.”

간부가 항의했다.

“아니, 우리가 언제 나강인과 같이 일했습니까? 매번 사건이 터진 후에 뒷수습한 기억밖에 없는데요.”

“위에서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네요. 우리가 일을 잘 처리하는 줄 압니다.”

“와. 어떻게 이런…. 현장 상황을 이렇게 모르다니.”

합수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렇게 계속 일을 시킬 거면 인원을 더 보충해주든가.”

경찰 간부가 말했다.

“그런데 본부장님. 나강인의 예상대로 이번 사건이 정말로 화학무기에 의한 테러라면….”

합수부장이 정색했다.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합니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강인의 경고니까 대비는 해야죠.”

다른 간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또 야근이군요. 이러다 집에서 쫓겨나겠습니다.”

***

경찰 요원 박순기는 나강인과 함께 해커를 체포하긴 했지만, 수사 담당자는 아니다.

그는 원래 다른 쪽 일을 한다.

대신에 합수부 형사가 해커를 수사하는 경찰서 형사팀을 찾아갔다.

담당 형사가 말했다.

“저놈이 술술 잘 털어놓기는 하는데요. 그런데 저놈도 누가 시켰는지는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돈만 주면 무슨 정보든 다 빼내 주는 놈이라서 고객을 안 가린다던데요.”

“제가 좀 이야기해봐도 될까요?”

“그러시죠.”

***

합수부 형사는 해커를 조사한 후에 나강인을 찾아갔다.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선생님을 그만 좀 봤으면 싶은데, 자꾸 일이 터져서 또 뵙게 되네요.”

나강인도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다.

“그러게요. 이 사건까지 합수부가 맡을 줄은 몰랐는데요.”

“테러 근거가 확실한 게 있으면 다른 부서에서 맡을 텐데, 애매해서 저희가 맡았나 봅니다.”

형사가 해커를 조사해서 알아낸 것들을 설명했다.

“돈만 주면 뭐든 다 해킹해서 팔아먹는 놈입니다. 연예기획사 해킹도 그래서 했고, 대학교에서 노트북을 훔쳐 심으려던 해킹 프로그램도 그놈이 제공했답니다.”

“누구에게요?”

“차 이사라고 부른다는 것 외에는 그놈도 모르더군요. 아. 차 이사를 알아보라고 한 것도 선생님이시라면서요?”

“상황이 딱 그러니까요. 차 이사가 누군지는 찾아내셨고요?”

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보라 씨 납치사건에서 그 이름이 나와서, 그 사건을 담당한 팀에서 그동안 조사를 쭉 했는데 찾아내는 데 실패했답니다. 차 이사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전화통화를 했으면 누군가 목소리를 남겨두지 않았겠습니까?”

“통화에 사용한 대포폰에는 음성녹음 기능이 없고, 기계로 변조한 음성이라 목소리를 들은 놈도 상대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더군요.”

“이번에 잡은 놈은 해커인데도 목소리를 녹음하지 않았습니까?”

“차 이사라는 놈이 대포폰을 보내주면서 그 부분을 확실히 경고했다더군요. 게다가 돈을 잘 주는 VIP 고객이라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답니다.”

“테러에 관한 정보는 차 이사가 갖고 있을 텐데…. 그놈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군요.”

“아쉽지만 그렇지요.”

합수부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해독치료제를 노리는 이유가 테러라고 생각하신 게,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요?”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이번엔 선생님의 예상이 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합수부에도 이번엔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화학무기 테러는 너무 끔찍하잖습니까?”

나강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율명바이오가 실험용으로 보관하고 있는 화학무기는 잘 관리되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철저히 관리하는 중입니다.”

***

국제용병 쿠거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통화했다. 그는 한국말을 잘했다.

“여어. 차 이사. 그럼. 나야 우리 애들하고 같이 한국에 잘 들어왔지.”

상대와 잠시 통화하던 쿠거가 얼굴을 구겼다.

“음? 일이 차질이 생겼어?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이봐. 차 이사. 서로 맡은 일만 확실히 하자고.”

차 이사가 몇 마디 더했다. 쿠거가 손을 흔들었다.

“차 이사 일은 그쪽에서 알아서 잘 해결해. 난 원래 스케줄 그대로 갈 테니까.”

잠시 더 이야기가 오고 간 후에 통화가 끝났다.

쿠거가 휴대폰을 보며 불평했다.

“이 새끼 이거. 자기가 실패해놓고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그의 부하가 말했다.

“보스. 그래도 차 이사가 이번 프로젝트의 정보도 주고 세팅도 해줬는데….”

“차 이사도 따로 꿍꿍이가 있으니까 나에게 정보를 주고 나를 이용하는 거야. 난 알면서 속아주는 거고. 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사이니까 빚진 거 없다.”

“그런데 차 이사가 실패했으면, 우리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진행해야지. 이번 일은 스케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거 알잖아.”

그가 휴대폰을 툭 던졌다.

“이거나 처리해라.”

그의 부하가 휴대폰을 반으로 접어 부순 후에, 속에서 유심칩을 꺼내 다시 부러뜨렸다.

“조각 하나하나 다 따로따로 버리겠습니다.”

다른 부하가 다가와 새로운 휴대폰을 내밀었다.

“다음에 연락할 때 쓰실 휴대폰입니다. 전원은 장소를 옮겨서 켜시죠.”

“나중에 켤 거야. 지금은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지시하신 대로 페넬로페라는 레스토랑에 예약해뒀습니다.”

쿠거가 히죽 웃었다.

“거기서 밥 먹으면서, 자칼이 어떻게 당했는지나 살펴보자고.”

***

국제용병 쿠거가 부하 세 명과 함께 페넬로페가 있는 건물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쿠거가 주차장을 먼저 확인했다.

“저쪽 철문 안으로 들어가면 자칼이 탈출할 때 쓰려던 비상통로가 있단 말이지. 벽을 부수면 그 통로로 들어갈 수 있다던데.”

“확인해볼까요?”

“자칼은 저기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럴 것까지야 있나.”

그는 부하들과 함께 1층으로 올라갔다.

“자칼은 여길 먼저 장악했어. 이건 정석대로 했는데 말이야.”

그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카페 하나만 있었다. 쿠거는 부하들과 넓은 카페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부하가 커피를 사서 가져왔다.

쿠거가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칼은 여기에 무장병력 셋을 투입했는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간이 이렇게 넓으니까,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무장병력 셋이면 충분했을 텐데 왜 당했지?”

쿠거는 커피는 몇 모금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부하들이 커피를 급히 입에 댔다.

“이 새끼들이. 우리가 여기 커피 마시러 왔냐? 밥 먹으러 가자.”

그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러다 5층과 6층 사이에서 멈췄다.

“여기서도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묘하네. 여긴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로 싸우기 좋은 공간이 아닌데 말이야.”

그가 벽을 보았다. 총탄에 맞은 자국들은 이미 수리가 끝나 있었지만 잘 보면 표가 조금 났다.

그 자국을 찾아 벽을 유심히 살펴보던 자갈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뭐지? 이 난사한 자국은?”

지금 알아볼 수 있는 건 총탄에 맞은 구멍을 도로 메우고 페인트를 다시 칠한 흔적뿐이다.

그런데 그런 흔적이 많았다.

그가 그 자국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쭉 이어보았다.

느낌이 싸했다.

“사람 상대로는 총탄 자국이 이렇게 날 수가 없는데….”

쿠거가 계단을 계속 올라가 7층에 있는 레스토랑 페넬로페로 갔다.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기분을 좀 풀어야겠어. 여긴 뭘 잘한대?”

“그날그날 메뉴는 셰프가 정하는 곳입니다. 어떤 요리가 나오든 맛있답니다.”

“사람마다 가리는 음식이 있을 텐데?”

“양이 충분하고 가짓수도 많아서 한두 개쯤 거르고 먹어도 충분하답니다.”

“너는 새끼가, 이 레스토랑을 조사하랬더니 먹을 거나 조사했냐?”

“보스가 맛있게 드셨으면 해서요. 흐흐.”

“아부하냐? 더 해. 이 새끼야.”

쿠거가 자리에 앉은 채로 레스토랑 내부를 둘러보았다.

“주력부대가 여기를 점령했다가, 병력 일부를 아래로 내려보낸 게 실수였어. 이곳에 화력을 집중하고 방어했으면 쉽게 털리지는 않았을 텐데, 소수 병력만 남겨서 당했…. 음?”

레스토랑 페넬로페는 자칼이 습격했을 때 총에 맞은 곳을 수리하지 않고 장식용으로 활용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작은 명판도 붙여놓았다.

쿠거가 그걸 발견했다. 그가 출입구 방향을 확인했다.

쿠거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뭐야? 정면으로 돌입한 거야?”

돌입한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다. 다른 게 이상했다.

“이 상황에서 인질이 총에 맞지 않았다고?”

여길 방어한 병력이 풋내기라면 그럴 수도 있다.

“여긴 자칼의 직속 부하들이 지키고 있었을 텐데? 걔들 실력은 프로인데?”

쿠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레스토랑 바깥 복도를 확인했다.

“이 건물 도면을 보면 자칼이 탈출용으로 쓰려던 환풍통로가 이쪽에….”

7층 레스토랑도 2층 카페처럼 한 층을 모두 사용한다. 7층에 다른 가게는 없다.

그렇다고 7층 전체가 남는 공간이 하나도 없이 레스토랑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다른 가게는 없지만, 입구 옆에는 뒤쪽 공간으로 가는 복도가 있었다.

쿠거가 레스토랑 옆 복도로 이동했다.

“여기서 마지막 전투가….”

전투가 있었던 복도는 부서진 천장 일부가 교체되었다. 벽도 페인트칠을 다시 했다. 그렇게 수리된 부분을 확인하면 최소한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쿠거는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단서를 모두 모아 당시 전투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쿠거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2층도 그렇고, 계단도 그렇고, 자칼은 도대체 누구랑 싸운 거야? 괴물이 상대였나?”

그의 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쿠거가 대답했다.

“뻔한 거 아냐? 이런 괴물하고는 절대로 엮이지 말아야지.”

***

미국 회사 오메가테크의 사장 스칼렛 켈리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아. 오랜만이다. 할머니의 나라 한국.”

친구이자 비서인 제시카가 옆에서 툴툴댔다.

“한국에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닌가 싶은데? 요즘 분위기도 안 좋은데 말이야.”

“에이. 그래서 보안팀하고 같이 왔잖아.”

예전에는 한국에 오면 둘이서 잘만 다녔다. 그런데 큰 사건을 두 번이나 겪은 후로 제시카가 경호에 신경을 더 썼다. 이번에는 오메가테크의 보안팀 직원 두 명이 경호원으로 따라왔다.

스칼렛이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밥 먹으러 가자! 그 피시방으로!”

스칼렛은 나강인의 거점 중 하나인 피시방에 도착했다.

피시방 사장 조카 차은서가 난처한 얼굴로 설명했다.

“오늘은 강인 오빠가 밥을 파는 날이 아닌데요?”

“왓? 와이?”

“한국말 잘하신다면서요.”

“아니, 왜요? 나강인 씨는 여기서 장사하는 거 아녔어요?”

“강인 오빠는 원래 기분 내키는 날만 여기서 밥을 팔아요.”

“쳇. 놀래주려고 말 안 하고 왔는데 실수였네.”

스칼렛이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예요. 밥 왜 안 팔아요?”

- 누구?

“스칼렛이요! 설마 내 전화번호 지웠어요?”

- 농담한 겁니다. 오늘은 사 먹을 거라서요.

“어디서요? 나도 거기로 갈게요.”

- 음. 그러면 저녁때 봅시다.

“저녁? 나 바쁜 사람이에요. 한국에서 스케줄이 얼마나 많은데. 난 지금 당장만 시간이 돼요.”

- 그럼 다음 기회에….

“저녁때 어디로 가면 돼요?”

***

나강인은 시내를 걷고 있었다. 그가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신은하가 옆에서 같이 걸으며 물었다.

“누구야?”

“스칼렛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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