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44화 (144/411)

144. 전기 양

나강인과 같이 걷던 신은하가 조금 더 붙으며 물었다.

“스칼렛 켈리? 국제전화야? 아니지. 그러면 저녁 약속을 못 잡지. 한국에 들어왔나 보네?”

“피시방에 들렀단다. 오늘은 왜 밥을 안 파냐고 따지더라.”

신은하가 툴툴댔다.

“쳇. 돈도 많은 사람이 거긴 왜 자꾸 온대?”

“너도 돈은 꽤 있는데도 피시방에 자주 오잖아.”

신은하가 말을 돌리려고 얼른 앞쪽에 있는 7층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페넬로페다.”

레스토랑 페넬로페가 그 건물 7층에 있었다.

“강인 오빠. 혹시 오늘 저녁은 스칼렛하고 저런 데서 먹을 거야?”

“아니. 싼 데 갈 거야.”

신은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저녁때 나도 같이 먹어도 되지? 내가 살게.”

“네가 안 사도 된다. 우리 동네 분식집 갈 거니까.”

신은하가 활짝 웃었다.

“아. 스칼렛 씨를 분식집에서 만나는구나. 맞아.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분식을 먹어야지. 레스토랑은 미국에도 많잖아.”

쿠거와 부하 셋이 7층 건물을 빠져나왔다. 차는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해둔 상태였다.

인도가 워낙 넓어서 나강인과 신은하는 쿠거 일행과 어깨조차 스치지 않고 지나쳤다.

AI 전지인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모두 기록해두지는 않는다. 사진으로 남기더라도 나강인에게 일일이 보고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고했다.

- 방금 지나간 네 사람에게서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뭐가 이상한데?”

- 길을 걷는 네 명의 상대 위치가 전술이동 형태와 유사합니다.

“그 외에는?”

- 없습니다.

“군인이겠지. 혹시 모르니까 얼굴 사진은 남겨둬.”

AI 전지인이 홀로그램으로 네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모두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하여 정확한 얼굴 사진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상태로 저장하겠습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는 신은하도 하고 있다. 그녀는 심지어 모자까지 썼다.

신은하가 옆에서 물었다.

“가끔 중얼중얼하는 거 왜 그러는 거야? 마법의 주문이라도 외워?”

“마법보다 좋은 거야.”

***

나강인은 스칼렛에게 동네 분식집 위치를 보내주었다. 스칼레는 낮에는 업무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때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녀가 분식집 앞에서 물었다.

“진짜 여기야?”

제시카가 옆에서 대답했다.

“주소 확인했어. 여기 맞아.”

“혹시 여기가 한국의 숨겨진 맛집이야?”

“아니. 그냥 이 동네 흔한 분식집이야.”

스칼렛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불평했다.

“와…. 나강인. 지금 데이트를 이런 곳에서 하자는 말이지?”

“데이트 아니야.”

“아프니까 팩트로 때리지 마.”

스칼렛이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강인의 옆자리에 신은하가 앉아 있었다.

신은하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 스칼렛. 오랜만이에요.”

스칼렛은 어이가 없었다.

“와. 거기다 신은하 씨까지 있어.”

스칼렛은 삐쭉 나오려는 입을 집어넣으며 표정을 관리했다. 그녀가 나강인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오늘 저녁은 우리 셋이 먹나요? 혹시 신은하 씨는 바쁜 일 있어서 먼저 가야 하는 거 아녜요?”

눈치를 준다고 줬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어머. 아니에요.”

신은하는 오히려 반격까지 했다.

“그리고 셋이 아니라 넷이에요.”

“제시카는 옆자리에서 우리 직원들하고 먹을 거예요.”

“제시카 씨 말고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이연지가 분식집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아싸! 안 늦었다!”

나강인이 손짓했다.

“와서 앉아라.”

“넹! 앗! 은하 언니도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

“어? 손님이 또 계시….”

이연지가 손으로 스칼렛을 가리키며 외쳤다.

“앗! 스칼렛 켈리!”

스칼렛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학생이 날 어떻게 알아?”

“알죠! 국제 학술지에서 스칼렛이 쓴 논문 봤어요!”

스칼렛이 씩 웃었다.

“훗. 여기 또 내 팬이 있었네.”

나강인이 이연지에게 물었다.

“너 진짜 과학자가 꿈이구나?”

이연지가 스칼렛의 옆자리에 앉았다.

“히히. 미래의 꿈이죠. 지금은 그냥 배고픈 여고생이고요.”

“먹을 때 보면 굶주린 맹수던데.”

네 사람 중에서 이연지가 제일 잘 먹었고 신은하도 꽤 먹었다. 스칼렛도 한국 음식에 익숙했다.

제시카와 경호원 두 명도 다른 테이블에 앉아 식사했다. 제시카는 회사 보안팀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 두 명을 선정했다. 그래서 그들도 분식집 음식을 잘 먹었다.

나강인이 스칼렛에게 물었다.

“요즘은 경호원하고 다니나 보네요.”

“한국의 위험 레벨이 좀 올라가서 같이 왔어요. 안 그러면 제시카가 절대로 못 간다고 하도 뭐라고 해서요.”

제시카가 옆 테이블에서 젓가락을 슬쩍 들며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잖아?”

스칼렛의 말에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한국의 위험 레벨이 올라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웅…. 회사 비밀인데요?”

“그 떡볶이에 계란이랑 튀김 추가해줄 테니까 말해봐요.”

“웅…. 제시카?”

이 분식집에는 그들밖에 없다. 제시카가 의자를 그들의 테이블 옆쪽으로 옮겼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에요. 우리도 첩보를 들은 것뿐이니까.”

“감안해서 판단하죠.”

“자칼 아시죠? 아. 모르실 리가 없죠. 강남 레스토랑에서 직접 잡으셨으니까.”

그때 자칼의 목표는 스칼렛 켈리였다.

“자칼의 잔당이라도 나타났습니까?”

“아뇨.”

“그럼?”

“세상에 그런 일을 하는 용병이 자칼밖에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국제용병 중에, 자칼과 여러 번 같이 일한 놈이 있어요.”

“이름은요?”

“코드네임 쿠거. 본명은 아무도 몰라요.”

“쿠거?”

“퓨마의 다른 이름이에요. 맹수죠.”

“어떻게 생긴 놈입니까?”

“그것도 몰라요. 변장을 워낙 잘하는 놈이라서, 진짜 얼굴은 단 한 번도 수사기관에 노출되지 않았어요.”

“위험 레벨은?”

제시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쿠거는 자칼보다 잔인하고 위험한 용병이에요.”

“그놈이 국내에 들어왔습니까?”

“확실한 건 아닌데, 지금 한국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스칼렛 한정으로 위험 레벨이 올라갔어요. 저번에 자칼이 스칼렛을 노렸으니까, 자칼과 비슷한 성향인 쿠거가 또 노릴지도 모르잖아요.”

“선후관계가 이상한데요? 쿠거가 스칼렛보다 먼저 국내에 들어온 거 아닙니까?”

“그렇기는 한데, 기왕이면 조심하자는 거죠.”

옆에서 열심히 쫄면을 먹던 여고생 이연지가 물었다.

“지금 이거 영화 이야기 아니죠?”

나강인이 대답했다.

“영화 이야기 맞아. 새 영화 시나리오야.”

“아닌 거 같은데.”

“뭐 더 먹을래?”

“돈까스요!”

***

국제용병 쿠거가 임시로 마련한 거점에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은색 원통이 들어있었다.

쿠거가 원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야. 여기서 생선 비린내가 나잖아.”

부하가 설명했다.

“생선 수송 트럭에 숨겨서 들어왔으니까, 냄새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야. 여기다 비누칠도 좀 하고 물도 좀 뿌려서 겉이라도 닦아라. 비린내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들키겠다.”

“예.”

부하가 장갑 낀 손으로 통을 잡았다. 쿠거가 경고했다.

“씻다가 잘못 건드려서 뚜껑 돌리진 말고. 조금이라도 새면 죽는다.”

“예!”

***

나강인과 사람들은 동네 분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스칼렛이 불평했다.

“뭐지? 이 배가 부른데도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은? 내가 기대한 저녁 식사는 이게 아니었는데?”

나강인이 말했다.

“난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고등학생 이연지가 얼른 손을 들었다.

“전 스칼렛 언니하고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 맛이 좀 간 아가씨니까.”

“천재들은 원래 맛이 좀 가고 그런대요.”

스칼렛이 이연지에게 말했다.

“어머. 지금 날 고급지게 멕이는 거야?”

“앗! 우리말 진짜 잘하신다. 에이. 아니에요. 이건 조크죠. 조크.”

스칼렛이 제안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궁금한데, 나도 따….”

신은하가 얼른 끼어들었다.

“강인 오빠는 일하라고 보내고 우리끼리 후식 먹으러 가요. 내가 우리 동네에서 커피랑 케이크 제일 잘하는 집으로 안내할 테니까.”

나강인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갈 테니까 케이크 잘들 드셔.”

***

나강인은 혼자서 제작거점으로 돌아왔다.

그는 율명바이오를 해킹하려던 해커는 잡았다. 그런데 그 해킹을 의뢰한 놈은 아직 찾지 못했다.

현재 남은 단서는 적이 율명바이오에서 개발 중인 해독치료제를 원한다는 것밖에 없다.

“그 해독치료제가 필요한 순간이 언제일까? 당연히 XVE 가스가 사용됐을 때겠지. 그럼 그 가스를 어디에 쓰려는 걸까?”

- 단서가 너무 부족해서 적의 공격 지점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화학무기 테러를 저지른다면 어디를 노릴까? 상징성이 큰 곳일까? 아니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일까?”

- 인터넷으로 조건에 맞는 곳을 검색하겠습니다.

같은 걸 조사하는 곳은 또 있다.

- 합동수사본부에서도 같은 조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과는?”

- 국내에는 상징성이 높은 곳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곳을 방어할 수는 없습니다. 적의 공격 목표를 찾아내야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

***

신은하는 사람들을 그 동네의 카페로 안내했다. 마침 카페 2층의 넓은 테라스가 텅 비어 있어서 그들이 그곳을 차지했다.

이연지는 케이크와 콜라를 마셨다.

“이 케이크 진짜 맛있어요.”

신은하가 말했다.

“역시 고등학생은 진짜 잘 먹는다. 더 시켜줄까?”

“에이. 저도 염치라는 게 있어요.”

“아냐. 너한테는 그거 없어.”

이연지가 얼음이 들어간 콜라를 빨대로 빨아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전구 장식들이 꼭 보석 같아요.”

스칼렛은 대화에 끼어들 틈만 노리고 있었다. 보석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녀가 자랑했다.

“나 내일 보석 전시회 스케줄 있는데.”

신은하가 물었다.

“종로에서 하는 그 전시회요?”

“어머. 알아요?”

“나도 내일 거기 가려고요.”

스칼렛이 신은하의 신경을 슬쩍 긁었다.

“보석 가격대가 꽤 나갈 텐데요?”

신은하가 그 공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그녀가 손등을 턱에 대며 말했다.

“내가 바로 보석이잖아요. 가서 보석 전시회를 더 빛내줘야죠. 호호호.”

“그러시구나. 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면 살 건데.”

“나도 살 거거든요?”

이연지가 끼어들었다.

“저도 같이 가요. 저도 예쁜 보석이 보고 싶어요.”

스칼렛이 물었다.

“너도 하나 사게?”

“학생이 돈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사람이 다 그림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거기 가서 기념품만 살 거예요.”

신은하가 제안했다.

“그럼 너는 내일 내 차로 같이 가자. 스칼렛 씨는 어차피 따로 갈 테니까.”

“앗. 그럼 아저씨도 같이 가자고 할까요?”

신은하가 스칼렛을 슬쩍 보았다. 나강인을 데려가면 스칼렛도 같이 다니게 될 게 뻔하다.

그녀가 둘러댔다.

“안돼. 강인 오빠는 최신 정밀가공 기계 전시회는 가도, 보석 전시회를 갈 남자는 아니야.”

“와. 아저씨는 돈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구나.”

“너 지금 난 막 쓰는 사람이라고 멕이는 거구나?”

이연지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에이. 아니에요. 이것도 조크예요. 조크.”

“그런데 너 내일 학교 안 가?”

“내일 토요일이잖아요.”

“아. 그렇지. 내가 요즘 영화 안 찍고 좀 놀았더니 날짜 감각이 없어졌어.”

***

나강인은 제작거점에서 적의 화학무기 공격이 의심 가는 곳을 새벽까지 조사했다. 그런데 대상 지점이 너무 많이 나와서 어느 하나만 골라내기가 어려웠다.

그는 그 작업을 하다가 새벽에 제작거점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다.

토요일 10시가 넘어서 자리에서 일어난 나강인이 조금 몽롱한 상태로 물었다.

“어…. 지인아. 내 몸에는 군용 신체 강화 기술이 적용되어 있잖아? 몸은 분명히 강화됐는데 왜 잠을 이렇게 많이 자야 할까?”

- 뇌에는 강화할 근육이나 뼈가 없습니다.

“하지만 넌 내 손발의 움직임을 보조할 수 있잖아.”

- 제가 요원님의 뇌에 직접 개입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인공 신경을 이용해 근육의 움직임을 보조합니다.

“음식 맛도 나랑 같이 보고.”

- 뇌가 아니라 요원님 육체의 감각신경 신호를 복제해 정보로 사용합니다.

나강인은 정신이 조금 들었다.

“맞다. 그런다고 했지. 그래서 내가 말로 지시해야 네가 들을 수 있지. 우리 사이에 텔레파시가 되면 좋을 텐데. 혹시 2082년에는 텔레파시가....”

- 당연히 없습니다.

나강인이 냉장고에서 어제 사다 놓은 햄버거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커피도 한 잔 뽑았다.

“역시 아침엔 커피 앤 햄버거지.”

- 어제 아침은 커피 앤 라면이었습니다만.

“내일은 커피 앤 도넛을 먹을 거야. 커피가 빠지면 잠이 안 깨잖아.”

그가 커피와 햄버거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는 밤새 켜져 있었다.

“지인아. 내가 잘 때 너도 자?”

- 안전한 장소에서는 잠든 것과 유사한 상태로 쉽니다. 그 상황에서도 소음과 진동은 감지해 위험을 대비합니다.

“자는구나. 혹시 꿈에 전기 양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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