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46화 (146/411)

146. 약탈자

강남 자칼 사건 때, 레스토랑 페넬로페의 손님 중에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뉴스에는 신은하가 그 사람들과 한 묶음으로 취급되어 나갔다.

정부는 일부러 7층 레스토랑 피해자들을 묶어 발표했다. 그건 원래는 스칼렛 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일인데, 나강인이 자칼을 잡을 때 그녀와 같이 있었던 신은하의 정보도 같이 보호되었다.

그래서 국제용병 쿠거는 신은하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스칼렛 켈리의 얼굴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국제용병 쿠거가 조용히 말했다.

“저 여자 말이야. 오메가테크 사장 아냐?”

옆에 있던 부하가 그쪽을 슬쩍 본 후에 일부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확인하겠습니다.”

부하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스칼렛 켈리의 사진은 외국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것이 많았다.

“오메가테크 사장이 맞습니다.”

쿠거가 인상을 썼다. 그가 무전기의 송신 스위치를 살짝 누른 후에 물었다.

“전시관 밖에 경호원이 있나?”

- 확인하겠습니다.

밖에서 망을 보던 부하가 잠시 후에 보고했다.

- 건물 정문 근처 주차장에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보석을 보러 왔는데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돌아다니긴 싫었겠지.”

- 아프리카계와 유럽계입니다.

“미국인일 거다. 오메가테크 보안팀이군.”

- 어떻게 할까요?

“상황을 좀 정리해보자.”

쿠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자칼은 한국 정부의 비밀요원에게 당했단 말이야.”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발표됐다. 정부는 나강인의 이름을 일부러 숨겼다. 있지도 않은 정부 비밀요원을 찾아내려던 기자가 몇 명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쿠거는 레스토랑 페넬로페에서 어떤 전투가 있었는지 확인하러 갔었다. 단순히 자칼이 어떻게 당했는지만 궁금해서 갔던 게 아니다. 그 비밀요원이 이번에도 투입될 때를 대비해서 정보를 수집하러 갔었다.

“그 괴물 같은 요원의 전투력은 진짜 조심해야 하는데….”

그때 그가 내린 결론은 정면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스칼렛 일행을 보았다. 그녀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한 명만 빼고는 모두 여자였다.

신은하나 이보라 같은 배우들은 팔다리가 가늘어서 잘 싸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연지는 아직 고등학생이라 그녀들보다 조금 작았다.

그런데 여자들 사이에 탄탄한 체격의 남자 김유찬이 있었다.

쿠거 일행은 최근에 한국에 입국했다. 그래서 그들은 배우 김유찬을 알아보지 못했다.

쿠거가 말했다.

“같이 있는 남자 말이야. 스칼렛을 보호하는 한국 요원인가?”

부하들은 바짝 긴장했다.

“보스. 그럼 저 남자가 자칼의 조직을 궤멸시킨 바로 그 초특급 요원….”

“나도 혹시 그런가 했는데, 아니야.”

쿠거가 김유찬 쪽을 다시 슬쩍 보았다.

“그런 초특급 요원이 평소에 경호원으로 붙을 정도로 흔할 리 없어. 상황이 벌어진 후에 출동한다면 모를까.”

“휴우. 다행입니다. 그럼 저놈은….”

“미국 대사관이 섭외한 경호원이거나 한국 정부가 붙여준 요원이겠지. 오메가테크 보안팀일 수도 있고. 어쨌든 1급 경호원이라고 생각하고 주의해라.”

“알겠습니다.”

쿠거가 돌아섰다.

“우리 물건은 어디 있어?”

어제 미리 이 전시관을 방문한 부하가 안쪽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

나강인은 이 전시관에 보석을 구경하러 온 게 아니다.

그는 전시관 뒤쪽 계단 입구로 이동했다.

그가 계단 너머로 손거울을 살짝 내밀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전방에 CCTV가 있습니다.

“사각지대는?”

AI 전지인이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

- 왼쪽 위로 이동하십시오.

“또 벽을 타야 하는구나.”

나강인이 계단 입구 벽을 발로 밟고 위로 점프한 후에, 천장 모서리 부분을 다시 걷어차고 반대쪽으로 뛰었다. 그렇게 CCTV를 피한 후에 계단 위쪽으로 올라갔다.

2층 전시관은 아무것도 전시되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2층 중앙은 뻥 뚫려 있었다. 그래서 1층 중앙에서 올려다보면 2층이 대충은 보였다.

나강인은 CCTV를 피하며 계단을 더 올라갔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나타났다.

“디지털 도어락이네? 번호는?”

- 조명을 비춰주십시오.

나강인이 스마트폰의 플래시로 도어락의 숫자판을 비추었다. AI 전지인이 숫자판 표면의 상태를 확인했다.

- 사용자가 최근에 주로 누른 버튼은 3, 6, 9, 0입니다.

나강인은 옥상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에 귀를 댔다.

“누가 움직이는 소리 들리냐?”

AI 전지인은 나강인의 귀로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같은 소리를 들어도 해석능력이 다르면 구별할 수 있는 것도 달라진다. AI 전지인은 벽 뒤의 사람이 걷는 소리를 분석해 위치를 파악할 정도로 소리 해석능력이 좋다.

-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는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나가자.”

나강인이 3, 6, 9, 0의 순서로 버튼을 눌러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지인아? 이게 아닌데?”

허공에 네 개의 숫자로 조합할 수 있는 번호 수십 개가 주르륵 떴다. 그중에서 3690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 네 개의 숫자로 조합 가능한 비밀번호의 목록입니다.

“좀 많다?”

- 사람의 행동 패턴을 고려해 확률이 높은 순서대로 배치했습니다. 이미 입력해 실패한 조합은 붉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이런 도어락은 연속으로 몇 번 틀리면 몇 분 기다려야 다시 입력할 수 있는 거 아냐?”

- 그렇습니다.

나강인이 목록의 두 번째 번호를 눌러보았다.

이번에도 번호가 틀렸다.

“확률을 계산해서 높은 순서대로 배치했다며.”

AI 전지인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 확률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요원님이 목록에서 잘 고르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틀리면 내 탓이구나? 우리 지인이가 내 탓 하는 기술이 늘었어.”

***

전시관의 입구 쪽에는 인조 보석이나 작은 보석을 이용한 장신구가 주로 배치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 좋은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들이 많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원석이 전시된 특별 전시실이 있었다. 그곳은 경비원이 출입구 옆에서 대기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쿠거가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활짝 웃었다.

“이야아. 다이아몬드다.”

그는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원석 앞에서 손가락으로 크기를 가늠해보았다.

“이거지. 내가 원한 게 바로 이거라고. 차 이사의 정보가 확실하네.”

부하가 옆에서 말했다.

“보스. 그냥 보면 투명한 돌덩어리 같은데요?”

“이 원석을 잘 가공해서 우리가 아는 다이아몬드로 만들면 천만 달러는 받을 수 있다.”

부하가 실실 웃었다.

“흐흐. 천만 달러.”

“우리는 이걸 쪼개서 가공한 후에 팔아치울 거니까 그만큼은 못 받겠지만.”

미술품이나 문화재는 출처 확인이 가능하지만, 다이아몬드 원석은 쪼개서 가공하면 추적이 어렵다.

쿠거가 주변을 쓱 돌아보았다. 특별 전시실에는 원석이나 보석이 여러 개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는 다른 좋은 것도 많잖아. 이거 다 가져가서 팔면 천만 달러가 문제가 아니야.”

부하가 살짝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보스가 지금까지 했던 프로젝트 중에 이번 일이 최고입니다. 매번 이런 것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은 진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이런 건 자주하면 너무 위험하니까 크게 한탕 하고 부귀영화를 쭉 누려야지.”

“현명하십니다. 보스.”

***

여덟 번째로 입력한 조합인 6309가 정답이었다. 그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옥상으로 출입하는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됐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옥상 문 위에 문 열림 감지 장치가 있습니다.

“차단해.”

나강인이 안주머니에서 몇 가지 공구가 들어있는 가죽 지갑을 꺼냈다. AI 전지인에 거기 있는 공구를 사용해 문에 설치된 감지 장치를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이건 금방 하네?”

- 접점 연결만 속이면 되는 단순 작업입니다.

나강인이 문을 살짝 열며 물었다.

“다른 감지 장치는?”

- 옥상에서 CCTV 1대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경보장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AR 렌즈에 옥상 절반쯤이 CCTV의 감시 영역으로 표시되었다. 나머지 절반은 돌아다녀도 찍히지 않는 안전지대다.

게다가 그 CCTV는 옥상 출입구 쪽이 아니라 반대 방향을 찍고 있었다.

나강인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건 왜 반대편을 찍어?”

- 정문 방향은 1층 외부 CCTV가 찍고 있습니다.

“이 전시관 보안은 조금 애매하네. 사각지대를 노리고 침투하면 뚫을 수 있겠어.”

- 제가 있어서 쉽게 뚫으신 겁니다. 평범한 도둑놈은 계단에 설치된 CCTV와 옥상 출입문의 감지기에 걸립니다.

“알아. 너 칭찬한 거야.”

- 아닌 것 같습니다.

나강인이 CCTV에 찍히지 않는 영역으로 움직였다. 그는 에어컨 실외기를 확인하는 척하며 말했다.

“화학무기 테러의 목표가 진짜 여기라면 말이야. 밖에서 이 전시관을 감시하는 놈이 있겠지? 여기를 보는 사람은?”

- 근처 건물의 높이가 비슷합니다. 더 높은 곳에서 이 옥상을 감시하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아래는?”

나강인이 옥상 바깥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고 아래쪽을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즉시 보고했다.

- 스칼렛 켈리의 경호원 두 명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동네 분식집에서 이미 만나서 얼굴을 안다.

“스칼렛이 여기 왔으니까 저 사람들도 따라왔겠지.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냐?”

- 경호원을 감시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나강인이 다시 에어컨 실외기로 걸어가며 말했다.

“영상 띄워.”

전시관과 1층 외부 주차장, 그리고 주변 건물의 모습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만들어져서 눈앞에 나타났다. 그 영상에는 스칼렛 켈리의 경호원 두 명도 있었다.

AI 전지인이 영상 속 카페 건물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의 주변에 사각형 표시를 했다.

- 이 사람입니다.

“확대해.”

옆쪽 허공에 그 남자의 얼굴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남자가 경호원 쪽을 힐끗거리는 모습이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저놈이 감시하는 거 확실해?”

- 확실하진 않습니다. 단순히 외국인을 구경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단서는?”

- 용의자의 현재 위치가 전술적으로 이 전시관 출입자를 감시하기 좋은 곳입니다.

“수상하긴 하네.”

나강인이 전시관 옥상에 올라온 건 여기에 위험한 것이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옥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건너편 카페의 남자도 조사하긴 해야 하는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건물 기계실이나 환기시설은 지하에 있겠지?”

-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거기로 가자.”

나강인은 계단에 설치된 감지기를 피해 1층까지 내려간 후에, 총권도 수련생인 경찰 요원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순기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 나 사범님? 안 그래도 전화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같이 잡은 그 해커 말입니다. 그놈이 해킹한 기획사 두 곳을 확인하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서 점검하시겠습니까? 나 사범님의 해킹 분석 실력이 보통이 아니시라면서요. 제가 듣기로는 나 사범님이 무슨 토끼라고….

나강인이 박순기의 말을 끊었다.

“화학무기 테러가 더 급할 문제입니다만?”

- 아. 그거요. 저희도 나름 알아봤는데, 국내에는 XVE 가스를 도난당한 곳이 없습니다. 다른 감시망을 돌려봐도 딱히 걸려드는 게 없고요.

“지금 종로에서 보석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회 기간은 어제부터 내일까지. 그 전시관에 스칼렛 켈리가 있습니다.

- 스칼렛 켈리? 아! 자칼 사건 때와 낙귀 해적단 사건 때의 그….

“그때 고생을 많아 해서 그런지 경호원을 두 명 데려왔더군요.”

- 생각이 있으면 그 정도 대비는 해야죠. 돈도 많은 사람이 경호비를 아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경호원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예?

“위치를 보내드릴 테니까, 여유 되시면 사람을 보내서 그놈을 감시해주시죠.”

박순기의 목소리가 신중해졌다.

- 알겠습니다. 나 사범님도 지금 거기 계신 겁니까?

“저는 화학무기 테러 장소가 이 보석 전시관이 아닐까 싶어서 따로 확인하는 중입니다.”

- 헉! 혹시 모르니까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팀을 찾아서 보내겠습니다. 뭔가 더 알아내면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죠.”

나강인이 전화를 끊고 1층을 둘러보았다.

그는 기왕이면 지하층에 내려가기 전에 신은하와 다른 배우들을 이곳에서 내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이 전시관은 전시실이 많아서, 사람들이 그중 한 곳에 들어가 있으면 여기서는 볼 수 없다.

그가 신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되지 않았다.

“음?”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휴대폰이 통화권을 이탈했습니다.

여기는 종로 한복판이다. 휴대폰이 쉽게 먹통이 되는 지역이 아니다.

- 통신 방해장치가 의심됩니다.

통신 방해장치를 쓰는 놈은 이전에도 있었다.

“자칼?”

강남이 나타났던 자칼의 용병조직은 그가 직접 때려잡았다.

“느낌이 안 좋아.”

나강인이 화재경보기를 찾았다.

“차라리 화재경보를 울려서 모두 밖으로 대피시키는 게 낫….”

갑자기 보석 전시관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전시관 내부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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