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해독치료제
쿠거 일당은 소음기를 썼지만 그래도 총소리는 꽤 크게 났다. 신은하 일행에게는 바로 앞 복도에서 싸우는 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이보라가 걱정했다.
“누가 맞은 거야? 방금 그 비명, 설마 강인 오빠야?”
그 비명은 나강인이 던진 이연지의 뒤꽂이에 맞은 놈이 질렀다.
신은하는 XVE 가스에 당해 고개를 저을 힘도 없었다.
“아닐 거야. 아마 아닐 거야.”
“하지만….”
“기운이 없어서 말하기 힘드니까 닥치고 믿어.”
나강인은 복도 한쪽의 네모난 장식물 뒤로 피했다.
쿠거 일당의 총탄은 그 장식물을 뚫지 못했다. 총탄이 무한히 있는 것도 아니다.
쿠거가 명령했다.
“사격 중지! 대기! 총알을 아껴!”
용병들은 즉시 손가락을 방아쇠울에서 빼 권총 윗부분에 댔다.
쿠거가 지시했다.
“견제하면서 포위….”
나강인이 갑자기 엄폐물로 쓰던 네모난 대형 상자를 손으로 잡고 번쩍 들었다. 짧은 순간 발과 발목이 잠깐 노출됐다. 깜짝 놀란 용병들이 손가락을 다시 방아쇠에 걸었다.
용병보다 나강인이 빨랐다. 그는 사람이 숨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장식물을 적을 향해 던졌다.
나강인이 던진 건 재질이 금속과 도자기라 단단하고 무게도 많이 나갔다. 정통으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총으로 쏴봤자 밀어낼 수도 없다.
쿠거와 용병들이 사격을 포기하고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AI 전지인이 허공에 전투지원 정보를 띄웠다.
[적 화력 침묵 예상 시간 : 1초]
나강인은 조각상을 던지자마자 적을 향해 돌진했다.
날아간 조각상은 어깨에 뒤꽂이를 맞아 뒤로 나자빠졌던 놈을 때리고 그 너머로 굴러갔다.
옆으로 몸을 피한 놈 중 하나가 재빨리 나강인을 향해 권총을 들었다.
“이 새….”
나강인이 적의 권총을 잡아 바깥으로 젖히며 적의 턱을 걷어찼다.
“켁!”
적이 정신을 잃고 고꾸라졌다. 적의 권총은 나강인이 잡아챘다.
반대 방향으로 피했던 다른 적이 몸을 돌렸다가 그 상황을 보고 황급히 권총을 겨눴다.
나강인이 빼앗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적도 마찬가지였다.
나강인이 0.2초 더 빨랐다. 0.2초면 아음속 총탄이 50m는 날아간다. 총탄이 적의 오른쪽 어깨에 콱 박혔다.
“으악!”
적도 총을 발사하긴 했다. 그런데 어깨를 당할 때 팔이 젖혀지면서 총구가 옆으로 돌아갔다. 적이 쏜 총탄은 아무도 없는 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나강인이 적을 향해 세 발을 더 발사했다. 적의 왼쪽 어깨와 두 다리에 총알이 연달아 박혔다.
“으아악!”
적은 뒤로 넘어간 상태로 비명만 질렀다.
그는 순식간에 셋을 잡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 한 놈이 도망쳤습니다.
쿠거는 부하들이 싸우는 사이에 도망쳤다.
나강인이 도망치는 쿠거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거의 동시에 쿠거가 모퉁이 너머로 몸을 날렸다. 그가 쏜 총탄은 허공을 가르고 벽만 때렸다.
AI 전지인이 쿠거의 발소리를 분석해 현재 위치를 표시했다. 쿠거는 계단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추격하면 쿠거를 잡을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은 해독제가 더 급했다.
“해독제는?”
- 적이 서류가방 두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그중 하나를 먼저 확인했다. 번호를 돌려 여는 방식의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나강인은 두 놈은 기절시켰지만 한 놈은 팔다리만 쏘고 제압했다.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면 그놈에게 물어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적의 자백을 받아낼 시간이 없다.
나강인이 잠금장치를 권총으로 쏴버렸다. 금속으로 만든 잠금장치가 한 방에 박살 났다.
나강인이 가방을 활짝 열었다.
그 가방에는 보석이 잔뜩 들어있었다. 쿠거가 손수건으로 감싸서 넣은 다이아몬드도 있었다.
“뭐야. 이건.”
지금은 이런 보석은 쓸모가 없다.
나강인이 다른 가방도 확인했다. 그 가방도 잠겨 있었지만 권총으로 잠금장치를 날려버렸다.
나강인이 그 가방을 열었다. 이번에는 쓸만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중에는 약병 세 개와 주사기도 있었다.
나강인이 용병들이 가지고 있던 소형 손전등으로 약병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글씨를 확인했다.
“지인아. 이거 맞냐?”
- 약병에 기록된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율명바이오에서 만든 XVE 가스용 해독치료제입니다.
“이놈들이 진짜로 그 회사에서 해독제를 빼돌렸구나.”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했다. 새끼들아.”
그가 해독제와 주사기를 챙겼다. 주사기는 가방에 여러 개가 들어있었다.
“주사기를 각자 따로 쓸 생각이었네? 화학무기를 터트린 놈들이 자기들 건강은 이렇게 신경 쓴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가방에서 휴대폰 통신 방해장치를 발견했습니다. 작동 중입니다.”
AI 전지인이 통신 방해장치에 붉은색 홀로그램 테두리를 둘렀다.
나강인이 통신 방해장치도 총으로 쏴버렸다.
***
총소리가 연달아 나다가 비명과 함께 뜸해졌다. 잠시 후에는 한 발씩 나던 총소리도 멎었다.
신은하는 벽에 등을 기댈 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이연지를 제외하면 모두 옆으로 미끄러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연지만 아직도 서 있었다.
신은하가 말했다.
“총소리가 안 나. 전투가 끝났어. 어떻게 된….”
나강인이 전시실로 뛰어 들어왔다.
“은하야! 해독제 구해왔다! 주사 맞자!”
AI 전지인이 약병에 쓰인 용법과 용량을 설명했다.
나강인은 주사기의 비닐 포장을 뜯고 바늘을 병에 꽂아 정해진 용량을 뽑았다.
“지인아. 난 주사를 놔본 적이 없다.”
- 제가 하겠습니다.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손을 빌려 신은하의 팔에 해독치료제 주사를 놓았다. 신은하는 XVE 가스 때문에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다. 덕분에 통증은 거의 없었다.
나강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독치료제 주사를 놔주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연지에게 해독치료제를 주사하면서 말했다.
“이거 맞고 옥상으로 올라가라. 거기엔 독가스가 없어.”
해독치료제의 효과는 굉장히 빨랐다. 신경계 교란 효과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힘도 돌아왔다. 그들은 좀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일어설 수는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XVE 가스를 계속 마셔야 하는 환경에서는 해독제의 약효가 떨어집니다.
“방독면이 필요하겠네.”
그게 어디 있는지는 안다.
나강인이 방금 잡은 용병들을 향해 뛰어갔다. 쓰러져 있는 세 놈 다 초소형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그는 그 방독면을 하나씩 벗겼다.
팔다리에 총을 맞은 놈은 아직 정신이 있었다. 그놈이 버둥거렸다.
“나, 나도 방독면이 필요….”
“넌 가스 더 마셔야지.”
나강인이 그놈의 방독면도 벗겼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레스토랑 페넬로페 근처에서 스쳐 지나간 전술대형 네 명과 이 세 명의 눈 주변 모습이 일치합니다.
“그때 어떤 놈들인지 눈치챘어야 했는데.”
- 당시에는 전술대형 외에는 의심할 요소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놈들이 자칼과 관계가 있으니까 그때 거기 갔겠지.”
- 당시 전술대형으로 판단하면, 도망친 놈이 지휘관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그놈이 쿠거겠지.”
나강인이 방독면을 가지고 돌아와 신은하에게 먼저 씌웠다.
이보라와 김유찬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나도….”
“살려줘.”
스칼렛도 손을 흔들었다.
“썸바디 헬프 미.”
나강인이 두 번째 마스크는 김유찬에게 씌웠다.
“김유찬 씨는 이거 쓰고 할 일이 있으니까.”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그는 그 방독면은 이연지에게 씌웠다.
이연지가 말했다.
“전 괜찮아요. 움직일 수 있잖아요.”
“넌 미성년자인 데다가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여기서 네 상태가 제일 걱정이니까 그냥 써.”
이연지까지 마스크를 쓴 후에 나강인이 말했다.
“마스크 쓴 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부축해서 옥상으로 올라가요.”
나강인은 쿠거가 도망친 방향을 돌아보았다. 계단 방향이었다.
‘그놈이 그 상황에서 옥상으로 올라갔을까? 옥상에서 인질을 잡거나 거기서 뛰어내려 도망치려 할까? 아니야. 그러면 결국 한국 경찰에게 잡혀.’
쿠거가 잡히지 않으려면 XVE 가스를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건 지하층에 있다.
나강인이 일단 사람들을 전시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는 적의 권총 세 자루도 가져왔다.
하나는 나강인이 써야 한다. 그래도 두 자루가 남는다.
그는 권총 한 자루는 김유찬에게 주었다.
“군대에서 총 쏴봤지요?”
김유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받았다.
“군대에서 케이투만 쐈지만, 권총도 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찬 씨한테 방독면을 씌웠습니다. 만약 적과 마주치면 앞에서 목숨 걸고 싸워요.”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무장하는 게 낫다. 그가 스칼렛과 제시카를 돌아보았다.
‘둘 다 미국인이니까 권총을 쏴본 적이 있을지도….’
신은하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쏠게.”
“쏠 줄 아냐?”
“권총 사격장에서 쏴봤어.”
“사격이 취미였냐?”
“아니. 강인 오빠 옆에 있으면 언젠가는 총 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배웠지.”
“총을 들면 네가 적의 타깃이 될 위험이….”
신은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 드래곤 플레이트 입고 왔어.”
“응? 왜?”
“기회 봐서 스칼렛 씨한테 자랑하려고 입고 왔는데, 이거 독가스는 왜 못 막아?”
“방탄복이 가스까지 막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냐?”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쏘는 법을 알고 방탄조끼까지 입고 있는 신은하가 권총으로 무장하는 게 전술적으로 나은 선택입니다.
나강인이 권총을 신은하에게 넘겨주었다.
“유찬 씨 뒤에 있어라.”
신은하가 탄창을 빼 탄약 잔량을 확인하며 물었다.
“강인 오빠는?”
“아직 한 놈 남았다. 그놈 잡으러 가야지.”
신은하가 옷 속에 입은 드래곤 플레이트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나도 따라….”
“군소리 말고 올라가라. 그게 도와주는 거다.”
“응.”
영화 ‘햇살 좋은 날’ 주연배우 오세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인 씨. 혹시 옥상까지 같이 가주면 안 돼요?”
나강인이 단칼에 거절했다.
“안 됩니다.”
“네? 왜요?”
나강인은 쿠거가 지하층으로 내려갔다고 판단했다.
“지하실에 아직 화학무기가 남아있으니까.”
“앗! 앗! 우리 그럼 빨리 옥상으로 도망쳐요.”
신은하가 물었다.
“그런데 오빠는 왜 방독면을 안 써?”
나강인의 강화된 신체에는 XVE 가스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난 해독제를 맞아서 괜찮아.”
“그래도 계속 여기 있으려면 방독면이 필요하잖아. 내 방독면이라도 줄 테니까….”
“넌 사람들을 부축해서 올라가. 그게 도와주는 거야. 아. 그리고 이제 외부와 연락될 거다.”
나강인의 스마트폰은 지하층에서 싸울 때 부서졌다.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휴대폰 좀 빌리자.”
***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써도 총소리는 난다. 소음기가 소형이면 소음 차단 효과는 더 떨어진다.
보석 전시관 내부의 총소리는 밖에서도 들렸다. 소리가 꽤 줄어들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총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는 사람은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대기하던 쿠거의 부하 용병 두 명이 그 소리에 반응했다.
“총격전이다. 꽤 화려하게 쏘는데?”
“무장 경비원이라도 있었나?”
“발사된 건 모두 우리 총이다. 경비원이 소음기 달린 총을 쓸 리 없으니까.”
“그런데 이 정도면 경비원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린 거 아냐?”
다른 용병이 쿠거에게 무전을 보냈다.
“총소리를 확인했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대답이 없었다. 불안해진 용병이 급히 물었다.
“가스는? 가스를 살포했습니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용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이 뭔가 잘못됐나?”
동료가 걱정했다.
“가스를 터트렸다가 잘못된 거 아냐?”
“젠장. 그러면 여기도 위험해. 우리는 일단 후퇴….”
그 근처를 지나가던 사복 경찰 요원 네 명이 갑자기 그들 쪽으로 돌아섰다. 그중 두 명이 재빨리 권총을 꺼내 두 사람을 조준했다.
요원들은 테러리스트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려 하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손가락은 권총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탄창에는 공포탄은 없고 실탄만 가득 들어있었다. 요원이 손가락만 살짝 움직여도 권총이 발사되고 적은 사살된다.
다른 요원 두 명이 꺼낸 건 테이저건이다. 그들은 경고도 없이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전선 두 개가 용병의 몸에 푹푹 꽂혔다. 전기가 그 선을 타고 용병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신경계를 교란했다.
다른 놈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쿠거의 부하들은 전기 충격에 당해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자리에 엎어졌다.
경찰 두 명은 여전히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테이저건을 발사한 요원들은 카트리지를 교체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특공대 요원들도 달려왔다. 그들은 방금 제압한 용병들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보석 전시관 외부를 감시하던 쿠거의 부하는 셋이다. 그중 둘은 전시관 정문 근처에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정문 맞은편 건물 2층 카페에서 그곳을 감시했다.
정문 근처에 있던 용병들이 제압되는 걸 본 2층 카페 용병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켰구나. 어쩔 수 없지. 나 혼자라도 살아야겠다.’
그는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돌아섰다.
경찰 요원 박순기가 건들거리면서 용병에게 다가갔다.
“야. 어디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