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50화 (150/411)

150. 쿠거 II

카페 2층에서 보석 전시관을 감시하던 용병은 들켰다는 걸 깨닫고 눈알을 굴렸다.

그는 총이 없다. 대신에 칼이 하나 있다.

‘이 카페의 출구는 이미 차단됐을 거야. 그러면 탈출구는 하나뿐.’

판단을 내린 용병이 칼을 재빨리 뽑아 크게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창문으로 뛰어내려야겠….’

박순기는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걸 가만히 보다가, 칼날이 눈앞을 지나가자마자 적을 덮쳤다.

이런 식의 근접전투는 나강인에게 총권도를 배우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고 온몸이 멍들 정도로 경험했다.

‘나 사범님에 비하면 이놈은 느리고 허점도 많구나!’

박순기가 적의 팔을 잡아 꺾고 탁자 위에 적의 머리를 처박았다.

“켁!”

그는 적의 팔을 비틀어 칼을 떨어뜨렸다. 그런 후에 수갑을 철컥 채웠다.

“이 새끼가 어디서 연장질이야?”

박순기의 동료들이 다가와 방금 잡은 용병을 끌고 갔다.

동료 형사가 박순기에게 다가와 물었다.

“형이 원래 근접 격투 실력이 좋았던 건 아는데, 지금은 아주 장난이 아닌데? 칼을 든 놈을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잡아?”

“내가 총권도를 얼마나 힘들게 배웠는데 저런 놈 하나 못 잡겠냐?”

“나도 총권도 배우고 싶다.”

“늦었어. 수강생 자리 이미 다 찼다.”

박순기가 무음으로 전환해놓은 휴대폰의 벨소리를 도로 키우며 보석 전시관을 보았다. 총소리는 방금 멎었다.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갑자기 박순기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번호를 확인했다.

“신은하 씨?”

그는 신은하가 저 보석 전시관에 있다는 건 모른다. 작전 도중에 이 전화를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손가락은 이미 화면을 터치했다.

“박순기입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 1층을 장악했습니다. 2층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옥상으로 대피하고 있습니다.

“어? 나 사범님? 이야아. 역시 다르십니다!”

- 아직 상황이 끝난 게 아닙니다. 바깥 상황은요?

“우리 쪽에서 테러리스트 셋을 잡았습니다. 하나는 제가 잡았죠. 주변을 통제하고 상황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다른 놈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박순기가 물었다.

“내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저희 쪽에서 정문을 부수고 진입하려 합니다.”

- 안됩니다. 이 건물 내부는 화학무기로 오염됐습니다.

박순기는 깜짝 놀랐다.

“헉! 화학무기요? 그럼 우리가 찾던 그….”

- XVE 가스입니다. 율명바이오가 해독치료제를 개발했습니다. 보유한 약 다 가져오라고 연락하세요.

박순기가 수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볼펜으로 메모했다.

“율명바이오의 해독치료제…. 잠시만요. 이거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는 임상 시험을 안 한 거 아닙니까?”

- 이 건물 안에 심하게 중독당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썼습니다. 부작용은 아직 모르지만 효과는 확실하더군요.

“예? 아니, 개발중인 약을….”

- XVE 가스에 심하게 당한 사람들은, 해독제를 쓰지 않았으면 죽었을 겁니다.

“아…. 그럼 써야죠. 부작용을 따질 때가 아니군요.”

- XVE 가스에 효과가 있는 방독면이 뭔지 알아내서 확보한 후에 진입하세요. 율명바이오에 자료가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 사범님도 옥상으로 올라가십니까?”

- 아니요. 한 놈이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그놈을 잡으러 갑니다.

박순기가 걱정했다.

“위험합니다. 그놈은 우리에게 맡기시죠. 그만하면 충분히 하셨습니다.”

- 1층을 오염시킨 XVE 가스는 텀블러보다도 작은 통에 담겨 있던 겁니다. 휴대용이죠. 그래서 1층만 오염된 겁니다.

“휴우. 양이 적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 그런데 지하실에는 커다란 XVE 가스통이 있습니다. 대용량이죠.

“예?”

“그게 터지면 이 일대는 XVE 가스로 뒤덮일 겁니다.”

박순기가 당황한 얼굴로 전시장 주변을 보았다.

여기는 종로다. 종각 앞보다는 덜 붐비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다.

“여, 여기엔 지금 시민이 많습니다.”

- 그 가스통은 제가 숨겨놨습니다. 놈이 그걸 찾아내기 전에 제가 잡을 겁니다만, 혹시 모르니까 사람들을 대피시켜요.

박순기가 동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일대 다 대피시켜! 화학무기 경고다! 화생방 부대에도 연락해!”

박순기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런 사건은 외부 민간인이 아니라 전문 대테러 팀이 맡아야 한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다. 지금 화학무기가 터지면 이 일대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시관 앞에 있는 박순기까지 당한다.

게다가 이 사건을 해결 중인 민간인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강인이다.

박순기가 휴대폰에 대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 사범님. 건투를 빕니다. 살려주세요.”

박순기의 판단으로는 이게 최선이었다.

***

나강인이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계단을 벗어나기 전에 손거울로 모퉁이 너머를 슬쩍 확인했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손거울은 예전에 신은하에게 받은 것이다. 그 작은 거울에 계단 바깥이 잠깐 보였다.

나강인은 손거울을 한 바퀴 빙글 돌린 후에 거울을 집어넣었다.

AI 전지인이 거울에 비친 모습을 조합해 지하층의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아까 지하층에서 싸울 때 확보한 사물 정보도 추가했다. 순식간에 모퉁이 뒤의 모습이 홀로그램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AR 렌즈에 투영됐다. 이제 나강인은 모퉁이 너머를 마치 투시하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소음을 기반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 중입니다. 거리가 먼 곳에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적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놈은 계속 움직일 거야. 가스통을 찾아야 하니까.”

지금 당장 파악되는 범위에는 쿠거가 보이지 않았다.

나강인이 모퉁이 너머로 성큼 걸어갔다.

AI 전지인의 예측 홀로그램은 우수하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더 확실하다. 나강인이 주변을 확인하며 XVE 가스를 숨겨둔 곳으로 걸어갔다.

“일단 가스통부터 확보한 후에 그놈을 잡….”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을 발견했습니다!

“나도 봤다.”

나강인만 본 게 아니다. 쿠거도 나강인을 발견했다.

문제가 생겼다. 쿠거는 XVE 가스통을 숨겨놓은 곳 바로 앞에 있었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총기 사용을 주의하십시오. 빗나가거나 튕긴 유탄이 숨겨둔 가스통을 파손시키면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쿠거가 나강인을 향해 권총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나강인은 즉시 옆으로 몸을 날려 엄폐물 뒤로 피했다. 총탄 두 발이 더 날아오고 나서 적의 사격이 멈췄다.

나강인이 엄폐물 뒤에서 물었다.

“지인아. 내가 총을 쏘면 저놈이 피할까?”

- 적이 움직임이 상당히 민첩합니다. 1층에서 도망칠 때도 빨랐습니다. 요원님이 쏘면 한두 발은 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피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쿠거 쪽으로는 총을 쏠 수가 없다. XVE 가스통이 유탄에 맞아 터지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럴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걸고 모험할 수는 없다.

쿠거가 초소형 방독면을 쓴 채로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숨을 도대체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는 거야!”

나강인이 말했다.

“저거 좋은 핑계네. 나중에 남들이 나한테 방독면을 왜 안 써도 괜찮았는지 물어보면, 저 말을 써먹어야겠다.”

- 해독제 주사도 맞았다고 하면 더 완벽한 핑계가 됩니다.

“당연하지.”

그런 건 나중 일이다. 지금 당장은 총을 쓰지 않고 쿠거를 잡을 방법이 필요하다.

“역시 몸으로 때워야겠어.”

드래곤 플레이트를 안 입고 온 게 조금 후회됐다.

“오늘은 내가 직접 뛸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는 이 전시관이 적의 목표인지 확인하러 왔다. 여기서 유력한 단서를 찾으면, 범행을 막고 놈들을 잡는 일은 박순기에게 연락해서 경찰에게 맡기려 했다.

그런데 하필 그가 이곳에 있을 때 쿠거가 쳐들어왔다.

“내가 오늘 운이 나쁜가 보다.”

- 요원님이 운이 나쁜 덕분에 지금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살았습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나강인이 손거울을 엄폐물 뒤로 슬쩍 내보냈다가 집어넣었다. 쿠거의 권총이 어느 지점을 조준하고 있는지 AI 전지인이 표시해주었다.

“가자.”

나강인이 엄폐물에서 튀어나갔다.

쿠거는 미리 조준하고 있었다. 그는 나강인이 뛰어나오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그의 예측보다 나강인이 훨씬 빨랐다. 총탄은 나강인이 이미 지나간 뒤에야 공간을 갈랐다.

쿠거가 총구를 옆으로 움직이며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나강인이 더 빨리 옆으로 뛰었다.

쿠거는 이제야 깨달았다.

‘저놈의 움직임은 사람 수준이 아니야!’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쿠거는 정조준 사격은 포기하고 제압사격을 시작했다. 총구는 대충 나강인 쪽으로만 향하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나강인이 보는 허공에 예상 사격 루트가 줄줄이 그려졌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적이 정조준하고 사격하면 나강인은 AI 전지인의 지원을 받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난사하면 오히려 피하기 어렵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회피, 한계입니다!

나강인이 다른 엄폐물 뒤로 몸을 날렸다. 자세를 잡고 착지할 여유도 없어서 앞으로 구르며 엄폐물 뒤로 들어갔다. 총알이 신발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강인이 엄폐물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좀 쏘는데?”

국제용병 쿠거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 쏘지 않지?”

그는 나강인이 권총을 들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런데 나강인은 피하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았다.

“저런 엄청난 회피 능력자가 견제 사격이라도 하면서 움직이면,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제압사격을 하기 어려운데 도대체 왜?”

쿠거의 머릿속에 그래야만 하는 이유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혹시 내 뒤에 총에 맞으면 안 되는 게 있어서?”

쿠거는 지하층에 내려오자마자 XVE 가스가 들어있는 가스통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걸 찾아내기 전에 나강인이 나타나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쿠거가 뒤를 휙 돌아보았다. 소방용 호스가 들어있는 소화전이 보였다. 소화전의 크기가 제법 컸다.

쿠거가 얼른 소화전 덮개를 열었다. 그 안에 커다란 가스통이 숨겨져 있었다.

쿠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찾았….”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쿠거가 뒤로 휙 돌아서며 권총을 들었다.

나강인이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돌진했다.

쿠거는 방화문을 열 때도 나강인을 계속 신경 썼다. 나강인과 쿠거 사이의 거리는 조금 멀었다. 그래서 쿠거는 소화전의 덮개를 열어볼 시간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나강인이 바로 앞까지 달려왔다. 나강인의 단거리 달리기 속도는 쿠거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나강인의 다리도 빠르지만 쿠거의 손도 빨랐다. 그의 권총은 이미 나강인을 향하고 있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나강인이 쿠거의 권총을 손으로 덥석 잡고 분해 버튼을 누르며 슬라이드를 밀었다. 권총이 순식간에 분해되어 아랫부분만 남았다.

쿠거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반쯤 분해된 권총에서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쿠거는 분해된 권총에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는 즉시 권총을 손에서 놓으며 왼손을 뒤로 뻗었다. 가스통의 밸브를 잡기 위해서였다.

‘이것만 틀면….’

그의 손이 밸브에 닿기 직전에, 나강인이 쿠거의 목을 콱 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컥!”

나강인이 쿠거를 앞으로 빠르게 끌고 가며 방독면을 벗겼다.

이 건물은 XVE 가스로 오염되어 있다. 지하에도 약간의 가스가 흘러들어왔다.

쿠거가 당황한 얼굴로 버둥거렸다.

“커컥, 안….”

“겨우 보석 때문에 여기서 화학무기를 터트리려고 했으면서, 정작 너는 죽기 싫은가보다?”

“컥. 나, 나를 풀어주면 십억을 주겠….”

나강인이 쿠거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쿠거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가 몸이 축 늘어졌다. 국제용병 쿠거가 주먹 한 방에 기절했다.

나강인은 소화전의 문을 도로 닫아놓고 쿠거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가면서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목을 잡았습니다.”

- XVE 가스는요!

“확보했습니다.”

박순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휴우. 역시 나 사범님! 믿고 있었습니다!

“바깥 상황은요?”

- 율명바이오와 연락했습니다. 그 회사의 서울 연구소가 보유 중인 해독치료제를 모두 가져올 겁니다. 방독면 정보도 확인했습니다. 저희가 보유한 방독면으로 방어가 가능합니다.

“다행이네요. 사람들은 일단 옥상으로 대피시켰는데, 아직 건물 안에 누가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내부를 수색하겠습니다.”

- 나 사범님. 거긴 오염됐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나강인이 쿠거가 쓰고 있던 방독면을 보았다. 핑곗거리로 좋았다.

“지금은 방독면을 쓰고 있습니다.”

- 아. 다행입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준비되는 대로 진입하겠습니다.

나강인은 쿠거는 지하에 묶어두었다. 이놈을 살려둬야 정보를 캐낼 수 있다. 그러려면 독가스로 오염된 1층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그는 혼자 1층으로 올라가며 신은하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쓰는 휴대폰이 신은하의 것이다.

그는 대신에 이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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