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공조
합동수사본부장이 물었다.
“화학무기는요? 유출됐다면서요?”
“다행히 큰 위험은 없답니다. 사망자도 없습니다.”
본부장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우리가 해결한 건 아니지만, 이런 위험한 사건이 큰 피해 없이 끝나서 다행입니다.”
다른 간부가 말했다.
“다른 부서에 있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우리가 오늘 보내준 자료에 감탄한 부서가 한두 곳이 아니라더군요.”
“하하. 그래요? 우리가 그래도 어제부터 헛고생한 건 아닌가 봅니다.”
“이후 수사도 우리가 맡는 거냐고 물어보던데요.”
“예?”
본부장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어…. 위에서 이거 우리가 맡으라는데요? 위에서도 좀 미안하셨나 보네. 문자만 달랑 보낸 걸 보면. 하, 하하. 젠장.”
***
이튿날 합동수사본부 형사가 나강인을 찾아갔다.
“진짜 선생님은 공식적인 이유로는 그만 뵈었으면 했는데요.”
나강인도 어색하게 웃었다.
“뒷일은 합수부가 맡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이젠 선생님이 해결한 대형사고는 자동으로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합수부 형사가 어제부터 조사한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국제용병 쿠거 말입니다. 자칼보다 더 잔인한 놈이더군요.”
“화학무기를 이용하는 것만 봐도 알잖습니까? 자칼은 권총 정도만 썼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놈이 쿠거인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쿠거가 한국에 있다는 건 오메가테크의 스칼렛과 제시카에게 들었다. 그런데 제시카는 그 정보가 대외비라고 했다.
그는 그것만 빼고 설명했다.
“쿠거의 코드네임이나 범죄 스타일은 외국 인터넷을 잘 검색하면 나옵니다. 자칼이 습격했던 레스토랑 페넬로페 앞에서 그놈과 잠깐 마주치기도 했고요. 그런 정보를 모아서 짐작했습니다.”
“이보라 씨 납치사건 때도 인터넷 검색으로 범인을 찾아내시더니 이번에도…. 그 분석력이 정말 부럽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합수부 형사는 보석 전시회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그 보석 전시회는 국내 기업이 주최하는 이벤트 행사였습니다. 전시에 사용한 보석은 대부분 빌려온 거고요. 아마 그 기업이나 보험회사는 간담이 서늘했을 겁니다.”
나강인이 궁금한 건 이미 해결된 부분이 아니다.
“차 이사가 누군지는 알아냈습니까?”
“음…. 율명바이오의 상황부터 설명해야겠군요. 그날 현장에서 사용하신 해독치료제 말입니다. 그 회사 직원이 빼돌린 거더군요.”
“그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회사에서 그걸 빼돌린 직원은 화학무기가 실제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테러에 가담한 게 아니라 약을 훔친 것뿐이라는 거죠.”
“그 해독제가 테러에 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조금은 했겠죠.”
“저희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쿠거가 차 이사와 대포폰으로 통화한 적이 있더군요. 해독제를 빼돌린 직원도 대포폰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저희가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분석했더니, 쓸만한 게 나왔습니다.”
“어떤 정보입니까?”
“숨어있기 딱 좋은 건물을 찾아냈습니다. 한 시간 뒤에 거길 덮칠 겁니다.”
“혹시 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합수부 형사가 활짝 웃었다.
“아유. 그럼요. 선생님이 같이 가주시면 저희야 좋지요. 아. 물론 체포 작전에는 참여하실 수 없지만요. 저랑 같이 건물 밖에서 현장을 덮치는 걸 보기만 하셔야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말 나온 김에 같이 가시죠. 나머지 이야기는 가면서 하겠습니다.”
***
합동수사본부는 각 부서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 만든 곳이다.
그들은 원래 부서의 일을 그대로 하면서 합수부 업무도 추가로 해야 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합수부 사람들은 불평하면서도 일을 잘했다. 그들은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작은 조직을 하나 찾아냈다.
합수부 형사가 차에 탄 채로 말했다.
“아직 조직원 명단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놈들의 거점은 찾아냈습니다. 바로 저곳입니다.”
형사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낡고 작은 상가 건물이 있었다. 건물이 있는 곳은 대로변이 아니고, 1층에 있는 가게는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나강인은 형사와 함께 차에서 기다렸다.
경찰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권총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그들이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합수부 형사가 말했다.
“시작하나 봅니다.”
건물 안에서 섬광탄이 연달아 터졌다. 그 직후에 방탄 방패를 든 대원들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그들은 만약을 대비해 방독면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진입한 후에도 건물 내부가 너무 조용했다.
밖에서 대기하던 형사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합수부 형사가 차 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 후에 합수부 형사가 돌아왔다.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저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이미 다 튀었습니다. 주변 상인들 말로는 어제만 해도 저곳에 사람이 들어가는 걸 봤다는데….”
“그놈들이 경찰의 공격을 어떻게 눈치챈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나강인이 차 문을 열었다.
“저도 좀 둘러보겠습니다.”
형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저 건물 내부는 아직 현장이라서 지금 당장은 좀….”
“그럼 근처에 있을 테니까 저기 들어가도 되는 때가 되면 연락을 주시죠.”
나강인은 차에서 내렸다. 기왕 기다릴 거라면 어디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이라도 먹는 게 낫다.
그는 밥집을 찾아 주변을 돌아다녔다.
“밥은 먹고 일해야지. 오늘은 뭘 먹어야 맛있게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 지역 맛집을 확인했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너는 그건 또 언제 알아본 거야?”
- 서울 시내 주요 맛집을 평소에 검색해뒀습니다. 검색하는 걸 보셨잖습니까?
“난 그걸 다 외우고 다니진 않잖아.”
나강인이 식당으로 걸어가며 어깨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약 경찰이 저 건물에서 아무것도 못 찾아내면, 그땐 우리가 들어가서 조사하자.”
AI 전지인이 큰소리쳤다.
- 지구연합군의 전장 분석 및 적 흔적 탐색 스킬을 써서 단서를 찾아내겠습니다.
“그래도 못 찾으면 내 눈이 나빠서고?”
- 물론입니다.
“우리 지인이가 날이 갈수록 뻔뻔해진다.”
- 도착했습니다. 저 식당의 돼지고기 김치찜이 그렇게 맛있다고 합니다.
“돼지 김치찜 좋지.”
나강인이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답게 장사가 잘됐다. 한쪽에는 한두 명이 먹는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그는 그곳에 앉았다.
나강인이 음식을 주문한 후에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손님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까 정말 맛있나 보다.”
갑자기 허공에 반투명한 홀로그램 사진과 정보가 주르륵 떴다. 식당 반대편 구석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는 사각형이 쳐졌다.
- 요주의 대상자를 발견했습니다.
“누군데?”
- 한국대학교 행사장 노트북 도난 및 해킹 미수 사건 때, 사건 발생 27분 후에 학교를 나가는 모습이 정문 CCTV에 찍혔습니다.
“수연이가 도둑놈을 피해서 건물 사이 공터에 숨었던 그때?”
- 예.
나강인이 일부러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에 물었다.
“얼마나 확실해?”
- 동일 인물일 확률은 99%입니다.
“그날 사건 발생 이후 한 시간 이내에 학교를 나간 사람이 몇 명이지?”
- 그 이후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을 제외하면, 327명입니다.
“그러니까 수연이의 노트북에 해킹 코드를 심으려던 놈이 그 327명 중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곳에 있다는 말이지.”
그 노트북 도난 사건은 보석 전시장의 XVE 가스 사건과 연결된다.
이 식당의 손님은 대부분 돼지고기 김치찜을 주문했다. 주문하기도 전에 미리 김치찜을 조리하는 식당이라 음식이 빨리 나왔다. 주문 후 대기 시간이 워낙 짧아서 테이블 회전도 빨랐다.
나강인이 주문한 김치찜은 금방 나왔다.
그는 지금 경찰이 조사하는 건물 쪽을 힐끗 보았다. 거기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저 사람이 오늘 우리 목표와 관계가 있는지 확인은 해야겠지?”
- 물론입니다.
“밥을 언제까지 먹을 것 같냐?”
- 요주의 대상자는 일행 세 명과 같이 먹고 있습니다. 늦어도 10분 안에 식사가 종료될 겁니다.
“우리도 얼른 먹자.”
- 맛을 즐기면서 먹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나강인이 서둘러 밥부터 먹었다.
- 어차피 다 못 먹습니다. 그러니까 고기부터 드십시오.
용의자 일행의 식사가 더 빨리 끝났다. 그들이 계산할 때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먼저 식당을 나갔다. 나강인도 계산하고 식당을 나섰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용의자가 우측으로 이동했습니다.
용의자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는 그들이 가게를 나갈 때 미리 확인했다.
- 음성 정보를 활용해 용의자의 위치를 추적 중입니다.
나강인은 천천히 걸어갔다. 상대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져도 떠드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서 쉽게 미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단독주택으로 들어갔다. 경찰이 지금 조사하고 있는 건물에서는 5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집안에서 뭐라고 하는지 좀 듣자.”
- 저 주택 외부에는 CCTV가 없습니다. 목격자도 없습니다. 담을 넘으십시오.
나강인이 담을 가볍게 넘은 후에 뒤쪽 창문 아래로 갔다.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알아듣게 조정해봐.”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일부 음성을 해석해 재구성했습니다. 분석 오류가 발생하면 실제와 다른 문장이 들릴 수 있습니다.
곧바로 집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 경찰이 우리 사무실을 어떻게 알아냈지?
- 그 외국 용병 놈들이 다 분 거 아닙니까?
- 그놈들이 우리를 어떻게 알고? 우리도 그놈들 정체를 몰랐는데.
이 정도만 들어도 충분했다. 나강인이 담장을 도로 넘어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 건물에서 도망친 놈들이 맞네.”
- 경찰의 습격을 예상하고 미리 이곳으로 대피한 것 같습니다.
“느긋하게 식당에 밥을 먹으러 다닐 정도로 여유 있는 걸 보면, 여기는 안 들킬 자신이 있는 거겠지.”
- 바로 진입해서 제압하십시오.
“내가 직접 뛸 필요가 있냐? 이런 일은 아군에게 맡겨야지.”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는 뭔가 나왔습니까?”
-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남은 게 별로 없습니다. 이놈들이 단서가 될 만한 건 다 치웠습니다.
“그럼 그놈들을 체포하러 간 분들은 지금 당장은 하는 일이 없겠군요.”
- 그렇죠. 현장 분석은 다른 팀이 하고 있으니까요. 체포팀은 그놈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면 곧바로 출동할 겁니다.
나강인이 현재 그가 있는 위치의 지도 이미지를 전송했다.
“그럼 그만 쉬시고 이리로 데리고 오시죠.”
- 예? 여기가 어디인데….
“그 건물에서 도망친 놈들이 숨어있는 단독주택입니다.”
- 헉! 아니, 이걸 어떻게….
나강인이 간단히 설명했다.
“얼마 전에 한국대학교에서 율명바이오 사장 딸의 노트북에 해킹 코드를 심으려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학교에서 본 사람을 방금 발견했습니다. 하필 여기서요. 수상하지요?”
- 그냥 학생이나 교직원이 여기 사는 것일 수도….
“혹시나 해서 뭐라고 하나 슬쩍 들어봤더니 외국 용병 이야기를 하네요?”
- 헉! 쿠거가 국제용병이란 건 아직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조사하는 건물과의 거리도 그렇고, 하필 그날 학교에 있었던 것도 그렇고, 거기다 발표한 적도 없는 국제용병 이야기까지. 좀 수상하죠?”
- 많이 수상합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합수부 형사와 경찰특공대, 그리고 형사들이 조용히 다가왔다.
나강인이 집을 가리켰다.
“저곳입니다. 주택 외부에 CCTV는 안 보이더군요.”
그들은 단독주택을 조용히 포위했다. 옆집과 붙어 있는 부분은 담장 바깥쪽에서 대기했다.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의 옆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테러리스트에게 인질이 잡혀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만?”
형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그런 거로 하죠.”
나강인도 형사가 말한 의도를 눈치챘다.
“아아…. 딱 봐도 집주인이 놈들에게 잡혀있을 것 같군요.”
“현장 지휘관도 그렇게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책임은 우리 합수부가 지기로 했고요.”
형사가 침을 삼키고 물었다.
“기왕이면 상황이 좀 더 확실했으면 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그날 한국대학교에 있었던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데, 어떻게 얼굴을 기억하시는 겁니까?”
AI 전지인은 그 사건 이후 한 시간 동안 학교를 벗어난 사람들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다.
나강인이 적당히 둘러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조심하는 듯한 모습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 역시 선생님은 조금만 수상해 보여도 그냥 넘기지 않고 다 기억하시는군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가 기억하는 겁니다.
“내가 기억하라고 시켰으니까 비긴 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