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53화 (153/411)

153. 공조 II

권총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찰 요원들이 거실 창문을 부수고 단독주택 안으로 진입했다.

이 단독주택이 적의 거점이라는 정보는 나강인이 제공했다. 하지만 나강인도 물증은 없다. 그들의 대화는 범인이라는 걸 자백한 수준이지만, 그걸 녹음해서 경찰에게 들려준 건 아니다.

경찰은 나강인의 정보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섬광탄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경찰특공대원들은 기관단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해 방아쇠만 당기면 총탄이 튀어나가게 하고 돌입했다.

안에서 곧바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인 줄 알…. 헉!”

“초, 총이다!”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헬멧과 고글, 방탄조끼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대원들이 창문을 깨고 쳐들어왔는데, 그 앞에서 칼을 들 정도로 무모한 놈은 없었다.

나강인은 합수부 형사와 단독주택 밖에서 기다렸다.

소란은 금방 끝났다. 잠시 후에 무전으로 상황보고가 들어왔다.

- 집안에서 다수의 무기를 발견했습니다. 군용 단검과 잭나이프….

잠깐 시끄러운 소리가 섞였다가 상황보고가 이어졌다.

“안쪽 상자에서 권총을 두 자루 찾았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그놈들이 권총을 꺼냈으면 벌집이 돼서 죽었을 겁니다. 운이 좋은 놈들입니다.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 XVE 가스 관련 자료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찾던 놈들이 확실합니다.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진짜로 저놈들이 저쪽 건물에서 도망쳐서 여기 숨어있던 거군요. 저놈들을 이렇게 금방 찾아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운이 좋았죠. 밥이라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간 건데, 거기에 저놈들이 있더라고요.”

“운도 실력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그 식당에 갔으면 못 알아봤을 겁니다.”

“어쨌든 저놈들을 다 잡으면, 차 이사에 대한 걸 자세히 물어….”

저 멀리서 뭔가 슬쩍 움직였다.

AI 전지인이 즉시 보고했다.

- 이쪽을 보고 경계하는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허공에 홀로그램 화살표가 떴다. 나강인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목으로 들어왔다가 주택 앞 상황을 보고 슬금슬금 물러나던 남자가 나강인과 눈이 마주쳤다.

- 상대의 표정에서 경계와 당황, 두려움이 감지됐습니다. 방금 체포한 놈들과 한패이거나, 수배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그 남자 쪽을 보며 말했다.

“잡아야 할 놈이 이 집에 다 모여 있던 건 아닌가 봅니다. 저기 한 놈 더 있네요.”

합수부 형사는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듣고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남자는 소주 몇 병이 든 비닐봉지를 떨어뜨리며 뒤로 돌아 도망쳤다.

그런데 남자의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합수부 형사는 쫓아가면서 당황했다.

‘뭐가 저렇게 빨라? 달리기 선수 출신이라도 되는….’

형사의 옆을 나강인이 휙 지나갔다. 나강인은 형사보다 빠르고 도망치는 남자보다도 빨랐다.

도망치던 남자가 방향을 급히 틀어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강인은 가볍게 점프해 맞은편 담벼락을 발로 밟고 진행방향을 거의 직각에 가깝게 틀어 골목 안으로 날아갔다.

나강인과 남자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 거동수상자 요격까지 2초!

남자는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고 도주를 포기했다. 그는 그 대신에 몸을 돌리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남자의 손에는 잭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칼날이 허공을 초승달 모양으로 예리하게 갈랐다.

나강인이 몸을 슬쩍 기울여 칼을 피한 후에 안으로 파고들며 남자의 오른손을 덥석 잡았다.

마치 프레스로 누르는 것 같은 압력이 남자의 오른손와 칼을 동시에 짓눌렸다.

“으아악!”

남자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나강인이 남자의 멱살을 잡고 아래로 눌렀다.

“너도 저놈들 중 하나구나?”

남자는 다리가 반쯤 굽혀진 채로 나강인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아니….”

“어차피 조사하면 다 나와. 저 집에 있던 놈들은 싹 다 체포했거든.”

“혀, 형사님. 그게 아닙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

남자는 나강인이 형사라고 착각했다. 그의 눈알이 잠시 움직이다가 멈췄다.

“저는 잔심부름만 하는 단순 가담….

“잔심부름꾼이 칼을 참 잘 쓰네?”

“그, 그게….”

“네가 누군지는 안 궁금해.”

“예?”

“내가 원하는 건 차 이사야.”

나강인은 저 집에 차 이사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대놓고 차 이사의 위치를 묻지는 않았다.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

“차 이사는 저희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콩밥을 오래 먹고 싶은가 보다?”

“지, 진짜입니다.”

“원래 지내던 곳에서 도망쳐서 저 집에 숨은 이유는?”

“오늘 아침에 차 이사가 빨리 피하라고 경고 전화를 한 번 줬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차 이사와 연락이 안 됩니다.”

남자의 말이 사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경찰이 조사해보면 알겠지.’

이놈들이 왜 원래 있던 사무실에서 서둘러 철수했는지도 알았다.

‘차 이사가 어떻게 눈치챘을까? 내부에서 정보가 샜을까? 아니면 돌아가는 상황만 보고 예측했을까?’

둘 다 가능한 시나리오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차 이사와 연락이 안 된다고?”

“예. 아침에 비상용 휴대폰으로 차 이사의 연락을 받았는데, 그 후에 저희가 다시 전화해봐도 받지를 않습니다.”

나강인이 생각했다.

‘꼬리를 잘랐나?’

합수부 형사가 도착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헉헉. 허억. 헉. 우웨엑!”

나강인이 말했다.

“운동 좀 하셔야겠습니다.”

“아니, 헉헉. 이게 내가 느린 게 아니라…. 이놈이 뭐 좀 털어놨습니까?”

“저놈들과 한패입니다. 자백했습니다.”

“그럴 것 같더라니.”

다른 형사도 몇 명 도착했다. 그 형사들이 남자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말했다.

“오늘 잡은 저놈들을 조사한 후에,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려주시겠지요?”

형사가 제안했다.

“그냥 취조실 밖에서 저랑 같이 보시겠습니까? 민간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하시게 처리할 테니까요.”

“아니요. 제가 더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과만 알고 싶습니다. 특히 차 이사에 관한 것을요.”

***

이튿날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을 찾아왔다.

형사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참…. 어제 잡은 그놈들 말입니다. 쿠거 패거리와 손을 잡은 건 맞는데 말입니다.”

“차 이사는 못 찾으셨군요.”

“국제용병 쿠거 패거리와 어제 잡은 놈들이 자백한 것, 거기에 합수부에서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모두 모아서 밤새도록 분석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화학무기 테러 경보가 떴을 때부터 이틀 동안 퇴근도 못 했습니다. 물론 선생님도 고생 많이 하셨겠지만요.”

“저야 뭐,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습니다.”

“부럽습니다.”

“결과부터 듣고 싶은데요.”

합수부 형사가 설명했다.

“국제용병 쿠거는 전시회의 보석을 노린 게 맞습니다. 주로 보석만 챙겼는데, 가방에서 나온 보석이 몇백억 원어치입니다.”

“외국으로 빼돌려서 팔았을 때 추적당하지 않을만한 걸 노렸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XVE 가스는 일본에서 들어오는 수산물 트럭에 숨겨서 밀수했더군요.”

“국내에서는 못 구했으니까요. 그런데 가스의 양이 꽤 많던데요.”

“많습니다. 그래서 부산 쪽 검역 시스템이 지금 이 문제로 난리가 났습니다.”

“어제 잡은 놈들은요?”

“어제 우리가 잡은 놈들은 XVE 가스의 해독치료제 기술을 빼내 팔아먹으려던 산업스파이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살인마들입니다만.”

“저희도 그놈들을 그렇게 압박했죠. 그런데 그놈들이 자기들은 가스를 터트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쿠거가 실제로 터트렸는데요?”

“그놈들은 누군가 XVE 가스를 터트려서 보석을 털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돈을 좀 벌려던 것뿐이라더군요.”

나강인은 어이가 없었다.

“참 신박한 개소리네요.”

“개소리죠.”

나강인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화학무기가 터져서 사람들이 많이 죽으면 그 화학무기가 유명해질 거고, 그러면 해독치료제 제조법의 가치가 올라갈 거다? 그래서 제조법을 빼내려고 했다?”

“그렇죠.”

“아주 큰 판촉이벤트를 준비했군요.”

나강인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럴 거면 제조법부터 손에 넣고 일을 벌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쿠거가 화학무기를 터트릴 거라는 걸 알고 난 후에 일을 시작한 거라서, 그럴 수가 없었답니다.”

“쿠거 일당이 갖고 있던 해독제는요?”

“그놈들이 빼돌려서 넘겨준 겁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준 건 아니더군요.”

나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그 두 조직 사이에 차 이사가 있겠군요.”

“맞습니다. 차 이사는 국제용병 쿠거의 계획을 알아내고 밀수 루트나 탈출로 같은 정보를 제공했답니다. 해독치료제도 어제 잡은 놈들이 차 이사가 지정한 장소에 갖다놓은 겁니다.”

“쿠거는 그걸 받아먹었고요.”

“예. 쿠거 쪽도 알아봤는데, 어차피 손해 볼 게 없어서 그 정보와 해독제를 받아먹었다더군요.”

“음…. 어제 잡은 놈들 말입니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차 이사와 이번에 처음 접촉한 게 아니겠는데요?”

“네. 이전에도 차 이사를 통해서 일을 몇 번 했다더군요.”

“해커가 대포폰으로 통화한 놈은 차 이사가 맞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어제 잡은 조직의 두목이 자기가 차 이사인 것처럼 해커와 통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놈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던 거지요.”

“차 이사는 상황이 나빠지니까 꼬리를 자른 거군요. 그 산업스파이 조직이 꼬리였고요. 차 이사에 관한 다른 정보는요?”

합수부 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서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보라 씨 납치사건 때 잡은 조직도 마찬가지인데, 차 이사 밑에서 일한 놈조차 얼굴을 못 봤습니다.”

“노출되는 순간 바로 손절하려고 그랬겠죠. 그러면 최근에 잡은 놈들을 조사해서는 차 이사를 못 잡겠군요.”

합수부 형사는 미련이 남았다.

“차 이사가 그놈들과 다시 접촉하려 하진 않을까요?”

“안 그럴 겁니다. 차 이사는 그놈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취급할 겁니다.”

“지독한 놈이네요.”

“차 이사를 수배하실 겁니까?”

합수부 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차 이사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릅니다. 공개 수배를 하면, 우리가 그놈을 찾는다는 것만 알려주게 됩니다.”

“경찰 내부에서는요?”

“비공개이지만 당연히 1급 수배자입니다.”

***

종로 인근 보석 전시관 화학무기 습격 사건은 기존에 만들어진 합동수사본부가 맡았다.

합수부는 그동안 나강인이 해결한 사건을 받아서 처리해 왔다. 그러려고 만든 합수부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일이 진행돼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조금 달랐다.

합수부는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나강인과 같이 화학무기 테러를 대비하고 조사했다. 보석 전시관 외부에 있던 쿠거의 부하들은 합수부가 투입한 대테러 요원들이 잡았다.

율명바이오에서 해독치료제를 빼돌린 놈을 잡은 것도 합수부고, 해독치료제 기술을 빼내려던 산업스파이 조직을 찾아낸 것도 합수부다. 체포 작전 도중에 하마터면 놓칠 뻔한 놈은 나강인이 잡았지만, 어쨌든 체포 작전 자체는 합수부가 주도했다.

만약 화학무기 전시관에서 사망자가 여럿 나왔다면 욕을 많이 먹었겠지만, 다행히 중상자는 없었다. 기절한 경비원은 큰 부상은 아니었고, XVE 가스에 중독된 사람들도 부작용 없이 회복됐다.

그래서 합수부의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다.

합동수사본부장은 그동안 기자들을 모아놓고 기자회견을 몇 번이나 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회의실에서 말했다.

“하하하. 저는 요즘이 우리 합수부가 생긴 이후로 제일 좋습니다.”

경찰 소속 간부가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강인과 우리가 협력해서 수사하면 이렇게 결과가 좋은데 말이죠.”

다른 간부도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이번에도 보시죠. 나강인이 범행 장소를 찾아내서 전시관 내부의 적을 소탕하고, 우리는 전시관 외부에 있던 놈들과 산업스파이 조직을 찾아내서 일망타진했잖습니까? 그러다 놓친 놈들은 서로서로 잡아줬고요. 같이 일하니까 얼마나 시너지가 좋습니까?”

“이렇게 좋은데 나강인은 왜 혼자 고생하나 모르겠습니다.”

다른 기관 간부가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는 우리 부서 일을 좀 도와달라고 제안해볼까 합니다. 시너지를 위해서요.”

경찰 소속 간부가 씩 웃었다.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나강인과 좋은 협조 관계를 유지했거든요. 우리 직원 중에 나강인과 가까운 사람이 많습니다. 하하하.”

정보기관에서 나온 간부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우리 직원 중에도 나강인의 총권도 수강생이 있는데요?”

“그 직원은 받기만 했지 준 건 없지 않습니까?”

“어, 그게….”

“과장님 부서에 드래곤 플레이트를 만들어내라고 강짜를 부린 직원도 있죠?”

“그건 수습이 실수로….”

경찰 간부가 웃었다.

“그러니까 과장님네 부서는 빠지시죠. 협조 요청은 나강인과 사이 좋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하하하.”

***

나강인은 낮에는 합수부 형사를 만나고 저녁때는 외과 과장 이정호를 만났다. 외과 의사 김중석도 같이 있었다.

김중석이 물었다.

“요즘 바쁘신가 봅니다.”

최근에는 화학무기 사건 때문에 꽤 바빴다.

“조금 바빴는데 오늘 다 끝났습니다.”

“다시 바빠지시는 건….”

“거기서 협조 요청이 들어와도 거절해야죠. 지금은 수연이 치료 준비가 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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