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60화 (160/411)

160. 똥덩어리

이라미드 태양전지 최초 개발자 권수연이 대문 밖에 나와서 나강인을 기다렸다.

그녀의 집은 한강 북쪽에 있다. 집 바로 앞길은 경사가 제법 있어서 걷기 편한 곳은 아니다. 게다가 그 동네는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대신에 그 동네 집들은 차고가 기본으로 있었다. 주민들은 외부로 나갈 때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불렀다.

그녀가 대문 앞에 서서 길 아래쪽을 보았다.

“5분이면 온다고 했으니까 도착할 때가 됐는데….”

조금 위쪽에 있는 다른 집의 차고가 열렸다. 그곳에서 독일제 오픈카가 빠져나왔다.

그 차는 도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가 그녀의 앞에 정차했다.

양용준이 운전석 문을 벌컥 열고 활짝 웃으며 내렸다. 그가 권수연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이야아! 수연아!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이야?”

“석 달. 너 석 달 전에 미국 출장 갔잖아.”

“너무 반가워서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다. 나 돌아온 지 한 달이나 지났어. 야. 그동안 내가 너한테 전화도 많이 하고 톡도 보냈는데, 어떻게 한 번도 안 받냐?”

“바빴어.”

양용준이 귀국한 한 달 전에는 없는 체력을 쥐어짜서 연구 발표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때는 양용준의 잡담에 일일이 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 후에는 노트북 도난 사건에 휘말려 쓰러졌다가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지낼 때 휴대폰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비밀수술 계획도 그때 잡혔다.

그녀와 권동진은 비밀수술이 끝날 때까지는 외부와의 연락을 줄이기로 했다. 그녀는 가까운 몇 사람에게는 새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지만, 양용준에게는 굳이 알리지 않았다.

양용준이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 어쨌든 이렇게 만났으니까 밥이라도 먹자. 내 오늘 스케줄은 연기할게.”

권수연은 병을 치료하기 전에는 평범한 식사는 할 수 없다.

“아니. 됐어.”

그녀는 양용준에게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아는 사람은 원래도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더 비밀로 해야 한다.

양용준이 불평했다.

“야. 너 진짜 이럴 거야? 나랑 밥 먹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권수연이 아래쪽을 보았다. 나강인의 차가 경사진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양용준이 그녀가 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저 똥차는.”

나강인은 전기장치 이상으로 폐차될 뻔한 차를 헐값에 샀다.

전기계통 문제는 AI 전지인의 지원을 받아 수리했다. 그 후에 여기저기 방탄판을 붙이고 전투 보조 기능을 추가하는 바람에 차량 무게가 많이 증가했다. 엔진이 무거운 차체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오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 차는 겉모습만 보면 곧 망가질 것처럼 보였다.

나강인이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나와 있었네?”

권수연이 나강인 쪽으로 걸어갔다.

“어. 금방 도착한다고 해서 기다렸어.”

이 차의 문짝은 방탄판 때문에 꽤 무겁다. 권수연은 체력이 약하다.

그래서 나강인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야. 타.”

차에 타려는 그녀에게 양용준이 손을 뻗으며 물었다.

“어? 수연아. 뭔데 그 똥차를 타? 어디 가는 건데? 갈 거면 내 차 타고 가!”

“됐어.”

양용준이 이번에는 나강인을 향해 삿대질했다.

“야! 넌 뭐야! 뭔데 수연이랑 반말이야! 너 운전기사 아니지? 누구야!”

권수연이 나강인의 팔에 팔짱을 살짝 끼며 말했다.

“친구야.”

“뭐? 친구? 야. 딱 봐도 너랑은 급이 안 맞는데 무슨 친구….”

권수연이 짜증을 냈다.

“그만 좀 할래? 넌 네 갈 길이나 가!”

권수연이 나강인의 팔을 놓고 조수석에 탔다. 나강인은 무거운 문을 닫아준 후에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양용준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나강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나강인이 룸미러로 양용준을 힐끗 보며 물었다.

“누구야?”

“같은 동네 사는 애. 고등학교 동창이야.”

“친해?”

“아니. 애가 성격이 쪼잔해서 별로 안 친해. 전에는 사람을 때리려는 것도 봤어. 못됐지?”

“어?”

나강인은 아예 때려잡은 놈이 많았다.

“테러리스트를 잡으려고 팬 것도 사람을 때리는 건가? 그건 어떻게 생각해?”

“형사가 그러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그런 상황이면 패는 게 아니라 총을 쏴도 되지.”

“형사라면 그렇지. 그러면 지나가던 시민이 강도를 잡으면서 몇 대 쥐어박았으면?”

나강인은 얼마 전에 쿠거 보석강도단을 때려잡았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AI 전지인이 말했다.

- 권수연의 마인드가 마음에 듭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양용준이 멀어지는 차를 보며 전화를 걸었다.

“나야. 차 번호 하나 보내줄 테니까 누군지 알아내. 당장.”

- 알겠습니다.

양용준은 회사로 갔다.

그의 아버지는 팔성테크의 사장이다. 양용준은 팀장 직함을 달고 있다.

양용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비서실 직원을 불렀다. 아까 전화를 받은 직원이 찾아와 태블릿PC 화면을 보여주었다.

“말씀하신 차량 조회 자료입니다. 자동차보험 쪽 라인을 활용해서 기본 정보를 알아냈고, 다시 그 정보를 바탕으로 몇 가지 더 알아냈습니다.”

양용준이 다짜고짜 물었다.

“이놈 돈 많아?”

“아닙니다. 현재 거주지는 반전세 아파트입니다.”

“강남?”

“강북입니다. 서울 동북부 쪽입니다.”

“그럼 직업이 특별해? 무슨 대단한 연구를 한다든지 그래? 아니면 MIT에서 교수라도 하다가 초빙됐어?”

“학력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직업은 알아냈습니다. 피시방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팝니다.”

양용준은 당황했다.

“어? 피시방 주방?”

“맛집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나 이거 어이가 없어서. 그게 다야? 뭐 특별한 거 없어?”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양용준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불평했다.

“그럼 수연이는 왜 나 대신에 그런 놈을 따라간 거야? 돈도 내가 더 많고 지위도 내가 더 높아. 특히 얼굴이 내가 훨씬 더 낫잖아!”

***

연구실에서 박지혁이 권수연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수연이 누나! 너무 오랜만이잖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졌어?”

권수연의 반응은 앙용준을 만났을 때와는 달랐다. 그녀가 살짝 웃었다.

“조금 아팠어.”

“아…. 미안.”

박지혁이 말을 돌리기 위해 나강인을 슬쩍 보았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

“내 친구. 우리 학교 나왔어.”

“우리 과 선배는 아니신데, 혹시 수연이 누나 남자친구….”

권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옛날에 파이프로 피라미드를 만든 그 친구.”

박지혁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아! 그 나또라….”

권수연이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 내가 언제 그랬어?”

“누나는 안 그랬지. 교수님이 회식 때 누나 이야기를 듣고 그러셨지. 교수님이 잘못하셨네.”

권수연이 말을 돌리기 위해 박지혁을 나강인에게 소개했다.

“얘는 박지혁. 나랑 연구하는 주제는 다른데, 나를 많이 도와줬어.”

박지혁이 팔을 들어 팔뚝을 자랑했다.

“힘쓰는 건 제가 다 했죠. 하하.”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혹시 박지혁이라는 이름이 네 초기 메모리에 있냐?”

- 없습니다.

“그럼 미래에 유명한 과학자가 되는 건 아닌가 봐?”

- 군사기술 분야가 아닌데도 초기 데이터에 이름이 있으려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정도로도 부족합니다. 한 페이지 정도는 채워야 합니다. 메모리에 이름이 없는 게 정상입니다.

“이라미드 태양전지는 그 유래까지 남아 있잖아.”

- 이라미드 태양전지는 2082년 에너지 기술의 핵심 중 하나이며, 그 유래는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구나.”

- 위대한 기술입니다.

나강인이 권수연에게 물었다.

“네가 연구하는 태양전지 말이야. 나도 좀 볼 수 있어?”

“당연하지. 오늘 내가 연구할 때 옆에서 심부름이라도 시키려고 너를 데려온 건데.”

“응?”

“장비도 옮기고 힘쓸 일 많아. 강인아. 빨리 움직이자?”

***

이라미드 태양전지 기술은 권수연이 혼자서 연구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구 주제가 달라서 그녀가 뭘 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나강인은 그녀의 일을 도와주었다. 대부분 힘쓰는 일이나 잔심부름 정도였지만, 그러면서 그녀가 뭘 하는지 옆에서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 봐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이 기술은 2052년에 그 당시 기술력을 써서 완성된다며.”

AI 전지인의 초기 메모리 기록에 의하면, 이 기술은 권수연이 사망하면서 30년간 묻혔다가 2052년에 발굴되면서 빛을 본다.

- 최초 개발자가 살아있었으면 30년의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고 평가됐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개발 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 수연이는 우리가 살릴 테니까.”

- 물론입니다. 권수연을 경호 대상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그게 낫겠다.”

- 알겠습니다. 권수연을 두 번째 경호대상자로 지정합니다.

***

연구실에서 할 일이 끝난 후에, 권수연은 다시 나강인의 차를 탔다.

그녀가 사과했다.

“미안. 밥이라도 사야 하는데….”

나강인은 그녀가 평범한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안다.

“배가 안 고파. 피곤해 보이는데 집에 가서 쉬어라. 데려다줄게.”

“응. 고마워.”

나강인은 권수연을 집에 데려다주고 제작 거점으로 이동했다.

그는 책상에 앉아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지인아. 수연이가 먹어도 될만한 요리 레시피는 없냐?”

- 저에게 질병 진단이나 치료 스킬이 없어서, 환자용 요리 레시피를 고를 수 없습니다.

“아쉽네. 그런데 말이야.”

나강인이 한숨을 쉬었다.

“이라미드 기술 연구를 바로 옆에서 구경했는데도 생각나는 게 없다.”

- 그럴 줄 알았습니다.

“너의 지적 수준은 나와 비슷하다며. 우리 지인이가 이젠 누워서 침을 뱉는다.”

- 공부를 했으면 아실 겁니다. 안 해서 모르시는 겁니다.

“나도 알아.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할 거야.”

AI 전지인이 잠시 말이 없다가 대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 임무 관련 자료를 수집 중입니다.

“야. 왜 머뭇거리다가 말하는데?”

- 성과가 있습니다.

“응? 뭔데?”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손을 빌려 네 대의 모니터에 현시대의 기술 정보 몇 개를 띄웠다.

- 추가 확인이 필요한 정보입니다.

“국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모니터 세 개의 자료가 사라지고 나머지 하나의 자료가 모든 모니터에 확장되어 올라왔다.

- 이틀 뒤에 인공태양 기술 발표 행사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비공개 기술 세미나입니다. 일반인이 참석하려면 관계자의 초대가 필요합니다.

“아는 관계자가 없으니까 침투라도 해서 무슨 발표인지 들어야 하나?”

AI 전지인이 대안을 제시했다.

- 같은 행사장 바로 옆에서 첨단공학 관련 세미나가 있습니다. 인원 통제는 행사장 입구에서 이루어집니다. 첨단공학 세미나에 참석하면 바로 옆 인공태양 기술 발표회장에 들어갈 때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습니다.

“이야아. 이런 뒷구멍이 있었…. 잠깐. 첨단공학 세미나는 초대 없이 갈 수 있고?”

- 그 세미나도 관계자의 초대가 필요합니다.

“응? 지인아?”

- 그 세미나 발표자 중에 철인기공 이태성 본부장이 있습니다.

“널 믿고 있었다. 초대장은 철인기공을 통해서 얻으면 되겠네.”

- 물론입니다.

“잘했다. 너 요즘 많이 똑똑해졌어.”

- 저는 원래 지적이고 스마트했습니다.

“그래. 너 사람 다 됐다.”

***

이틀 뒤에 나강인이 강남에 있는 기술 발표회장에 도착했다. 그 발표는 호텔에서 진행됐다.

AI 전지인이 진지하게 말했다.

- 이 호텔 뷔페의 평이 그렇게 좋습니다. 오늘 조사가 끝나면 그곳에서 식사하시죠.

나강인도 진지했다.

“맛은 확실하겠지?”

-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선정하는 제 맛집 적중률은 87%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지. 근데 그동안 맛집이 아닌 비율이 13%보다 훨씬 많았단 말이야.”

- 취향의 차이입니다.

“너랑 나랑 입맛이 같잖아. 어디서 수작질이야?”

나강인이 초대장을 보여주고 발표회장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행사장이 두 개가 있었다. 그중에서 첨단공학 세미나가 먼저 시작됐다.

나강인이 그쪽 발표회장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먼저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쪽에서 발표를 시작할 때쯤에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쓱 옮겨가자. 복도에 계속 서 있으면 이상해 보이잖….”

갑자기 나강인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 너!”

나강인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이틀 전에 권수연의 집 대문 앞에서 접촉한 똥덩어리입니다.

그때 방방 뛰던 양용준의 모습이 시야 한쪽에 작은 홀로그램 영상으로 나타났다.

“아. 그 건방진 똥덩어리. 그런데 지인아. 네가 먼저 저 똥덩어리를 봤을 텐데, 왜 말을 안 했냐?”

- 말씀드릴 가치가 없었습니다.

“하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