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71화 (171/411)

171. 예고편

김유찬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려고 애쓰며 말했다.

“저 사람이 먼저 말이 안 되는 댓글을 달잖아. 내가 잘생긴 줄 모르겠대. 지금 이 댓글만 쓰게 손 좀 놔봐.”

“쓰지 마라. 잘생김을 판단하는 취향이 다르겠지.”

“아니, 형. 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취향을 타? 그게 가능해?”

“넌 언제 겸손해질래?”

“나는 겸손한데 얼굴이 안 겸손하네?”

김유찬이 댓글은 포기하고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마저 보았다. 윤아름이 올린 영상 속에서 공지현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지현이가 방송에서 내 잘생김을 칭찬하는 거 보니까, 애가 됐네. 오래 가겠어.”

매니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이 얼굴만 잘생긴 놈.”

***

THO 엔터 회의실 대형 모니터에 ‘운명의 창’ 예고편이 상영됐다. 30초짜리 짧은 영상이었다.

영상이 끝난 후에 홍보팀장이 설명했다.

“홍보 영상의 틀은 변형찬 감독과 협의해서 짜고 편집은 홍보팀에서 맡았습니다. 변형찬 감독의 검수도 받았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간부가 물었다.

“아직 촬영 초반인데 서두르셨네요?”

“우리 회사도 한두 푼 투자한 게 아니니까, 조금씩이라도 미리미리 홍보해둬야죠.”

“예고편 퀄리티가 초반치고는 굉장히 높네요?”

“처음부터 좋은 영상이 많이 찍혔거든요. 예고편을 만들면서 다른 영상들도 봤는데, 장난 아닙니다.”

사장 이태호가 말했다.

“이거 벌써 기대가 많이 됩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저 영상을 바로 내보냅시다.”

***

홍보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아직은 제작 초반이라 TV 광고는 제외하고 30초짜리 짧은 영상을 인터넷에 뿌렸다.

예고편 처음 15초 동안은 현대 배경의 밝은 씬 몇 개가 교차해서 지나갔다. 현대가 배경일 때의 김유찬은 와이셔츠나 추리닝을 입었다.

그러다 15초가 지나는 시점에서 배경이 갑자기 조선 시대로 바뀌었다.

김유찬이 칼을 내지르는 장면이 나왔다가, 공지현이 몸을 뒤로 젖히며 칼날을 피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두 장면이 이어지니 마치 김유찬의 칼을 공지현이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홍보팀과 변형찬은 일부러 사람들이 오해하게 하려고 영상을 그렇게 배치했다.

곧바로 공지현이 반격하는 씬이 이어졌다. 그녀가 공중으로 점프해서 칼을 내리쳤다. 그런데 그녀가 베는 것이 김유찬이 아니라 복면을 쓴 사람이었다.

30초짜리 영상의 마지막은 김유찬이 피 몇 방울이 튄 얼굴로 서늘하게 쳐다보는 것으로 채웠다. 그 모습 옆에 영화 제목 [운명의 창]이 세로로 쓱 나타났다.

짧은 영상이지만 후반부 임팩트가 워낙 강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영상이 빠른 속도로 퍼졌다.

윤아름이 자주 이용하는 게시판에도 그 영상이 올라왔다. 게시물 아래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그래서 개봉일이 언제입니까? 나오면 꼭 보러 갈 겁니다.

- 난 첫날 봐야지.

- 이 영화 아직 찍고 있다던데요?

- 레알?

- 심지어 아직 영화 촬영 초반이라더군요.

- 그런데 왜 벌써 이런 예고편을 보여줘서 사람을 기다리게 합니까?

- 감독이 악마인 듯.

예고편 자체에 대한 댓글도 많았다.

- 와. 김유찬이 현대 배경일 때는 바보처럼 웃더니, 조선 시대에서 예고편이 끝날 때의 표정은 어우….

- 살벌하네요.

- 여자 무사는 누군가요? 내 스타일이네.

- 공지현입니다. 요즘 드라마에 나옵니다.

검도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도 댓글을 달았다.

- 이상한데요? 여자 무사가 칼을 피하는 모습이요. 저거 아무리 봐도 칼날이 천천히 움직일 때 찍은 게 아닌데요?

-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여자 무사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말려 움직이는 거 보세요. 진짜로 베는 모습을 고속 카메라로 찍은 후에 느리게 재생한 것 같은데요?

- 여자 무사가 복면인을 칼로 내리칠 때도 이상합니다. 그 영상을 노트북에서 천천히 재생해보니까, 진짜 벤 것 맞는데요?

- 에이. 설마 진짜 칼로 벴겠습니까? 그러다 몇 센티미터만 실수해도 사람 잡아요. 당연히 CG겠지요.

- 그렇겠지요? 그래야 말이 되니까요.

- 우리나라 CG 기술 장난이 아니군요.

***

예고편을 본 손태민 감독이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인 씨! 이거 CG 아니지? 직접 한 거지?”

- 당연하잖아요. 촬영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CG를 입혀요?

“이런 좋은 건 나중에 나랑 찍어야지!”

- 저번에 많이 찍었잖아요.

“아니, 그때는 이렇게 대놓고 검객끼리 칼싸움은 안 했잖아. 와. 이거 너무 부럽다.

- 천만 감독님이 없어 보이게 왜 이러세요?

“나 다음 작품 진짜 기대 엄청 많이 하는 거 알지? 시나리오는 이미 다 썼지만 좀 고칠까? 액션 더 넣을까? 나도 칼 좀 쓸까? 아니다. 아예 다 뜯어고쳐서 총도 넣을까?

- 원래 하려던 대로 하세요. 괜히 제 말 듣고 시나리오 바꿨다가 망하면 저 원망하려고요?

“그치? 하여간 내 영화도 꼭 이렇게 멋지게 도와주는 거다?”

- 봐서요.

“아니, 그렇게 말하지 말…. 끊었네.”

손태민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30초짜리 홍보 영상을 다시 돌려보았다.

“역시 실전 액션은 나강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 어우. 아까워라. 저렇게 잘 나올 줄 알았으면 나도 지난번에 고속 카메라 쓸 걸.”

옆에서 새 조감독으로 내정된 사람이 말했다.

“감독님의 지난번 영화에 나강인 씨가 참여한 건 급하게 재촬영하던 때였잖아요. 당장 찍는 게 급하던 때인데 고속 카메라를 어디서 구해서 언제 찍고 편집해요.”

“그니까 처음부터 같이 했으면 얼마나 좋았어?”

“다음 영화에서 그러면 되죠.”

“그치?”

***

‘운명의 창’ 영화 첫 번째 예고편은 높은 퀄리티와 홍보팀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잠깐이지만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윤아름이 그녀의 너튜브 계정에 들어가 최근에 올린 인터뷰 동영상을 확인했다.

“응? 조회수가 왜 갑자기 이렇게 늘었어?”

그녀가 댓글을 확인했다.

- 그러니까 여기서 말한 그 영화가 ‘운명의 창’이라는 거죠?

- 보도자료 보면 출연진 이름에 공지현이 있습니다.

- 예고편의 그 액션을 연출한 무술감독이 ‘햇살 좋은 날’이랑 ‘푸른 하늘’의 액션도 맡았다던데요?

- 그럼 액션 연출은 잘하는 게 당연한데, 여기 올라온 인터뷰 보면 연기도 잘한다고 주장하네요?

- 공지현은 젊은 여배우 중에서는 연기파로 꼽히는 배우입니다. 그런 공지현을 가르칠 정도면 연기를 잘하는 게 맞죠.

- 그 무술감독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 연기도 잘하고 액션도 잘하는데 영화에는 안 나오는 거 보면, 얼굴이 영 아닌가?

- 그거네. 얼굴이 에러네.

윤아름은 그 댓글을 보고 당황했다.

“은하 언니가 이거 보면 난 죽었다.”

***

곽찬석의 신곡이 완성됐다. 곡은 하나이지만 영화에서는 다양하게 편곡된 버전을 쓰기로 했다. 노래 제목은 ‘운명의 창’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됐다.

곽찬석이 SAH 엔터 회의실에서 말했다.

“프프걸스는 영화의 다양한 상황에 맞춰 편곡한 모든 곡을 다 노래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이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하려면 여러분이 잘해야 합니다.”

프프걸스 네 명이 각오를 다졌다. 리더 소지영이 대표로 말했다.

“열심히 할게요!”

“그래요. 열심히 해요. 잘하는 건 내가 채찍질을 해서라도 하게 만들 할 테니까.”

“네? 네!”

곽천석이 계속 이야기했다.

“남자 목소리 피처링은 댕댕이 맡을 겁니다.”

막내 최지혜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그럼 댕댕 선생님도 남자 버전으로 완곡을 부르나요?”

“댕댕은 안 그래도 된다고 했습니다만, 나중에 남자용 편곡이 나오면 다시 이야기해볼 겁니다. 만약 남자 버전을 녹음하게 되면 여러분이 피처링을 맡아주면 좋겠는데….”

“할게요!”

***

영화는 순조롭게 촬영됐다. 프프걸스의 곡 연습도 순조로웠다.

나강인이 한밤중에 이연지의 외삼촌 손성현의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오늘은 권수연의 케이타이거 증후군 수술을 연습하는 날이다. 그들이 몰래 연습할 수 있는 수술실은 이 성형외과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이정호 외과 과장이 나강인에게 물었다.

“식사 전이면 같이 드시겠습니까?”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이 한정식 요릿집에서 도시락을 직접 사서 가져왔다.

그들은 음식을 이곳으로 배달시키지 않았다. 이 병원에 야간에 사람들이 모였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였다.

나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먹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었다. 수술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어서 다들 표정이 밝았다.

나강인이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요즘은 모든 게 순조롭다.”

- 우리 임무 조사만 지지부진합니다.

“우리만 빼고 일이 잘 풀린다.”

-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은 권수연의 현재 증상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더미를 사용해 연습했다. 오늘 연습은 두 번이 예정되어 있었다.

두 번째 연습 수술이 끝나자마자 권동진 사장이 스톱워치를 눌렀다. 그는 시간을 확인한 후에 소리를 질렀다.

“해냈다!”

권동진이 전자식 스톱워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외쳤다.

“해냈어요! 시간 안에 끝냈단 말입니다!”

더미를 사용한 이 수술에서 목표로 잡은 시간은 40분이다. 전자식 스톱워치의 숫자는 39분 59초에서 멈춰 있었다.

겨우 1초 차이지만 권 사장은 그래도 좋았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 딸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성형외과의 원장인 손성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겨우 1초 남았으면, 다음에 실수 한 번만 해도 시간이 오버할 텐데….”

나강인이 손성현을 슬쩍 건드려 입을 다물게 한 후에, 권동진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시간을 더 줄여야죠.”

“하하하. 물론이지!”

권동진도 겨우 1초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실전에서는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돌발상황은 수술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도 기뻤다. 지금 그에게는 희망이 눈에 보인다는 게 중요했다.

이정호가 말했다.

“환자의 상태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연습을 더 해서 시간을 더 줄여봅시다. 시간을 확실히 줄인 후에 수술해야 환자한테 좋으니까요.”

권동진이 급한 마음에 말했다.

“그럼 오늘 한 번 더….”

“아니요. 무리하면 역효과만 나는 거 그동안 보셨잖습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다음에 다시 시도하시죠.”

***

양용준은 팔성테크의 팀장이다. 그는 사원으로 입사한 후에 고속 승진해서 3년 만에 팀장 자리에 앉았다.

사장의 둘째 아들인 그가 실력으로 팀장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양용준은 그게 스트레스였다.

“내가 그래도 유학파인데 다들 날 무시하는 느낌이란 말이야.”

그는 대학을 미국에서 나왔다. 보통 사람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대학이지만 그래도 그게 양용준의 자부심이다.

그의 형은 회사에서 마주치면 잔소리를 많이 했다.

올해에는 그의 여동생까지 입사했다. 양용준과는 달리 신입사원인데도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의 앞에서 그를 대놓고 무시하는 직원은 없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이 뒤에서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양용준은 모든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려고 비장의 한 수를 준비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날 무시하던 놈들은 다 깜짝 놀랄 거다. 어디 두고 보자.”

고급 카페의 별실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양용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앤더슨.”

“미스터 양. 일찍 오셨군요.”

“생각보다 차가 안 막혀서 말이죠. 하하하.”

그들이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잡담처럼 나누었다. 잠시 후에 직원이 커피를 갖다 주었다.

직원이 나가자마자 양용준이 본론을 꺼냈다.

“그쪽 본사와 이야기하신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앤더슨이 서류가방을 열고 서류를 한 장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후에 그 서류를 양용준 쪽으로 밀었다.

“팔성테크와의 계약을 긍정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양용준이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크흐, 험험.”

그가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 한쪽에 ‘오메가테크’라는 회사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양용준이 그 서류를 보며 장담했다.

“우리 회사와 오메가테크 모두 만족하는 계약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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