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까마귀
팔성테크 팀장 양용준이 의자에 묶인 채로 이를 갈았다.
“이 새끼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이제 곧 경찰이 와서 너희들을 다 잡아갈 거야!”
앤더슨이 양용준의 보안카드를 흔들었다.
“그거야 여기 보안시스템이 정상 작동할 때의 이야기지. 그런데 네가 여기 보안장치를 직접 다 꺼줬잖아?”
“그, 그건 너한테 여기를 구경시키려고….”
외부인을 허가 없이 이 창고 시설에 들여보내려면 일단 보안시스템을 꺼야 했다.
양용준은 그의 권한으로 보안시스템을 정지시키고 앤더슨을 들여보냈다.
그런데 앤더슨은 보안실을 구경하러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있던 직원을 제압하고 모든 보안시스템을 먹통으로 만들었다.
그 직후에 그의 부하들이 이 시설로 쳐들어왔다.
앤더슨의 부하가 다가왔다.
“보스. 직원들을 모두 잡았습니다.”
“몇 놈이야?”
“일곱입니다.”
그의 부하는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간 여자는?”
“감마가 잡으러 갔습니다.”
그 부하의 본명이 감마인 건 아니다. 그들은 작전 중에는 별명을 사용했다.
양용준이 벌게진 얼굴로 몸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수연이는 상관없잖아!”
“새끼가 소리만 지르지 덤비지는 않네? 총이 무섭냐?”
“무섭지 그럼 안 무섭겠냐!”
“그렇게 흔들지 마라. 일부러 살살 묶었는데 몸에 상처 날라. 그리고 상관없는 그 여자를 이 일에 끌어들인 건 너야. 우리는 태양전지 같은 건 관심도 없는데, 네가 굳이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잖아.”
“그, 그건…. 도와주고 좀 잘해보려고….”
“그 여자는 너 때문에 말려든 거야.”
앤더슨의 다른 부하인 감마가 다가왔다.
“보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여자가 화장실에 없습니다.”
앤더슨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 눈치챈 건가? 그 여자가 이 바보보다는 똑똑하군. 통신 방해는?”
“이미 걸었습니다. 이 시설 안에 있는 모든 휴대폰은 통화권 이탈 상태입니다.”
“유선전화는?”
보안시스템을 담당하는 델타가 말했다.
“모두 차단했습니다.”
“그럼 넌 통제실로 가서 감시 카메라만 도로 켜고 그 여자를 찾아. 내부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 물건도 찾아.”
“물건 위치는 저놈이 알 것 같습니다.”
앤더슨이 양용준을 보며 비웃었다.
“아니. 저 바보 새끼는 그게 여기 있다는 것 자체를 몰라. 직접 뒤져.”
“예!”
***
나강인이 차를 몰고 가평으로 가면서 권동진과 통화했다.
“확인됐습니까?”
권동진이 다급히 말했다.
- 수연이의 휴대폰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를 문자로 보내줄게.
권수연의 스마트폰은 가족인 권동진이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 설정은 지난번에 권수연이 노트북 도둑을 피해 도망치다가 건물 뒤 공터에서 쓰러진 후에 일부러 추가했다. 대신에 권수연이 건강해지면 해제하기로 했다.
- 그런데 수연이 위치는 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 수연이에게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답답해서 그래.
“별일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서 확인해보고 연락하겠습니다.”
- 꼭 좀 부탁해.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오메가테크의 스칼렛이 국제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 우리 회사는 공식적으로 팔성테크와 어떠한 일도 추진한 적이 없어요.
“실무자가 따로 추진하는 경우는?”
- 접촉 단계라면 그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공식 절차를 밟은 건 없어요.
“알겠습니다.”
- 잠깐만요. 무슨 일인데요? 위험한 일이에요?
“아직 모릅니다.”
-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도 신세를 조금은 갚아야죠.
“필요해지면 그러죠.”
그는 스칼렛과의 통화도 끝냈다.
나강인은 현재 남양주를 지나가고 있다. 그 방향으로 계속 가면 가평이 나온다.
권동진이 보낸 주소가 문자로 들어왔다. 그가 지금 가는 곳의 주소였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주소 확인했습니다. 출발 전에 검색한 팔성테크의 가평 창고 근처입니다.
나강인은 처음부터 그 창고를 목표로 달리고 있었다. 권수연이 가평 창고라고 말한 후에 전화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역시 거기야.”
- 서두르십시오.
나강인이 차는 이미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엔진이 굉음을 쏟아냈다.
***
신은하는 콧노래를 부르며 느긋하게 차를 운전했다. 스피커에서는 부드러운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적지는 레스토랑 페넬로페였다.
“강인 오빠가 직접 요리해주는 것도 좋지만, 분위기 좋은 페넬로페에서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좋지. 후후후. 오늘 왜 보자고 그런 걸까?”
괜히 기대됐다.
“나한테 뭐 따로 할 말이 있나? 그런가? 그래서 나만 따로 불렀나?”
그녀는 차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거울을 확인했다.
“더 예쁘게 하고 나올걸.”
***
나강인은 차를 탄 채로 팔성테크의 가평 창고 앞 도로를 달렸다.
“저기는 그냥 봐도 일반 창고는 아니다.”
- 기지 담장에서 보안 감시 장치를 다수 발견했습니다.
“감시 수준은?”
- 이 시대 기준으로는 높은 레벨의 보안시스템입니다. 감지기와 CCTV에 사각이 없습니다. 침투 도중 발각될 위험이 큽니다.
“저 중에 한두 개를 고장 내면?”
- 보안시스템의 수준이 높습니다. 감지기나 카메라가 고장 나는 즉시 내부 통제 시스템이 알아챌 겁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다른 놈들도 저 담을 넘어서 침투하는 건 어렵겠지.”
- 경호대상자 권수연에게 문제가 생긴 장소는 저곳에 아닐 수도 있습니다.
높은 담장 때문에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뚫려 있는 곳은 정문 밖에 없었다.
나강인의 차가 정문 앞 도로를 지나가자마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정문 경비원이 권총을 장비하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사이드미러를 슬쩍 보았다.
“민간 창고에 무장 경비원? 저 사람이 지금 뭐 하는지 확인해.”
차는 이미 정문을 지나갔다. 경비원은 그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차의 룸미러와 사이드미러에 그대로 비쳤다.
AI 전지인이 홀로그램 영상을 허공에 띄웠다.
그 영상은 거울에 비친 경비원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조합한 것이다. 경비원이 나강인의 차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면서 무전으로 어딘가에 보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 음성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거리가 멀어 입 모양으로 대화를 추측하기도 어렵습니다.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앞을 그냥 지나갔다고 보고한 거겠지. 그런데 보통 경비원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보고하진 않아. 무기는 어떤 거야?”
AI 전지인이 차가 정문 앞을 지나갈 때 보았던 경비원의 영상을 허공에 새로 띄웠다.
- 옷 속에 반자동권총이 있습니다. 콤팩트 타입입니다.
옷 위에 권총의 윤곽선이 표시되었다. 권총 자체는 조금 작은데 앞부분은 정상보다 길었다.
- 글록 26으로 추정됩니다.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저곳이 특별한 보안시설이면 무장 청원경찰이 있을 수는 있는데, 그래도 소음기는 말이 안 되지. 저놈은 가짜다.”
- 저 시설이 적에게 점령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나강인은 정문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저기 침투하기 어렵다는 건, 보안시스템이 살아있을 때 이야기잖아.
- 그렇습니다.
“적이 저곳에 침투할 때는 보안시스템이 꺼져 있었을 거야. 아마 양용준이 껐겠지. 그럼 지금 저곳을 점령한 놈은 이미 끈 경보시스템을 도로 다 켰을까? 아니지. 기껏해야 CCTV만 켰겠지?”
- 그렇게 판단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창고에 왜 침입했겠어? 저기 보관된 것 중에 찾는 게 있어서야. 그걸 챙기려면 외부와 연결된 보안시스템은 계속 꺼놔야 해.”
- 침투 루트를 찾겠습니다. 창고 외부를 정찰해 주십시오.
나강인은 차는 숨겨두고 트렁크에서 접이식 산악자전거를 꺼냈다.
이 자전거는 그건 예전에 납치범들을 쫓아갈 때 썼던 것처럼 AI 전지인이 여러 부분을 개조한 것이다. 특히 구동계 부품이나 접는 부분의 강성은 산악 고속기동을 버틸 정도로 강화했다.
팔성테크의 창고 시설 근처에는 산이 있었다.
그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들어가 숲 사이를 이동하며 창고를 정찰했다. 산의 높이가 창고의 담장보다 높아서 내부 정찰이 가능했다.
- 외부를 순찰 중인 경비 병력은 2명입니다. 정문에는 1명만 있습니다.
“수연이나 양용준, 다른 직원은?”
-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른 무장 병력도 창고나 건물 안에 있다는 소리인데….”
담장 안에는 창고 네 개와 부속건물 하나가 있었다.
- CCTV 사각지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강행돌입 하시겠습니까?
“저놈들에게 총이 있잖아. 수연이의 상황도 모르면서 돌입할 수는 없어. 잘못하면 수연이가 총에 맞는다.”
- 침투 가능한 사각지대가 없습니다.
“없으면 하나 만들자.”
***
보안통제실의 모니터 화면 중 하나가 갑자기 휙 돌아가서 다른 방향을 비추었다. 통제실에 있던 용병이 재빨리 외쳤다.
“뭐야? 3시 방향 카메라 확인해!”
내부를 수색하던 용병 두 명이 그곳으로 달려가 보고했다.
- 카메라가 돌아갔습니다!
통제실 용병은 긴장했다.
“침입자냐?”
- 아닙니다. 까마귀가 카메라 바로 앞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이놈이 날다가 충돌한 것 같습니다. 어? 까마귀가 정신을 차리고 날아갔습니다.
“어이가 없네. 카메라는 내가 돌려놓을 테니까 너희들은 그 여자나 계속 찾아.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다.
사람이 까마귀에게 카메라 방향을 돌려놓으라고 시킬 수는 없다. 그들은 까마귀를 의심하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까마귀가 살아서 날아갔습니다.
“내가 안 죽게 잘 던졌지.”
- 제가 힘 조절을 맡았습니다.
나강인이 산에서 까마귀를 산 채로 잡고 살짝 기절시킨 후에, 창고 담장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던졌다. 기절한 까마귀는 CCTV를 때리고 창고 안쪽에 떨어졌다.
카메라가 옆으로 돌아간 후에 경비원이 그곳까지 달려오는 데 10초가 걸렸다. 그 10초 동안 사각지대가 생겼다.
나강인이 담장을 넘어 안쪽으로 잠입하는 데는 10초면 충분했다. 경비원들은 그가 잠입한 후에 그곳에 나타나 땅에 떨어진 까마귀를 구경했다.
나강인이 안쪽으로 움직였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2번 창고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그쪽을 슬쩍 확인했다.
- 건방진 똥덩어리 양용준을 발견했습니다.
“저놈이 수연이를 데리고 나갔는데, 왜 저기 묶여 있냐? 한패가 아닌가?”
- 적과 내통했다가 내분이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적과 내통했다가 배신당했을 수 있습니다.
“넌 내통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냐?”
- 멍청하니까 속았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가 더 필요해. 뭐라고 떠드는 거야?”
- 목소리를 증폭하려면 좀 더 접근하셔야 합니다. 안전한 접근 경로를 제안합니다.
나강인이 2번 창고로 접근했다. 그가 창고의 벽 뒤에 선 후에야 창문을 통해 안쪽 대화가 들렸다.
용병이 앤더슨에게 보고했다.
“4번 창고가 잠겼습니다.”
“보안카드는?”
“제압한 직원들의 카드를 다 사용했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이 바보의 보안카드도 찍어봤어?”
“확인했습니다. 디지털 잠금장치는 풀리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유가 뭐야?”
“여기 직원들 말로는, 안에서 잠그면 그럴 수 있답니다.”
앤더슨이 인상을 살짝 쓰며 물었다.
“도망친 여자는 찾았어?”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여자가 4번 창고에 들어가서 안에서 잠갔겠지. 확실히 여기 이 바보보다는 똑똑한 여자야.”
양용준이 킬킬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 새끼들아. 4번 창고는 특수 시설이라 금고 수준으로 튼튼하다고. 여기 있는 지게차로 받아도 못 열어.”
앤더슨이 물었다.
“그럼 열 방법은?”
“내가 그걸 왜 가르쳐….”
옆에 있던 용병이 양용준의 이마에 권총을 겨누었다.
양용준이 얼른 설명했다.
“그 창고를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는 끼워서 돌리는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어. 그런데 그 열쇠는 여기 없어. 본사에 있다고.”
앤더슨이 부하를 돌아보았다. 부하가 대답했다.
“잡아놓은 놈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럼 사실이겠네.”
양용준이 눈치를 살살 보며 말했다.
“앤더슨. 어차피 그 문은 못 열어. 그러니까 포기하고 그냥 가는 게 어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여기서 끝내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어. 우리도 이 시설이 털린 걸 자랑할 처지는 아니라고.”
앤더슨이 부하에게 지시했다.
“차에 가서 장비 가져와. 4번 창고가 특수 시설이면, 우리 물건이 거기 있을 거다.”
양용준이 급히 물었다.
“자, 잠깐. 장비라니?”
“금고를 직접 뚫는 경우를 대비 안 했겠냐? 저 정도는 문에 구멍 몇 개만 뚫어주면 열린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지인아. 저 똥덩어리는 일단 버린다.”
- 물론입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인물 중 최우선 구출 대상은 이라미드 태양전지 최초 개발자인 권수연입니다.
나강인이 권수연부터 구출하려는 건 그래서가 아니다.
“통화했을 때 수연이 숨소리가 나빴어. 그게 마음에 걸려. 4번 창고에 수연이가 있는지부터 확인하자.”
- 4번 창고 출입문까지 안전한 이동 경로를 찾았습니다. 적이 도착하기 전에 창고의 문을 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