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76화 (176/411)

176. 신고

용병이 고개를 아주 천천히 들었다.

나강인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왼손의 권총은 탄창이 비어 슬라이드가 후퇴 고정되어 있지만, 오른손의 권총은 멀쩡해 보였다.

용병이 눈알을 굴렸다. 그도 손에 권총을 쥐고 있어서, 위로 들어 올리면서 방아쇠만 당기면 총탄이 발사된다.

나강인이 말했다.

“자신 있으면 해보던가.”

용병이 다시 눈알을 굴렸다. 나강인은 이미 혼자서 여섯 명을 잡았다. 그런 사람보다 더 빨리 쏠 자신이 없었다.

‘이건 함정이다! 내가 쏘려고 하면 날 쏴버릴 거야.’

용병이 권총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은 후에, 두 손을 위로 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항복하겠습니다.”

“안 걸려드네.”

“히익! 살려주십쇼!”

나강인은 용병을 발로 밀어낸 후에 바닥에 떨어진 권총에서 탄창을 꺼냈다. 약실에 들어 있는 총알까지 꺼내 탄창에 채운 후에 왼손 권총에 삽탄하며 물었다.

“몇 놈 남았냐?”

용병이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며, 몇 명이나 처리하셨….”

“너 포함해서 일곱.”

“두, 둘 남았습니다.”

“거짓말이면 넌 교전 중에 죽은 거로 밝혀질 거야. 빗나간 총알이 하필 심장에 맞을 거거든.”

용병이 즉시 말을 바꾸었다.

“셋 남았습니다! 저희는 모두 열 명입니다! 보스가 팔성테크의 둘째 아들을 속여서 여기 들어오면, 한 몫 단단히 잡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보스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술술 털어놓는 놈을 더 조사하면 알아낼 게 많지만, 지금은 나머지 놈들을 잡는 게 더 급하다.

“나중에 경찰 취조실에서도 지금처럼 잘 말해라. 그래야 두목이 다 뒤집어쓰지.”

“예? 나중….”

나강인이 용병의 턱을 툭 걷어차 기절시켰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여전히 통화권 이탈 상태였다.

“통신 방해장치가 아직도 켜져 있네.”

***

4번 창고에서 농성 중인 직원들이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말했다.

“총소리가 엄청 나는데?”

소형 소음기가 총소리를 많이 줄여줬지만, 아예 안 들릴 정도로 없애지는 못했다. 적당한 크기의 총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 요원님 말이야. 괜찮을까?”

“싸우는 소리가 계속 난다는 건 괜찮다는 뜻 아니야? 총에 맞았으면 총소리도 안 날 테니까.”

“그렇겠지?”

양용준은 옆에서 스마트폰의 화면을 계속 확인했다.

“전화는 왜 안 터지는 거야? 빨리 신고해야 하는데!”

***

나강인이 적을 찾아 걸어가며 물었다.

“셋 중 하나는 앤더슨인데, 다른 두 놈도 같이 있을까?”

- 적은 이미 병력을 분산했다가 각개격파 당했습니다. 남은 화력을 집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몸을 보여주면서 돌아다니는데도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그럴 거 같긴 해. 예상 위치는?”

- 2번 창고와 보안통제실이 유력합니다.

나강인이 먼저 2번 창고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요원님이 잘못 찍으셨습니다.

“야. 일부러 그런 거야. 이제 보안실 하나만 확실히 경계하면 되잖아.”

- 저는 자연로보틱스의 기술과 자원을 총동원해 만든 지구연합군 전투지원 AI입니다. 그런 어설픈 거짓말에 설마 제가 속겠습니까?

“너 나랑 비슷한 지적 수준이라며. 내가 바보면 너도 바보네?”

- 다시 생각해보니 선택지를 줄이려고 일부러 2번 창고를 먼저 확인하신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치?”

- 보안통제실 내부 상황을 조사 중입니다. 내부에서 소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적이 요원님의 진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려면 통제실을 점령해야 하니까, 저기에 함정을 파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 적이 흘리는 소음을 수집해 통제실 내부를 분석했습니다. 적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벽 너머에 두 사람의 모습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나타났다.

“응? 둘? 남은 놈은 셋이라며?”

- 적이 소음을 발생하지 않으면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다른 곳….”

- 좌측에 적!

나강인이 재빨리 왼쪽을 돌아보았다.

그쪽에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승합차 옆에는 금고를 부술 수 있는 대형 드릴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드릴 옆에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사람이 나타났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정면에서는 회피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 적의 목적을 생각하면, 저 차에 폭발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격하면 폭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허공에 피해야 할 방향이 표시되었다. 보안통제실 안쪽이었다.

- 안쪽으로 피하십시오!

보안통제실 문은 활짝 열려 있어서 들어가는 건 쉽다. 그런데 그 안에는 적 두 명이 매복해 있다.

나강인을 유인하려고 문을 열어놓은 건 알지만, 지금 당장은 피할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나강인이 통제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기관단총의 연발 사격이 그가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갔다.

나강인은 통제실로 뛰어들면서 두 팔을 좌우로 펼쳐 사격했다. 조준사격이 아니라 적이 있는 방향을 향해 화력을 쏟아내는 제압사격이었다.

적은 그가 뛰어들기만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총알 세례를 받았다.

앤더슨은 급히 엄폐물 뒤로 몸을 숙였다.

반대편에 있던 용병은 피하지 않고 나강인을 향해 사격했다. 하지만 몸을 움츠리며 쏘는 총이 제대로 조준됐을 리 없다. 게다가 나강인이 너무 빨랐다. 총알이 빗나갔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벽을 박차 몸을 뒤집으며 적을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 몇 발이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벽에 퍽퍽 박히다가, 한 발이 적의 오른팔을 뚫었다.

“으아악!”

나강인은 왼손의 권총은 엄폐물 뒤의 앤더슨을 향해 계속 사격하면서 오른손의 권총으로 적을 향해 두 발 더 발사했다. 총탄이 적의 양쪽 어깨에 꽂혔다.

이제 통제실 안에는 앤더슨 한 명만 남아있었다.

앤더슨이 엄폐물 뒤에서 권총만 내민 채로 앞쪽을 향해 미친 듯이 사격했다.

“죽어! 죽어!”

갑자기 앤더슨의 뒤통수에 뜨거운 총구가 닿았다.

“앗뜨!”

놀라 소리를 지르던 앤더슨의 몸이 굳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보였다.

“어, 어떻게 내 뒤에….”

나강인은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천장 쪽으로 점프해 앤더슨의 뒤를 잡았다. 앤더슨은 몸을 숙이고 있느라 그걸 못 보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분신술.”

“허억! 서, 설마 초능력….”

“그걸 믿냐?”

앤더슨이 눈알을 굴렸다.

용병이 목숨을 내걸고 싸운다고 해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건 아니다. 가진 게 많은 놈은 목숨을 더 아꼈다.

앤더슨이 권총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항복한다.”

“밖에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놈은 어쩔 거냐?”

“하, 항복하라고 말할까?”

“아니다. 네가 시킨다고 그놈이 항복할 리 없지. 혼자 도망친다면 모를까.”

“그래도 내가 잘 이야기해보면….”

“너 말이야. 대전차미사일로 뭘 하려고 했냐?”

“그, 그게….”

뜨거운 총구가 다시 뒤통수에 닿았다.

“너 말고도 물어볼 놈 많아. 알잖아.”

앤더슨의 눈에 총탄을 세 발이나 맞고 쓰러진 부하가 보였다. 그가 얼른 대답했다.

“그 미사일을 구해달라는 의뢰인이 있었다! 그놈이 몸통이다!”

“탄두에는 화약이 없던데.”

“나도 목적까지 들은 건 아니지만, 한국군의 신형 대전차미사일의 유도 기술과 센서 기술을 분석하려는 거라면 탄두는 안 터져도 되니까….”

나강인이 앤더슨의 권총에서 탄창을 꺼낸 후에 남은 총알을 다른 권총의 탄창에 옮겨 넣었다.

“4번 창고는 터트리고, 여기 원래 있던 사람들은 불을 끄러 모였다가 폭발에 휘말리는 사고사로 위장하려고 했지? 그럼 그때 쓸 가짜 미사일 파편은 저 승합차에 있냐?”

앤더슨은 화들짝 놀랐다.

“그,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믿을 소리를 해라.”

나강인은 총을 세 발이나 맞은 놈의 권총에서도 총알을 빼내 탄창을 마저 채웠다.

- 우측 권총에 8발, 좌측 권총에 7발의 탄약을 확보했습니다.

문제는 마지막 놈이다.

“야. 앤더슨. 저 차에 있는 폭약이 터지면 여기는 안전할까?”

“그, 글쎄…. 벽만 안 무너지면….”

“네가 통제실 밖에 있을 때 터지면 죽을 수도 있겠지?”

“어? 아니, 내가 왜 밖에….”

나강인이 앤더슨을 문앞으로 끌고 가서 밖으로 확 밀었다. 앤더슨은 보안실 문밖으로 밀려 나갔다.

“어? 어?”

갑자기 앤더슨을 향해 총알이 날아갔다. 앤더슨이 두 손을 위로 번쩍 들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쏘지 마! 나다! 나라고!”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나강인이 먼저 예상 위치로 권총을 겨눈 후에 문밖으로 툭 튀어나갔다. 적이 몸을 일으킨 상태로 앤더슨을 쐈다가 당황해서 기관단총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강인이 쌍권총의 방아쇠를 동시에 당겼다. 총알 두 발이 적의 양쪽 어깨를 동시에 꿰뚫었다.

“으아악!”

기관단총을 든 적이 비명과 함께 나자빠졌다.

앤더슨이 겁먹은 얼굴로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이, 이제 살려주는….”

나강인이 앤더슨의 턱을 한 대 갈겨 기절시키고 승합차로 걸어갔다.

마지막 적은 승합차 옆에 쓰러진 채로 비명을 질러댔다.

나강인이 기관단총을 챙긴 후에 차 내부를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몇 가지 물건에 반투명한 윤곽선을 그리며 설명했다.

- 신형 대전차미사일과 유사한 원통을 발견했습니다. 폭발물과 로켓 연료도 발견했습니다.

“진짜 터트리려고 했네.”

- 확인된 모든 적을 제거했습니다.

통신 방해장치는 보안실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나강인이 그 장치의 스위치를 껐다.

잠시 후에 휴대폰 통화가 가능해졌다.

“일단 순기 씨에게….”

그는 총권도 수강생인 경찰 요원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아니다. 이런 일은 전문 기관에 맡기자.”

그는 합동수사본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아. 선생님이 먼저 전화를 주신 건 처음입니다.

“그러게요.”

합수부 형사의 목소리는 밝았다.

- 항상 사건 문제로 제가 전화를 드렸는데, 이렇게 사적인 전화를 주시니까 마음도 편하고 참 좋습니다. 하하하.

“어…. 그게 말이죠.”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설마?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어차피 합수부가 맡을 사건인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 하아. 이젠 아예 다이렉트로 저희 쪽에….

“경찰 쪽에 신고하고 절차 밟게 할까요?”

-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가 받을 일이라면서요. 그런데 어떤 사건입니까?

“가평에 팔성테크의 창고가 있습니다. 여길 나쁜 놈들이 습격하길래 제가 잡았습니다.”

설명이 너무 간단했다. 형사의 목소리가 다시 밝아졌다.

- 그러니까 창고 강도군요? 혹시 그놈들을 다 잡으셨습니까?

“여기 있는 놈들은요. 일당이 외부에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그거야 그 강도들을 조사하면 다 나오겠죠. 알겠습니다. 관할서에 협조 요청하고, 저도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여기 왔다가 이번 일에 휘말렸는데 말이죠.”

- 아하! 아는 사람 때문에 거기 가신 거군요.

“이 사람이 다친 건 아닌데 컨디션이 안 좋습니다. 제가 바로 병원에 데려가겠습니다.”

- 물론 그러셔야죠.

나강인이 이곳의 주소를 불러주고 전화를 끊은 후에 말했다.

“이제 수연이를 여기서 빼내자.”

그는 4번 창고로 걸어갔다. 창고를 지키고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으아아! 이겼다!”

“와아! 우리나라 특수부대 실력 진짜 장난 아닙니다.”

“특수부대가 아니라 정보기관 요원 아닐까?”

“엇! 그러면 소속을 물어보면 안 되겠네?”

나강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다섯 놈을 더 잡았는데, 한곳에 묶어놓고 감시하시죠.”

창고 관리소장이 장담했다.

“맡겨주십쇼!”

“그리고 보안통제실 옆 승합차에는 폭약과 인화물질이 많으니까 조심하시고요.”

“예?”

“그 차를 총으로 쏘면 터진다고요.”

관리소장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차에는 손도 안 대겠습니다.”

나강인은 뒷일은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창고로 들어갔다.

권수연은 문 옆에 앉아 있었다.

“수연아. 가자.”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나강인이 그녀의 등과 다리에 손을 넣고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었다.

“그럼 내 차까지만 이렇게 가자.”

권수연이 얼른 나강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응.”

양용준은 휴대폰 통화가 가능해지자마자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그는 다른 곳에도 연락하려다가 나강인과 권수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야! 네가 왜 수연이를 안아!”

나강인이 양용준을 쓱 돌아보았다.

“병원에 데려가려고.”

“내가 데려갈 거야!”

권수연이 양용준을 향해 말했다.

“야. 떨어져 있어.”

“어? 어?”

“넌 날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무슨 낯짝이 있어서 나서니?”

“아, 아니. 나도 앤더슨한테 속아서 그런 거니까….”

“알았으니까 꺼지세요.”

권수연이 나강인에게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인아. 가자.”

뒤에 남은 양용준이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아닌데….”

***

나강인이 차를 타고 그곳을 떠나자마자 양용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찰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경찰 두 명이 내렸다.

“여기 창고에 무슨 강도가 들었다는 거야?”

“총격전도 엄청 했다잖아요.”

“그런 신고가 다른 데서는 하나도 안 들어왔는데 총격전이 말이 돼?”

소음기 때문에 총소리가 그리 멀리 퍼지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그 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늘이 만우절도 아닌데 이런 허위신고까지 출동해야 하나.”

“그러게 말입니다.”

박 경장이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그냥 간단하게 확인만 하고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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