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난장판
경찰 두 명이 순찰차를 팔성테크 가평 창고 시설 앞쪽에 세워놓고 정문으로 걸어갔다. 정문에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경비원은 보이지 않았다.
박 경장이 초소 옆으로 걸어가 안쪽을 쓱 보며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어?”
초소는 텅 비어 있었다.
“어디 갔나?”
원래 이곳에 있던 경비원은 권총으로 무장한 용병들이 쳐들어올 때 붙잡혀 안쪽으로 끌려갔다.
경비원 옷을 빼앗아 입고 대신 서 있던 용병은 나강인이 걷어차서 잡았다.
그 후에는 아까 붙잡혔던 경비원이 동료 직원들과 같이 돌아와 기절한 용병을 묶은 후에 안쪽으로 끌고 갔다.
그래서 지금 이 초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총에 맞아 망가진 권총도 직원들이 이미 치웠다.
박 경장은 난감했다.
“이거 참. 어쩐다….”
옆에서 순경이 물었다.
“그냥 갈까요?”
“이 안에서 싸움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왔는데 어떻게 그냥 가냐? 들어가서 사람을 찾아보자고.”
양용준이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신고했지만 두 사람은 믿지 않았다.
그런 전투가 실제로 있었으면 사방에서 신고가 빗발쳐야 하는데, 신고한 사람이 양용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양용준은 자신이 지금 이 창고 안쪽에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 신고라도 확인은 해야 했다.
두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박 경장이 창고 모퉁이를 돌면서 말했다.
“하여간 장난전화로 허위신고하는 놈들은 최소한 벌금이라도 먹여야….”
같이 걸어가던 순경이 박 경장의 팔을 작았다.
“자, 잠깐만요.”
“왜?”
“저, 저기….”
박 경장은 순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 어? 어!”
창고 앞마당에 열 명의 용병이 묶인 채로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핏자국도 많았다.
“초, 총상?”
초소에 있던 용병은 턱을 맞고 기절해서 피는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대부분 총에 맞았다.
“초, 총도 있습니다!”
쓰러져 있는 열 명의 주변에는 권총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사람도 한 명 보였다.
두 경찰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무장공비?”
“테러리스트 같습니다!”
그들이 허리에 손을 댔지만 권총은 없었다. 순찰차로 돌아다니던 도중에 연락을 받고 바로 온 거라서, 권총은 처음부터 가져오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는 삼단봉과 테이저건뿐이다.
“여, 엿 됐다.”
“어, 어쩌죠?”
“저놈들이 우리를 보기 전에 빠져나가야….”
기관단총을 든 직원이 고개를 돌리다 그들을 발견했다.
“어? 경찰이다!”
두 사람의 얼굴이 이젠 아예 밀가루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하얗게 질렸다.
“테이저건이라도 뽑을까요?”
“그러다 죽어. 일단 항복하고 지원을 기다리…”
옆쪽에서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박 경장님!”
박 경장이 고개를 휙 돌렸다.
창고 관리소장이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박 경장이 더듬거렸다.
“소, 소장님? 소장님도 잡혔습니까?”
“예? 그게 무슨….”
관리소장은 권총을 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야. 그렇게 경찰 앞에서 총 들고 있으면 너희들 잡혀간다. 빨리 총 내려.”
관리소장이 박 경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리 직원들하고 양 팀장님이 혹시 남은 놈이 있을지 몰라서 총을 들고 있던 겁니다. 정당방위니까 이 정도는 봐주시죠.”
“지, 직원들이요?”
박 경장이 현장을 다시 보았다.
권총을 든 사람들은 모두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그중 한 명이 아예 권총에서 탄창을 분리하며 말했다.
“다들 탄창 빼. 경찰에 총 반납하다가 오발 사고 나면 큰일 나.”
“그냥 안전장치만 걸어도 되잖아.”
박 경장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조금 눈치챘다.
“저분들이 여기 직원이시면… 저 총 맞은 사람들은 누굽니까?”
관리소장이 인상을 구겼다.
“아. 저놈들이요? 진짜 나쁜 놈들입니다. 오늘 우리 창고로 저놈들이 쳐들어왔어요.”
“아니, 그렇다고 사람들을 저렇게 총으로 막….”
지금 총을 쥐고 있는 건 창고 직원들이다. 박 경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총이 어디서 나셨습니까? 그것도 저렇게 많이….”
“저거 다 저놈들이 들고 온 걸 빼앗은 겁니다.”
“네? 그러니까 총까지 들고 쳐들어온 놈들을…. 그러니까 저 열 놈을 여기 계신 분들이 제압하고 총도 빼앗았다고요?”
관리소장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저희가 그런 건 아니고요. 특수부대 요원님이 오셔서 저놈들을 싹 다 잡으셨죠.”
권총에서 탄창을 분리한 직원이 다가오며 참견했다.
“소장님. 제가 볼 때는 군인이 아니라 정보기관 요원이라니까요. 전문용어로 스파이.”
“야! 넌 생명의 은인한테 간첩이라니!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 누가 간첩이래요? 스파이가 그런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니잖아요.”
“간첩이 스파이 맞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스파이를 우리 말로 뭐라고 하죠?”
“간첩.”
“그건 어감이 너무 나쁘니까…. 아! 첩보원! 첩보원이라고 하셔야죠.”
박 경장은 두 사람이 떠드는 걸 들으며 마음을 좀 놓았다.
“휴우. 그러니까 어떤 특수요원이 여기서 저 사람들을 다 쐈….”
갑자기 박 경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전화부터 받았다.
“예. 팀장님.”
- 야. 합동수사본부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 그 창고 시설에 우연히 들렀던 정부 요원이 거기서 강도들을 잡았다는데 말이야. 거기 가서 확인했어?
“강도들이요?”
박 경장이 앤더슨 일당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잡긴 잡았는데요. 그게….”
- 왜? 강도 중에 다친 놈이 있어?
“총에 맞았는데요?”
팀장은 당황했다.
- 어? 뭐?
“그것도 두 발씩은 맞았는데요? 와. 아무리 요원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어깨만 정확히 쏘나. 난 표적지 안에 들어가게 쏘는 것도 쉽지 않던데.”
- 야!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총기 사고야? 진짜 거기서 총을 쏜 거야? 그 요원 소속이 어딘지 몰라도 너무 막 나간 거 아냐?
“그게….”
- 총 맞은 사람은 누구야? 설마 직원은 아니지?
“강도인데요.”
- 휴우. 그나마 다행….
“근데 총에 맞은 놈이 하나가 아니라요.”
- 그럼 몇 명인데?
“대충 열 놈 가까이….”
- 으헉!
합동수사본부 형사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사건 규모가 예상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 보이는 목적지 근처에 경찰차의 경광등이 너무 많이 보였다.
“어…. 이거 단순 창고 강도 사건 아녔나? 느낌이 싸해지는데?”
합수부에서 전화도 걸려왔다.
- 창고 강도 사건이라면서요!
“어…. 아닙니까?”
- 우리가 협조 요청한 경찰서에서 확인 요청을 자꾸 하는데, 우리도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요!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곧 현장에 도착하니까, 직접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합수부 형사는 서둘러 현장으로 갔다.
그는 창고 시설 안쪽으로 가서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아이고. 나강인 선생님아. 그냥 강도 몇 놈 잡은 거라면서요.”
한쪽에서 승합차를 조사하던 경찰이 소리를 질렀다.
“승합차에서 폭발물을 확인했습니다! 양이 많습니다!”
“야! 뒤로 빠져! 폭발물 처리반 올 때까지 그 차는 손도 대지 마!”
4번 창고를 조사하던 쪽에서도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미사일이다!”
“거기 미사일이 왜 나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최첨단 유도 미사일 같습니다!”
“후퇴! 후퇴! 4번 창고에서도 아무것도 손대지 마!”
합수부 형사가 그 난장판 한복판에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후우우. 이게 어떻게 그냥 강도 사건이냐고. 완전히 전쟁터지.”
***
신은하가 레스토랑 페넬로페에서 나강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못 온다고?”
- 미안. 상황이 좀 급해졌다.
나강인은 권수연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중이다.
신은하가 급히 물었다.
“잠깐. 안 다쳤지?”
- 그럴만한 사건은 아니야.
“하긴. 강인 오빠가 다치려면 한 열 명쯤은 몰려와서 총이라도 쏴대야겠지.”
- 어…. 그렇지?
앤더슨 패거리가 딱 그 정도 규모였다.
“그런데 오늘 여기 예약한 건 어떻게 해?”
- 취소하면 오 셰프님한테 미안하니까 친구라도 불러.
“쳇.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여기 결재는? 예약할 때 미리 해놨나?”
- 내가 지금 거기 없으니까, 네 친구를 부르면 네가 사야지?
신은하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야 이….”
- 쏘리.
나강인이 전화를 재빨리 끊었다.
그녀가 휴대폰을 탁자 위에 툭 놓았다.
“아이 씨. 오늘 좋은 일이라도 있나 했는데.”
그녀는 나강인이 오늘 페넬로페에서 밥을 먹자고 해서 데이트 신청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혼자서 밥을 먹게 생겼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실력에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지.”
그녀가 손가락 깍지를 끼고 턱을 괴며 창밖을 보았다.
“오늘 기대했는데….”
***
나강인은 권수연을 이정호가 외과 과장으로 있는 종합병원으로 데려갔다.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이 미리 병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권수연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갔다.
“수연아!”
권수연이 차에서 내리며 사과했다.
“아빠. 미안. 놀랐지?”
“아니다. 괜찮으니 됐다. 그리고….”
권동진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고, 고맙다.”
권수연이 한 손을 차에 댄 채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빠는 묘하게 강인이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
“어? 아, 아니야. 서먹해서 그래. 서먹해서.”
외과 과장 이정호가 다가왔다.
“일단 검사부터 받읍시다. 이쪽으로.”
권수연은 이제 걸을 수는 있다. 이정호가 그녀를 데려갔다.
권동진이 그녀를 따라가기 전에 나강인에게 인사했다.
“고마워. 수연이를 구해줘서.”
“딱히 위험하진 않았습니다.”
권동진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니 다행이네.”
***
합동수사본부장이 탄식했다.
“총기 무장강도가 열 놈에, 총격전에, 폭발물과 인화물질이 대량으로 탑재된 차량에, 최신형 대전차미사일까지 있어요?”
“예.”
“후우. 나강인은 왜 이런 사건에 자꾸 휘말린답니까?”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합수부장도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다.
다른 간부가 물었다.
“아니, 대전차미사일이 왜 군대 무기고가 아니라 거기 있었답니까?”
또 다른 간부가 대답했다.
“팔성테크는 신형 대전차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업체 중 한 곳입니다. 팔성테크에서 연구용으로 받았다가,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회사 창고에 보관했던 거라고 합니다.”
“아니, 미사일을 그냥 창고에 보관해요?”
“실제 탄두는 없는 테스트용 미사일이고, 그 창고가 특수 시설이라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나 봅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요!”
설명하던 간부가 발끈했다.
“왜 나한테 화내십니까? 이유를 물어보길래 팔성테크가 그렇게 해명했다고 알려주기만 한 건데!”
“아니, 제가 화를 낸 건 아니고…. 답답해서 그럽니다. 우리는 또 뒤처리만 하게 생겼으니까요.”
“아.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나강인도 참 너무하지. 화학무기 보석강도단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같이 일했으면 좀 좋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나쁜 놈들이 있으면 직접 잡을 게 아니라 신고를 해야지 말이야.”
경찰 간부가 대신 변명했다.
“나강인은 현장이 그런 상황인지 모른 상태에서, 전화가 갑자기 끊긴 지인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그놈들과 마주쳤답니다. 그러면 나강인의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리고 나강인이 아니었으면 오늘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겁니다. 물론 연구 중인 미사일도 사라졌을 거고요.”
“압니다. 아는데요. 아오. 아니까 따지지도 못하고, 답답해서 그럽니다!”
***
합수부 형사는 현장에 남아 조사에 참여했다.
현장은 관할 경찰서와 지방경찰청이 조사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먼저 받은 건 합동수사본부라서, 합수부 형사도 현장 조사에 같이 참여했다.
합수부 형사가 현장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진짜 화끈하게 하셨네.”
그의 팀원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러게요. 진짜 화끈하게 쓸어버렸는데요? 도대체 누굽니까?”
합수부에 소속된 사람들은 그곳 일만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원래 부서의 일을 그대로 하면서 합수부 일도 추가로 한다. 그래서 다들 일이 많았다.
합수부 형사도 소속 팀은 따로 있다. 그는 오늘 일은 혼자서는 무리다 싶어서 같은 팀의 팀원을 불렀다.
“누구겠냐?”
“예? 아니, 그럼 또….”
“어.”
“고생하십쇼.”
“이거 왜 이래? 이번 일 사이즈를 봐라. 나만 고생할 거면 널 왜 불렀겠냐? 혼자 커버가 안 되니까 불렀지.”
“너무하시네. 전 합수부도 아닌데.”
“다행인 줄 알아. 나처럼 정식으로 차출되지는 않았잖아.”
그들은 4번 창고도 확인했다.
“어우. 형님. 진짜 대전차미사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건 군대에서 못 본 디자인인데요?”
“국산 신형 미사일이다. 국과연과 국내 업체들이 공동으로 개발 중이야. 아직 양산 전이지만 지금 저 상태로도 발사는 된다더라. 놈들의 목표가 저 미사일이야.”
“저걸 저렇게 놔둬도 됩니까?”
“무장 병력이 지키고 있잖아. 회수팀도 곧 올 거다.”
대전차미사일의 옆에는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형사가 미사일을 보며 물었다.
“저걸 그놈들에게 빼앗겼으면 상황이 심각했겠죠?”
“말이라고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