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78화 (178/411)

178. 늦은 저녁밥

팔성테크의 가평 창고 시설에 무장괴한들이 침입할 수 있었던 건, 양용준이 보안시스템을 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용준은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조사를 받았다. 그는 그 지역 형사들에게 먼저 조사받고 다시 합수부 형사와 만났다.

양용준이 큰소리로 주장했다.

“그 테러리스트 새끼들하고 난 아무 상관 없다니까요? 나도 속은 겁니다!”

합수부 형사가 물었다.

“그놈들이 테러리스트인 건 확실합니까?”

“예? 그런 놈들은 다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기술을 빼돌리는 게 목적일 수도 있잖습니까?”

“어? 그거야 그렇죠. 기술이 목적이 아니면 뭐하러 탄두도 없는 미사일을 훔칩니까?”

“역시 산업스파이인가? 그러면 말이죠.”

합수부 형사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그놈들이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라도 차 이사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양용준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예? 우리 회사 이사님 중에 차 씨가 있습니까? 없을 텐데요?”

“어….”

형사가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사장 아들이라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 진짜 그냥 이용만 당했나?’

***

나강인은 권수연이 입원한 병원에서 나갔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은 데다가 합수부는 범인들을 조사하느라 바빴다.

그는 어떻게 그 현장에 갔는지는 일단 전화로 설명했다. 그런 후에 합수부 형사와 내일 따로 만나 조사에 협조하기로 했다.

나강인이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집 근처까지 갔을 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공원에서 신은하를 발견했습니다.

신은하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 본가도 이 동네에 있다. 그녀는 요즘은 주로 본가에서 지낸다.

그녀가 동네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귀에 대고 투덜댔다.

“오늘 뭐 좋은 일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바람맞았어. 강인 오빠 진짜 너무한 거 아냐?”

고등학생 이연지가 맞장구를 쳤다.

- 아저씨가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죠.

“그치.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사람이 가끔 보면 찬바람이 쌩쌩 분다니까?”

나강인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내 욕하고 있었냐?”

신은하는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왜 여기 있어?”

“집에 가다가 네가 보여서.”

나강인의 뒤쪽에 차가 보였다.

공원 가로등이 켜져 있지만, 지금은 밤이고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차 타고 지나가면서 날 어떻게 알아봤대?”

“그냥 네가 눈에 들어오더라.”

“그, 그래.”

그녀의 기분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다 풀리려면 아직 멀었다. 그녀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바쁘신 분이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쿨쿨 자지 왜 차를 세웠대? 내가 걱정되기는 하나 봐?”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밥은 먹었냐?”

“먹었겠어? 그렇게 매섭게 바람을 맞았는데?”

“늦었지만 밥 먹으러 갈까?”

“뭐야? 아직 밥도 안 먹었어?”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오늘 가평에 가서 무장강도 열 명을 잡았다. 그 후에 권수연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상태를 보았다. 합수부 형사와 전화통화도 꽤 했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신은하는 기분이 조금 더 풀렸다. 나강인이 혼자 밥 먹고 왔다고 하면 마음이 상할 뻔했다.

“어디로 가게? 저 앞에 분식집 가나? 아니면 저 옆에 돈까스?”

“아니. 원래 가려던 데 가야지.”

“응?”

그들이 오늘 만나려고 했던 곳은 레스토랑 페넬로페다.

신은하가 물었다.

“지금 가면 영업 거의 끝날 시간 아냐?”

“일단 가자.”

신은하는 조금 전까지 이연지와 통화하고 있었다. 이연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도요! 저도 맛있는 거 먹을 줄 알아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신은하가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두 사람은 나강인의 차를 타고 레스토랑 페넬로페로 이동했다.

그곳은 신은하의 예상대로 영업이 끝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스트 오더 시간도 지나서 지금은 주문을 받지 않았다.

나강인이 신은하는 테이블에 앉혀놓고 사장이자 대표 셰프인 오규철을 만나 제안했다.

“요리는 제가 할 테니까 주방만 좀 빌려줄 수 있습니까?”

“어….”

이미 주문받은 음식의 조리도 다 끝났다.

아직 영업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 본격적인 청소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나강인이 주방을 빌려 요리하면 마감 시간이 그만큼 늦어진다. 그럼 퇴근 시간도 그만큼 밀린다.

오규철이 적당한 협상안을 내밀었다.

“요리를 만들면서, 우리 직원들 야식도 좀 챙겨줄 수 있습니까? 다들 강인 씨 요리를 궁금해해서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원래 야전 전술 요리는 대량 조리 기술이다.

“간단한 요리라도 괜찮다면, 여기 계신 모든 직원이 충분히 드실 수 있게 넉넉히 만들어드리죠.”

“아. 그리고.”

오규철이 욕심을 조금 더 부렸다.

“제가 출연하는 요리 프로에 한 번 나오시죠. 초대손님 말고 셰프로. 제가 잘해드리겠습니다.”

“방송출연은 좀….”

오규철이 얼른 설명했다.

“프로그램 제목은 가면 셰프입니다.”

“예? 가면이요?”

“지난달에 방송 시작했는데 안 보셨구나. 얼굴을 가리고 순수하게 요리 실력만 겨루는, 그것도 생방송으로 겨루는 진검 승부죠.”

나강인은 이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복면을 쓰거나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출연했다.

“특이한 콘셉트네요.”

“시청률은 꽤 나옵니다. 하하하.”

나강인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신은하를 돌아본 후에 대답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강인 씨 주방이다 생각하고 마음껏 쓰십시오.”

“방송에 나갈지 말지는 생각해본다니까요.”

“예. 예. 그럼요. 아. 우리 직원들이 요리하시는 모습을 견학해도 되겠습니까? 하시는 걸 보면 뭔가 배우는 게 있을 겁니다.”

나강인은 페넬로페 직원들의 야식을 대량으로 조리했다.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대표님이 평소에 말씀하시던 그 사람 맞지?”

“불 조절은 아예 안 하는데? 그냥 최고 화력이잖아.”

“아니. 저렇게 많은 재료를 한 번에 담으면 진짜 무거울 텐데 저걸…. 부채처럼 가볍게 들고 흔드네?”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야. 저런 건 요령으로 하는 거야. 요령.”

“힘 맞는 것 같은데?”

그는 대량으로 조리된 요리를 미리 준비된 접시에 담았다.

“각자 전자레인지에 돌리세요. 3분씩이면 되겠네요.”

직원들은 결과물을 조금 의심했다.

“이거 라자냐야?”

“만드는 법이 좀 다른데?”

“라자냐면은 우리 걸 쓰긴 했는데, 오븐을 안 썼잖아.”

“전자레인지를 쓰라잖아.”

조리하는 모습은 대단했지만 정작 완성된 요리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맛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직원들은 조금 의심하는 표정으로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전자레인지는 업소용으로 세 대가 있었다.

먼저 전자레인지에 그릇을 3분 동안 돌린 직원 세 명이 고기와 치즈를 넉넉히 사용한 요리의 맛을 보았다.

직원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헉! 진짜 맛있다.”

“이 정도면 대표님이 작정하고 만드신 거랑 동급인데?”

“아니, 순식간에 잔뜩 만들고 전자레인지에 돌리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 맛이 나냐고.”

직원들은 음식의 맛을 보며 나강인을 힐끗거렸다.

“심지어 다른 요리도 같이 만들었는데.”

나강인은 직원들을 위한 요리를 하면서 신은하와 먹을 요리를 따로 만들었다.

전술 요리는 대량 조리가 기본이지만, 소량을 만들 때도 맛있게 할 방법은 있다. 더 좋은 재료를 팍팍 쓰면 된다. 이 주방에는 좋은 재료가 많았다.

야전 전술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것과 멋있게 담는 건 다른 장르다. 직원들에게는 못생겨도 맛은 좋은 라자냐 스타일 요리가 나갔다.

신은하와 먹을 요리는 신경을 많이 썼다. 요리를 예쁘게 담거나 과일과 당근을 깎아 꽃과 토끼를 만들 때는 AI 전지인의 손동작 보정을 받았다.

- 도움 안 되는 신은하가 맛있게 먹으라고 저를 이렇게 부려먹으시다니요.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 또 사극톤으로 말하고 그래. 하는 김에 종달새도 한 마리 깎자.”

나강인이 준비한 요리 두 개를 신은하의 탁자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널 위해 만들었다.”

신은하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접시에 담긴 요리는 예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뻤다.

‘진짜 정성을 다해 담았네?’

“잠깐만. 사진 좀 찍고.”

그녀가 사진을 찍은 후에 이보라에게 보냈다.

이보라의 답장이 즉시 날아왔다.

- 이거 뭐야? 어디서 팔아? 맛있겠다!

- 어디서도 안 팔아. 강인 오빠 특제 요리거든. 나만 먹을 거야.

- 야! 나도 맛있는 거 먹을 거다!

- 더 부러워해라.

그녀는 이연지에게도 톡을 보냈다. 이연지가 곧바로 답을 보냈다.

- 이거 먹으러 간 거였구나! 쩔어요!

그녀의 SNS에도 사진을 올렸다. 설명은 짧게 한 줄만 달았다.

[늦은 저녁밥.]

- 저녁밥으로 예술을 드시네.

- 이거 어디서 팔아요?

-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눈으로 먼저 먹고 나서 입으로 먹는다는 그겁니까?

신은하는 사방에다 실컷 자랑한 후에 포크를 들었다.

“먹기 아깝다.”

그녀가 음식을 조금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녀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맛있다.”

나강인이 그녀를 위해 만든 요리가 오늘따라 더 맛있었다.

레스토랑 페넬로페의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건 스페셜 라자냐인가?”

“이것도 이렇게 맛있는데 저건 더 맛있겠지?”

“여기서 더 맛있으면 그건 너무한 거 아냐?”

“대표님 눈이 번쩍번쩍 빛난다. 저걸 만들어보고 싶으신가 보다.”

“그럼 오늘 밤에 식당에서 주무시겠네.”

“어차피 내일은 정기 휴일이잖아.”

“밤새 하시겠다.”

“나도 남아서 거들면서 좀 배울까?”

“나도.”

“나도.”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친 후에 나강인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종이를 접어 만든 검은색 상자였다.

“원래는 이거 주려고 보자고 했다.”

신은하는 서운했던 기분이 이미 완전히 풀려 있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상자를 받았다. 자기도 모르게 코맹맹이 소리가 조금 나왔다.

“이게 모야?”

“좋은 거.”

그녀가 상자를 열었다. 목걸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어머!”

목걸이의 줄은 금이고 펜던트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보석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펜던트의 디자인이 특별했다.

“어머. 디자인 장난 아니다. 어디서 산 거야?”

“줄은 산 거고, 줄에 달린 건 내가 만든 거다.”

그녀의 웃음이 더 커졌다.

“진짜?”

그녀가 목걸이를 상자에서 꺼냈다.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디자인도 진짜 잘하네? 강인 오빠는 액세서리 디자이너 해도 엄청 잘나가겠다.”

그 디자인은 2082년에 유행하는 스타일이다.

나강인이 상자를 하나 더 꺼냈다.

“이것도 있다.”

신은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목걸이 다음에는? 반지? 이거 반지 맞지?’

그녀가 잔뜩 기대하며 상자를 열었다.

“응? 이게 뭐야?”

안에는 지포 라이터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초소형 호신 무기.”

“응?”

“급할 때 쓰면 한 놈 정도는 잡을 수 있어. 네가 위험한 일에 자주 휘말리니까 호신용품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만들었다.”

“으응?”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 보이지? 그게 열쇠야. 그걸 금속 상자에 꽂은 후에 돌리면 무기로 변해. 그 열쇠는 이 무기를 잃어버리거나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지.”

그녀가 목걸이를 다시 보았다. 펜던트의 디자인이 굉장히 세련되어서 당연히 액세서리인 줄 알았다.

“이거 목걸이 맞지?”

“목에 걸고 다니는 편이 잃어버리지 않고 좋아서 그렇게 만들….”

그녀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냐. 그만 들을래. 이건 이제부터 목걸이야. 강인 오빠는 나한테 목걸이를 준 거야.”

“어…. 그래.”

그녀가 거울을 꺼내서 보면서 목걸이를 목에 대보았다. 마음에 쏙 드는데도 짜증이 났다.

“아이 씨. 그리고 앞으로 목걸이에는 그런 기능을 넣지 말라고. 그냥 마음만 담은 예쁜 목걸이를 달라고.”

***

이튿날 나강인은 합수부 형사와 만났다.

형사가 말했다.

“다음부터 그런 곳에 쳐들어가실 거면 저희랑 같이 가시죠. 민간인이신 선생님이 혼자 그러시다가 다치…. 예. 몇 놈 상대로 다치진 않으시겠죠. 그래도 같이 해결하면 서로 좋잖습니까?”

“어제는 사건이 생긴 건지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확인해보고 신고하려고 했는데, 거기 가보니까 상황이 그럴 여유가 없더라고요.”

“예. 그러셨겠죠. 놈들에게 통신방해장치도 있었고, 조금만 늦었어도 사람들이 죽을 뻔했죠.”

“잘 아시는군요.”

합수부 형사의 말에는 감탄과 불평이 섞여 있었다.

“잘 알죠. 항상 어쩔 수 없이 싸우시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참 신기하죠?”

나강인은 어제 그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는지 확신하지는 못했었다. 그 말까지는 사실이다.

그런데 신고는 일부러 미리 하지 않았다. 별다른 사건이 아니라면 권수연이 노출되지 않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던 합수부 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 뭐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아. 어제 병원으로 데려가신 분은 괜찮으십니까? 저희가 알아보니까 이름이 권수연 씨던데요.”

“수연이가 원래 몸이 약한데 어제 그 일로 많이 놀라서 결국 입원했습니다.”

“저런.”

“그런데 수연이는 이번 일과 상관없을 텐데요? 놈들이 노린 건 양용준과 대전차미사일이던데요.”

“아. 그렇죠. 저희도 압니다만, 보고서에 상황은 적어야 해서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권수연 씨와 관계가….”

“친구입니다. 대학 동창이죠.”

“그럼 혹시 여자친구….”

“아뇨.”

“아니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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