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79화 (179/411)

179. 권수연

합동수사본부 형사가 권수연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건 대답해도 되지만 이야기가 더 길어져서 좋을 건 없다.

나강인이 대화의 방향을 일부러 돌렸다.

“어제 팔성테크의 창고를 습격한 놈들 말입니다. 대전차미사일을 노렸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뭐랍니까?”

합수부 형사가 설명했다.

“탄두도 없는 걸 쏘려고 한 건 아니고, 우리나라 미사일 기술을 빼내려고 했더군요.”

“미사일 하나 훔쳐가도 역설계로 알아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텐데요?”

“그렇죠. 그런데 그놈들이 팔성테크의 창고만 손을 댄 게 아닌가 봅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기술유출 시도가 있었습니다.”

“기술유출 시도라….”

“아마 빼돌린 정보나 부품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한 검증용으로 실물 대전차미사일을 손에 넣으려고 했을 겁니다. 물론 성능 분석도 하려고 했을 테고요. 당연히 역설계를 통한 기술 분석도 계획했겠죠.”

“그래서 빼돌리는 데 성공한 게 있습니까?”

“일단 놈들의 승합차에서 미사일 부품이 몇 개 발견됐습니다.”

“그건 폭발 사고로 위장할 때 현장에 뿌려놓을 부품일 테고요.”

“예. 폐기되어야 했던 개발 중간 단계 불량품이 유출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불타서 녹아버리면 구형인지 신형인지, 불량인지 아닌지 구분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렇죠. 당연히 그 부품 제조사는 철저하게 조사 중이고, 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다른 회사들도 다 확인하는 중입니다.”

나강인이 생각했다.

‘철인기공도 덩달아 시끄러워지겠네.’

합수부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 쪽에서 건질 게 남아있어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다행이라고 하기엔….”

“아. 폐기부품 몇 개보다 더 심각한 기술유출이 이미 발생했다면 다행이라고 할 수 없겠군요.”

“미수에 그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군요.”

“저희도 그러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조사해보면 나올 겁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나강인이 인상을 살짝 쓰며 물었다.

“산업 스파이 사건이면, 혹시 이번에도 차 이사가 개입되어 있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나 해서 체포한 놈들은 물론이고 양용준 씨에게도 물어봤는데, 누군지도 모르더군요. 차 이사 짓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강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면 차 이사가 예전보다 더 조심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경찰에게 노출되지 않으려고요.”

“그럴 수도 있죠. 저희도 그 가능성을 제외하지 않고 계속 수사하겠습니다.”

대화하는 도중에 나강인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사람의 전화면 받지 않고 나중에 다시 걸면 된다. 그런데 발신인이 이정호 외과 과장이다. 지금 시점에 이정호가 먼저 전화를 걸 일은 하나밖에 없다.

“잠시 전화 좀.”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정밀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안 좋습니다.

“제가 거기로 갈까요?”

- 아니요. 평소 모이던 곳에서 보죠.

나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이정호가 말한 평소 모이던 곳은 손성현의 성형외과다.

“알겠습니다.”

나강인이 자리로 돌아와 합수부 형사에게 말했다.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다음에 연락 주시면 다시 뵙겠습니다.”

“아. 그러시죠. 저, 그런데….”

합수부 형사가 살짝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설마 또 사건이 터졌….”

“그런 거 아닙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형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다행입니다. 하, 하하.”

***

나강인이 성형외과에 도착했다. 이정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성형외과 원장 손성현이 상황을 설명했다.

“수연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어제는 혼자 걸을 정도로 회복된 것 같았습니다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서 저희도 안심했는데, 정밀 진단 결과가 나쁩니다. 매형이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정호 과장은 그 희귀병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수연이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밖에 모릅니다. 그 병원에서 케이타이거 증후군을 확실히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은 매형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수연이는 아직은 직접 움직일 수 있으니까 일단 퇴원부터 시켰습니다. 지금 우리 병원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병원 내부를 보았다.

“직원분들은?”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모두 퇴근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30분 뒤에 권수연이 도착했다.

필요한 검사는 이미 종합병원에서 마치고 데이터까지 복사했다.

나강인은 그녀가 도착했을 때 손성현의 진료실로 몸을 피했다. 그가 수술에 참여한다는 걸 아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권수연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강인아? 너 여기 있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 권수연이 요원님이 이곳에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어떻게?”

- 지금 이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용의자입니다. 그중 누군가는 입이 싼 것 같습니다.

밖에서 권수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강인아?”

나강인이 어쩔 수 없이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어…. 수연아.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권수연이 피식 웃었다.

“주차장에서 네 차를 봤으니까. 네가 하필 지금 우연히 이 건물 다른 층에 왔을 리는 없잖아.”

“아….”

그는 바로 어제도 그 차에 권수연을 태우고 가평에서 이정호의 종합병원까지 달렸다. 예전에 그녀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도 그 차를 사용했다.

AI 전지인이 타박했다.

- 입이 싼 건 요원님이었군요.

“입은 무거운데 행동이 경솔했다고 하자.”

권수연이 물었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어?”

“그게….”

나강인이 난감해는 걸 보고 옆에 있던 권동진이 얼른 둘러댔다.

“강인이가 예전부터 우리를 도와주고 있었어.”

“응? 예전? 언제부터?”

“그러니까….”

나강인이 권동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학교에서 너를 다시 만난 날부터. 그때 너 건강이 너무 나빠 보이더라. 마침 내가 이정호 과장님하고 아는 사이기도 하고.”

권수연은 나름대로 대답을 찾아냈다.

“아! 비밀수술이니까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해서 널 끌어들였구나?”

“어? 어. 맞아! 그거야. 내가 또 믿을만한 사람이잖아?”

권수연이 걱정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수술이 들통나면, 네가 아무리 옆에서 돕기만 했어도 곤란해질 수 있는데….”

- 요원님이 이 불법 수술의 주동자이십니다. 들키면 체포됩니다.

“야. 괜찮아. 안 들키면 돼.”

이번 목소리는 조금 커서 권수연도 들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고마워. 넌 정말 옛날부터….”

AI 전지인이 그녀의 말에 반응했다.

- 요원님의 과거 정보를 얻을 기회입니다.

하지만 권수연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슬쩍 보더니 고맙다고만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강인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옛날에 나랑 무슨 일이 있었냐고. 왜 말을 하다 말아.”

- 그러게 말입니다!

권동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겨우 넘겼다.”

나강인이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대답은 이정호가 했다.

“어제 가평 창고에서 위험한 일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받은 스트레스와 격렬한 움직임이 몸에 무리를 준 것 같습니다.”

“어제는 이렇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나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정호는 그 병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런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이건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병이 아니라 저주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이상합니다.”

권동진은 다른 게 급했다.

“그럼 수술 연습은요? 지난번에는 커트라인에서 딱 1초 줄였잖습니까? 연습을 더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정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수연 양이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수술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수술 준비에 시간이 걸릴 테니까 한 번만 더 연습을….”

“그러다 우리가 지치면 실제 수술시간은 오히려 늘어날 겁니다.”

“그….”

이동진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안다. 화를 낼 곳이 필요했다.

권동진이 소리를 질렀다.

“양용준! 내 그 새끼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어제 팔성테크 사장 둘째 아들 양용준이 권수연을 데려갔다가 총격 사건에 휘말려 그녀의 상태가 나빠졌다.

수술 준비 과정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교차 확인했다. 사람이 부족하고 시간을 줄이려면 돌발상황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했다. 당연히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권수연은 수술대에 누워서 준비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 나 진짜 살 수 있나?’

지난번에 수술에 성공한 이연지는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몰랐다. 그냥 수술이 필요해서 한 줄 알았고, 회복이 워낙 빨라서 간단한 수술이었다는 말도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권수연은 다르다. 그녀는 수술이 불가능한 병에 걸려 죽어간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다 같은 병에 걸렸던 이연지의 수술이 성공하면서 그녀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이 수술은 위험하다. 그걸 그녀도 잘 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설마 이게 내 인생의 끝은 아니겠지?’

마취가 시작됐다. 그녀의 눈에 수술실에 들어오는 나강인이 보였다.

‘어? 수술실까지 왜….’

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녀의 의식이 가라앉았다.

수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정호가 경고했다.

“지난번 연습에서 커트라인보다 1초를 줄였습니다만, 작은 실수 한 번만 해도 그 정도 시간은 넘길 겁니다.”

사람들이 긴장했다.

“시간을 오버해도 약간 정도는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권동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그 제한시간 자체가 정확한 게 아닙니다. 수연 양의 제한시간이 예상보다 조금이라도 짧다면, 커트라인 안에 수술을 끝냈는데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더 줄이기 위해 연습을 더 해야 했다. 하지만 어제 사건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

“우린 아직 이 병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수술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정호가 칼을 잡았다. 수술이 시작됐다.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말했다.

“지인아. 너만 믿는다.”

- 지구를 위해서, 이라미드 태양전지 초기 개발자를 살리기 위한 수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분이 크니까 너한테 걸린 제한 중에 해제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다 풀어. 쓸 수 있는 건 다 쓰라고.”

***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 켈리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누가 한국에서 우리 회사 이름을 팔아먹었단 말이지? 어떤 놈이야?”

제시카가 대답했다.

“국제 산업 스파이의 의뢰를 받은 용병 조직이라는 것 정도만 알아냈어. 한국 수사기관이 자세한 걸 밝혀내면 우리도 좀 알 수 있겠지.”

“목적은?”

“현재까지 입수한 정보만 보면, 그 용병 조직의 목적은 한국의 신형 대전차미사일이야.”

스칼렛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런데 나강인이 관심이 있던 건 태양전지 개발자잖아.”

“그렇겠지? 나강인이 너한테 전화해서 팔성테크가 아니라 그 연구원과 접촉했는지부터 물어봤으니까.”

스칼렛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태양전지 연구원 말이야.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좀 알아봐.”

제시카가 스칼렛을 빤히 쳐다보았다.

스칼렛이 변명했다.

“왜? 뭐? 내가 태양전지에 관심 많은 거 알잖아. 나강인이 그 연구원을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야지.”

“어느 쪽이 진짜 목적이야? 태양전지야? 나강인이야?”

“어머. 제시카. 한국에는 일타쌍피라는 좋은 말이 있단다. 난 둘 다 원해.”

***

철인기공 연구소는 정부의 특별 점검을 받았다.

합수부 형사가 본부장 이태성을 만났다.

“드래곤 플레이트에 관해 문의할 때도 본부장님을 만났는데, 이번에도 본부장님이 나오셨네요.”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저희도 상황을 좀 듣고 싶습니다만.”

“신형 대전차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업체는 모두 유출된 자료가 없는지 점검받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태성이 큰소리쳤다.

“우리 회사는 강력한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으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전문업체에 맡겨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데다가, 최고의 해커에게 보안점검도 받았습니다.”

“예? 해커요?”

“아. 방어 전문 화이트 해커입니다. 해커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해커를 역추적해서 잡는 분이죠.”

합수부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저도 그런 분을 아는데 말이죠.”

이태성이 장담했다.

“제가 아는 화이트 해커가 더 대단할 겁니다.”

합수부 형사는 나강인이 철인기공의 드래곤 플레이트 개발팀장이라는 게 생각났다.

“어? 잠깐만요. 혹시… 그 대단한 해커가 나강인 씨?”

“어? 알고 계셨습니까?”

“후우. 알지요. 잘 알지요.”

“왜 갑자기 한숨을….”

“아뇨. 잘하는 게 너무 많다 싶어서요.”

이태성이 웃었다.

“그건 그렇죠. 저도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합수부 형사가 푸념했다.

“사건에 휘말리는 것도 잘하고요. 물론 해결도 잘하지만, 우리도 덕분에 야근을 잘하죠.하아아. 이럴 거면 그냥 우리랑 같이 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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