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84화 (184/411)

184. 1차전

나강인은 제작 거점에서 로봇 머리처럼 생긴 헬멧만 챙겼다.

레스토랑 페넬로페 대표 셰프 오규철은 시내에서 만났다.

오규철이 종이가방 몇 개를 들어 보였다.

“강인 씨 옷은 따로 챙겨왔습니다.”

나강인이 가방을 받고 옷을 확인했다. 제복 느낌이 살짝 섞여 있는 재킷이 들어있었다. 재킷과 어울리는 셔츠와 바지도 있었다.

“디자인이 괜찮네요.”

“협찬 들어온 것 중에서 강인 씨 느낌과 어울리는 걸 골라왔습니다. 그런데….”

오규철은 나강인이 가져온 걸 확인하고 당황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가면이 아니라 헬멧을 가져오셨네요?”

“뒤통수도 가리려고요. 안 되는 건 아니겠죠?”

“되다마다요. 이렇게 다시 보니까 제가 골라온 옷이 헬멧하고 정말 어울리겠네요.”

나강인은 옷을 갈아입은 후에 오규철의 차를 타고 ‘가면 셰프’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오규철이 가는 길에 설명했다.

“우리 방송은 요리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케이블방송국이 아니라 외부에 전용 세트장을 마련했습니다. 거기 가면 일단 대기실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전용 세트장이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조립식 창고를 빌려서 내부를 개조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용 세트장이라 기본 집기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 같은 방송장비까지 전용으로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런 방송장비는 촬영이 있을 때마다 따로 가져왔다.

일하던 스태프들이 지나가는 나강인을 힐끗거렸다. 나강인은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헬멧을 쓰고 있었다.

“새 도전자인가?”

“이번 콘셉트는 로봇이네.”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야?”

“느낌 잘 잡았는데?”

제작진은 창고를 개조하면서 대기실도 두 개를 만들었다. 선수 대기실이라는 간판도 붙어 있었다.

나강인은 2번 대기실에서 내부를 점검했다.

“숨겨진 카메라는”

- 없습니다.

“문도 잠겨있고…. 생방송이라서 대기실 장면이 없나 보다.”

나강인이 헬멧을 쓴 상태로 거울 앞에 섰다. 제복 비슷한 느낌의 재킷과 검은색 바지, 직선이 여러 개 그려진 셔츠가 보였다.

“옷이랑 헬멧이 잘 어울린다. 이대로 SF 영화에 나가도 되겠어.”

- 자연로보틱스의 헬멧 디자인이 현재 시대에도 통할 만큼 우수하다는 뜻입니다.

“그때는 디자인이 60년을 더 발전했을 텐데 당연한 거 아냐? 현재 시대의 디자인이 그때도 통해야 우수한 거지.”

그는 소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오규철이 와서 진행 방법을 다시 설명하고 돌아갔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스태프가 문을 두드렸다.

“이제 방송 준비하셔야 합니다.”

생방송이 시작됐다.

이 방송의 평가위원은 원래 네 명이다. 그중에는 오규철도 있다.

그런데 오규철은 평가위원석이 아니라 진행자와 같이 서 있었다.

요리 대결 방송 ‘가면 셰프’는 주로 평가위원이 출연자를 직접 섭외한다.

그런데 출연자를 데려온 사람이 요리도 평가하면, 진검 승부라는 공정성에 문제가 생긴다.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서다.

하지만 선수를 섭외했다고 해서 평가위원을 방송에서 배제하면, 아무도 선수를 섭외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

제작진은 그 대안으로, 선수를 데려온 평가위원이 메인 진행자와 함께 그 회차 방송을 진행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래도 공정성 시비는 생길 수 있지만, 그게 제작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늘은 도전자를 데려온 오규철이 공동 진행자가 되었다.

방송이 시작됐다. 지난번 대결의 승자가 먼저 소개되었다.

“구미호 셰프. 파죽지세로 3연승을 이뤘습니다.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왕좌에 오르게 됩니다.”

3승을 한 셰프는 여우 가면을 쓰고 있었다. 꼬리는 달지 않았지만, 별명은 어차피 셰프가 따로 짓기 때문에 구미호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진행자가 이번에는 나강인을 불렀다.

“이 강력한 3승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선수! 철인 셰프! 나와주세요!”

나강인이 무대 뒤쪽에서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밝은 조명 몇 개가 나강인을 따라 움직였다.

평가위원 세 명의 뒤에는 일반인 평가단 스무 명이 앉아 있었다.

나강인이 나타나자 평가단에서 탄성이 터졌다.

“와….”

“설마 진짜 로봇이야?”

나강인의 방탄 헬멧은 머리 전체를 감싸는 형태다. 사용자의 두상을 고려해 만든 덕분에 크기는 원래 머리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방탄구조물 바깥에 덮어씌운 외피의 디자인도 상당히 잘 나왔다.

나강인이 무대 앞으로 걸어왔다. 언뜻 보면 로봇이 걸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시청자 댓글도 쏟아졌다.

- 와. 프로그램이 흥하니까 도전자 콘셉트 퀄리티가 쭉쭉 올라간다.

- 저런 헬멧은 요리 대회가 아니라 영화에 써야 하는 거 아냐?

- 이 방송에서 지금까지 나온 가면 중에 최고다.

진행자도 나강인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이야아. 철인 셰프. 저는 진짜 로봇이 걸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같이 진행하는 오규철이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철인 셰프는 오늘을 위해 저 로봇 가면을 오랫동안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정말 진짜 로봇 같습니다. 이 정도면 윙치킨 한 번 해주셔야죠? 아. 들은 체도 안 하시는구나. 역시 냉정한 철인!”

나강인이 쓴 헬멧에는 별도의 정보 표시 기능은 없다.

원래는 그런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나강인은 AI 전지인이 제어하는 AR 렌즈가 있어서 굳이 넣지 않았다.

진행자가 시청자를 위해 진행 방식을 설명했다.

“전문가인 평가위원은 요리에 대해 말로 설명하고 평가하지만, 투표는 단 한 표도 하지 못합니다.”

평가위원 세 명의 뒤에는 스무 명의 평가단이 앉아 있었다.

“일반인 평가단은 평가위원의 설명을 듣고 요리를 직접 먹어본 후에 몇 가지 항목에 점수를 매깁니다. 만약 평가단 점수가 동점이 나오면 그때는 평가위원 세 분의 투표로 승자가 결정됩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 방송은 진검 승부라는 콘셉트가 제대로 통해서, 케이블방송인데도 시청자가 제법 있습니다.

“나는 어차피 오늘 한 번만, 그것도 헬멧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나왔으니까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가면 셰프는 방송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인기가 꽤 많았다.

이 방송은 두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중간에 광고가 나올 때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외에는 모두 생방송 진검승부다.

어차피 얼굴을 가리고 나왔기 때문에 나강인의 경력이나 에피소드를 소개할 일은 없다.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 두 명과 평가위원 세 명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행하는 형식이다.

선수들은 오직 실력으로 상대를 눌러야 한다.

진행자가 선언했다.

“첫 번째 경기 주제는 고기를 이용한 요리입니다!”

장르를 단순하게 지정했다고 해서 아무 요리나 할 수는 없다. 식재료는 제작진이 원하는 장르에 맞춰 제공되기 때문이다.

요리 재료만 제한이 있는 게 아니다. 생방송 시간의 제약 때문에 제한시간 20분 안에 끝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1인분이라면 그런 조건이라도 만들 수 있는 요리가 꽤 많다. 그런데 이 방송은 판정단이 존재한다.

사회자가 설명했다.

“선수는 판정위원 세 명과 판정단 스무 명, 진행자 두 명까지 스물다섯 명이 먹을 수 있을 양을 준비해야 합니다. 제한시간은 20분입니다.”

AI 전지인이 의견을 냈다.

- 최소한 5인분은 만들어야 모든 인원이 제대로 시식할 수 있습니다.

맛만 보면 되기 때문에 25인분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각자에게 할당된 재료로 20분 안에 5인분은 만들어야 한다.

재료의 제한과 인원 제한, 시간제한까지 고려하면 만들 수 있는 요리는 급격히 줄어든다.

여우 가면을 쓴 상대 선수는 프랑스식 요리를 만들었다. 그는 채소를 보기 좋게 다듬어 다섯 개의 접시에 배치했다. 메인은 당연히 고기였다.

진행자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아. 구미호 셰프. 오늘도 요리가 아름답습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온 기분입니다.”

오규철이 맞장구를 쳤다.

“구미호 셰프의 강점이지요.”

“반면에 철인 셰프는….”

나강인 쪽을 돌아본 진행자가 놀라서 외쳤다.

“아! 조미료를 들이붓습니다!”

“그, 그러네요?”

나강인은 야전 전술 요리 스킬로 넉넉한 5인분을 조리했다.

상대 선수는 수제 소스를 재빨리 만들어 썼지만, 나강인은 제작진이 제공한 일반 판매용 소스와 양념만 사용했다.

조미료도 아끼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같은 식재료로 요리할 때는 조미료를 잘 써야 더 맛있습니다.

문제는 조미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생방송 게시판에 댓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 철인 셰프 뭐하냐?

- 조미료를 아주 퍼 넣네?

- 이건 주최측의 농간이다. 구미호 셰프를 우승시키려고 일부러 만만한 상대를 내보냈나 보다.

- 아니면 도전자를 찾기가 힘들어서 아무나 데려왔든지.

- 가면만 멋진 걸 만들었네.

나강인은 피시방에서 요리할 때는 프라이팬에 대량의 식재료를 담고 가볍게 뒤집으면서 조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도 않았다. 여기서 힘자랑을 하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나올 수 있어서다.

그래서 오늘 요리 속도는 피시방에서 할 때보다는 느렸다.

평가위원 세 명은 두 사람이 요리하는 동안 진행자 두 명과 계속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게 평가위원들이 하는 일이고 이 방송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고객이 요리 과정을 눈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죠. 퍼포먼스는 구미호 셰프가 훨씬 좋군요.”

“철인 셰프의 요리하는 모습은 어쩐지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무슨 요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걸 만드는 것 같은데….”

“그래도 손은 진짜 빠르네요.”

평소보다 천천히 했는데도 요리의 완성은 나강인이 빨랐다.

완성한 음식은 다섯 개의 접시에 나눠 담으면 된다. 이 방송은 그렇게 만든 요리를 카메라로 보여주고, 평가위원 세 명의 칭찬이나 혹평 등을 시청자들이 듣게 하고 나서, 진행요원들이 작은 접시에 나눠 담아 평가단이 맛을 보게 한다.

나강인은 그냥 요리를 볶고 굽고 접시에 담았다. 반면에 구미호 셰프는 요리를 담을 때도 화려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접시에 담은 요리의 모습도 구미호 셰프의 것이 훨씬 보기 좋았다.

진행자가 말했다.

“이러면 겉모습은 구미호 셰프의 압승인데요. 철인 셰프가 앞선 건 조리시간밖에 없습니다.”

오규철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요리는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도 중요합니다.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누가 이겼는지는 평가단이 맛을 보고 나서 결정하겠죠.”

스태프들이 다가와 작은 접시에 요리를 다시 나눠 담은 후에 평가위원과 평가단에게 나눠주었다.

진행자와 오규철에게도 요리가 전달됐다.

진행자가 먼저 구미호 셰프의 요리를 맛보았다.

“이야아.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더니, 역시 맛도 훌륭합니다.”

문제는 나강인의 것을 먹으면서 생겼다.

“어?”

진행자가 자기도 모르게 한 번 더 집어먹었다.

“와. 이거 맛있네요.”

오규철은 요리하는 도중에는 나강인이 상대에게 밀리는 것처럼 보여서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재료를 가득 담은 무거운 프라이팬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 보여줘도 퍼포먼스 점수를 좀 받을 텐데….’

그의 굳은 표정은 나강인이 만든 요리의 맛을 본 후에 풀어졌다.

“제가 그랬잖습니까? 요리는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맛이 더 중요하다고.”

판정단은 양쪽 요리를 같이 맛보면서 웅성거렸다.

“어? 이거 진짜 맛있는데?”

첫 대결부터 배가 부르면 판정을 공정하게 할 수 없다. 그들은 나눠준 음식을 다 먹지는 말라는 말을 판정단이 될 때 주의사항으로 들었다.

그런데 나강인이 만든 것을 다 먹는 사람이 속출했다. 반면에 구미호 셰프의 것은 다 먹은 사람은 없었다.

판정위원들도 맛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어…. 맛있네요.”

“그러게요. 구미호 셰프 것도 맛있지만, 철인 셰프의 것이 더….”

“요리할 때 불을 정말 잘 다뤘네요. 그리고… 조미료를 정말 절묘하게 썼습니다.”

판정위원의 설명은 판정단에게 영향을 끼친다.

선수들이 요리할 때 판정위원들이 설명한 퍼포먼스의 의미, 재료의 종류, 요리의 유래 등도 모두 일반인 판정단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

애당초 이 프로그램은 요리 전문가인 판정위원들의 발언이 판정단에게 영향을 끼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런데 승부를 결정하는 건 어쨌든 판정단이다. 직접 먹어보고 맛을 평가할 때는 판정위원의 말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방송 게시판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판정단 표정을 보니까 맛은 철인 셰프의 승리네요.

- 요리 퍼포먼스는 구미호 셰프의 압승이죠.

판정은 각각의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중에서 점수 비중이 제일 큰 항목은 맛이다. 나강인은 요리는 맛에서 점수를 크게 땄다.

하지만 나머지 항목은 모두 구미호 셰프의 점수가 높았다.

사회자가 점수가 올라가는 걸 보며 외쳤다.

“중요한 건 총점입니다. 1차전은 누가 이겼을까요! 결과가 나왔습니다! 구미호 셰프입니다!”

1차전은 구미호 셰프가 승리했다.

곧바로 광고가 나갔다.

그 시간에 어질러진 주방을 스태프들이 정리했다. 다음 주제에 따라 재료와 조미료 일부가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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