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86화 (186/411)

186. 승부

케이블방송 ‘가면 셰프’의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이번 주제는 디저트였다. 이번에도 제공된 식재료와 소스만 사용해야 한다.

나강인은 평소에는 잡탕 과자나 잡탕 케이크를 주로 만들었다.

야전 전술 디저트는 식재료가 부족한 전장에서도 맛있는 걸 만들어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 있는 재료가 제한적이지만 그것만 사용해도 잡탕 과자나 케이크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만들면 로봇 헬멧을 쓴 이유가 없어진다.

그는 아예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었다. 그 디저트는 잡탕 케이크보다는 단단하고 과자보다는 부드러워서 모양을 성형하기 좋았다.

- 돌 케이크는 형태 유지력이 좋아 이동과 보관에 장점이 있습니다만, 맛은 잡탕 케이크보다 떨어집니다.

“상관없어.”

돌 케이크는 팬케이크처럼 프라이팬에 구워 만들기 때문에 조리시간도 빨랐다.

그는 그걸 재료로 삼아 예전에 본 강원도 산과 강 모양을 쌓고 조각하고 성형했다.

그의 눈앞에는 아까부터 강원도 세트장의 전경이 3D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다.

- 당시에 현장을 정찰했을 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지형지물 모형을 제작하겠습니다.

형태만 성형해서는 그 현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색도 칠해야 한다.

이곳에는 색깔 있는 식재료가 많았다. 전부 먹어도 되는 것들이다.

나강인과 AI 전지인은 재료로 제공된 초콜릿과 크림, 시럽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산과 강을 만들고 필요한 것을 그렸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정교한 지형이 만들어지고 색이 입혀졌다.

녹색 가루가 뿌려지면 산은 나무가 울창한 푸른 산이 되었다. 곳곳에 노출된 바위는 돌 케이크를 그대로 사용해 표현했다.

시럽 등을 이용해 만든 강은 진짜 강물과는 색이 조금 달랐지만, 물이 흐르는 느낌은 잘 살렸다.

나강인은 디저트의 디테일에 신경 썼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이런다고 더 맛있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재료가 특정 부분에 집중되어 맛의 균형을 잃습니다. 평가단이 나눠 먹을 때는 맛이 더 떨어질 수 있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베이스가 지구연합군이 먹는 건데 맛이 없진 않겠지.”

진행자가 나강인이 디저트를 다듬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철인 셰프가 손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손이 정말 빠릅니다!”

오규철도 맞장구쳤다.

“빠르기만 한 게 아닙니다. 놀랍도록 정교합니다. 정말 국제 케이크 대회에 출품한 것 같은 퀄리티입니다.”

“저런 정교한 케이크가 원래 있나 보죠?”

“비슷한 수준의 케이크는 있습니다. 다만, 그런 케이크는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오규철이 속으로 감탄했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알았지만, 디저트 만드는 실력까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진행자가 물었다.

“저렇게 빠른 분은 흔치 않나 보죠?”

“시청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한시간은 겨우 20분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저런 정밀한 케이크를 만드는 건 누가 와도 무리입니다.”

“오직 철인 셰프만 가능한 속도라는 뜻이군요.”

두 사람은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이 구미호 셰프와 철인 셰프가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을 설명했다.

이 세트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스크린에 이번에는 구미호 셰프가 만드는 디저트가 나타났다.

진행자가 감탄했다.

“이야아. 구미호 셰프의 디저트도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디자인의 작품을 보는 느낌입니다.”

“구미호 셰프는 사전 정보 없이 제한된 재료로 빨리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매번 최선의 결과를 내지요. 정말 우리 방송에 최적화된 셰프입니다.”

이 방송은 생방송이다. 모든 요리는 반드시 제한시간 안에 만들어야 한다. 제한시간을 생각하면 그의 디저트도 굉장히 수준이 높았다.

그런데 하필 상대가 나강인이다.

두 사람은 상대가 하는 작업을 볼 수 있었다. 이 방송은 일부러 상대가 조리하는 모습을 보며 요리를 경쟁적으로 만들게 했다.

구미호 셰프는 초조했다.

‘저게 사람 속도야? 손에 기계를 달았나!’

그는 지금 만드는 디저트를 사전에 몇 번이나 연습해서 손에 익숙하게 했다. 그런데도 속도에서 대놓고 밀렸다.

구미호 셰프는 디저트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런데 나강인의 디저트는 대놓고 화려하고 세밀한데 스케일까지 컸다.

‘평가단은 일반인이라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저쪽에 점수를 더 줄 텐데.’

일반인 평가단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요리 전문가인 평가위원들도 나강인의 디저트에 감탄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멘탈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다 손이 실수로 소스병을 툭 건드렸다. 병이 옆으로 넘어지며 소스가 흘렀다. 그가 급히 병을 잡았다.

잠깐 흐른 소스가 디저트에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화가 났다.

‘소스 제대로 바꿔친 거 맞아? 제일 많이 쓴 소스를 바꾸라고 신호했는데 어떻게 요리 맛이 그대로일 수가 있어?’

그는 손에 쥔 소스 병을 발작적으로 집어 던지려다가, 카메라 의식하고 팔을 멈췄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다.

‘진정하자. 일단 마무리부터 잘하면….’

진행자가 외쳤다.

“아! 철인 셰프! 디저트를 먼저 완성했습니다!”

구미호 셰프가 급히 고개를 들어 나강인이 만든 것을 보았다.

한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나강인이 만든 디저트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강원도에 있을법한 산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산의 아래에는 폭이 좁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진행자가 소리를 질렀다.

“이 짧은 시간에 이 멋진 풍경이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대단합니다! 저긴 어디일까요?”

“글쎄요. 어딘지 몰라도 풍경이 참 좋습니다.”

이제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미호 셰프는 실수까지 했다. 시간이 더 부족해졌다. 그만큼 마무리가 어설퍼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한시간 안에 디저트를 완성했다. 그가 속으로 불평했다.

‘젠장. 연습할 땐 더 잘했었는데.’

진행자가 말했다.

“자. 이제 마지막 대결입니다. 구미호 셰프의 디저트. 멋집니다. 유럽 고급 레스토랑에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그는 나강인의 것도 평가했다.

“아름답습니다. 진짜 산과 강을 이곳에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시청자 댓글도 줄줄이 붙었다.

- 로봇 셰프 뭐냐? 20분 만에 저 퀄리티 실화냐?

- 로봇이 아니라 철인 셰프.

- 로봇은 원래 쇠로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그거죠.

- 요즘은 다른 소재도 많이 씁니다.

- 그런데 정말 저 퀄리티 뭐지? 막 실시간으로 산이 생기고 강이 생기던데?

- 인간적으로 손이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구미호 셰프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급하게 만들었으니까 맛이 없을 거야. 모양을 만든다고 재료를 저렇게 쓰면 맛이 조화로울 수가 없어. 아니면 싸구려 맛이 나겠지. MSG 많이 쓰는 거 다 봤어!”

구미호 셰프는 다섯 개의 접시에 디저트를 담았다.

반면에 나강인은 커다란 디저트 하나만 만들었다. 그의 것은 한 개의 작품이라 나눠 담을 수가 없었다.

진행자가 말했다.

“이걸 부수기 아깝습니다만, 평가하려면 먹어봐야겠죠.”

나강인이 직접 칼을 들고 디저트를 스물다섯 개로 조각냈다. 각각의 조각이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구미호 셰프가 만든 것도 작은 접시에 담겨 사람들 앞에 놓였다.

평가단 스무 명이 양쪽 디저트를 맛보았다. 다들 나강인의 것을 먼저 먹었다.

맛을 보자마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와…. 무슨 디저트에서 감칠맛이 나냐.”

“근데 그게 단맛하고 진짜 잘 어울리는데요?”

“내가 먹는 조각은 새콤한 맛입니다.”

“난 진한 초콜릿 맛.”

진행자가 감탄했다.

“이야아. 어쩐지 케이크를 자르는 크기가 제각각이다 싶더니, 일부러 그랬나 봅니다. 제가 먹고 있는 이 조각은 정말 완벽하게 맛있습니다.”

오규철이 맞장구를 쳤다.

“처음 만들 때부터 어떻게 자를지까지 계산하고 만들었을 겁니다.”

“철인 셰프는 우리가 제공한 재료만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했는데도 그런 계산까지 순식간에 했군요. 수학을 참 잘하는 분인가 봅니다.”

AI 전지인이 자랑했다.

- 지구 최고의 파티시에들이 모여서 개발한 야전 전술 디저트니까, 맛있는 게 당연합니다.

“모양을 저렇게 만들면 맛이 떨어질 거라면서?”

- 정찰용 지형지물 묘사 스킬과 야전 전술 디저트 스킬의 퓨전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대단합니다.

“이젠 불리하면 대놓고 말을 돌리는구나?”

마지막 경기 투표가 시작됐다.

대형 스크린에 총점이 빠르게 올라갔다. 항목별로도 점수가 표시되었다.

구미호 셰프의 점수는 증가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반면에 나강인의 점수는 계속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사람들의 탄성 속에 최종 점수가 나왔다. 나강인의 점수가 두 배나 높았다.

박수가 터졌다.

진행자가 외쳤다.

“철인 셰프가 더블 스코어로 이겼습니다! 구미호 셰프는 마지막 대결에서 패배해 아쉽게 판정위원 승급에 실패했습니다!”

구미호 셰프가 가면을 쓰고 작은 소리로 욕을 했다.

“씨발.”

그는 이 요리 대결 프로그램의 판정위원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앞으로 이 프로그램에 매주 출연할 수 있다. 그때는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

그가 오규철을 보았다.

‘기회만 주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그의 목표는 오규철처럼 방송에 자주 나오는 셰프가 되는 것이다. 그는 방송에 계속 출연할 기회만 생기면 인맥을 키우고 영향력을 확대해 오규철보다 잘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러기 위해 이 방송의 스태프를 매수해서 연승을 이어갔다. 박봉에 시달리는 스태프 한 명쯤 매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승부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모든 게 날아갔다.

패배한 사람은 마스크를 벗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그걸 포기할 수는 없다.

‘어쨌든 방송에서 얼굴은 팔아야 나도 남는 게 있지. 3연승을 했으니까, 지금 말만 잘하면 다른 방송에 나갈 기회를 또 잡을 수 있겠지.’

그가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은 어느새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패배한 셰프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생방송이 끝났다. 그 셰프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무대를 떠났다.

스태프들이 무대로 올라와 각종 재료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소스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강인은 첫 경기에서는 그 소스를 많이 썼지만 두 번째 경기부터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소스를 바꿔치기한 놈입니다.

그 소스는 첫 경기가 끝난 후에 한 번 교체됐지만, 그 후에는 교체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직도 무대 위에 남아있었다.

나강인이 그 소스병을 손으로 눌렀다.

“이건 그냥 두시죠.”

병을 가져가려던 스태프가 당황했다.

“예? 이거 치워야 하는데요?”

“두시라고요.”

“치, 치워야 한다니까요? 그게 제 일입니다.”

“아아. 일이다? 일을 이상하게 하던데.”

스태프가 화를 벌컥 냈다.

“도대체 왜 이럽니까! 방해하지 마십쇼!”

오규철 셰프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강인이 말했다.

“이 병에 담긴 소스가 겉에 붙은 상표와 다르더군요.”

오규철이 웃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이건 마트에서 산 건데요.”

“그럼 맛을 좀 보시죠.”

나강인이 병을 들어 소스를 접시에 조금 부었다. 스태프가 다급히 막으려고 했지만 나강인을 힘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오규철은 소스 맛을 살짝 보고 뭐가 문제인지 즉시 깨달았다.

“어? 이게 원래 이 품질이 아닌데? 왜 하급품이 들어있지? 이건 공산품이라서 품질이 다를 수가 없는데?”

나강인이 스태프에게 물었다.

“말해보시죠.”

스태프가 당황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난 그냥 여기 있던 걸 다 치우려던 것뿐입니다. 그 소스가 왜 그런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피디가 다가왔다.

“야. 그거 네가 준비한 거 아냐? 아까 네가 소스 몇 개를 교체했잖아.”

“아닙니다. 그거 다 원래 교체 예정인 것들이라서 바꿔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산 게 아닙….”

나강인이 스태프의 말을 잘랐다.

“병을 중간에 바꿔치기했다면, 똑같은 상표의 소스병이 이 세트장 어딘가에 원래 예정보다 하나 더 있겠네요. 따로 치울 시간은 없었을 테니까 근처에 숨겨뒀겠죠.”

“아니, 그게 아니라….”

나강인이 스태프의 손을 보았다.

“맨손이네요? 숨긴 사람의 지문이 잘 묻어있겠네.”

스태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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