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92화 (192/411)

192. 물리 협상

용병 몇 명이 나강인의 말을 듣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공격하는 놈은 없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말로 조금 건드려봐도 반응을 안 하네? 이놈들은 협상을 진짜로 원한다는 소리야.”

예전에 강남 레스토랑을 습격한 국제용병 자칼은 지하실을 통한 탈출 통로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칼은 경찰과 협상할 필요가 없었다.

“이놈들에게는 협상 외에는 탈출구가 없어.”

- 놈들이 인질을 함부로 쏘지는 못하겠군요.

인질이 상자를 천천히 열다가 갑자기 활짝 웃으며 용병들에게 말했다.

“보세요! 진짜 구급 약품입니다! 폭탄이 아니라고요!”

상자 안에는 응급처치를 위한 약품과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용병이 그걸 눈으로 확인한 후에 나강인에게 물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이건 우리가 요구한 품목이 아닌데.”

“서비스다.”

“우린 서비스를 시킨 적이 없어!”

“햄버거 많이 시켜서 주는 서비스라고.”

“제대로 대답해!”

“밖에서는 인질들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 누가 다쳤을 때를 대비해서 넣었다.”

용병이 긴장을 풀고 총구를 내리며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약은 우리도 있다.”

용병들이 햄버거와 생수를 하나씩 집어갔다. 무전도 날렸다.

“밥이 왔다. 이상 없는지 확인했다.”

바깥쪽 로비에서 용병이 들어와서 햄버거와 생수를 몇 개 챙긴 후에 돌아갔다.

잠시 후에 안쪽 복도에서 가면을 쓴 용병이 걸어왔다. 용병의 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나강인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거 누구 피냐?”

용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피는 아니야.”

나강인은 협상 전문가로 위장해 이곳에 들어왔다.

“인질이 사망했다면 협상은 없다. 그게 상부의 결정이다.”

“진정하라고. 이곳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비가 있어서 누가 좀 다쳤는데, 의사가 잘 치료했으니까 괜찮아.”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유나린 박사에게 의사 면허가 있습니다.

나강인은 유나린부터 찾아야 한다. 그가 용병에게 요구했다.

“부상자 상태를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그 전에 우리 조건부터 이야기하지?”

“너희들이 이곳을 빠져나가게 하는 거?”

남자가 히죽 웃었다.

“당연한 거 아냐? 우리가 여기서 안전하게 나가게 해주면 인질은 모두 살려주지.”

“다른 건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챙기겠나?”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미 챙겼을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우리도 사망자가 없다는 보장이 필요해. 사망자가 나왔는데도 너희들을 풀어주면 윗분들은 다 모가지야. 어차피 잘릴 거라면 너희들이라도 잡고 잘리는 게 낫지.”

용병이 피식거렸다.

“한 명이 죽는 것과 다 죽는 건 다르지.”

“몇 명이 죽든 윗분들이 옷 벗는 건 똑같다니까?”

용병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그렇군. 어쨌든 부상자는 의사에게 맡겼다. 우린 할 만큼 했어. 물론 그놈도 아직 살아있고.”

“협상을 진행하려면 먼저 내가 눈으로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음….”

용병이 나강인의 몸을 확인했다. 그는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만 입고 왔다. 권총을 숨길 공간은 없었다. 게다가 로비에서 이미 몸수색을 거쳤다.

그는 쉽게 생각했다.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

게다가 용병들도 지금 상황이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원래 경찰이 눈치채기 전에 일을 끝내고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출동과 건물 봉쇄가 너무 빨랐다.

용병들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길 원했다.

“원한다면 확인시켜주지.”

용병이 동료 두 명에게 손짓했다. 용병 두 명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손에 쥐고 다가왔다.

옷에 피가 묻은 용병이 말했다.

“안쪽으로 가라고. 저기 있으니까.”

나강인이 앞장서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용병 셋이 뒤따라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뒤쪽 소음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적의 공격 의도가 파악되면 즉시 반격하십시오.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옷에 피가 묻은 용병이 말했다.

“거기서 왼쪽.”

나강인이 복도 왼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복도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문이 열린 사무실이 보였다.

피 묻은 용병이 말했다.

“거기에 있다.”

나강인이 안으로 들어갔다.

피에 젖은 사람이 회의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다. 그 옆에는 30대 여자가 서 있었다.

AI 전지인이 그 여자의 머리 위에 명함을 띄우며 보고했다.

- 유나린 박사를 발견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사람도 확인했다.

- 경찰이 파악한 인질 명단의 마지막 한 명도 찾았습니다. 칼에 찔린 상처입니다.

용병이 말했다.

“저놈이 저항해서 찌를 수밖에 없었어. 대신에 의사가 있어서 치료하라고 했다.”

유나린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난 외과 의사가 아니에요. 의대만 나왔지 전문의 과정을 거친 적도 없어요. 이 사람은 내 힘으로는 못 살려요. 빨리 병원으로 보내야 해요.”

용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거기 있는 사람이 협조적으로 나와야 가능하지.”

“이 사람이 누군데….”

“경찰. 협상하러 들어왔더라고. 우리 밥도 가져오고.”

유나린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형사님. 이 환자 빨리 내보내야 해요.”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건물 내부 구조 파악이 끝났습니다. 적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인질들을 모두 찾았습니다. 유나린 박사도 찾았습니다. 공격하시겠습니까?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환자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지?”

-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환자의 몸에 손을 대 맥박을 확인했다. 다른 신체 징후도 점검했다.

-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치료가 너무 늦어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용병에게 말했다.

“이 사람을 살리려면 여기서 당장 내보내야 한다.”

피 묻은 용병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보기엔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칼에 깊게 찔렸잖아. 속은 엉망진창이다.”

“그러면 말이야. 환자가 위험하면 협상을 빨리 끝내면 되잖아?”

“그럼 그 전에 내가 가져온 응급 치료 키트라도 갖다 줘. 지혈이라도 해야 하니까.”

“저 의사는 외과 수술은 못 한다던데?”

“내가 할 수 있다.”

“음? 의사였나? 뭐, 의사든 아니든 상관없겠지.”

용병이 동료에게 손짓했다. 동료가 치료 키트를 가지러 갔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이 사건은 경찰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야전 응급 수술 능력을 보여주면 권수연을 비밀리에 수술한 것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수술을 하면 그렇지.”

- 이해했습니다.

밖으로 나간 용병이 나강인이 가져온 응급 치료 키트를 들고 왔다. 그가 상자를 넘겨주며 말했다.

“수술칼은 뺐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나강인이 치료 키트 상자를 받으며 유나린에게 말했다.

“좀 도와주시죠.”

유나린이 나강인의 옆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어느 병원 외과에 계세요? 아. 경찰병원인가요?”

나강인이 그 대답은 피하며 용병에게 말했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수술할 수는 없어. 감시를 원하면 안으로 들어오고, 피가 보기 싫으면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아.”

용병이 피식 웃으며 동료들에게 손짓했다. 그는 무장한 동료 두 명이 안으로 들어온 후에 문을 닫았다. 그런 후에 말했다.

“피를 못 볼 정도로 약한 놈은 이 일을 할 수 없지.”

유나린이 나강인의 바로 옆에서 응급 치료 키트를 점검하며 물었다.

“뭐부터 시작할까요?”

나강인이 유나린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유나린 박사님.”

그녀가 놀란 눈으로 속삭였다.

“예? 저를 아세요?”

응급 치료 키트에는 원래 수술용 나이프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건 용병이 이미 치웠다.

나강인이 가위를 잡았다. 그 소형 가위는 붕대를 자를 때도 몇 번은 가위질해야 겨우 자를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 즉시 바닥에 엎드려요.”

“그게 무슨….”

용병 중 하나가 다가왔다.

“이봐. 이야기는 우리도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나강인이 휙 돌아서며 용병의 목을 후려쳤다.

“켁!”

나강인의 힘은 보통 사람의 한계를 한참 넘어설 정도로 강하다. 그런 나강인의 손날에 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용병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다른 두 명이 다급히 권총을 들었다. 두 용병 사이에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나강인이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두 손으로 잡고 비틀었다. 작은 가위의 중간을 연결한 리벳이 부러지며 가위날이 두 개로 분리됐다.

나강인이 양손을 적을 향해 쭉 뻗었다. 가위날 두 개가 수리검처럼 날아가 적의 목에 꽂혔다.

“컥!”

“켁!”

가위가 워낙 작아 그 정도로 적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처음부터 제압이 목적이 아니었다. 적의 목을 찔러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

나강인이 왼쪽 용병을 덮쳤다. 대놓고 걷어차면 소리가 크게 난다. 그는 가위날을 피해 적의 목을 손으로 잡은 후에 콱 꺾었다. 그런 후에 바닥으로 무너지는 적의 머리를 다시 발로 걷어차서 확실히 기절시켰다.

이제 이곳에 용병은 한 놈 남았다. 옷에 피가 묻어 있던 용병이었다.

그의 목에는 가느다란 가위가 다른 놈보다 더 깊게 박혔다. 그는 충격과 고통으로 비틀거렸다.

그가 전투력을 잃은 시간은 겨우 2초에 불과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고통을 견디며 권총을 나강인 쪽으로 돌렸다.

나강인에게 2초면 한 놈을 잡고 다른 놈에게 다가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는 어느새 용병에게 접근해 적의 권총을 잡았다.

권총이 그의 손에서 순식간에 해체됐다. 적이 서둘러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날아가지 않았다.

적은 이미 목을 당해 소리를 내지 못했다.

“커컥.”

나강인이 말했다.

“나도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까 말은 나중에 취조실에서 실컷 해라.”

나강인이 적의 턱을 후려쳤다.

적의 몸이 허수아비처럼 뒤로 넘어갔다. 그는 넘어가는 놈을 다시 발로 걷어차 넘어질 때의 소리를 줄였다.

나강인이 뒤로 돌아섰다.

유나린은 그가 시킨 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나강인이 어떻게 싸우는지 똑똑히 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저, 저기…. 저 이제 일어나도 될까요?”

“됩니다.”

그녀가 얼른 일어났다. 눈은 이미 동그래져 있었다.

“세상에. 우리나라 경찰특공대 실력 진짜 대단하네요. 세 놈이나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잡으세요? 저놈들은 권총까지 갖고 있었는데.”

AI 전지인이 말했다.

- 2027년 노벨상 수상 예정자 유나린 박사가 예상보다 수다스럽습니다.

나강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놈들이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목소리를 낮추시죠.”

그녀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네. 그렇죠. 당연히 그래야죠.”

나강인은 적이 갖고 있던 권총을 챙겼다. 그중 한 자루는 유나린에게 주며 물었다.

“권총을 쏠 줄 압니까?”

“아뇨. 이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요.”

나강인은 먼저 유나린이 두 손으로 권총을 잡게 한 후에,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눈높이로 들었다. 그렇게 자세를 잡는 법을 먼저 알려주고 나서 쏘는 법을 설명했다.

“이 자세로 조준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갑니다. 쏠 때는 권총을 꼭 두 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쏘고, 쏘기 전에는 방아쇠에 절대로 손가락을 걸지 마세요. 방아쇠를 잘못 건드리면 발사되니까. 평소에는 손가락을 이렇게 권총 옆에 대세요.”

그녀가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저도 싸워야겠죠? 열심히 쏠게요.”

나강인의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면서 말했다.

“쏘지 마세요.”

“네?”

“만약을 대비해서 몸을 지킬 무기를 주는 겁니다.”

나강인이 기절한 용병들을 가리켰다.

“지금 총을 쏘면 저 세 놈을 조용히 잡은 보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쏘지 마세요.”

“아…. 휴우. 그렇…. 아! 환자!”

그녀가 테이블 위의 총상 환자를 확인했다.

“빨리 병원으로 보내야 해요.”

“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유나린 박사의 응급조치가 잘 되어 있습니다. 한 시간 안에 종합병원으로 이송하면 괜찮습니다.

“앞으로 한 시간은 괜찮을 겁니다. 십 분 안에 여길 정리하고 대기 중인 구급차에 태워 신촌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면 시간이 많이 남겠네요.”

그녀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어머. 의사인 척하신 게 아니라, 진짜 의사셨어요?”

“의사 아닙니다. 그냥 상태만 보고 짐작한 겁니다.”

“아니, 그걸 일반인이 어떻게….”

그녀가 손뼉을 살짝 쳤다.

“아!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많이 보셨구나! 해외파병 가셨나 봐요?”

“권총 조심하시죠? 그러다 발사됩니다.”

“아. 죄송해요.”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 노벨상 수상자가 이렇게 가벼운 성격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그 상 안 탔잖아.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런 성격이 튀어나오는 걸 수도 있어.”

그녀가 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혼잣말입니다.”

“아, 네.”

나강인이 주변에서 끈으로 쓸 것을 찾아 기절한 세 놈의 손발을 묶었다. 손이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끈이 저절로 휙휙 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런 후에 분해한 권총의 부품을 모아 도로 조립했다. 권총 한 자루가 순식간에 완성됐다.

유나린이 한쪽에 서서 그런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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