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95화 (195/411)

195. 충격파

나강인이 중간 지점에서 구출한 사람들에게 말했다.

“로비에 있는 놈들이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기만 해요. 절대로 먼저 쳐들어가지 마세요. 저놈들은 나중에 경찰이 잡을 겁니다.”

용병들이 쓰던 권총을 받은 네 사람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희도 목숨 귀한 줄 압니다.”

“이 책상 뒤에서 방어만 하겠습니다.”

나강인이 한 마디 더 조언했다.

“그 책상은 얇아서 총알이 관통할 수 있습니다. 방어 장벽으로 쓰려면 로비 쪽으로 몇 개 더 겹쳐놔야 할 겁니다.”

“헉! 예!”

직원 몇 명이 서둘러 책상을 옮겼다.

조금 전에 자기는 왜 총을 안 주냐고 항의했던 직원이 복도를 가리키며 나강인에게 말했다.

“저기요. 로비 반대쪽 복도 방향도 틀어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쪽으로 유나린 박사가 끌려갔다.

“복도 쪽으로는 내가 싸우러 가잖습니까?”

“괜히 갔다가 당하면, 로비 쪽만 막고 있던 우리는 뒤통수를 맞는 건데요?”

다른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말렸다.

“왜 자꾸 이래?”

“왜요? 난 그냥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하는 거잖아요.”

나강인이 말했다.

“그러면 그런 말을 할 시간에 복도 쪽으로 가서 보초를 서요. 보초 정도는 총이 없어도 설 수 있으니까.”

“네?”

“총 든 놈이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요. 저기 늑대가 나타났다고.”

“아니,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러게?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난 왜 계속 ‘어’만 들릴까?”

권총을 받은 다른 직원이 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오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자꾸….”

“아뇨. 난 다른 게 의심스러워요. 저 용병 놈들이 여기를 점령하려면 내부 정보가 필요했을 텐데, 그 정보는 어디에서 얻었을까? 내부 직원을 통해서 얻었을까?”

나강인이 시비가 붙은 직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내부 정보를 과연 누가 넘겨줬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직원을 향했다.

그 직원은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긴지 아닌지는 나중에 경찰이 조사하면 다 나오겠지.”

나강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뭐해요? 기든 아니든 수상하면 일단 묶어둬야지. 진짜로 내통했으면 싸우는 도중에 뒤통수 맞을 텐데.”

몇 명이 다가가 그 직원의 손을 묶었다. 직원이 반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거 왜 이래! 난 아니라고!”

“우리야 믿지. 믿는데, 그냥 우리도 불안해서 그래. 어서 손 내밀어.”

나강인은 사람들을 남겨두고 복도로 진입했다.

AI 전지인이 물었다.

- 저 직원이 적과 내통했다고 의심하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의심 안 했는데? 저게 어딜 봐서 내통한 사람이야? 그냥 또라이지.”

- 그럼 왜 그러신 겁니까?

“내가 죽든 말든 자기는 안전해야겠다잖아. 구하러 온 사람 힘 빠지게 말이야.”

- 듣고 보니 잘하셨습니다.

나강인이 한마디 더 했다.

“내가 목숨 걸고 싸우는 건데 말이야.”

- 현재 상황이 요원님에게는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하진 않습니다만?

“남들이 보기엔 위험하잖아. 그러니까 혼자서 싸우러 가는 사람한테 저러면 안 되지.”

- 듣고 보니 지당하십니다. 저 사람은 혼나야 합니다.

“그놈은 복도 어느 쪽으로 튀었어?”

AI 전지인이 정식으로 보고했다.

- 유나린 박사가 끌려갈 때 낸 소음으로 적의 진행 방향을 파악했습니다. 적은 복도 오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복도는 T자 형태다. 복도 왼쪽으로 가면 부상자가 누워 있는 사무실이 나온다.

나강인이 갈림길로 접근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기 직전에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오른쪽 복도에서 겁에 질린 숨소리를 감지했습니다.

“유나린이겠지.”

AI 전지인이 허공에 홀로그램 3D 영상을 띄웠다.

- 소리를 기반으로 유나린 박사의 현재 위치를 추정했습니다.

그 3D 영상에는 유나린 박사만 나오고 적의 위치는 표시되지 않았다. 적 위치 파악 실패라는 경고문만 떠 있었다.

- 적이 소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유나린의 뒤에서 아주 조용히 이쪽을 조준하고 있겠지. 그런 상황이 아니면 유나린이 겁에 질릴 리가 없잖아.”

-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재빨리 튀어나가면서 놈을 쏘면?”

- 저놈은 요원님이 아까 복도를 점프로 통과했을 때도 상당히 정확하게 사격했습니다. 이제는 요원님의 이동 속도를 예상하고 대비할 겁니다.

“그럼 그냥 나가면 총 맞겠네.”

나강인이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그 손거울은 조금 전에 유나린 박사의 가방에서 꺼내왔다.

“저놈 반응속도가 그렇게 빠르면, 이것도 내밀자마자 쏘겠지?”

- 물론입니다. 파편에 의한 손가락 부상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던질 거야.”

나강인이 손거울을 복도 쪽으로 슬쩍 던졌다. 손거울이 공중을 천천히 날아갔다.

거울이 복도 중간까지 날아가기도 전에 총탄이 날아왔다. 9mm 권총탄이 정확히 손거울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갔다.

“좀 쏘네?”

- 반응속도가 예상보다 더 빠릅니다. 드래곤 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오셨어야 했습니다.

“그걸 입고 영화를 어떻게 찍냐? 우린 촬영장에서 바로 온 거잖아. 영상이나 띄워봐.”

AI 전지인이 허공에 홀로그램 3D 영상을 띄웠다. 그건 거울에 순간적으로 비친 복도 오른쪽 모습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 획득한 정보의 질이 낮아 영상의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영상 속에서 흐리게 보이는 사람이 유나린의 뒤에 숨어 권총으로 복도를 조준하고 있었다.

“유나린은 선명하게 잘 나왔는데?”

- 유나린 박사의 영상은 기존에 획득한 정보로 재구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위치만 대충 확인하고 원래 갖고 있던 유나린의 얼굴 사진을 붙인 거구나?”

- 그렇습니다.

“지인아. 다른 것도 대충 한 건 아니지?”

- 정보가 부족합니다만, 적이 유나린을 방패로 삼았다는 건 확실합니다.

“내가 저놈이 조준한 곳과 다른 방향으로 뛰어들면서 놈을 쏘면?”

- 적은 요원님이 방금 던진 손거울 한복판을 정확히 쐈습니다. 요원님이 천장 높이로 점프해도 저격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적은 유나린을 방패로 삼고 있습니다. 노출된 부분이 적습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유나린 박사를 안전하게 구출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협상을 해야지.”

나강인이 모퉁이 뒤에서 오른쪽 복도 쪽을 향해 말했다.

“야. 거기 너 말이야. 사람을 쏘면 넌 여기서 못 빠져나가.”

복도 너머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우리를 보내줄 생각이었으면 진짜 협상 전문가를 보냈겠지. 너 같은 전투 요원이 아니라.”

“내가 협상 전문가는 맞아. 조금 전에는 돌발상황이 생겨서 우발적으로 싸웠던 거야.”

AI 전지인이 끼어들었다.

- 적이 그런 말에 속겠습니까?

“저놈한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그걸 이용하려고 속는 척은 하겠지.”

나강인이 적에게 말했다.

“난 비무장으로 나갈 테니까 이야기 좀 하자. 총은 버릴게.”

나강인이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툭 차서 복도 안쪽으로 보냈다.

“두 손 다 보여줄 테니까 쏘지 마라.”

나강인이 복도 쪽으로 두 손을 천천히 뻗었다. 그러면서 AI 전지인에게 지시했다.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말해라. 총알 날아오기 전에 손 빼게.”

- 너무 위험합니다.

“저놈은 탈출구가 필요해. 그러니까 자기가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동안은 안 쏠 거야.

- 적의 반응을 시각 정보로 표시하겠습니다.

나강인이 두 손을 복도 너머로 내밀었다. AI 전지인의 경고는 없었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모퉁이 너머로 천천히 걸어갔다.

모퉁이를 넘어가자마자 적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놈들처럼 가면을 쓰고 있었다. 왼팔은 유나린의 목에 감아 그녀를 방패로 썼다.

나강인이 아무것도 없는 두 손을 허리 옆으로 펴서 보여주며 말했다.

“봐. 난 이제 총이 없어. 네 부하들도 죽은 놈은 없어. 서로 총질하다가 그놈들이 몇 발 맞긴 했지만, 어깨 좀 다쳤다고 죽진 않잖아?”

그는 옆으로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네가 두목이지? 로비의 방어 진형도 네가 지시한 거고?”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 진짜 협상 전문가야. 그 정도는 딱 보면 파악해야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 상대는 로비 이야기에만 반응했습니다. 두목이라는 말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니까 반응할 필요가 없겠지.”

- 저놈이 두목인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실력이 좋아서 떠봤는데 걸려들었어.”

두목이 권총을 나강인의 가슴을 향해 조준한 상태로 물었다.

“협상 전문가라 해도 자기 목숨을 걸지는 않아.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미리 핑계를 생각해놓으셨어야 합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사 목록을 보여드리겠….

나강인이 유나린을 슬쩍 보며 말했다.

“반했거든.”

“뭐?”

“저분이 딱 내 취향이시라서, 오늘 무사히 구출하면 고백하려고.”

겁에 질렸던 유나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강인을 보았다.

나강인은 40살로 변장했다. 유나린은 37살이다. 나강인이 말했다.

“우린 딱 좋은 나이잖아?”

“미친놈이군. 이런 상황에서 작업질이라니.”

“첫사랑이다.”

두목이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말이야. 이런 때 그런 소리를 하는 놈은 죽는다는 건 아나?”

나강인이 제안했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잖아. 다행히 아직 사망자가 없네? 그러니까 협상을 해보자. 항복하면 사형은 면하게 해줄게. 교도소에서 몇 년만 썩다 나와라.”

“진짜 미친놈이었군. 지금 그걸 협상이라고 제안하나?”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겠어? 총을 먼저 쏜 건 네 부하들인데, 총소리가 이만큼 났으면, 이제 그냥은 못 풀어줘. 널 풀어주면 윗분들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두목이 인상을 썼다.

“젠장.”

나강인은 어깨를 으쓱할 때 손을 아래로 좀 내렸다.

“그래도 네가 쏘라고 명령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넌 오래 들어가 있진 않을 거야. 삼사 년이면 나올 수 있어.”

“협상이 아니라 협박을 하러 왔나?”

나강인이 팔을 더 내리며 히죽 웃었다.

“싫으면 그냥 뒈지시던가.”

나강인의 태도가 바뀌었다. 두목이 발끈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꿇어!”

두목이 총구를 나강인의 다리 쪽으로 내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팔을 아래로 움직이는 순간을 AI 전지인이 감지했다. 즉시 두목의 사격 방향이 직선 형태로 표시되고 빨간색 위험표시도 떴다.

AI 전지인이 고속음성으로 경고했다.

- 적 사격!

나강인은 두목이 먼저 방아쇠를 당기기를 기다렸다. 그것도 팔을 움직여 조준을 바꾸는 순간을 노렸다.

게다가 두목은 조금 전에 복도를 조준하고 기다릴 때보다는 방심했다. 나강인은 그 방심도 이용했다.

두목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나강인이 옆으로 움직였다. 두목은 그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했다. 총탄이 허공을 갈랐다.

나강인은 아까 부상자가 있는 사무실에서 권총의 탄창을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복도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 탄창의 총알을 두 개 빼서 소매에 넣어놓았다.

나강인이 조금 전에 팔을 아래로 내렸을 때, 양쪽 소매에 넣어둔 권총탄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강인은 이미 그걸 손에 쥐고 있었다.

나강인이 옆으로 피하며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탄피까지 붙어 있는 금속 총알이 두목의 오른손과 머리를 향해 표창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두목은 날아오는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오른손은 재빨리 위로 들어 날아오는 총알을 피했다. 머리도 유나린의 뒤쪽으로 젖혀 그쪽으로 날아온 총알도 피했다.

이번에는 두목에게 문제가 생겼다. 유나린의 뒤로 피하는 바람에 두목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가려졌다.

두목은 고민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는 시야가 가려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나강인이 있는 방향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앞쪽으로 날아갔다.

‘피할 방향이 없게 제압 사격을 연속으로….’

머리 위로 뭔가 휙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두목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나강인이 벽을 밟고 점프해 두목의 머리 위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두목이 다급히 권총을 위로 들었다.

나강인이 더 빨랐다. 그는 날아가면서 유나린의 목을 두르고 있던 두목의 왼팔을 잡아챘다. 왼팔이 억지로 펴지며 관절이 꺾였다.

두목이 비명을 질렀다.

“끄악!”

나강인은 조금 더 날아가 바닥에 착지했다. 두목은 왼팔이 꺾이고 반쯤 누운 상태로 뒤로 쭉 끌려갔다.

두목은 그 와중에도 오른손의 권총을 나강인 쪽으로 뻗었다. 목표는 나강인의 머리였다.

두목은 권총이 나강인의 머리 근처로 가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이 격발되는 순간 나강인이 두목의 왼팔을 콱 잡아당겨 옆으로 던졌다. 총구의 방향도 옆으로 틀어졌다. 발사된 총탄이 허공을 갈랐다.

그런데 두목은 나강인을 제대로 조준하고 쏜 게 아니다. 머리 근처에서 쏘긴 했지만, 명중하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두목이 노린 건 처음부터 소음에 의한 충격 공격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총성이 나강인의 귀 바로 근처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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