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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196화 (196/411)

196. 블랙 사이드와인더

두목은 권총이 나강인의 귀 근처에서 발사되면 총소리 때문에 상대가 잠깐이라도 충격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러면 그 틈에 반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조준도 하지 않고 권총을 나강인의 머리 쪽으로 뻗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거기까지는 두목의 계획대로 되었다.

그런데 나강인의 귀에는 그 총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귀를 찢는 듯한 충격 따위는 아예 없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귀에 설치된 독립형 보조 모듈이 비정상적으로 큰 외부 소음을 적극적으로 차단해 청력을 보호했습니다.

그 정도로 커다란 소리는 귀를 통해서만 들리는 게 아니다. 귀를 막아도 몸을 타고 들어오는 소리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들리는 소리는 귀로 직접 듣는 것보다는 작았다. 나강인은 당연히 그 정도로는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나강인이 옆으로 던진 힘이 워낙 강해서 두목이 훨씬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두목은 옆으로 날아가 벽에 충돌했다. 그는 등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억지로 견뎠다. 여기서 멈추면 끝장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상태로 나강인을 향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그런데 사격이 조금 전처럼 빠르고 정확하지가 않았다.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아서 팔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정면에서 느리게 쏘는 총으로 나강인을 막을 수는 없다. 나강인은 적이 어느 방향으로 총을 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진전했다. 빗나간 총탄이 벽에 퍽퍽 박혔다.

나강인이 두목의 오른손을 걷어찼다. 총이 적의 손에서 빠져나가 옆으로 날아갔다. 당연히 손에도 충격이 들어갔다. 손뼈가 뒤틀리는 충격에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끄아악!”

이제 적의 손에 권총은 없다. 두목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 나강인이 두목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좀 쏜다?”

AI 전지인도 적을 높게 평가했다.

- 지금까지 싸운 놈 중에서 제일 잘 쏩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너 정체가 뭐….”

두목이 갑자기 나강인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두목의 신발 앞쪽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나강인이 그 다리를 도로 걷어차 뚝 부러뜨렸다.

두목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게 어디서 발길질이야?”

두목은 다리가 부러져도 눈빛이 죽지 않았다.

나강인이 유나린에게 말했다.

“박사님. 뭐하러 이런 흉한 일을 보고 있어요? 다른 데 봐요.”

유나린이 눈을 부릅떴다.

“아뇨. 저도 당한 게 있는데 봐야죠. 더 때리세요.”

“마음에 드는 태도네요.”

“그, 그래요?”

그가 유나린과 잠깐 이야기하는 그 짧은 틈에 두목이 옷 속에 숨겨둔 수류탄을 꺼냈다.

두목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이빨로 뽑으며 말했다.

“다 죽여버리….”

나강인이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이 새끼가 위험한 걸 가지고 있네.”

“놔라!”

“놓겠냐?”

나강인이 두목의 몸통을 걷어찼다. 두목은 수류탄을 놓치며 옆으로 굴러갔다.

“컥!”

수류탄은 나강인이 잡고 있었다.

일반적인 수류탄은 손잡이를 손으로 쥐고 있는 동안은 터지지 않는다. 안전핀을 수류탄에 도로 꽂으면 손을 놓아도 폭발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전핀은 두목이 물고 있었다.

그는 그 핀을 입에 넣은 채로 말했다.

“시한신관을 개조한 수류탄이라서 손을 놓으면 즉시 폭발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안전핀을 삼켜버리겠…. 오지 마!”

나강인이 두목에게 다가가 얼굴을 발로 툭툭 찼다. 차는 자세는 가벼운데 맞는 쪽은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케켁!”

두목의 고개만 왔다 갔다 한 게 아니다. 충격으로 수류탄의 안전핀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다.

“켁?”

나강인이 그걸 보며 말했다.

“맛있냐?”

두목이 놀란 눈으로 나강인을 쳐다보았다.

“무, 무슨 짓을….”

“그런 걸 먹으면 배가 많이 아플 텐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그걸 삼키냐.”

유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방금 요원님이 일부러 저놈이 삼키게 걷어차신 것 같은데….”

- 유나린 박사가 눈치챘습니다.

“아. 표 납니까?”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일부러 그러신 거였어요? 아니, 왜요?”

“내가 협박당하는 걸 싫어해서, 협박할 수단을 없애버렸습니다.”

“네?”

나강인이 유나린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에 손을 댔다.

“이거 하나만 가질게요.”

“네? 네?”

그가 그녀의 머리에서 머리핀을 뺐다.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그 머리핀을 수류탄의 안전핀 구멍에 꽂았다.

“역시 크기가 딱 맞네. 이건 됐고.”

나강인이 두목을 돌아보았다. 두목은 다친 손으로 몸을 더듬고 있었다.

나강인이 다시 두목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너 뭐 하냐? 다른 무기 찾냐? 어? 이번엔 송곳 발사기냐? 새끼가 몸이 아주 무기고야.”

***

박순기는 나강인이 보내준 용병들의 얼굴 사진을 분석팀으로 보냈다. 그 팀은 그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이미 확보한 건물 주변 CCTV와 공항과 항만의 CCTV 영상도 다시 조사했다.

그러다 팀원이 사진 속 용병 중 하나를 CCTV 녹화 영상에서 발견했다.

분석팀 요원이 외쳤다.

“한 놈 찾았습니다! 일본에서 부산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팀장이 급히 물었다.

“다른 알아낸 건? 어떤 놈들이야?”

일단 한 놈을 찾아낸 후부터는 일이 빨라졌다. 부산항에서 다른 세 명도 속속 발견됐다. 그 네 명의 일행으로 보이는 놈들도 추가로 발견했다.

추가된 놈들을 다시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했다. 파악되는 정보는 대형 스크린에 따로 요약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사진 중 한 장에 별도의 표시가 붙었다. 민간인 부상자를 칼로 찌르고, 유나린이 그 부상자를 치료하는 동안 감시하던 놈이었다.

“어? 저놈….”

팀장이 요약된 정보를 보고 당황한 얼굴로 분석한 요원에게 물었다.

“저거 진짜야?”

***

박순기가 분석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알아냈습니까?”

- 보내준 사진을 바탕으로 다른 놈들을 더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새로 찾아낸 놈 중 하나가, 블랙 사이드와인더의 동료입니다.

“블랙 뭐라고요? 미사일입니까?”

분석팀장이 설명했다.

- 사이드와인더는 방울뱀의 일종입니다.

“아. 뱀….”

- 블랙 사이드와인더는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킬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가로 찾아낸 놈이 그놈의 부하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제적인 킬러의 부하를 찾았다는 거지요? 그럼 그 킬러도 지금 저기 있습니까?”

-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놈인지 말로 설명하려면 너무 기니까 자료를 보내겠습니다.

박순기의 스마트폰으로 문서가 한 장 날아왔다. 박순기가 전화를 끊고 문서를 확인했다.

“블랙 사이드와인더. 암살 능력만 놓고 보면 자칼이나 낙귀, 쿠거보다 위험한 국제적인 킬러…. 어? 헉!”

박순기가 즉시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

- 무슨 일입니까?

“나 사범님! 휴우. 아직 괜찮으시군요.”

- 뭐가 말입니까?

“지금 상대하셔야 하는 놈은 그동안 잡은 용병이나 해적보다 더 위험한 킬러입니다.”

박순기가 방금 받은 문서를 보며 설명했다.

“코드네임 블랙 사이드와인더. 7개국에서 지명수배된 특급 킬러가 지금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인 암살에 특화된 놈이니까 혹시라도 마주치면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강인이 혼잣말을 했다.

- 아. 그럼 이놈 말고 다른 놈이 더 있나?

“네?”

- 지금 잡은 놈이 등짝에 검은색 뱀 문신이 있거든요. 이건 다른 뱀인가 보네요.

“어?”

박순기가 문서를 확인했다.

블랙 사이드와인더의 얼굴은 7개국 중 어느 나라도 파악하지 못했다.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등에 있는 사막 방울뱀 문신뿐이다.

“무, 무슨 뱀….”

- 이 문신이 방울뱀 맞네. 하긴. 이놈이 다른 놈보다 빠르긴 하더라.

“서, 설마 블랙 사이드와인더를 잡으신 겁니까?”

나강인이 살짝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어…. 잡긴 잡았는데.

박순기는 나강인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급히 물었다.

“나 사범님도 다치셨습니까? 아니면 설마 유나린 박사가!”

- 이 뱀새끼가 많이 다쳤습니다.

“예?”

- 좀 많이 팼습니다.

“예?”

- 괜히 팬 건 아니고요. 이놈이 옷 속에 무기를 많이 숨겨뒀는데, 맷집이 좋아서 기절을 안 하고 계속 반항하더라고요. 아! 그래서 끝까지 반항한 거네. 수배된 7개국에 넘어가면 인생이 끝장날 테니까.

“자, 잠깐만요.”

- 그래서 그냥 패다 보니까 뭐…. 죽진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생겨도 알아서 잘 덮어준다면서요? 이것도 해결하실 거지요?

“그게 아니라….”

- 이제 로비에 있는 잡뱀들이 독이 잔뜩 올랐을 겁니다. 거기도 인질이 세 명이나 있어서 지금 구하러 갑니다. 외부에서도 일 좀 하시죠.

박순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황이 혼란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블랙 사이드와인더는 잡았다.

“뭘 어떻게 해드릴까요?”

- ‘너희들은 포위됐다.’ 같은 경고 방송을 내가 신호하면 스피커로 한 번 때려줘요.

“알겠습니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

나강인이 두목을 내려다보았다.

두목의 상의는 일부러 벗겼다. 옷 속에서 무기가 자꾸 튀어나와서 아예 옷을 벗기고 확인했다.

나강인이 기절한 두목의 다리 하나를 잡고 질질 끌며 중간 지점으로 걸어갔다. 유나린이 따라가면서 물었다.

“너무 많이 패신 거 아니에요?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안 죽게 잘 팼으니까 괜찮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두목의 맷집이 강하진 했지만, 한 방에 기절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요원님은 일부러 살살 많이 패셨습니다.

“계속 때리면 뭐가 더 나올지 궁금해서.”

- 저놈을 때린다고 해서 골드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그렇더라고.”

나강인이 유나린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유 박사님은 여기 왜 오신 겁니까?”

“네? 저야 저놈한테 납치….”

“그게 아니라 이 건물이요.”

“아. 연구 지원금 서류 때문에 왔죠.”

“네?”

“여기가 그런 일을 처리해주는 곳이거든요.”

“여기서 돈을 준다고요?”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연구 지원금은 정부 기금이나 회사 같은 곳에서 나와요. 여기는 그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재단이에요.”

“그러면 여기에 돈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건데….”

나강인이 두목을 보았다.

블랙 사이드와인더는 7개국에 지명수배된 킬러다. 다른 놈들도 총기 사용 경험이 있는 용병이다.

“이놈이 여기서 뭔가 빼낼 게 있으니까 쳐들어왔을 텐데, 여기 돈이 없으면 뭘 노린 거지?”

AI 전지인이 타박했다.

- 요원님이 기절시켜서 물어볼 수 없습니다.

“이놈은 독해서 물어봐도 대답 안 했을 거야.”

- 어차피 체포되면 다 들통날 일입니다. 그러니까 말했을 겁니다.

나강인이 말을 돌리려고 유나린에게 물었다.

“유나린 박사님은 정부의 특별관리대상이던데, 그럼 연구 지원금 정도는 쉽게 나오는 거 아닙니까?”

유나린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제 연구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서….”

“네?”

“연구자금이 끊긴 지 좀 됐어요. 특별관리대상도 아마 곧 해제될 걸요?”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AI 전지인도 같은 생각이다.

- 유나린 박사는 2027년에 노벨상을 탑니다. 연구가 실패했을 리 없습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혹시 연구를 여러 개 동시에 하십니까?”

“주력으로 하는 건 하나죠. 거기서 파생된 것 몇 가지를 조금씩 보는 건 있지만요.”

“음…. 그러니까 이 건물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지원금을 신청하러 오셨다?”

“그렇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연구에 돈이 그렇게 많이 듭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이미 집도 팔고, 아.”

그녀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할 때는 괜찮았는데, 나강인에게 하는 건 조금 부끄러웠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연구비가 끊기고 특별관리대상에서도 제외된다는 걸 오메가테크가 알았구나. FA시장에 풀렸다고 생각하고 스카우트하려는 거였어.”

- 유나린 박사가 2027년 노벨상 수상자라는 데이터는 갖고 있습니다만, 어디서 뭘 연구해서 그 상을 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미국 오메가테크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회사일 수도 있겠지. 중국이나 일본, 유럽 회사가 접촉할 수도 있잖아.”

어쨌든 오메가테크가 왜 유나린을 스카우트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는 알았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우리 여유 자금이 얼마나 있지?”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의도를 눈치채고 단호하게 말했다.

- 임무 수행을 위한 활동자금입니다. 꿈도 꾸지 마십시오.

“투자 대비 성과가 크잖아.”

- 유나린 박사의 연구는 아직 성공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뒤에 성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성공한다는 건 확실하잖아.”

AI 전지인이 다른 문제점을 꺼냈다.

- 현재 보유한 활동자금을 다 털어 넣어도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는 나강인도 대안을 가지고 있다.

“돈은 당겨올 곳이 있지. 철인기공에 드래곤 플레이트 라이센스를 담보로 잡히고 빌리면 되니까.”

- 제가 아는 건 유나린 박사의 연구가 성공해 노벨상을 탄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돈이 되는 연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돈 한 푼 안 되는 연구일 수도 있습니다.

“노벨상을 타면 상금이 나오잖아.”

- 어떻게 그 상금을 노립니까?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으십시오.

“벼룩치고는 간이 꽤 큰데, 아쉽네.”

나강인이 입맛을 다신 후에 유나린에게 말했다.

“꼭 성공할 겁니다. 그 연구.”

그녀가 방긋 웃었다.

“고마워요. 응원해주셔서.”

“그 연구가 대성공해서 노벨상도 탈 겁니다.”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웃음이 좀 더 커졌다.

“어머. 그건 너무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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