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98화 (198/411)

198. 사람 찾기

영화 ‘운명의 창’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이 점심을 먹고 다시 모였다.

오후에도 오전처럼 현대 배경인 사무실 촬영이 이어졌다.

여자 주연인 신은하는 오늘 출연하는 씬이 많다. 오후 첫 촬영에도 그녀가 필요했다.

복경산 부장 배역인 나강인은 촬영 스케줄이 훨씬 뒤쪽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촬영하는 동안 나강인은 소품팀을 찾아갔다. 아까 블랙 사이드와인더와 그 부하들을 잡을 때 옷이 많이 구겨졌다.

“다리미 좀 빌리려고요.”

“옷 구겨진 것 때문에 그러시죠? 그건 저희가 해드릴게요.”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나강인은 소품용 바지도 잠시 빌려 입었다.

다리미질은 AI 전지인의 맡았다.

“전쟁터에서 다리미를 쓸 일이 있냐?”

- 같이 고립된 민간인에게 신뢰를 줘야 할 때 씁니다. 겉보기라도 상태가 좋은 군복을 입으면 민간인의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전황이 최악일 경우는 최후의 전투를 준비….

“알았어.”

다른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전쟁터에 다리미를 가지고 다녀?”

- 아닙니다. 철판을 적당히 달궈서 씁니다.

철판으로도 옷을 다리는 AI 전지인이 스팀다리미를 사용했다. 구겨졌던 옷이 순식간에 쫙쫙 펴졌다.

소품팀장과 팀원이 그걸 보며 감탄했다.

“우리 다리미가 성능이 저렇게 좋았나?”

“자갈밭이 고속도로로 바뀌는 걸 보는 기분인데요?”

“나 감독님은 다림질도 진짜 끝내주게 하신다.”

와이셔츠와 바지는 다림질로 해결했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나강인이 신발을 보여주었다.

“신발이 조금 찢어졌습니다. 이 신발은 어디서 팝니까? 하나 사오게요.”

“그건 같은 디자인으로 몇 켤레 더 있으니까 그냥 두셔도 돼요. 그런 건 소모품으로 처리하기로 했거든요. 아시다시피 우리 영화가 액션이 많잖아요.”

“다행이네요.”

소품팀원이 신발을 바꿔준 후에 물었다.

“그런데 이 신발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오늘 촬영에는 액션이 없잖아요.”

그 신발은 7개국에서 수배된 킬러 블랙 사이드와인더가 쏜 총탄 때문에 찢어졌다.

“똥개가 물었습니다.”

***

나강인은 현대가 배경일 때는 복경산 부장으로 출연한다.

나강인은 분장을 직접 했다. 분장팀 사람이 그의 얼굴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쳤다.

“다시 봐도 진짜 장난 아니세요. 특수분장을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시는 거 같아요.”

“그냥 편법으로 몇 가지만 하는 겁니다. 정식으로 하는 분들처럼 다양하게 하진 못해요.”

나강인이 복경산 부장으로 분장하고 촬영장에 나타났다.

이보라는 이 영화에서 복경산의 딸로 나온다.

그녀가 나강인의 옆에 서서 웃었다.

“강인 오빠가 아빠라니. 흐흐. 되게 신기하다.”

“너 같은 딸이 있는 내 심정은 어떻겠냐?”

“행복?”

“설마.”

이보라가 나강인의 옆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다.

“우리 같이 셀카 찍어요.”

“내가 사진 싫어하는 거 알잖아.”

“지금은 복경산 부장으로 분장했잖아요. 이 얼굴을 보고 원래 모습을 알아볼 사람은 없어요.”

아까 박순기도 처음에는 나강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 얼굴로 영화가 나가잖아요.”

“하긴.”

이보라가 활짝 웃으며 나강인의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

촬영 중간 휴식 시간에 이보라가 SNS에 나강인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태그는 딱 하나만 달았다.

[#새 영화 속 아빠]

그녀가 스마트폰을 보며 실실 웃었다.

“원래 오빠가 아빠 되고 그러는 거지.”

그녀가 사진을 올리고 1분이 지나기도 전에 신은하가 달려왔다.

“야! 너 이거 뭐야?”

신은하가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이보라가 올린 사진이 화면에 떠 있었다.

“강인 오빠하고 찍은 셀카잖아.”

“이걸 왜 너랑 찍어!”

“너도 찍던가.”

“네가 한 걸 내가 따라 하겠니?”

“그럼 넌 안 찍어? 잘됐다. 나만 올려야지.”

“난 부장님이 아니라 복경산 장군님하고 찍을 거다!”

***

나강인이 출연하는 씬의 촬영이 시작됐다.

김유찬이 나강인에게 물었다.

“복경산 부장님. 혹시 검도를 하십니까?”

“응? 검도라니?”

“제가 꿈을 꿨는데요. 거기서 부장님이 칼을 휘두르면서 싸우고 계셔서요.”

복경산 부장으로 분장한 나강인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개꿈이네. 개꿈. 나는 싸움 같은 건 하나도 할 줄 몰라. 내가 평화주의자잖아.”

“예. 저도 알고는 있…. 푸하하학!”

“컷!”

변형찬 감독이 일어났다.

“아니, 유찬 씨. 거기서 왜 웃어요? 이거 되게 중요한 장면인데?”

“죄송합니다. 강인 씨가 평화주의자에 싸움도 못 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다시 하겠습니다!”

***

그날 저녁때 박순기가 총권도 수강생들에게 소고기와 술을 사면서 설명했다.

“야. 어쩔 수 없었다니까? 나 사범님이 아니면 누가 혼자 거기 들어가서 인질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었겠냐?”

사람들의 눈빛은 싸늘했다. 박순기가 서둘러 변명했다.

“나 사범님이 다음에는 직접 해결할 수 있게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시겠대. 그래서 이번 주 훈련이 빡세진 거야.”

민영희가 물었다.

“그래서 이 사태가 네 잘못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니라고 설명했잖아. 그리고 말이야. 정 힘들겠다 싶은 사람은 이번 주는 빠져도 되잖아. 우리 훈련은 원래 희망자만 참석하는 거니까. 내가 볼 땐 이번만 힘들고 다음 주 훈련부터는 평소 수준으로 돌아올 거 같아.”

군 특수부대 요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순기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 말이야. 이번 주 훈련이 특별하다는 걸 위에 보고했냐?”

“했지. 나 사범님이 다음부터는 이런 일로 부르지 말라잖아. 그 이야기를 위에다 보고는 해야지. 그런데 그러다가, 내가 이번 주에 어떤 고생을 해야 하는지도 말했지.”

군 특수부대 요원이 주먹을 쥐었다.

“우리 대장이 어디서 그 소문을 듣고 왔나 했더니 역시 범인이 너구나?”

“응?”

“이번 주 총권도 훈련을 빠지면 부대에서 내 책상도 빠질 거라더라.”

“어?”

“이번 주 훈련이 어떤 건지 소문 다 퍼졌다고!”

“어…. 야. 미안.”

정보기관 요원도 한마디 했다.

“우리 과장님은 남극 기지로 파견 가기 싫으면 이번 주 훈련 제대로 받으라더라.”

경호관 최남수가 맞장구를 쳤다.

“너도 남극이냐? 나돈데. 이번에 빠지면 진짜로 남극으로 보낼 건가 본데?”

세 사람이 박순기를 노려보았다.

“이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냐?”

박순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고기 더 시킬까?”

그들과 달리 민영희는 여유가 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프리랜서인 나는 이번 주에는 빠져도 되네? 난 남극으로 파견 보낼 윗사람이 없잖아.”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너만 빠지게 놔둘 줄 알아?”

“꿈 깨라.”

“같이 죽자.”

민영희가 가만히 보니 혼자 빠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빈 술병을 잡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갈 때 가더라도 순기는 죽이고 가야겠다.”

***

이번 구출 작전에는 몇 개 부서가 참여했다. 박순기가 소속된 부서, 분석팀이 소속된 부서, 그 외 다른 부서도 이후 단계를 자기들이 맡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의 후속 처리는 그 업무에서 빠지고 싶어 하던 합수부로 넘어갔다.

이튿날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을 찾아왔다.

“합수부에 차출된 직원들은 어제도 야근했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죠.”

“위에서 너무하시네. 왜 자꾸 합수부한테 일을 몰아준답니까?”

“그…렇죠? 왜 그럴까요?”

그동안 나강인이 해결한 일 중 상당수는 합수부가 맡아서 깔끔하게 처리했다.

“위에서 선생님과 우리 사이에 공조가 잘 된다고 착각하시나 봅니다. 하나도 아닌데 말이죠. 하, 하하.”

“어….”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그래서 일이 어떻게 된 겁니까?”

형사가 그동안 알아낸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곳은 과학자들이 연구자금을 받을 수 있게 회사나 정부 기금을 연결해주는 재단입니다.”

그 이야기는 유나린에게 이미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직원 콧대가 참 높던데요.”

“잘나가는 교수나 박사, 어디 연구소장 같은 사람이 거기만 오면 자세를 낮추니까, 콧대가 높아지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지요. 직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그런 곳을 그놈들이 노린 이유가 뭡니까? 두목은 뭔가 찾는 게 있던데요.”

“일단 그 두목 말입니다. 코드네임 블랙 사이드와인더. 7개국에서 지명수배된 킬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누군지 금방 알아내셨더군요.”

“부하 중에 용의선상에 오른 놈은 있는데, 정작 그놈의 진짜 얼굴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변장을 워낙 잘하거든요. 등에 새긴 뱀 문신을 확인하면 구분할 수 있지만, 그놈이 옷을 벗고 다닐 리가 없죠. 그런데 이번엔.”

형사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저희가 연락하기도 전에 그놈의 상의를 벗겨서 문신을 확인하셨더라고요. 알고 그러신 겁니까?”

몰랐다.

“그놈이 옷 속에 무기를 많이 숨겨뒀더라고요. 패다 보니까, 아니, 무기를 찾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우리가 그놈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7개국 모두 놈을 넘겨달라고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위험한 놈인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손만 좀 빠르지 별것 아니던데요.”

형사가 계속 설명했다.

“놈들이 뭘 노렸는지 물어보셨죠? 그 재단에는 연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연구 자료를 받아둔 게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민감한 자료도 있다더군요.”

“설마 그걸 노린 겁니까?”

“블랙 사이드와인더가 그걸 노렸다고 자백했습니다.”

“좀 이상하군요. 거기 있는 자료는 미완성일 텐데 그렇게까지 크게 일을 벌였다?”

“그렇게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단순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고 자료만 빼내서 조용히 빠져나갈 계획이었다더군요. 그러다 일이 틀어진 거죠.”

“국제적인 킬러가 상황에 따라서는 협박이나 강도질을 할 수는 있죠. 그런데 그걸 고려해도 자연스럽지 않은데요?”

“저희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벌 수위를 낮추고 진짜 목적을 감추려고 둘러댄 거겠죠. 하지만 자백이 진짜일 수도 있잖습니까?”

“가능성이야 있죠.”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은 굉장히 뛰어난 해커시니까, 그 재단의 서버 분석을 도와주시면….”

AI 전지인은 해킹방어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해킹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해킹이나 분석 작업은 제약이 많아서 도와주기 어렵다.

나강인이 단칼에 거절했다.

“그만하면 많이 도와드렸습니다만?”

“아, 하, 하. 그렇죠. 저도 위에서 자꾸 시켜서 말만 꺼내봤습니다.”

형사가 얼른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범인들과 내통했다고 의심하신 직원 말입니다.”

이번에는 나강인이 멈칫했다.

“어…. 그 사람 말이죠.”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엿을 먹이려고 의심하는 척했다는 말은 하시면 안 됩니다. 말을 돌리십시오.

형사가 말했다.

“저는 뭐 그 사람이 하도 시비를 거니까 선생님이 괜히 그러신 게 아닌가 했는데요.”

“아, 하하.”

- 이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습니다. 요원님이 어떤 사람인지 슬슬 눈치챈 것 같습니다.

“저희가 조사해보니까 진짜 내통했더군요.”

나강인은 당황했다.

“예?”

형사가 설명했다.

“물론 그 직원도 이런 상황까지 예상한 건 아닙니다. 그냥 내부 정보만 팔아먹은 거더군요. 그러다 사건이 커지니까, 자기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선생님에게 시비를 걸었다더군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도대체 어떻게 눈치채셨습니까? 저희가 당시 상황을 들어보니까, 그 직원이 내통했다고 의심할만한 정황은 안 보였는데요.”

나강인이 적당히 둘러댔다.

“딱 보니까 느낌이 왔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흔들리는 눈빛이라든지, 목소리 떨림이라든지. 뭐 그런 거요.”

형사가 눈을 반짝였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 분석력으로 이번 사건도 좀 도와주시면….”

“열심히 하시죠. 응원하겠습니다.”

***

유나린은 인질 사건에 휘말렸다가 구출된 후에 간단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녀는 그때 적을 쓸어버리고 그녀를 구출한 요원이 누구인지 담당 형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형사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경찰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경찰 친구를 만나 그 요원이 누군지 찾을 수 있냐고 물었다.

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건을 해결한 사람?”

“응. 나이는 마흔 살 정도? 딱 그쯤으로 보였어.”

“다른 특징은?”

그녀는 나강인이 변장한 모습을 떠올렸다.

“지적이고 기품있게 잘생겼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