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99화 (199/411)

199. 이름도 몰라요

유나린 박사가 나강인이 변장한 모습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녀의 고교 동창인 경찰 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가 마흔 살이면 적어도 십 년은 근무했겠네? 그런 실력자가 그렇게 오래 일하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면, 우리 쪽에서는 유명해야지. 그런데 네가 말한 그런 사람이 난 생각이 안 난다?”

유나린이 따졌다.

“야. 너 경찰에서 잘나간다고 자랑했잖아. 어떻게 그분을 몰라?”

“아! 그럼 특수부대 출신 특채인가?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최근에 우리 쪽으로 넘어왔으면 소문이 아직 안 났을 수 있지.”

유나린이 손뼉을 쳤다.

“맞다! 그게 확실해! 왜냐면 그분은 부상자가 어떤 상태인지 보자마자 알았거든. 의사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전쟁터에서 그런 케이스를 많이 본 거겠지.”

“그건 아닐걸? 우리나라 군인이 전쟁터에서 그럴 리가 없잖아.”

“응? 국군이 해외파병 갔다는 기사 여러 번 봤는데?”

“우리 나린이가 연구실에서만 살더니 이렇게 무식하다.”

“야!”

“해외파병을 가서 전투를 겪는 일이 있긴 있는데, 그게 흔한 일도 아니고 부상자가 많이 나왔다는 말도 못 들었어.”

유나린은 의대를 나와 의사 면허가 있다. 전공을 바꿨기 때문에 전문의 과정은 밟지 않았지만, 나강인이 보여준 진단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안다.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쟁터에서 몇 년은 싸운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군대가 그랬으면 뉴스에 맨날 전쟁 이야기가 나왔어야지.”

“그럼 그건 아니구나.”

유나린은 나강인의 전투 참전 횟수를 알고 싶은 게 아니다. 누군지가 알고 싶다. 그런데 단서라고 생각했던 정보의 가치가 없어졌다.

그녀가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그럼 그분을 어떻게 찾지?”

유나린의 친구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 남자를 왜 그렇게 찾는데?”

“응? 생명의 은인이잖아.”

“요년 요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아니거든?”

“그럼 다시 안 만나도 되겠네?”

유나린이 즉시 반박했다.

“만나야지! 만나서 신세는 갚아야지.”

그녀의 경찰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나린이한테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알았으니까 언니만 믿고 기다려. 이번 사건은 워낙 커서 아는 사람이 많을 거야.”

***

유나린은 이튿날 교수실에서 경찰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아봤어? 찾았어?”

친구가 대답했다.

- 그날 현장에 내가 아는 사람도 갔더라. 그래서 물어봤는데, 네가 말한 그 사람을 보긴 봤대.

유나린이 자기 일처럼 자랑했다.

“당연히 봤겠지! 실제로 그놈들을 혼자 다 잡은 분인데.”

- 그런데 누군지는 모른다더라. 처음 보는 사람이었대.

“응? 같은 경찰인데 왜 몰라?”

- 대한민국 경찰이 한두 명이냐? 어떻게 서로 얼굴을 다 알아? 넌 너희 학계 사람 얼굴을 다 아니?

“경찰인 건 맞지? 그치?”

- 경찰 쪽 요원은 맞는 것 같아. 현장에서 형사와 같이 움직이는 것도 봤다는데, 내가 연락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다더라.

“야. 너 인맥이 왜 이렇게 얕아?”

- 이년이. 이것도 힘들게 알아낸 거야.

“미안. 술 살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 이것도 힘들게 알아냈다니까?

“응?”

- 내 힘은 여기까지다. 미안.

“어? 야?”

전화가 뚝 끊어졌다.

“야!”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가 가자마자 상대가 끊어버렸다. 대신에 톡이 날아왔다.

- 술은 내가 살게.

유나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경찰에 아는 사람 있다고, 그쪽으로 물어보면 이름 알아내는 건 쉽다고 큰소리쳤는데.”

나강인은 그날 그녀에게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럼 내 힘으로 알아내야지. 일단 뉴스부터!”

그녀가 손바닥을 비빈 후에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날 인질 구출 사건에 관한 기사는 많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유나린이 아는 정보를 담고 있었다.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붙잡혀 있던 직원과 인터뷰를 하고 쓴 기사도 있었지만, 그런 기사조차도 유나린이 아는 것보다는 내용이 부실했다.

킬러와 용병들이 그 건물을 점령할 때는 유나린과 직원들이 같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서로 아는 게 비슷했다.

그런데 그녀가 복도 한쪽 사무실에서 칼에 찔린 부상자를 치료한 것이나, 그 사무실에서 나강인이 용병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다른 직원들은 보지 못했다.

그녀가 킬러에게 납치됐다가 구출된 사건도 유나린만 경험했다.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 본 건 각자 있던 장소에서 벌어진 일뿐이다.

게다가 어느 기사에도 나강인의 이름은 없었다.

“기사는 다 거기서 거기네. 도움이 안 된다.”

그녀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커뮤니티 게시판을 하나 찾아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이 그 게시판에 올린 목격담이 있었다.

댓글 중에는 나강인의 정체를 추측하는 것도 있었다. 그녀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 체조 선수 출신일 겁니다. 목격담에 책상 위를 날아다니는 묘사가 있잖아요? 그걸 보면 딱 체조 선수가 연상됩니다.

- 춤꾼 아닐까요? 총알을 피할 때 한 손으로 물구나무서서 거꾸로 걸었다면서요.

- 풍차처럼 회전하면서 총알을 피한 건 마루 운동이 맞는 것 같은데요?

얼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어떻게 생겼습니까?

유나린이 그 댓글을 보며 말했다.

“잘 생겼지. 지적이고 기품있게.”

그 질문에는 글 작성자가 댓글을 달았다.

- 잘생겼어요.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뭔가 기품 같은 게 느껴졌어요.

“작성자가 보는 눈이 있네.”

- 자세한 묘사를 원합니다.

- 그분이 처음 들어오셨을 땐, 저는 강도들이 무서워서 얼굴만 슬쩍 보고 도로 눈을 깔아야 했어요. 그분이 강도들을 쓸어버릴 땐, 그분도 놈들의 가면을 빼앗아서 쓰고 있어서 얼굴을 설명할 정도로 기억나진 않아요.

- 기품 있게 잘생겼다면서요?

- 그건 처음 딱 보자마자 느낌이 오니까요.

-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이던가요?

- 40살이요.

- 40대도 아니고 40살이라고 나이를 정확히 말하시네요?

- 그분 얼굴을 보면요. 40살 정도라는 느낌이 그냥 들어요.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데, 다른 직원들도 다 40살쯤으로 봤다고 말했어요.

나강인은 사람들이 그의 나이를 40살로 생각하게 변장하고 놈들을 잡았다.

- 40살에 그 피지컬이면 20대 때는 날아다녔겠는데요? 진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닙니까?

- 태릉 선수촌에 갔어야 하는 인재가 경찰에 갔네.

- 선수로 활동할 20대 초반에는 경찰은 아니었겠지.

- 진짜 선출인가?

유나린이 그날 나강인이 움직이던 모습을 떠올렸다.

“특수부대가 아니라 선수 출신인가?”

그녀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신호가 한참 간 후에 전화를 받았다.

- 야. 내 힘으로는 그게 한계라니까?

“내가 새로운 정보를 얻었는데, 특수부대가 아니라 선수 출신 경찰인 거 같아.”

- 아. 선수 출신 특채도 좀 있지. 알았어. 내가 그쪽으로 알아볼 테니까 좀 기다려.

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유나린은 모니터를 멍하니 보았다. 더 검색한다고 해서 나강인이 누군지 찾을 단서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나강인이 그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입이 삐죽 나왔다.

“나한테 반했다며. 내가 딱 취향이라며.”

나강인은 유나린을 인질로 잡은 킬러를 속이려고 그렇게 둘러댔다.

그런데 유나린은 그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날 구출하면 고백한다며.”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나강인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건 광고 스팸 전화밖에 없었다.

“우린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킬러 앞에서 그 말을 한 사람이, 사건이 끝난 후로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답답해진 유나린이 연락처를 찾아내려고 주변에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다. 인터넷에도 나오는 정보가 없다.

그녀가 주먹을 쥐며 모니터를 향해 외쳤다.

“야! 내가 첫사랑이라며!”

***

AI 전지인이 질문했다.

- 유나린 박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연구자금을 우리가 대는 건 네가 반대했잖아.”

- 임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임무 수행을 위해선 활동자금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임무가 뭔지도 모르잖아.”

- 우리는 요원님이 선택하신 표준 전술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현지 적응 임무를 수행 중이며, 지구연합 전략특수군 사령부와 연락할 방법도 찾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비상 상황에서 선택한 임무잖아. 원래 임무는 뭐였을까?”

- 현재 상황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계속 툴툴댔다.

“그래. 알 수 없지.”

AI 전지인이 변명 삼아 말했다.

- 유나린 박사는 요원님이 나서지 않아도 결국 연구에 성공할 겁니다. 제 초기 메모리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도 알아.”

***

유나린 박사가 교수실에서 씩씩대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권수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님. 오랜만이에요.”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수연아. 퇴원한 거야? 아픈 건 이제 괜찮아?”

권수연이 팔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요. 저 이제 다 나았…. 아야. 아파라.”

“안 괜찮잖아! 얼른 이리 와서 앉아.”

권수연이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거의 다 나았어요. 통증만 조금 남아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체력이 진짜 좋아졌어요.”

그녀는 지난 몇 달 동안은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지고 조금 뛰면 쓰러질 정도로 건강이 나빴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차를 몰고 학교에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권수연과 유나린은 전공이 다르다. 나이 차이도 꽤 난다.

그런데도 둘은 말이 잘 통해서 학교에서 가깝게 지내는 편이다. 특히 학술적인 대화를 할 땐 주변 사람은 이해 못 하는 개념을 둘이서만 열심히 떠들곤 했다.

권수연이 자랑했다.

“저 이제 건강해졌으니까 태양전지 연구를 계속하려고요. 오늘은 인사드리러 왔어요. 그런데 교수님도 그….”

권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유나린이 웃었다.

“뉴스에는 내 이름이 안 나왔을 텐데 어떻게 알았어?”

“우리 연구실에 지혁이가 어디서 듣고 왔더라고요.”

“사건이 크긴 했는데, 난 하나도 안 다쳤어. 오히려 뭐랄까. 신세계를 봤다고 할까?”

유나린이 손을 들었다.

권수연이 손을 들어 그녀의 손바닥과 툭 마주치며 물었다.

“이거 왜 한 거예요?”

“바톤 터치. 수연이 너는 연구를 다시 시작하고, 난 다 그만두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차피 내 연구는 실패했으니까, 미련 갖지 말고 여기서 그만둘까 하고.”

당황한 권수연이 말렸다.

“안돼요. 그럼 너무 아깝잖아요. 길이 보인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줄 알았는데 결국 실패했어. 이제 연구비 나올 곳도 없어. 그래서 마음을 바꿨어. 연구실을 떠나서, 좀 더 모험이 넘치는 세계가 보고 싶어졌어.”

“갑자기 모험이요?”

“응. 그런 세계에 있는 분을 만났거든.”

권수연이 유나린을 가만히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저기요. 교수님. 혹시 운명의 상대라도 만나신 거예요?”

유나린이 배시시 웃었다.

“아직 그건 모르겠는데, 그분을 보고만 있어도 나까지 막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이 들었어. 아. 이게 사는 거구나 싶었지. 난 그동안 왜 연구실에만 갇혀 살았을까?”

유나린은 평소에 강의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주로 연구실에서 살았다.

권수연이 안타까워했다.

“교수님이 하시는 연구 진짜 좋은데. 그만두시면 안 되는데.”

유나린의 어깨가 조금 처졌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그러려면 먼저 날 모험의 세계로 데려다줄 분을 다시 만나야 하는데, 누군지 이름도 모르네?”

권수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었다.

“에이. 난 또. 진담이신 줄 알았잖아요.”

“진짠데.”

“누군지 이름도 모른다면서요. 환상 속에 있는 그대 아녜요?”

“아니거든? 내가 진짜 봤거든?”

권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연구비로 집까지 날린 분이라 돈이 하나도 없잖아요. 학교 관두시면 밥 굶잖아요.”

“아. 맞다. 나 이제 완전 거지지.”

***

그날 저녁때 권수연이 피시방에 들렀다.

“여기라고 들었는데….”

권수연이 야간 알바 윤아름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요. 혹시 여기 일하는 분 중에 나강인이라고 있어요?”

윤아름이 당장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강인 오빠를 왜 찾으세요?”

“여기 있는 거 맞네요?”

“그러니까 왜?”

“친구예요.”

윤아름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권수연을 보며 물었다.

“제 눈은 못 속여요. 솔직히 말하세요. 소속이 어디시죠?”

“한국대학교에서 연구하는데 그건 왜….”

윤아름은 깜짝 놀랐다. 경계의 눈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앗! 연예계에 계신 분이 아니시구나! 진짜 강인 오빠 친구시구나!”

“네? 연예계요?”

윤아름이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 선에서 커트해야 하는 분인가 해서요. 아니네요. 호호호.”

“그게 무슨….”

윤아름이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런데 강인 오빠하고는 무슨 사이세요?”

“친구라니까요?”

“고등학교? 중학교? 설마 소꿉친구….”

그녀가 권수연의 얼굴과 몸매를 훑어보며 분석했다.

‘일단 외모는 은하 언니 승. 하지만 남녀관계는 정이 들면 무섭다는데, 소꿉친구면 그동안 쌓은 정이…. 우왕. 은하 언니 긴장해야겠는데?’

권수연이 대답했다.

“대학교요.”

“아아. 대학교 친구. 그 정도면 괜…. 네? 한국대학교에 계신다면서요?”

“박사과정이에요.”

“휴우. 난 또. 그럼 대학교는 어디를 졸업하셨는데요?”

“한국대학교죠?”

윤아름은 경악했다.

“설마 강인 오빠가 한국대학교 나왔어요?”

“그런…데요?”

“대박! 생긴 거랑 다르게 공부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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