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이 산이 아니다?
권수연이 반박했다.
“강인이가 생긴 게 어때서요?”
피시방 삼인방 윤아름이 얼른 말을 돌렸다.
“에이. 못생겼다는 게 아니라요. 운동 잘하게 생겼잖아요. 그 이야기에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할 수 있죠.”
“어머! 그럼 강인 오빠가 한국대학교 다닐 때도 공부 잘했어요?”
권수연이 시선을 조금 피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닌데….”
“거봐요. 그 오빠는 공부 하나도 안 했을 줄 알았어.”
“대신에 특별한 일을 많이 했죠.”
“그것도 그럴 줄 알았어요.”
“네?”
윤아름이 자기 일처럼 자랑했다.
“강인 오빠는 요즘도 특별한 일 많이 하잖아요.”
윤아름이 말한 특별한 일은, 영화나 드라마의 무술감독을 하거나 가수 댕댕으로 활동한 것, 그리고 요원들에게 총권도를 가르치는 것과 프프걸스에게 자연 체조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권수연은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럼 강인이가 요즘도 피라미드나 텔레파시 안테나 같은 걸 만들어요?”
“네? 그런 이상한 걸 왜 만들어요? 강인 오빠가 그래도 미치진 않았거든요?”
“특별한 일 많이 한다면서요?”
“대박! 그럼 옛날에는 그런 것도 했어요?”
“그것만 했겠어요?”
서로 말이 좀 엇갈리긴 했지만, 윤아름은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들었다.
“앗! 잠깐만. 설마 이거 새 콘텐츠?”
윤아름은 너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원래는 방문자가 거의 없는 척박한 황무지 채널이었는데, 최근 들어 상황이 변했다.
나강인은 프프걸스의 자연 체조 1단계 영상을 그녀의 너튜브를 통해 서비스하게 했다. 거기에 나강인과 삼인방이 가면을 쓰고 찍은 호신술 영상도 나름대로 사람을 모았다.
프프걸스의 자연 체조 영상은 광고를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보는 사람은 많은데 조회수에 비해 수익은 낮았다.
대신에 그 체조를 보려고 유입된 사람들이 가끔 호신술이나 게임 같은 다른 영상들도 봐준다.
덕분에 윤아름의 너튜브 수입은 피시방 아르바이트보다 쏠쏠했다.
윤아름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강인 오빠가 옛날에 했다는 특별한 일이 어떤 거예요? 진짜 너무 궁금해요.”
“음…. 피라미드 이야기부터 들어볼래요?”
***
나강인이 피시방 문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요리를 파는 날은 아니다. 야전 전술요리는 마음이 내키는 날만 만든다.
그는 종종 이 피시방에 와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 날은 밥도 남들처럼 사 먹었다.
“오늘은 볶음밥에 계란후라이 두 개 추가해서 먹….”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피시방에서 권수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수연이가?”
-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습니다. 빨리 제지하십시오.
나강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윤아름과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안쪽에서 권수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권수연이 말했다.
“그래서 강인이가 만든 텔레파시 안테나를 학교 공터에 설치했거든요.”
윤아름이 손뼉을 쳤다.
“어머! 성공했어요?”
“아뇨. 그게 성공하면 더 이상하죠. 당연히 실패했죠.”
“아. 그쵸. 성공했으면 노벨상이죠.”
안성환도 맞장구쳤다.
“성공했으면 우리는 그 형을 TV에서나 봤을걸?”
권수연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번개가 그 안테나에 떨어져서 통신기가 폭발했어요. 아주 쾅하고 터졌죠. 도서관이나 연구실에 있던 사람들이 다 뛰어나오고 아주 난리가 났었어요.”
“앗! 엄청 혼났겠다.”
“안 들켰어요.”
“네?”
“그러니까 괜찮대요. 강인이가 한 말이에요.”
윤아름이 안성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하핫! 강인 오빠다워요.”
“야. 아파. 살살 때려.”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지인아?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다며?”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의 흑역사가 공개되고 있습니다.
“너 지금 나 놀리는구나?”
나강인이 세 사람에게도 말했다.
“내 욕하는 모임이라도 열렸냐?”
권수연이 나강인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앗! 강인아!”
“넌 여기는 어떻게 왔어?”
“너 여기서 일한다길래 병원에 통원치료하러 왔다가 와봤지.”
외과 과장 이정호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은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윤아름이 얼른 물었다.
“강인 오빠. 진짜 텔레파시 안테나랑 통신기를 만들었어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말이야.”
권수연이 대신 대답했다.
“그때 강인이는 번개만 떨어지지 않았어도 텔레파시 실험이 성공했을 거라고 주장했어요. 그 장비를 다시 만들 돈으로 다른 실험을 해야 하니까 거기까지만 한다고 했죠.”
나강인이 얼른 말했다.
“그러니까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닐까?”
AI 전지인이 한마디 했다.
- 2082년의 기술력으로도 텔레파시 통신기는 못 만듭니다. 아마 번개를 잘 끌어들이고 잘 터지는 피뢰침 기계를 만드셨을 겁니다.
나강인이 권수연에게 말했다.
“넌 여기에 나 놀리러 왔냐.”
“아니. 그냥 놀러 왔다니까?”
“그럼 그냥 놀아. 순진한 애들 놀리지 말고. 얘들이 진짜인 줄 알잖아.”
“어머. 진짜였잖아.”
윤아름이 옆에서 실실 웃었다.
“강인 오빠가 한국대 출신이래서 공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냥 사차원이었어.”
안성환이 방금 맞은 어깨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아름아. 그거 알아?”
“뭘?”
“지금 여기 있는 네 명 중에, 한국대학교에 안 다녀본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안성환은 한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학년이다.
윤아름이 폴짝 뛰어서 안성환의 목에 팔을 걸고 아래로 끌어내리며 꽉 조였다.
“네가 죽고 싶구나?”
“야. 미안. 미안. 나 숨! 숨!”
“엄살 부리지 마! 이 정도로 숨을 왜 못 쉬어!”
“그, 그게 아니라….”
윤아름이 팔을 풀어준 후에 나강인을 보며 은근슬쩍 제안했다.
“근데요. 친구분도 오셨는데 오늘 밥은 강인 오빠가 하나요?”
권수연이 손뼉을 치며 나강인을 보았다.
“아! 연지한테 들었는데 너 요리 정말 잘한다며?”
“어. 뭐….”
“나 다 나으면 요리해준다고 했잖아. 그럼 오늘 해주는 거야?”
AI 전지인이 당황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 권수연은 페넬로페에서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요원님이 지금 요리를 만들면 그 식사 기회가 얼렁뚱땅 소멸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위험은 감수할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권수연에게 말했다.
“요리는 나중에 따로 해줄게.”
“따로? 와아!”
“네가 밥부터 산 후에.”
나강인이 윤아름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은 네가 만든 볶음밥을 먹을 거다.”
윤아름의 어깨가 처졌다.
“쳇. 오늘 생일상 받나 했는데.”
“응? 너 생일이냐?”
안성환이 옆에서 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름이 생일은 오늘이 아닌데요?”
“야! 거의 다 넘어왔는데!”
나강인이 말했다.
“날이 갈수록 잔머리만 늘어나는 아름아. 볶음밥에 계란후라이도 두 개 얹어서 냉큼 가져오너라.”
나강인은 평소에는 이 피시방 구석에 있는 그의 고정석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그런데 그 자리의 바로 옆자리는 신은하의 고정석이고, 그녀의 옆자리는 이보라의 고정석이다. 외부 손님을 앉힐 공간이 없다.
그래서 나강인은 직원용 휴식공간의 테이블에서 밥을 먹으며 권수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수연이 볶음밥을 먹으며 말했다.
“여기 맛있다.”
“그거 냉동을 볶은 거야.”
“냉동 볶음밥이 원래 이렇게 맛있어?”
윤아름이 지나가다가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강인 오빠한테 요리를 조금 배웠어요. 아. 배운 게 요리법이라고 하면 안 되겠구나. 냉동 볶음밥이 더 맛있어지게 조미료 뿌리는 법을 배웠어요.”
“와. 강인이 요리 진짜 잘하나 보다.”
“저 오빠가 직접 요리한 건 진짜 장난 아니에요. 그걸 오늘 먹을 수 있었는데, 성환이 때문에 망쳤어요. 괜히 오라고 했어.”
윤아름이 지나간 후에 권수연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나 연구 다시 시작했어. 그동안은 건강이 나빠서 느려졌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재개하려고.”
AI 전지인이 뿌듯해했다.
- 이라미드 태양전지 최초 개발자의 목숨을 구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한 일이 인류의 미래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업적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어. 열심히 해봐. 굉장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아까 나랑 친한 교수님을 만났거든? 나는 다시 시작하는데, 그분은 연구를 그만두시겠대. 그분이랑 연구 이야기를 하면 통하는 게 있어서 좋았는데 너무 아쉬워.”
나강인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 그러냐.”
“이번에 마포구 총격사건 알지? 거기 계셨나 봐. 거기서 무슨 경험을 하신 건지, 앞으로는 연구실이 아니라 모험이 있는 삶을 살고 싶으시대.”
나강인이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다급히 물었다.
“어? 뭐?”
AI 전지인의 목소리도 급해졌다.
- 유나린 박사 이야기입니다.
“유나린 박사가 연구를 그만둔다고?”
“어? 너도 유 교수님을 알아?”
“어…. 이름하고 얼굴 정도만?”
권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알았지? 유 교수님 이름은 이번 사건 뉴스에 안 나왔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아는 사람을 통해서 들었어.”
권수연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긴. 나도 지혁이한테 들었으니까. 아. 지혁이 알지? 전에 우리 연구실에서 봤던 걔.”
“알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 지금 박지혁이 누군지 듣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2027년 노벨상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어쩌실 겁니까?
“내가 연구를 그만두게 한 건 아니잖아. 그리고 노벨상 하나쯤은 날아갈 수도 있지.”
- 노벨상을 탈 정도로 훌륭한 연구가 같이 날아가잖습니까? 제 판단으로는 유나린 박사가 연구를 그만두는 원인이 요원님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 유나린 박사에게 모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 이 긴급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유나린 박사가 그만둔 후에는 늦습니다.
나강인이 권수연에게 물었다.
“유나린 박사가 연구를 그만둔다는 거, 얼마나 확실한 거야?”
“그 사건 현장에서 유 교수님을 모험의 세계로 데려다줄 사람을 만났대.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바로 연구를 그만둘 것 같던데?”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해결법이 나왔습니다. 유나린 박사와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피하십시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유 박사가 아는 내 얼굴은 40살로 변장했을 때의 모습이야.”
- 그러면 다시는 그 변장을 하지 마십시오.
“노벨상와 그 연구를 위해서 그래야겠네.”
권수연이 설명을 추가했다.
“유 교수님이 하던 연구가 실패 판정을 받아서 연구자금 지원이 끊겼어. 그래서 연구가 중단된 지금이 그만둘 기회래. 연구비를 새로 받으면 모험을 찾아서 떠날 수 없잖아.”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그러면 연구자금이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네?”
- 요원님. 그렇다 하더라도 몰빵은 안됩니다.
“우리 활동자금을 쓰려는 거 아니냐.”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
그는 피시방 구석에 있는 고정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유나린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모른다. 그가 아는 건 AI 전지인의 초기 메모리에 유나린이 2027년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나강인이 말했다.
“오메가테크가 유나린을 스카우트하려고 사람을 보냈었잖아.”
그 사람은 다른 인질들과 함께 붙잡혀 있다가 풀려났다. 그 후에는 본사로 돌아가서 유나린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오메가테크에서 직접 투자하면 우리 활동자금은 쓸 필요가 없어.”
- 요원님께서 이렇게 좋은 생각을 해내실 줄이야! 누가 돈을 내든 유나린 박사의 연구가 성공하면 인류의 미래에 보탬이 됩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걸며 말했다.
“내가 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테니까 잘 봐라.”
미국 회사 오메가테크의 사장 스칼렛이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어머! 나강인! 이번에도 악당들을 물리쳤다는 말은 들었어요. 우리 직원도 신세를 졌더라고요.
“그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나강인이 본론부터 꺼냈다.
“유나린 박사의 연구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만.”
- 쳇. 또 유나린 박사 이야기네. 아뇨. 원하지 않아요.
“응?”
- 그 연구는 완전히 실패했잖아요. 실패한 연구에 왜 굳이 손대요?
“그걸 계속 연구하게 하려고 유나린 박사를 스카우트하려던 거 아닙니까?
휴대폰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갑자기 스칼렛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 아하하하! 나강인 씨도 모르는 게 있구나. 내일 제시카한테 말해줘야지.
“그게 아니란 거네요?”
- 당연히 아니죠. 난 유나린 박사의 능력을 보고 스카우트하려는 거예요. 그 귀한 인재를 데려와서 설마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라고 하겠어요? 유나린 박사는 우리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에 참여할 거예요.
“그렇군요.”
- 나 곧 한국에 들어가는데 만나서 이야기하죠?
“그럽시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다. 오메가테크는 그 연구에는 관심이 없어.”
- 다른 회사가 유나린 박사에게 접근한다 해도 목적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럼 노벨상은 도대체 어떻게 타는 거야?”
- 인류의 미래가 조금 어두워졌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단 유나린 박사가 뭘 연구했는지부터 알아야겠다.”
- 인터넷을 검색해 알아낼까요?
“아니.”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수연이 보였다.
“지금 여기에 그걸 알만한 사람이 있잖아. 수연이한테 물어보자.”